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한솔그룹이 잃어버렸던 대기업 완장을 되찾았다. 5년 만에 공식적인 재벌 반열에 재등극한 것이다. 핵심 자회사들의 놀라운 활약이 이어진 덕분이다. 한 지붕 아래에서 이원화된 체제를 선택한 오너 형제는 경영 승계 역시 각자의 방식대로 진행 중이다.
공정위가 발표한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공시대상기업집단은 82개로 전년 대비 6개 늘었다. 이들 집단에 소속된 회사는 3076개로, 전년 대비 190개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이름에 올렸다는 건 공식적으로 ‘대기업’으로 분류됐음을 의미한다. 자산총액 규모는 대기업 서열을 나누는 척도로 쓰인다.
드디어 재진입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신규 지정된 기업집단은 총 8곳이다. 이 항목에는 ▲LX ▲에코프로 ▲고려에이치씨 ▲글로벌세아 ▲DN ▲한솔 ▲삼표 ▲BGF(CU편의점) 등이 포함된다. 이들 가운데 한솔그룹은 오랜만에 재진입을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한솔그룹은 지난해 말 기준 23개 국내 법인을 휘하에 둔 기업집단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자산총액은 5조4560억원이었고, 공시대상기업집단 82곳 중 77위에 해당한다.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신규 지정된 대다수 기업집단과 달리, 한솔그룹의 대기업 진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솔그룹은 2013년 처음으로 자산총계 5조원을 넘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렸던 전례가 있다. 이후 2018년까지 꾸준히 대기업으로 지정됐다.
다만 2019년부터는 대기업이라는 지위를 상실했다. 이 무렵 한솔신텍, 오크밸리 등 비주력 계열회사를 매각한 데 따른 자산 감소가 원인이었다.
한솔그룹이 올해 대기업에 지정될 수 있었던 건 매출채권 및 재고자산 증가 때문이다. 일등공신은 한솔제지, 한솔케미칼, 한솔테크닉스 등 핵심 사업회사 3곳이었는데, 지난해 말 기준 3곳의 자산총액만 4조5000억원대 수준이다.
한솔아이원스(옛 아이원스) 인수 역시 대기업 지정에 영향을 줬다. 한솔그룹은 지난해 1월 한솔테크닉스를 통해 반도체 관련 기업인 한솔아이원스를 인수하며 반도체 관련 사업을 본격화했다.
한솔아이원스는 반도체 장비용 부품 제조 전문업체다. 현재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글로벌 1위 반도체 장비기업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등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지정되는 과정에서 조동길 회장은 동일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다만 조동길 회장의 영향력이 그룹 전반에 미치는 건 아니다. 그룹 지배구조가 사실상 ‘한 지붕 두 가족’ 체제이기 때문이다.
한솔그룹은 1993년 9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장녀인 이 고문이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하면서 출범했다. 현재 한솔그룹은 이 고문의 장남인 조동길 회장이 한솔홀딩스, 삼남인 조동혁 회장이 한솔케미칼을 비롯한 사업 회사를 나눠 운영하는 구도를 나타내고 있다.
자산 5조원 넘겨 77위 올라
순탄한 ‘한 지붕 두 가족’
한솔홀딩스 계열에는 그룹 중추인 한솔제지를 필두로 한솔테크닉스, 한솔로지스틱스, 한솔홈데코, 한솔인티큐브, 한솔페이퍼텍, 한솔PNS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한솔케미칼 계열에는 테이팩스, 솔머티리얼즈, 에이치에스머티리얼즈 등이 포진해 있다.
조씨 형제의 최상위 회사에 대한 지배력은 다른 오너 일가와 비교해 낮은 축이다. 조동혁 회장 및 특수관계인들이 보유한 한솔케미칼의 지분율은 15%대에 불과하고, 조동길 회장 일가 역시 한솔홀딩스의 지분율도 30%를 밑돈다.
그룹이 이원화된 경영 체제를 구축한 덕분에 후계 구도 역시 둘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조동길 회장 측에서는 오너 3세인 조성민 상무가 최근 그룹 정점에 있는 한솔홀딩스 지분을 적극 매수하고 있다. 조성민 상무가 수년 전부터 지주사 주식을 적극 매수함에 따라 경영권 승계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조성민 상무는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키지코스 어소시에이츠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다 2019년 한솔홀딩스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2021년 1월에는 한솔제지로 자리를 옮겨 친환경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조동혁 회장 측에서는 장녀인 조연주 부회장이 부각되고 있다. 조연주 부회장은 미국 웰슬리대를 졸업한 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이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컨설팅 업무를 익혔으며, 미국 이너웨어 제조사인 빅토리아시크릿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했다.
2014년 한솔케미칼 기획실장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이듬해 사내이사 선임, 2020년 초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조연주 부회장은 신성장동력 발굴을 진두지휘하고 주력 사업 재편을 주도하면서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있다. 특히 조연주 부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해 인수한 자회사 테이팩스는 매년 실적 상승의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따로 또 같이
경영 일선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최근 조연주 부회장은 후계자 입지를 더욱 굳혔다. 지난해 초 조동혁 회장은 보유 중이던 지분 일부인 31만4000주를 자녀 3명에게 나눠 증여했다. 장녀인 조연주 부회장에게 15만7446주, 차녀인 희주씨와 막내아들 현준씨에게 7만8500주씩 넘겼다. 이로써 조연주 부회장은 한솔케미칼 지분 1.42%를 보유하게 됐고, 지분 11.65%를 보유한 부친에 이어 2대 주주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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