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중장년층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이자놀음’이 서울 강남 일대에서 성행하고 있다. 돈을 특정 회사에 맡기면 수개월이 흐른 시점에 원금에 더해 쏠쏠한 이자를 덧붙여주는 방식이다. 대박 아이템처럼 비춰지지만, 폐해가 만만치 않다. 피해 사례가 연달아 보고되고 있으며, 조만간 기획부동산의 뒤를 잇는 사회문제로 불거질 가능성마저 부각되는 형국이다.
기획부동산은 부동산을 기획해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으로, 부동산컨설팅 서비스의 일종이다. 한동안 기획부동산은 악의 축으로 비춰졌다. 시세보다 비싸게 땅을 팔면서 폭리를 취한 기획부동산 업체의 행태가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했던 탓이다.
얼얼한 뒤통수
가령 1000평짜리 땅을 5만원에 사서 20만∼30만원에 팔 경우 100평씩 10필지로 분할하면 개별투자자는 2000만∼4000만원대에 구입이 가능하다. 그 사이 기획부동산 업체가 남기는 이익은 2억원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불확실한 정보가 담긴 기획안을 통해 부동산 거래를 유도하는 기획부동산 업체의 영업 행태가 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가 빈번했다.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매매를 종용하거나 개발 불가능한 땅을 파는 사례도 허다했으며, 심지어 등기이전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그나마 기획부동산 업체들에서 불거진 문제점은 최근 들어 다소 잠잠해진 모양새다. 경기도가 2020년 6월 여의도(2.9㎢)의 70배에 달하는 임야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공표한 게 결정적이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임야에서는 공유지분을 쪼개 파는 게 원천 차단되는 게 정책의 골자였고, 이는 곧 기획부동산 업체의 영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각종 개발 호재가 집중돼있는 경기도의 임야는 그간 기획부동산의 주된 먹잇감처럼 비춰졌기 때문이다.
해당 정책은 기획부동산 업계에 철퇴나 마찬가지였다. 관련 업계에 몸담았던 다수의 종사자들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기획부동산 업체가 줄줄이 폐업했다고 입을 모은다.
얼굴 점 찍고 나타난 신종 사기
닮은 듯 다른 아줌마들 홀리기
한 업계 관계자는 “2010년대 중반경 서울 강남 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 일대에 어림짐작으로 기획부동산 업체 수백개가 난립했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업체들이 연이어 폐업 수순을 밟으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언급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들어 기존 기획부동산 업체들을 대신하는 사업 모델이 서울 강남 3구 일대에 우후죽순처럼 생겼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이자 따먹기’를 내세우는 업체들이 등장한 것이다. 기획부동산 업체들의 공백을 채운 이들은 ‘부동산개발 및 컨설팅’ 등을 영위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존 기획부동산과 큰 차이가 없지만 사업을 수행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건물 공사 등을 추진하는 것처럼 포장해 투자자들을 모은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유치하고, 투자자에게 3~6개월 후 원금을 상환하는 방식을 내세운다.
또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는 10~20% 이자를 주는 조건이 붙는다. 그리고 회사에 돈을 빌려준 사람 대다수는 회사에 출근하면서 맡긴 금액에 따른 이자율에 따라 이자를 일비처럼 분할 상환받는다.
돈을 빌려주고 회사에서 매일 이자를 일비처럼 지급받는 대다수는 50∼70대의 중장년층 여성이다. 직업을 새로 구하거나 경제활동이 현실적으로 힘든 동 나이대 여성 입장에서는 쏠쏠한 수익원처럼 비춰질 공산이 크다.
공교롭게도 이들 상당수는 이전까지 기획부동산 업계에서 일하다가 넘어온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상 기존 기획부동산 업체를 다니던 사람들이 원금을 내고 이자를 받는 해당 업체들로 흡수된 셈이다.
허점 이용해 돈 먹고 튀는 수법
피해자 넘치는데 변제 어떻게?
업계 관계자는 “최근 강남 일대에 급격히 늘어난 부동산 개업업체는 기존 기획부동산 업체들과 연결돼있다”며 “기획부동산 운영자들이 사업방식을 바꿔 다시 차린 사례가 적지 않은 데다, 기존 기획부동산을 다니던 인력을 대상으로 투자금을 내도록 하고 이자를 주는 방식이 일반화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기획부동산을 대체하다시피 한 부동산 개발업체 가운데 상당수가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데 있다. 중장년층 여성들이 법에 해박하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이들이 빌려준 돈을 일종의 투자금처럼 계약서로 꾸미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여가 아닌 투자의 형식이라면 회사는 경영상 이유를 내세워 돈을 지급해야 할 의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이런 이유로 약속된 상환기일을 넘기는 일은 예삿일처럼 발생하고 있다. 매일 지급받기로 한 이자를 계약서상에서 ‘배당’으로 분류해 대여가 아닌 투자였음을 뒷받침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사례도 목격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원금마저 되돌려 받지 못하는 사건마저 연달아 터지고 있다. 회사가 돈을 빌려준 사람들 몰래 하루아침에 폐업을 하고 경영진이 자취를 감추는 방식이다.
교묘한 방식
법조계 관계자는 “계약서상에 투자금·배당 등으로 적어놔 향후 상환을 안 해도 문제 삼지 못하도록 회사 쪽에서 교묘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파놓은 경우가 많다”며 “결국 상환을 차일피일 미룬 끝에 회사를 공중분해시키고 잠적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