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탈북자들은 그런 짓은 하지 않고 흥이 오르는 대로 자연스레 노래 부르고 춤을 췄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 함께 어울려 어깨춤을 추었다. 주변에서 맴돌다가 청춘인지라 젊은 아가씨 쪽으로 슬슬 다가갔다.
자석의 남극(S)과 북극(N)이 서로 끌리듯. 예로부터 남남북녀라고 하지 않았던가.
남쪽 청년이 북쪽 아가씨에 관심이 있다면 아마 북쪽 아가씨도 남쪽 청년에게 관심이 있지 않겠는가.
휴먼 드라마?
문득 난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북한 여자와 춤추는 기회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피에로 씨가 아니었더라면…. 어쨌든 역사적인 한 순간이라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으랴. 볼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아가씨에게 난 물었다.
“혹시 통일에 대해 어찌 생각하세요?”
“글쎄요, 말만으론 안 돼요!”
“물론 그렇죠. 실행해야겠죠.”
“실행? 호호, 투쟁해야만 해요!”
“좀 진정하세요. 말만 잘해도 통일은 성큼 가까워질 수도 있어요. 현재 남과 북은 물론이고 남한 사람들끼리도 ‘통일’에 대해 서로 중구난방 헷갈리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통일이 무엇이냐! 과연 누가 알고 있을까요?”
“호호, 그렇담 한번 잘 설명해 보세요.”
“실은 나도 잘 몰라요. 그보단 우선… 남남북녀끼리 실행 투쟁적으로 통일을 이루어 보면 어떨까요?”
“엥? 보기엔 안 그런데 아주 엉큼스럽구만요.”
아가씨는 그러면서 춤추던 나긋나긋한 손길로 내 어깨를 살짝 밀쳤다. 그러고는 반달 같은 눈으로 흘겨보며 제자리로 갔다. 모두 착석한 후 다시 건배를 외치고 목을 추기는데 윤 여사가 살그머니 다가와 옆에 앉았다.
“어떠세요, 의외로 재미가 있죠? 새로운 인연도 만나고…. 이제 안면도 트고 했으니 앞으로 자주 놀러 오세요.”
“네, 기회가 되면….”
“기회란 만들어야죠. 마침 저희에겐 큰 할일이 있어요. 좀 도와주세요.”
“어떤 일인가요?”
“물론 통일 과업이죠.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멋진 글귀를 써 주시면 돼요.”
“제가 뭘 알아야죠.”
“아이디어는 우리에게 충분히 있어요. 그걸 잘 표현해 주시는 게 작가의 임무가 아닐까요.”
“글쎄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보는데요. 요즘 남의 아이디어를 번드레하게 치장해 주는 걸로 작가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진짜 작가란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느라 고심참담할 걸요. 그리고 저는 가능하면 어떤 파당의 편에 서서 글을 쓰진 않으려고 해요.”
선감도 수용소, 형제복지원, 몽키하우스…
남북 모두 중구난방 헷갈리고 있는 실정
“꾀까다로우시네. 그렇담 탈북민들의 체험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나요?”
“그야 물론이죠.”
“그럼 됐어요. 우리 탈북자들이 북한과 중국에서 겪은 피눈물 나는 인생담과 파란만장한 체험담이 있어요. 그걸 진실하고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로 만들어 주세요.”
“글쎄요.”
“작가도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원고료는 섭섭잖게 챙겨 드리겠어요.”
난 솔직히 마음이 동했다. 물론 원고료도 중요했으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난 원래 순수문학을 지향했지만 능력 부족 탓인지 왠지 별 흥미를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인연으로 특이한 삶을 겪은 한 인간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기구한 체험을 원재료로 삼아 선감도 아동 강제수용소, 형제복지원, 몽키하우스 등에 관한 소설을 썼다.
순수와 통속이 뒤바뀌어 혼돈스런 시대에 난 두 파를 다 거부하고 오직 진실을 파헤치려 애쓰며 작업했다. 문단 파벌의 눈치도 독자 대중의 기호도 멀리한 채 묵묵히 걸어가는 마이웨이는 상쾌하고 재미있었다.
고통 또한 의미 깊은 즐거움이 되는 길…. 마지막으로 소록도 나환자 수용소를 탐찰하고 싶었으나 이미 많은 작품이 나와 있는 터라 선뜻 내키지 않았다.
탈북자 얘기 역시 흥미롭긴 하되 여러모로 알려진 상태여서 머뭇거려졌다.
그런데 일단 원고 청탁을 받게 되니 머릿속의 물이 서서히 데워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한다. 사기꾼의 협잡질에 가장 넘어가기 쉬운 순간인 것이다.
‘누가 속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속는 셈’이라는 속담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하지만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졌다.
우선 체험기 초고를 한번 읽어 본 후 가부간에 결정을 내리면 되잖겠는가. 만일 엉뚱한 강요를 한다면 이쪽에서도 문장으로 아이러니컬한 풍자적 장난을 쳐 주리라. 혹시 누가 알겠는가.
잘 쓰면 시대의 촉각을 건드려서 대박이 날지. 그렇진 않더라도 통일 문제 접근에 조금쯤 기여할 바가 있잖겠는가 싶었다.
흥미로운 얘기
내가 대꾸를 하지 않자 윤 여사는 거부한다고 생각했는지 한번 더 채근해왔다.
“만약 북한 괴뢰도당의 지령을 받는 작가나 예술가라면 이런 경우에 훨씬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참여했을 거야요. 우리 자유대한의 인기 작가님께서 민족의 대의 앞에서 그자들에게 져서야 되겠어요? 부디 숭고한 정신으로 일떠서 주세요!”
“알았어요.”
난 속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