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공포’ 측정기 무용론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8.07 11:40:53
  • 호수 14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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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 다녀도 소용없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에 돌입했다. 방사능 노출에 관한 우려도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일부 시민들은 불안한 마음에 방사능 측정기를 구입했다. 오염된 수산물은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문제는 측정기의 정확도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피복된 생선의 껍질을 벗겨야 정확한 검증이 가능하다.

일본이 오염수 처리 방안으로 제시한 ‘해양 방류’를 결정한 지 2년이 지났다. 인체에 문제가 없을 만큼 희석해 방출하겠다고 약속했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오염수 내 유해 핵종을 처리한다는 의미다. 오염수에는 크게 삼중수소,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등이 들어 있다. 이 중에서 삼중수소는 물과 화학적 성질이 같아 분리하기 어렵다. ALPS의 효용성이 의심받고 있어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사람 몸에도?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력공학과 명예교수는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휴대용 측정기는 잡음까지 측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방사능 측정기기가 오염수와 무관한 자연 감마선까지 잡아낸다는 뜻이다. 

애초에 수산물이나 사람 몸에는 칼륨40이라는 방사성 물질이 들어있다. 오염수에 포함된 세슘에서는 물론, 전자레인지서도 감마선이 나온다. 자연적인 감마선의 대표격이 칼륨40이다.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기가 칼륨40까지 측정한다면 정확도는 떨어진다. 감마선은 투과율이 높아 체내에 축적되지 않는다. 

반면 베타선이 나오는 삼중수소, 스트론튬 등은 투과율이 낮다. 그만큼 인체에 흡수될 시 빠져나가기 어렵다. 삼중수소는 우리 몸에 쌓여 유전정보를 바꿔놓을 위험이 있다. 변이를 일으켜 암세포를 발생시키는 것도 이런 원리다. 피복에 따른 위험성은 알파, 베타, 감마선 순으로 나열된다. 플루토늄에선 알파선이 나온다.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방사능 측정기기는 대부분 감마선만 측정한다.


기기는 방사능 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되면 안전하다고 판단할 뿐이다. 플루토늄, 스트론튬 등 고위험 방사능 피폭 가능성은 배제한 셈이다.

또 장비가 부족해 전체 유통량 중에서 검사받는 물량이 극히 일부분이다. 현재 일본서 수입되는 농축수산 가공식품의 양은 20만~40만㎏에 달한다. 이에 사용되는 방사능 검사장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방사성 핵종에 대한 유해성도 전문가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누굴 믿고 안심하라는 건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티머시 무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생물학과 교수는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반대로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 명예교수는 안심하라는 입장이다. 

오염수 방류에 들끓는 여론
불안한 마음에 유행처럼 구입

지난 4월 방한한 무쏘 교수는 “삼중수소는 생물 체내에 들어가면 고에너지 감마선보다 두 배 이상 위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중수소 원자는 물에 가까워 체내로도 쉽게 들어올 수 있다. 그는 “투과력이 강한 감마선은 순간적으로 DNA나 세포에 영향을 미치면서 곧바로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며 “투과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삼중수소의 베타선은 세포조직이나 장기 내부를 벗어나지 못하고 피폭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쏘 교수는 1950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된 삼중수소의 영향을 다룬 250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생물학적 효과비가 세슘-137의 2~6배라는 점이 다수 문헌서 확인됐다.

이 교수는 삼중수소의 성질을 잘못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앙선데이>와 가진 인터뷰서 “오염수에는 물과 구별할 수 없는 ‘삼중수소수’로 들어 있다”며 “물이 몸 안에 쌓이나? 방류 반대자들이 체내에 축적되는 중금속처럼 말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5000만 국민이 모두 속았다고 강조했다. 유해 핵종에 관한 유해성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유통된 수산물을 검증한다고 안심할 수 없다. 특히, 방사능 피복에 부작용은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다. 면역력 저하, 암 발병 등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날 뿐이다.

의사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술, 담배를 줄이세요” 밖엔 없다. 대처 방안에 대해 서 교수는 극단적으로 이야기했다. 이 교수는 “7~8년간 일본 수산물은 먹지 않을 것”이라며 “조심해서 나쁠 게 없는데, 음모론자로 비판받는 게 씁쓸하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에선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기 도입 시범을 보이며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부산어패류처리조합 관계자는 기기를 들고 수산시장을 찾았다. 약 30㎝ 떨어진 거리서 돌돔에 대자 0.66이라는 수치가 떴다. 세슘(Cs)-134값이 ㎏당 0.66베크렐임을 의미한다.

세슘서 나오는 감마선 측정은 비교적 쉽다. 세슘을 측정하면 다른 핵종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다.

플루토늄에선 알파선, 스트론튬에선 베타선이 나오는데 검사법과 측정 방법이 모두 다르다. 식약처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서만 세슘 농도를 측정·조사하고 있다. 국산 수산물은 해양수산부가 맡는다. 이 측정기는 부산시설공단 자갈치시장사업소가 무상으로 대여했다.

생선 껍질 벗겨야 
정확한 검증 가능

관계자는 “부산시가 검사를 진행하자고 제안해 지난 10일부터 매일 오전 7~8시마다 검사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단 1건도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염수 방류는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처럼 매일 검사하니 앞으로도 수산물을 마음껏 먹으라고 안심시켰다. 부산시는 휴대용 방사능 검사장비를 추가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시 수산진흥과 관계자는 “기기를 추가 구입해 검사 지역을 광안리 민락회센터 등 부산 전역으로 확대하겠다”고 전했다. 지난 5월 말, 여수시도 측정기 4대를 1800만원에 사들였다. 수산물 검사 품종과 수거 장소, 검사 건수 등 자료도 만들었다. 안전성 검사 결과는 매달 홈페이지 등에 공개할 방침이다.

여수시는 생산·판매 단계의 수산물을 수집해 방사능 검사를 하고 있다. 방사능 검사 횟수도 늘려 올해부터 어획 수산물에 대해 연 160건으로 확대한다. 지자체의 대응은 높이 평가된다. 문제는 방사능 측정기에 대한 신뢰도다. 정확한 검사가 어려운 상태라면 미봉책에 그칠 뿐이다.

가령 오염수가 침투된 생선을 껍질째로 검사하면 측정이 어려울 수 있다. 식약처도 검사 시엔 생선 껍질을 제거한다. 시료를 잘게 자른 후 차폐용기에 넣어 3시간 가량 검출 여부를 확인한다. 측정기로 스치듯 갖다 대는 건 정확한 검사가 아니다.

서 교수는 “휴대용 측정기는 주로 표면이나 공기 중에 검출되는 방사능을 검출하는 데 쓰인다”며 “위험하지 않은 방사능까지 잡히니까 오해의 소지만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휴대용 측정기는 교체 시기도 짧다. 전문가들은 “측정기는 사용 후 6개월서 1년마다 기기 교정이 필요하다”며 “중고거래 등을 통해 오래된 측정기를 구매할 경우, 오작동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즉 10만~100만원대의 저가 측정기는 정확한 검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불안한 심리를 겨냥한 상술에 각별한 주의도 요구된다. 최근 한 보험사는 오염수 방류로 국내 암 발병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광고했다. 암 보험이 필요하다는 1차원적인 마케팅이다. 

잡음까지 나와

또 ‘오염수 방류 전 마지막 물량’이라고 불안 심리를 자극해 수산물을 판매하는 업체들도 있다. 정부도 “비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소비자 불안감을 조성하는 소비자보호법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조치하겠다”고 나섰다. 

한편, 일본 정부는 방류 시기를 예고하지 않고 있다. 박성훈 해양수산부 신임 차관은 “아직 방류가 시작도 안 된 상태”라며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오염수 방류 시점을 통보받은 바는 없다. 방류에 앞서 인접 국가와는 시기 조율을 거칠 것으로 본다”고 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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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