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삶과 죽음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7.24 10:59:32
  • 호수 14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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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 마지막 낭만 주먹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칠성파 전 두목 이강환이 사망했다. 그의 죽음으로 주먹 세계에 서열 다툼도 예상된다. 경찰의 경계 속에서 조폭들의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칠성파는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 등장한 조직이다. 영화는 칠성파와 신20세기파의 다툼을 그렸다. 2021년 5월엔 두 조직의 20대 조직원들이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칠성파는 1950년대에 조직원 7명으로 시작해 이름을 떨쳤다. 1970년대에 초대 두목에게 조직을 물려받은 이강환은 부산 유흥가를 장악했다. 이후 나이트클럽, 필로폰 밀매를 기반으로 서울까지 진출했다. 1980년대에 후발주자로 나선 신20세기파는 칠성파와 30년간 대립했다. 최근 두 조직은 이합집산하며 온라인 도박 등 불법 사업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어릴 적
콤플렉스

칠성파는 전국 최대 폭력조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방파, 양은이파, OB파 등 전국 3대 폭력조직을 능가한다는 의미다. 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장악력은 주먹보다는 머리서 나왔다. 선천성 소아마비인 그는 친구들에게 구타당하기 일쑤였다. 폭력 세계에 들어오면서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는 후문이다. 이어 칠성파 초대 두목 이경섭으로부터 조직을 물려받는다. 

이경섭은 이강환의 손윗동서이기도 하다. 1970년대 말 이강환의 칠성파는 날개를 단다. 특유의 장악력으로 당시 부산의 신20세기파, 역전파, 서면파의 세력을 흡수한다. 칠성파는 1980년대 초반부터 부산의 유흥업소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필로폰 밀매 등으로 부를 축적한 일부 조직원은 서울로 진출했다.

이강환은 영화 <마약왕>의 실존 인물 이황순과 마약 사업에 뛰어들었다. 결국 1980년에 필로폰 제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약 5년간 복역한 이강환은 1985년에 출소했다. 1988년 말에는 부산·경남 지역의 조직과 연대한 화랑신우회를 결성한다. 발족 당시 회원은 약 300명이었다. 종로 건달 이정재의 동대문사단과 흡사하다. 1988년 11월엔 칠성파 간부 8명을 데리고 일본으로 갔다. 오사카의 가네야마구미파 두목 가네야마 고사부로와 의형제를 맺기 위해서다.

국내 조폭이 일본 야쿠자와 공식적인 관계를 맺은 최초의 사건이었다. 결연식을 마치고 의형제가 된 이강환은 축하금 1억엔을 받았다. 이때부터 야쿠자의 자금과 영향력이 국내에 유입됐다.

칠성파의 균열은 이때부터였다. 1억엔 사용을 두고 칠성파에 내부 갈등이 생겼다. 먼저 부두목 천달남이 영도파를 결성했다. 간부였던 김영찬도 신칠성파를 결성하면서 이강환과 갈라섰다.

야쿠자와 손잡은 칠성파는 ‘기업형 범죄조직’에 가까웠다. 두 조직은 부산서 합법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1989년 초 가네야마구미는 이강환의 도움으로 울산 그랜드호텔, 부산 서구 서대신동 꽃마을 부지를 사들였다. 우리나라가 야쿠자의 영향권에 들어온 것이다. 대검찰청은 이를 막고자 ‘야쿠자의 국내 유입 대책안’을 마련해 전국 수사기관에 내렸다.

왜소한 체구 소아마비 몸으로 부산 평정
필로폰 기반으로 서울 유흥가까지 장악

1990년대 초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범죄와의 전쟁이 실시됐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조승식 검사와 심재륜 특수1부장은 서방파 김태촌을 구속했다. 칠성파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산지검에 발령받은 조 검사는 부산 조직들을 수사했다. 칠성파 간부들이 체포당하자, 이강환은 서울로 도피했다. 결국 1991년 4월 특수대에 체포돼 부산지검으로 압송됐다.

재판에 넘겨진 이강환은 폭력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신칠성파 두목 김영찬을 난도질해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히는 등 10여차례에 폭력 혐의를 받았다.


1992년 공판 과정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강환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이 자택 앞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약 8년을 복역한 이강환은 2000년에 출소했다. 당시 나이트클럽 지분 분쟁에 연루된 그는 협박·탈세 등의 혐의로 재구속됐다. 2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복역 도중 또 다른 혐의로 형량이 추가돼 2003년 8월에 출소했다.

이강환은 16년의 옥고를 치르는 와중에도 두목이었다. 심복들을 접견장에 불러 지시를 내리면서 조직을 관리했다.

출소한 그는 2010년 건설업체 대표에게 3억9500만원을 갈취하고 협박했다. 체포영장이 발부돼 강력계가 투입됐지만, 이강환은 종적을 감췄다. 결국 지명수배가 떨어졌고, 약 한 달 뒤 경찰에 체포됐다. 구속영장이 법원서 기각됐다. 약 2년여에 걸친 수사 끝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때 그가 선임한 변호인이 자신을 검거했던 조 검사였다.

야쿠자와 손잡고
기업형 조직화

이강환이 감옥을 드나들면서 신20세기파는 물꼬를 텄다. 앞서 칠성파는 신20세기파와 30년 넘게 대립했다. 칠성파가 신20세기파 행동대장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은 영화 <친구>에 묘사됐다. 영화 속 준석(유오성)이 칠성파 조직원이었다. 두목 김형두(배우 기주봉 분)가 이강환을 모델로 했다.

영화 속 살해당한 동수(장동건)는 신20세기파 정모씨다. 칠성파는 2005년 신20세기파 조직원 황모씨를 흉기와 둔기로 폭행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2006년에는 신20세기파가 흉기를 들고 장례식장에 쳐들어와 칠성파 조직원과 난투극 벌였다. 이른바 ‘영락공원 조폭 난입 사건’이다.

긴장관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1년에는 칠성파 조직원 13명이 신20세기파 조직원을 집단폭행한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2021년에는 해운대서 신20세기파 조직원이 생일파티 도중 시비가 붙어 칠성파 조직원을 공격했다. 이후 칠성파 조직원이 신20세기파 조직원에게 반격을 가했다.

결국 그해 10월에 신20세기파 8명과 칠성파 5명이 맞붙었고 칠성파 조직원 2명이 크게 다쳤다. 사건에 연루된 조직원 등 74명은 지난해 검거돼 이 중 24명이 구속됐다.

신20세기파와 갈등 속에 이강환도 언론에 오르내렸다. 지난해 10월에는 그의 팔순잔치가 부산 한 호텔서 열려 경찰이 나섰다. 경찰은 이강환의 입지가 전국적이라고 판단해서다. 이날 전국 전·현직 조폭 수백명이 참석하면서 위화감을 조성했다. 다행히도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도심 한복판
칼부림 시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조폭들을 감시하느라 경찰 인력이 분산됐다. 신20세기파 두목의 결혼식이 지난 6월 부산서 이뤄지자 또다시 경찰이 투입됐다. 강력계 형사 30여명이 호텔과 결혼식장 주변에 배치됐다. 경찰은 방문객들이 쉽게 오도록 부산역과 가까운 중구 호텔을 잡았다고 봤다.

경찰이 우려했던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식장에는 결혼식의 주인공이 조폭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안내 문구도 없었다. 호텔 투숙객이 조직원과 충돌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심 한복판서 조폭들이 칼부림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현 정부의 강경한 대응도 쇠락에 한몫했다. 지난 3월 경찰은 전국 경찰력을 동원해 ‘조폭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경찰은 전국 시도 320개 팀, 1539명의 ‘조직폭력 전담수사반’을 동원했다. 갈수록 광역화·지능화되고 있는 조직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부산 20~30대 젊은 조폭들은 FX 마진 불법 거래, 온라인 도박사이트, 가상화폐 시세조작 등에 개입했다. 옛날처럼 해운대 백사장서 파라솔을 팔던 시대는 지났다. 수사망이 촘촘해지자, 조폭은 음성적으로 이권에 개입해 생존법을 모색했다. 사채업, 성매매업소 등을 운영하며 수익 구조도 만들었다. 주식, 가상자산 등 고수익 종목을 알려주고 투자금을 빼돌리는 ‘리딩 사기’에 관여하기도 한다. 

경찰의 이번 집중 단속 대상은 도박사이트, 보호비 갈취, 조폭 개입 건설 현장 불법행위 등이었다. 경찰은 조직 간 집단폭행에도 대응했다. 또 불법 사업을 방지해 수익금을 몰수·추징 보전에 주력했다.

한편, 지난해 검거된 조직폭력배는 3231명이다. 2021년(3027명) 대비 6.7% 증가했다. 광주에서는 조폭 73명이 검거됐다. 대구에서는 총 1조8000억원 규모의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조폭 72명이 검거됐다.

영화 <친구> 캐릭터 실제 인물
30년 라이벌 신20세기파와 대립

검찰은 최근 논란이 된 전남의 수노아파도 39명을 일괄 기소했다. 이에 따라 20년 이상 활동한 폭력조직이 사실상 와해된 것으로 봤다. 과거 폭력과 갈취를 일삼던 조폭은 적과 아군이 따로 없다. 이권에 따라 조직을 운영하는 형태다.


마약을 유통하거나 불법 도박 사이트를 만들기 해외로 도피한 경우도 있다. 서울과 중국 등에 사무실을 두고 3조원대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15명 역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사이트를 운영하기 위해 범죄단체를 구성했다.

신20세기파도 사실상 쇠퇴하고 있다. 부두목급 간부였던 위경만의 아들 위대한이 대표적인 예다. 어린 시절 야구의 재능을 보인 위대한은 2007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해 투수의 재능을 보였다. 그러다 1군으로 등판하기 전, 학교폭력 과거가 드러나 빈축을 샀다. 스스로 은퇴한 그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주먹세계로 입성했다.

조폭이 된 위대한은 2016년 6월 재래시장 상인들을 갈취해 구속됐다가 현재는 아프리카 BJ로 활동하고 있다.

이강환의 죽음으로 부산 조폭계는 새 국면을 맞이했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이강환은 지난 19일 새벽, 부산의 한 병원서 숨을 거뒀다. 평소 앓던 지병이 악화해 치료받던 중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부산 남구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경찰의 우려와 달리 타 조직과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2006년부터 뇌경색과 소아마비 후유증을 앓았다. 상·하반신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존해 생활해왔다. 

생전에 그는 2011년 부산 해운대에 호텔서 부하 조직원 한모씨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공식 후계자로 지명돼 ‘회장’ 호칭을 허락받은 건 한씨가 처음이었다. 약 7년간 복역을 마치고 2020년에 출소한 그는 후계자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씨는 “이강환은 이미 충성 경쟁을 앞세워 후계자를 2~3차례 바꿨다”며 “이강환이 살아있는 한 누구도 보스를 이을 수 없다”고 말했다.

휠체어 생활
초라한 말년

현재까지 칠성파의 후계자는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다. 특히, 2010년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 난동 사건의 타격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강환의 양성애자 의혹도 내리막길을 자초했다. 2016년 이강환은 동성 간병인을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2021년에는 자신을 간병하던 20대 부하 조직원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했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강환 가족은?

2019년 부산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는 화환 30개가 세워져 있었다. 여느 가족과 다름없는 장례식이었다.

이강환의 아내는 암투병 중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당시 세간의 우려와 달리 조용히 치러졌다. 

이강환은 조용히 장례를 치루고 싶다는 뜻을 경찰에 밝혔다. 실제로 지인이나 60대 이상 원로급 위주로만 조문이 이어졌다.

장례식장 바깥에도 10여명 이상이 모여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부산 경찰도 형사와 폭력 1개팀만 현장에 나와 있었다.

이강환 아내는 영락공원서 화장된 이후 부산추모공원에 안치됐다.

과거와 달리 조폭들이 경조사를 차분히 진행한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기업화되면서 위화감 조성 행위를 크게 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속칭 ‘어깨들’이 인사를 하는 행위 등은 대부분 사라진 상황이다. 이씨는 고령인 데다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두목이 아니다 보니 조용한 가족장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관리하는 폭력조직의 경조사가 요즘은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불과 10년 전에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2007년 이강환의 아들 결혼식이 열렸을 때는 500여명의 조폭이 참석했다.

이강환의 아들 이모씨는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고철 유통과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이씨는 칠성파와 다름 없었다.

앞서 이씨는 투자자 A씨로부터 받은 5억원의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자 이에 A씨가 자신을 검찰에 고소하려 하자 돌변했다.

이씨는 윤모씨 등과 함께 A씨를 협박해 조사받지 못하게 했다.

이씨는 자신을 ‘이강환의 아들’이라고 강조했다.

협박에 견디지 못한 A씨는 조사를 받지 않았으며 결국 고소 사건은 각하 처리됐다.

A씨는 “윤씨 등이 이씨가 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아들이라고 말하면서 겁을 줘 진술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남부경찰서는 첩보를 입수하고 보복을 두려워하던 A씨를 설득, 피해자 조서를 받았다.

A씨가 이씨를 고소한 사건도 재수사했다. 이씨는 투자금 일부를 돌려줬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앞서 이씨는 2012년 영광원자력 발전소에 구리를 공급한 뒤 이익금을 배분하겠다며 투자금을 받았다.

사업투자가 이뤄지지 않자 A씨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이씨는 경찰조사에서 투자금 일부를 돌려줬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또 경찰은 이씨를 주점 업주들의 주대를 갈취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와 대동한 재건용호파와 국이파 소속 조직폭력배 3명을 구속하고 20여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남구와 해운대 일대 주점서 2600만원 상당의 술값을 내지 않았다.

경찰은 윤씨가 살인미수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한 조폭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 등 2명은 사실상 칠성파”라며 “이씨의 운전사와 보디가드 역할을 하고, 이강환의 아들이라는 점을 내세워 A씨를 협박했다”고 설명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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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는 한때 ‘짝패’였다. 장 대표는 용꿈을 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에 몰두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의 욕망 ‘용꿈’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다. 조건은 “다음날까지 정치 생명을 걸고 재신임·사퇴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정치 생명을 건 재신임·사퇴 요구’가 있으면, 곧바로 전 당원투표를 시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요구 기간 불과 이틀 지난 6일까지 장 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한 국민의힘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 수석대변인은 지난 7일 “반응이 없었으니 종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에 대한 당내 친한(친 한동훈)계·소장파의 비판이 시작된 시점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한 지난달 29일이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 제명 조치도 지난 9일 확정됐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현직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장 대표 등을 공개 비판해 왔다”는 이유로 지난달 26일 김 전 최고위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결정했다. 김 전 최고위원이 탈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 제명 처리됐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면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는 국민의힘을 이끌 자격이 없으니, 물러나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 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ARS 여론조사(휴대전화 가상번호 100%)에 따르면, 오 시장은 33.3%의 지지를 얻어 47.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보다 14.2%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참조할 수 있다. 친한계는 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뭉친 수도권·부산 내 보수 성향 엘리트 집단이다.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부터 총선에서 연패한 탓에 당내 수도권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줄었다. 양당 체제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집단 탈당 후 창당’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바른정당·국민의당·바른미래당 등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 실험은 모두 실패했다. 현 시점에선 국회 의석 3석을 보유한 개혁신당만이 유일한 원내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으로 존재한다. 4개월여 앞둔 선거가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궐선거란 사실도 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를 지휘해 연이어 이긴 경험이 있다. 반면 한 전 대표는 선거를 지휘해 이긴 경험이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24년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총선을 지휘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을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 제명을 사실상 주도한 장 대표에 대해선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란 정치 실험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한 전 대표의 선거 지휘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토대로 강행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고 중앙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만, 그래도 선거는 선거다. 지역 기반을 확보하는 선거가 중요하지 않을 리는 없다. 통상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빅텐트 설치 등 이합집산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당내 계파 중 하나를 와해시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 대표가 개혁신당을 창당한 시점은 총선을 약 3개월 앞둔 지난 2024년 1월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탈당 후 개혁신당으로 옮긴 현역 의원은 허은아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 1명이었다. 그리고 개혁신당이 거둔 의석은 지역구 1석·비례대표 2석 등 총 3석이라서 정치 구도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한 제명 후 오 반발 “장 물러나 책임져야” 하나뿐인 꿈…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장 대표의 한 전 대표 등 제명 및 오 시장과의 갈등은 “국민의힘이 수도권 내 지방선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질 만큼 집요하다. 선거에선 어제 없던 조직이라도 오늘 만들어서 돌려야 하고, 어제의 원수와도 악수해서 표로 바꿔야 한다. 일정한 영향력을 당내 구성원을 내쫓아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감수하는 선택은 “의아하다”는 의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지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수도권 패배·중도층 표심 공략 실패 여파로 총선에서 연패했다.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면서 수도권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보수 성향을 드러내는 김민수 최고위원조차 지난 9일 보수 유튜버들이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자유 유튜브 총연합회 토론회’에 출연해 “윤 어게인을 외쳐선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중도층을 설득해야 하는데, 부정선거론을 10년 동안 외쳐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을 그가 현실적으로 외면할 순 없으리라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이 우파의 짠물 지지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윤 어게인·탄핵 반대 구호로 그들의 성원을 받았으니, 노선을 바꾸더라도 그들이 따라올 것이란 기대감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충남 보령·서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 초선 의원 임기 4년도 마치지 않았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전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장 대표를 파격적으로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지난 2024년 전당대회에선 한 전 대표와 장 대표가 나란히 당 대표와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엔 장 대표도 있었다. 한 전 대표와 장 대표는 이때까진 누가 보더라도 ‘짝패’였다. 그로부터 1주가 지난 12월11일에 이르러, 이들은 명백한 결별 신호를 언론·대중에게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와 달리 장 대표는 반대했고, 굳게 입술을 다문 채 당 대표실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3일 후 장 대표는 가장 먼저 사퇴해 ‘한동훈 체제’ 붕괴에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누구나 아는 승리 공식 장 대표는 지난해 2월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비상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강경 보수 전향을 선언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차별화하면서 강경 보수의 지지를 선점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선 강경 보수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 사무총장엔 통상 3선 의원이 발탁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된 후 약 1년6개월이 지난 장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것은 한 전 대표의 파격 인선으로 해석됐다. 이후 장 대표는 원내 수석대변인·수석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12월 이후엔 정치적 원수가 돼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다. 장 대표의 변화에 대해선 “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은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 대표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충청에서 몇 안 되는 용꿈 꾸는 분’이란 평가를 받았다”며 “용꿈을 꾸는 사람답게 유연한 정치 행보를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당 대표 당선 이후엔 굉장히 유연하게 노선을 바꿔 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한동훈’이란 이름 석 자 앞에선 유연하지 못하단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성은 3~5세에 이르러 처음 만나는 이성인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된다. 그런데 모든 조건에서 아버지가 우월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거세할 것”이란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낀다. 아버지의 거세 시도를 막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공포는 선망으로 바뀐다. 이를 일컬어, 프로이트는 ‘초자아 형성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불행한 신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 때문에 정해진 운명을 맞는다”는 전형적 구조로 유명하다. 프로이트는 신화의 구조를 토대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무의식 구조를 규정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반대했고,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치적 절정을 누렸다.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절정은 장 대표의 ‘용꿈’과 결정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전 대표가 날아오를수록 장 대표의 용꿈은 거세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용꿈도 날아오르려는 욕망이다. 두 사람 모두 날아오를 순 없다. 한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했던 장 대표는 하루아침에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절정·비상 거세 공포 장 대표의 용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한동훈’이란 압도적인 권위를 극복해야 한다. 당내 가장 막강한 그룹으로 거론되는 언더 찐윤엔 자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대권주자가 없다.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국민의힘이란 어머니를 차지해야 한다. 장 대표의 용꿈은 한 전 대표라는 ‘이미 결별한 정치적 아버지’를 제거해야 이룰 수 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한동훈의 측근이란 옛 흔적을 완전히 부순 후 독립적인 용꿈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또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언더 찐윤이란 막강한 집단도 굴복시켜야 한다.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지난해 12월 장 대표 앞에서 “국민의힘은 여전히 어이없는 비상계엄은 잘못됐단 인식을 갖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아무리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니 백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마비가 비상계엄의 원인이란 얘기를 더는 하면 안 된다”며 “몇 달 동안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도 되니, 지방선거에서 이겨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 보수를 자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평가받는 장 대표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후 장 대표는 한동안 “언더 찐윤이 장 대표를 2월에 실각시킨 후,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 최고위원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길 것”이란 소문에 시달렸다. 언더 찐윤은 “국민의힘의 텃밭 대구·경북·강원에서 토호들과 밀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장 대표는 윤 의원의 비판을 받는 등 구 친윤계로부터도 압박당하는 상황에서 당내 소수 계파 친한계 수장인 한 전 대표 제명에 더욱 집중했다. 이는 하향 전치란 심리학적 개념이 성립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전치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 감정을 덜 위협적인 대상에게 표출하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특히 자신보다 만만한 대상에게 표출하는 것을 일컬어 하향 전치라고 한다. 일상 언어로는 ‘화풀이’라고 한다. 장 대표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에 비유할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사람의 욕망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삼각형 구도로 발생한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사용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욕망의 주체·대상·체계는 상호 의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지라르가 규정한 욕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거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도 포함한다. 이를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언더 찐윤 압박에 제명 더 집착…화풀이? 한은 장의 희생양…전한길도 장 노리나 이 대표 주장대로, 장 대표가 처음부터 용꿈을 염두에 두고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라면,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와 함께 ‘짝패’를 구성하면서 자신의 용꿈도 아울러 키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 반대 및 해제 참여로 정치적 절정에 오른 한 전 대표가 먼저 대권이나 보수 진영 주도권을 차지한다면, 장 대표로서는 “한 전 대표가 있는 한, 내 욕망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갑자기 한 전 대표와 결별한 후 강경하게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을 외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한 전 대표가 ▲언더 찐윤 ▲강경 보수 ▲장 대표 등과 두루 갈등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라르는 “한 집단의 갈등은 내부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대상을 희생시켜 해소한 후 단결한다”고 주장했다. 지라르는 이 과정을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이후 전한길씨·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를 당에 유입시켜 한 전 대표와 친한계의 공백을 채우고 언더 찐윤과 맞설 세력으로 양성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두 유튜버를 통해 한 전 대표 고유의 영향력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씨는 지난 8일 자신의 팬카페 ‘자유한길단’에 “장 대표의 해명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다. 전씨는 이 글을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란 세력·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는 박성훈 수석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인지 3일 안에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답변 요구에 침묵한다면, 박 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렇다면 장 대표는 당원·윤 전 대통령을 함께 배신한 것이므로 이후 일어날 일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한 것처럼, 전씨가 장 대표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단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한 전 대표가 장 대표 주도로 ‘희생양’이 된 것처럼, 장 대표가 전씨 주도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단 압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씨의 요구에 대해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면서 침묵했다. 직설적인 욕망의 덫 장 대표의 정치 행위는 직설적이어서 ‘용꿈’이란 욕망이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국민의힘의 바닥 지지 기반이 무너진다. 이 때문에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윤 의원도 장 대표를 비판했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용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는 ‘욕망의 덫’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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