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길 산책 ④화순 무등산양떼목장

어린 양과 눈 맞추며 산책하는 곳

무등산양떼목장으로 오르는 안양산로에는 이미 초여름이 시작했다. 곧 다가올 뜨거운 여름엔 초록빛 나뭇잎이 여행객을 향해 바람 따라 흔들리며 환대의 손짓을 할 길이다. 도로 양옆으로 봄에는 철쭉이, 가을엔 단풍이 눈부실 만큼 들어찬다니 어느 계절에 이 길에 오른들 금세 황홀해질 게 분명하다.

방금 지나온 전남 화순군 중심 거리가 어느새 먼발치로 보일 때쯤 무등산양떼목장에 닿았다. 목장은 안양산이 화순 땅을 향해 벌린 너른 품의 시작점에 자리한다. 호남을 듬직하게 보호하고 선 무등산이 남쪽으로 줄기를 뻗어 이룬 산이 안양산이다. 차에서 내려 잠시 주변 경관을 눈에 담았다. 지역 이름 화순(和順)에 담긴 조화로움과 유순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억세지 않고 부드러워 보이는 지형이다. 수려한 산세와 양 떼의 모습이 어우러지니 유럽의 절경이 부럽지 않다.

조화로움

주차장에서 짧은 오르막길을 오르니 입구가 나왔다. 입장권은 잘 보관해야 한다. 건초먹이주기체험장에서 건초를 교환하는 쿠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다랗게 출력된 입장권에 주의 사항과 관람 코스까지 있어 팸플릿 역할도 한다. 무등산양떼목장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장), 입장료는 대인 7000원, 소인 6000원이다.

양 떼를 만나기 전, 초식동물 몇 종류가 사는 울타리와 축사를 볼 수 있다. ‘마테’와 ‘호른’이라고 불리는 미니당나귀, 무플론, 유산양, 돌산양, 토끼 등이다. 나른한 시간을 보내던 동물들이 여행객의 출현에 잠시 관심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제자리로 돌아간다. 울타리 너머로 몇 번 불러보다 녀석들의 느긋한 휴식을 방해할까 싶어 발걸음을 옮긴다.

축사를 지나면 무등산양떼목장의 본격 관람 코스다. 드넓은 초원을 따라 길 양옆으로 울타리가 있다. 언덕 저편에 유럽풍 집 한 채가 보이고, 그 뒤로 산이 둘러싼 풍경이다. 뾰족한 지붕과 부드러운 능선이 대조를 이룬다. 어릴 때 본 목장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의 실사 버전이 펼쳐진 순간이다. 유럽풍 집은 관리사로 쓰기 위해 지었는데 현재는 비워뒀다. 방문객이 목장 길을 따라 걷다 잠시 들러 주변을 조망하기 좋다.


관리사를 기점으로 길은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길 끝이 양 떼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장이다. 입장권을 꺼내 건초와 교환하면 된다는 얘기다. 무등산양떼목장에는 현재 양 150여 마리를 방목한다. 그중 태어난 지 1년 남짓한 양들이 건초먹이주기체험장에 있다.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기에 해당하는데, 이를 증명하듯 건초 바구니를 들고 서 있으면 당장 울타리라도 넘을 기세로 달려온다.

문을 열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양이 갑작스럽게 다가와도 겁낼 필요 없다. 순한 양이란 표현이 괜한 말이 아닌 듯, 양은 그저 바구니에 담긴 건초에 집중한다. 기운이 넘쳐도 공격성이라곤 전혀 없는 양 떼와 만남이랄까. 이때를 놓칠세라, 푹신한 털이 난 머리를 쓰다듬으면 맛나게 건초를 씹던 양이 먹이 주는 이를 쳐다본다. 양의 말간 눈빛과 시선 교환을 할 수 있는 순간이다. 어린아이도 겁내지 않고 양 떼에게 먹이 주는 체험을 곧잘 해낸다. 함께 온 자녀보다 신이 나서 양 떼에게 먹이 주는 놀이에 빠진 부모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축사를 지나면 나오는 본격적인 관람코스
정암 조광조 선생의 유배지도 가까이

체험을 마치고 나오며 무등산양떼목장의 풍광을 다시 눈으로 훑었다. 한가로이 풀을 뜯던 새끼 양이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쳐다보는가 싶더니, 이내 제 어미 꽁무니를 바짝 따라 달린다. 들판 가득한 풀잎이 바람결에 흔들린다. 사람의 성정마저 순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목장 길 산책을 마치고 남쪽으로 향했다. 화순의 유적지를 보기 위해서다. 우선 영벽정(전남문화재자료)에 들렀다. 바로 옆에 곡선을 그리며 지석천이 유유히 흐르고, 건너편에 선 연주산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수면에 반사되어 보이는 자리가 정자의 위치다. 

영벽정 위로도 올라갈 수 있는데, 오색단청으로 꾸민 실내와 기둥 사이로 보이는 경치를 번갈아 감상하는 재미가 느껴진다. 없던 여유도 영벽정 풍광이 만들어주기라도 한 듯, 잠시 옛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자리 잡고 앉아 호사를 누렸다. 연주산에 올라도 좋다. 때마침 열차가 지나가면 강물에 비친 영벽정과 화순의 넉넉한 들녘, 강물을 가로질러 달리는 기차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부지런한 여행객에게 주어지는 특혜다.

영벽정에서 정암 조광조 선생 유배지가 가깝다. 조광조는 중종 때 활약한 성리학자다.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인재가 필요했다. 젊고 유능한 선비 조광조가 임금의 눈에 띄었다. 조광조는 국왕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뜻을 펴려 했지만, 반대파의 공격을 받아 이곳 능주면 남정리로 유배됐다. 


그는 귀양에서 풀려난다는 소식을 기다리며 항상 방문을 열어두고 지냈다고 한다. 조광조는 소원과 달리 유배 한 달 만에 사약을 받았다. 현재 이곳엔 조광조의 모습을 그려 모신 영정각, 애우당, 화순정암조광조선생적려유허비(전라남도기념물) 등이 있다.

고인돌유적

마지막 코스는 화순고인돌유적이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 3㎞에 고인돌 596기가 흩어져 있는 곳이다. 덮개돌 하나에 100~200t이 족히 넘는데, 처음 보는 순간 신비한 느낌마저 든다. 이 거대한 돌을 어떻게 옮겼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이 고인돌처럼 커진다. 

고인돌은 선사시대 무덤으로, 땅에 시신을 묻고 큰 돌을 얹은 형태다. 주로 권력자의 시신을 묻은 것으로 추정하는데, 고인돌 주변에서 무기와 토기, 장신구 등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다. 화순고인돌유적은 괴바위지구, 관청바위지구, 달바위지구, 핑매바위지구, 감태바위지구, 대신리발굴지, 고인돌채석장 등으로 나뉜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영혼이 묻힌 곳에서 잠시 산책하며 화순 여행을 마무리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무등산양떼목장→화순 적벽→백아산하늘다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백아산하늘다리→무등산양떼목장→세량지
-둘째 날: 영벽정→정암조광조선생유배지→화순고인돌유적→운주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무등산양떼목장 www.mudeungsan-yangtte.co.kr
-화순군 문화관광 www.hwasun.go.kr/culture
-세계유산화순고인돌유적 www.dolmen.or.kr

문의 전화
-무등산양떼목장 061)375-6269
-화순군청 관광진흥과 061)379 -3501~7
-화순군청 문화예술과 세계유산팀 061)379-3515

대중교통
[기차] 용산역-광주송정역-화순역, KTX(무궁화호 환승) 하루 3~4회(08:19~17:43) 운행, 2시간45분~3시간5분 소요. 화순역에서 무등산양떼목장까지 택시 이용, 약 10㎞.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화순,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1회(16:05) 운행, 약 4시간15분 소요. 화순시외버스공용정류장에서 무등산양떼목장까지 택시 이용, 약 8㎞.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화순시외버스공용정류장 061)374-2254

자가운전
호남고속도로 송암톨게이트→제2순환도로, 5.3㎞→제2순환도로에서 우측 고속화도로, 333m→지원교차로에서 남문로 장흥·화순·보성 방면 우측 도로, 2.3㎞→국도22호선에서 화순·보성·방면 좌측 도로, 4.2㎞→교리교차로에서 화순군청·광덕지구·화순전남대병원 방면 우측 도로, 488m→교리교차로에서 화보로 화순군청·광덕지구 방면 우측 도로, 259m→교리 IC에서 서양로 교육청·화순군청·화순전남대병원 방면 좌측 도로, 1.5㎞→신기교차로에서 안양산로 만연폭포·수만리 방면 좌회전, 3.5㎞→안양산로에서 수만리·수만리1·2구·이서 방면 우측 도로, 3.3㎞→좌회전, 192m→우회전, 125m→우회전, 65m→안양산로 우회전, 1.5㎞→우회전, 11m→무등산양떼목장

숙박 정보
-화순양참사댁: 도곡면 달아실길, 070-7746-1230, https://han ok152.imweb.me
-화순스테이호텔: 화순읍 칠충로, 061)374-8844, https://stayhotelhwasun.modoo.at
-사평풍류마을오토캠핑장: 사평면 사호로, 061)373-4853, http://sapyung.kr/skin_mw2

식당 정보
-만연축산식육식당(생고기비빔밥): 화순읍 진각로, 061)374-7744
-벽오동(보리밥정식): 화순읍 안양산로, 061)373-9997
-남도명가(한우갈비탕): 능주면 능주농공길, 061)371-0085


주변 볼거리
만연산철쭉공원, 규봉암, 연둔리 숲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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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