<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㊹북한 속 지옥의 앞과 뒤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08.07 14:40:58
  • 호수 14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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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밤이 되자 천정에서 쥐가 찍찍거리며 소란스레 뛰어다녔다. 늙은 남자는 술냄새를 풍기며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오더니, 괴로워 움직일 맥도 없는 처녀인 저의 몸을 사정없이 막 유린하였다. 

나는 아프고 서러워 날이 샐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아침엔 일찍 일어나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차가운 물에 빨래를 했다.

극단적 선택
시도 발버둥

시골 농가 일이란 건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일도 안 하고 건들대던 남자는 술만 마시면 하루 밤에 댓 번도 달라붙어 괴롭히는지라 기절할 지경이었다.

농사꾼들이 할 일이 없는 긴긴 겨울에 늙은 남자는 빚돈을 내어 마작 놀이나 술판을 벌여대었다. 밤이면 바삐 웃통을 벗어 남자가 나를 들어 이부자리 위에 눕힌 후 옷을 다 벗길 사이도 없이 달라붙어 씨근거렸다.


마을에서는 어디서 저런 선녀 같은 고운 조선 색시를 데려왔는가 하며 칭찬을 했다. 하지만 궁색한 살림을 나름 꾸려 나가려 애쓰던 내게 돌아온 건 늙은 남편의 뭇매질이었다.

마작 놀음에 돈을 다 처넣었으니 집에는 먹을 식량도 쓸 돈도 없이 빈털터리였다. 술주정이 심한 남자는 나 때문에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며 트집을 잡고 술만 먹으면 귀뺨을 때리고 발길질을 했다.

나는 몇 번이나 자살할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숨을 씹어 삼키며 기를 쓰고 살아내려 발버둥을 쳤다. 어머니 소식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 지옥 같은 북조선에서 살았을지 죽었을지 모를 아빠, 엄마, 동생들, 오빠의 행적도 찾고 언젠가 좋은 세상 구경도 하고 싶은 욕망에 차마 결단이 서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 생각으로, 살아서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자나깨나 나의 소식만을 기다리며 눈물 흘리고 가슴 앓을 어머니를 위해 나를 희생하자는 생각을 했다.

마을 할머니들과 아줌마들이 틈틈이 자기 집에 나를 데려다가 같이 놀며 말동무도 해주곤 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의 정 앞에 나는 괴로움을 삭이며 살 용기를 얻었다. 어느 소수민족 출신 아줌마한테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중국 농촌엔 장가 못 간 사람이 많아요. 환갑이 되도록 여자 맛 못 보고 사는 사람도 있고요. 중국 사람들이 여자들 데리고 놀다가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팔아먹지요. 우린 싸우고 싶어도 싸우지 못해요. 사이가 나빠지면 신고하니까. 죄없이 져주면서 사는 게 너무나 힘들어요. 우린 값이 없는 몸이니까 가족 내에서도 업신여기는 게요. 아이를 낳고 살아도 사람 취급을 안 하고 막 대해요. 어떤 날은 남편이라는 사람이 성관계를 요구하고, 어떤 날은 시아버지란 사람이, 또 어떤 날은 시아주버니라는 사람이 요구하고…. 그게 우리뿐 아니라 다 겪는 고통이랍니다.”

말로만 강성대국…사실상 지구상 최빈국 근접
탈북하다 함남 농촌으로 추방 “남의 일 아냐”

아, 다른 나라 여자로 태어났더라면 운명이 이렇게 기구하지는 않을 텐데..... 멀고 가까운 곳곳에 어쩔 수 없이 숨막히게 살고 있을 수많은 북한 여자들.....

태어나게 만들어 놓고는 책임져 주지도 못하고 정처 없이 헤매도록 만든 북한 사회가 저주스러웠다.

이국 땅에서의 설움은 크나큰 고통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의 깨우침을 주기도 했다. 만일 북한이 중국보다 잘 사는 나라였다면 우리가 이렇게 팔리는 몸이 되었겠는가?

말로만 강성대국을 부르짖는 북한은 어찌하여 한 국가로서 많지도 않은 인구를 먹여 살리지 못해 수많은 인민들이 이국 땅에서 헤매게 하는가?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 하였는데, 지금도 중국 땅에서는 수많은 우리 동족들이 가녀린 생명의 빛을 잡고 서럽게 울고 있다.

수많은 북조선 여성들이 중국 사람들에게 팔려가 아이를 낳고 살지만, 아내도 아니고 며느리도 아니고 다만 씨받이일 뿐이다.

늙은 남자는 내가 도망칠까 봐 늘 경계하며, 집을 나가면서 자물통을 잠그고 들어올 때는 칼을 든 채로 막 협박했다. 의심이 심해 쇠사슬로 내 발목을 묶어 개처럼 기둥에다 매 놓을 때도 있었다.

그는 알아듣지 못할 중국말을 지껄이며, 창고에 있는 도끼로 머리를 짝어 부대자루에 넣어 야산에 묻어 버리겠다는 듯 무서운 시늉을 하며 겁을 주곤 했다.

아아, 생지옥이었다. 마음속 깊이 꿈이 하나 있었건만 이젠 이룰 수 없는 허상이었다.


‘부지런히 일하여 돈을 벌어서 엄마를 꼭 모셔 오리라. 아니, 이곳으로 모셔 오진 못할망정 고국 땅에서나마 편안히 해드리리라.’

새해 초에 하도 고향 소식이 궁금하여 겨우 기회를 봐 전화를 걸었더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딸의 탈북으로 인해 함경남도 어느 이름 모를 농촌으로 추방당했다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은 내 마음은 뼈가 저미도록 아팠습니다. 비통한 후회는 이미 때늦은 것이었다.

‘불쌍하신 나의 엄마, 지금쯤 어느 산골짜기에서 헤매며 모진 고생 하고 계실까. 아, 자식 된 도리를 못할망정 어머니께 고통만 겪게 하는 이 죄 많은 딸자식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요?’

봄이 오자 어떤 희망을 걸고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며 농사일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험한 땅을 갈아 암소처럼 농사일을 하면서 슬픈 영혼의 울음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런 비인간적인 생활을 반년나마 하였을까, 그러던 어느 날 늙은 남자는 빚돈에 쪼달린 나머지 나를 비밀스레 팔아 버렸다.


그리하여 난 다시 흑룡강 목단의 어느 시골집 홀아비 한족 남자한테 얽매이게 되었다. 그 집의 남자는 한쪽 다리가 장애인데다 성격장애까지 지닌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라 없는
백성들

그는 밤이면 혀로 자신의 온몸을 핥으라고 강요했다. 나이 차이도 많고, 또 스무 살 난 불량스런 아들이 행패를 부리는 막된 집안이었다.

너무 서러워 내가 밥도 못 먹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자 그들은 교대로 마구 때리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나는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한 끝에 목숨 걸고 탈출의 길을 선택하였다.

한밤중에 남몰래 맨발로 수십 리를 걸어 겨우 길림 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동족인 조선족 마을을 찾기 위해.....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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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