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구원 등판한 우종수 신임 국가수사본부장

“이번엔 자녀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우여곡절 끝에 국가수사본부의 새 수장이 결정됐다. 우종수 전 경기남부경찰청장이다. 돌고 돌아 경찰 내부 발탁이 이뤄진 셈이다. 우 본부장은 취임 직후부터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국수본에는 사실상 조직의 온 미래가 걸린 과제가 산적했다. 수사 독립성 확보, 수사 역량 강화, 대공 수사권 이관 등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우종수 경기남부경찰청장을 제2대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지난 2월25일 검사 출신의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 학교폭력 논란으로 낙마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검찰 출신 내정자가 야기한 공백을 경찰 내부 출신으로 메우면서, 국수본부장 자리는 돌고 돌아 경찰 몫으로 남게 됐다.

돌고 돌아 
경찰 몫으로

윤희근 경찰청장은 우 본부장을 추천한 배경에 대해 “우 본부장은 치안행정 전반에 대한 이해가 높고 투철한 공직관과 합리적인 업무 스타일로 조직 내에서 신망이 높다”며 “균형 잡힌 시각과 적극적 소통으로 경찰 수사조직을 미래지향적으로 이끌 적임자”라고 밝혔다.

정 변호사 발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윤 청장은 후속 인선을 두고 한 달간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외부 재공모 대신 내부 발탁으로 가닥을 잡고, 우 본부장을 대통령실에 추천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결정에는 외부 재공모를 벌일 경우, 인선 절차로 공백이 길어질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조직 내에선 경찰 출신을 희망하고, 정 변호사 사태 이후로 외부인사가 공모를 꺼리는 등의 안팎 사정을 고려한 결과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우 본부장은 경찰 내의 대표적인 비경찰대 ‘수사통’이다. 윤 청장을 비롯해 조지호 경찰청 차장 등 경찰 고위 인사가 경찰대 일색인 가운데, 우 본부장 임명을 기점으로 경찰 인사가 균형감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는 1968년 서울 출생으로, 환일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 제38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에 발을 들였다. 이후 외교통상부·국가정보원 등에서 근무하다 1999년 경정 특채로 경찰에 입직했다.

서울 용산경찰서장, 경찰청 인사담당관, 행정안전부 치안정책관, 경찰청 과학수사관리관, 경찰청 형사국장 등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굵직한 사건의 수사 지휘 경험도 쌓았다. 우 본부장은 2018년 서울지방경찰청 수사부장(경무관) 시절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 경찰 수사를 지휘했다. 서울경찰청 수사차장(치안감) 재직 중에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수사를 전담하는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았다.

경찰 내부는 우 본부장 임명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 본부장은 인사와 현장 이해도가 모두 풍부하므로 조직 안정화를 잘 이뤄낼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내부 출신이지만 ‘비경찰대’ 
굵직한 사건 수사 지휘 경험

다만 일각에선 “우 본부장이 수사부장을 맡기 전까지 수사 실무경험이 적었다”거나 “전임자인 남구준 전 국수본부장 때에 비해 수사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우 본부장은 지난해 8월 윤 청장 취임 당시 공석을 메우며 경찰청 차장(치안정감)으로 승진했다. 이때는 경찰제도발전 TF 단장을 맡아 경찰 4대 현안(경찰의 중립성·책임성 강화, 복수 직급제, 기본급 인상, 수사역량 강화) 논의를 이끌었다. 

우 본부장은 지난해 12월28일 경기남부경찰청장으로 전보된 지 불과 석 달 만에 국수본부장으로 내정됐다. 지난달 27일, 내정 사실이 알려진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국가수사본부장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지나온 경찰 생활 28년보다 앞으로 남은 2년(국수본부장 임기)이 공직생활 평가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수본 1기 체제가 지났고,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확보한 이후로 경찰 수사에 대한 국민 기대치가 높아졌다”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국수본에 있는 유능한 직원들과 소통해서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수사 체제와 위상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우 본부장은 조직개편 방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수사종결권을 확보한 만큼 경찰은 공정하고 전문성 있는 수사를 해야 한다”며 “각 지방경찰청의 수사력을 강화할 수 있는 조직과 인력개편안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우 본부장은 숨돌릴 새도 없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국수본 앞에 닥친 상황이 녹록지 않아서다. 국수본은 출범 두 돌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입지가 애매하다는 비판 섞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수사 독립성 확보 ▲수사역량 강화 ▲대공 수사권 이관 준비 등의 과제 해결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곧바로
시험대

국수본부장은 직제상 경찰 내 ‘2인자’이지만, 자리를 능가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경찰 수사의 책임성·전문성 강화’ ‘수사 경찰과 행정경찰의 분리’ 등의 국수본 출범 취지를 살리기 위한 포석이다.

우선 국수본부장은 전국 18개 시·도 경찰청장과 3만여명에 달하는 수사 경찰의 지휘권자다. 경찰 수사에 관해서는 경찰청장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경찰청장은 일부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국수본부장에게 개별사건을 지휘할 수 없다.

하지만 그동안 국수본은 경찰청장의 지휘서 사실상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더군다나 남 본부장은 김창룡 당시 경찰청장의 경찰대 1년 후배였다. 독립성 확보의 ‘첫 단추’인 인사부터 적절치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우 본부장은 국수본 독립성을 제고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여럿 가지고 있다. 우 본부장은 행정고시 특채로 입직한 만큼, 경찰 고위직의 고질병인 경찰대 기수 문화서 자유롭다. 게다가 직제상 상급자인 윤 청장과 나이도 같다.

정부가 경찰대 출신 고위직 인사를 견제하고, 비경찰대 출신을 밀어주는 자세를 취한 점 역시 우 본부장 운신의 폭을 넓혀 준다는 분석이다.

경찰뿐 아니라 정치권에서 가해지는 압박을 견뎌내는 것 역시 국수본 독립성 확보의 관건으로 꼽힌다.


취임 일성
범죄 척결

경찰 수사력 강화와 신뢰 회복 역시 중요한 과제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수사력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국수본은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사회적 참사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부동산 투기 의혹 등 권력형 비리 수사 등 국민 관심이 집중된 주요 사건에서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부실한 수사 과정에 따른 마뜩잖은 성과는 비판 여론만 키웠다. 이를테면 국수본은 LH 투기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은 국회의원 5명 가운데 고작 1명을 강제 수사하는 데 그쳤다. 수사통으로 분류되는 우 본부장이 사회적 관심이 쏠린 사안에서 확실한 ‘업적’을 남길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이듬해로 다가온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경찰 이관을 차질 없이 준비하는 것도 당면 과제다. 문재인정부는 2024년부로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폐지하고, 관련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도록 했다. 하지만 정권교체 이후 정부와 여권을 중심으로 이를 백지화하거나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터진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 기존의 경찰 수사역량 부족 비판과 맞물리면서 이 같은 주장에 점차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우려를 불식할 유일한 수는 국수본의 ‘결자해지’라는 진단이다. 국정원·검찰·경찰은 과도기의 대공 수사역량 저하를 막기 위해 올해 초 ‘대공 합동 수사단’을 출범했다. 이에 경찰 역시 대공 혐의점을 수사해 검찰에 넘겨주고 있지만, 대공 수사 관련 실적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국수본이 남은 기간 어떻게든 안보 수사역량을 입증하고, 가시적인 실적을 거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공 수사권 이관에 차질이 없도록 국정원과 협조체계를 원활히 유지할 것도 함께 요구된다. 우 본부장의 취임 일성은 ‘진일보한 수사경찰’과 ‘서민 대상 범죄 척결’이었다.

출범 3년 차, 자리 못 잡은 조직 운영은?
독립성 확보·대공 수사권 등 과제 산적

우 본부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취임식서 “그동안의 기틀을 바탕으로 진일보한 수사 경찰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의 길을 더 단단히 가져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국수본의 현 위치를 먼저 진단했다.

우 본부장은 “국수본이 책임수사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음에도 국민들의 기대 수준은 여전히 높고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며 “내부적으로 수사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으나 현장의 어려움은 여전하고 사건 수사의 난도는 계속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국수본부장으로서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버팀목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우 본부장은 국수본의 우선 해결 과제를 꼽았다. 첫째는 ‘범죄 척결’이었다. 그는 “일선 개별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수사 지휘와 감독을 보다 확대·강화해 범죄 척결을 선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전세사기·보이스피싱 등 악성사기는 한 가족의 인생을 파멸시키는 경제적 살인”이라며 “선량한 시민이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서민대상 금융 범죄에 보다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또 “마약류 범죄의 심각성을 무겁게 인식하고 경찰의 수사역량을 집중해 총력 대응하겠다”며 “특히 건설현장 폭력행위 등에 적극 대처해 법치질서를 바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범죄 피해자 피해 회복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도 전했다. 우 본부장은 “스토킹·가정폭력·아동학대와 같은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는 더 신속하게 피해자의 안전이 확보되도록 더욱 세심히 살펴보겠다”며 “국민 관점서 경제범죄 수사의 패러다임을 피해 회복, 범죄수익 환수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조직 발전과 처우개선에 관한 언급도 빠지지 않았다. 우 본부장은 “진화하는 범죄 수법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최신 과학기술을 수사와 접목해 세계를 선도하는 첨단 수사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하는 한편 “우수한 수사관이 오랫동안 근무하는 수사 부서를 만들기 위해 책임 수사역량 강화와 처우개선을 계속해서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정 변호사 사태 이후, 여론은 후임자 인선 검증과정에 주목했다. 정부의 검증 능력에 대한 불신과, 이에 따른 검증 미비 사태 재발 우려가 겹친 탓이다.

‘한국형 FBI’ 
조직 안정화

이와 관련해 윤 청장은 “경찰이 인사검증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인 확인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며 “(우 본부장)본인은 물론 자녀 등 가족 문제와 기타 여러 문제서 자기관리가 돼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우 본부장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우 본부장의 아들은 병역을 정상적으로 마친 것으로 파악됐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수장 바뀐 국수본 눈길 쏠리는 수사 목록 

지난달 말을 기준으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 여럿을 동시에 수사하고 있다.

과연 국수본은 유의미한 결과를 내 수사역량을 인정받고, 한국형 FBI로 거듭날 수 있을까?

우선 국수본은 현재 성폭력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명석 기독교복음선교회(JMS) 교주의 추가 성범죄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정씨가 구속된 뒤 추가 피해 신고를 접수한 피해자 3명에 대한 조사와 조력자 수사·신병 확보 등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수본은 고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씨의 ‘마약 폭로’에 대해서도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폭로 직후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고, 내사를 진행해왔다.

지난달 28일 새벽 귀국한 전우원씨를 현장 체포한 뒤 조사하기도 했다.

이날 경찰은 전우원씨에게 직접 마약 투약 사실과 폭로의 진위여부를 물었다.

경찰은 전우원씨의 체포 시한과 건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불구속 수사를 결정했다.

국수본 관계자는 “관련 범죄사실이 특정되면 관련자들을 피의자 전환해 수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의 폭로로 불거진 ‘천공 대통령실 관저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 역시 진행 중이다.

해당 수사는 대통령실이 방송에서 관련 의혹을 제기한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과 김어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역술인 천공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경찰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양측은 출석 일정을 조율 중이다.

다만 경찰은 수사 추진력 확보에 난항을 겪는 분위기다.

사건의 핵심인 천공의 강제 소환 조사 등이 어려운 탓이다. 

이와 관련해 국수본 관계자는 “천공은 참고인 신분인데, 참고인을 강제로 소환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 단계서 없다. 통상적 참고인 수준에서 수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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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