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대위?’ 여의도 드리운 김종인 그림자, 왜?

‘돌고 돌아’ 도로 민주당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22대 총선 전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다면, 비대위원장은 어떤 인물이 맡아야 할까? 민주당의 플랜B를 걱정하고 있는 의원들은 벌써부터 비대위원장에 누구를 앉힐지 고민하고 있다. 몇몇 비명계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의 복귀를 주장하고 있고, 친명계는 새로운 인물의 영입을 염두에 놓고 있다. 일각에선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영입설이 나오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는 유권자들에게 매우 익숙한 광경이다. 민주당 당사 앞에서 한 민주당 지지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은)정상적인 지도체제보다 비상체제인 기간이 훨씬 긴 것 같다. 올 연말에도 비슷한 상황이 올 것”이라며 “마치 2016년 비대위 체제가 생각난다. 다가오는 내년 총선서도 비슷한 그림이 연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예측했다.

내년 총선도 
비슷한 그림?

이 같은 예측은 최근 민주당에서 나온 ‘질서 있는 퇴진론’에 그 기반을 둔다. 질서 있는 퇴진론은 3월 둘째 주, 한 친명(친 이재명)계 중진 의원이 <문화일보>와 한 단독 인터뷰서 제기한 이 대표의 ‘퇴진 시나리오’다. 해당 의원은 인터뷰서 “이재명 대표가 질서 있는 퇴장을 할 것으로 본다”며 “당이 소프트 랜딩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재판이 많아지는 연말쯤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 지도자가 공당을 자신으로 인한 논란 속에 오래 놔둘 수는 없다. 적어도 대권을 꿈꾸는 지도자라면 그렇게 못한다”며 “총선에 관여하지 않고, 불출마 선언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해당 인터뷰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민주당 의원들이 애써 외면하고 있던 ‘이 대표 퇴진론’을 대놓고 말할 명분을 줬다. 비명(비 이재명)계 대표 스피커들은 질서 있는 퇴진론이 친명계 내부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연말은 너무 늦다며 퇴진 시기를 더 앞당기자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서 “연말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멀다. 내년 총선이 4월인데 그때쯤은 (민주당의)침몰 직전일 수도 있다”며 “지금 지도부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단일 색채다. 선출된 최고위원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임명직, 지명직은 다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비명계 의원도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재판이 몰려 있어서 연말이라고 하는데, 그때쯤이면 당 지지율이 이미 다 빠져 있는 상태일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사퇴하는 의미가 매우 퇴색될 것이다. 지금 물러서면 ‘당을 구하기 위해’ 퇴진하는 것이 되지만, 그때 퇴진 하면 ‘살려고 혼자 나가는’ 퇴진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연말까지 기다리는 몽니 자체가 이미 퇴진의 의미를 크게 퇴색시킨다는 것이 비명계 의원들의 설명이다. 이왕 퇴진할 거라면 당 지지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지금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민주당 지지율은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국민의힘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중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중립적이라고 평가받는 리얼미터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이 대표의 검찰 출석 당시인 1, 2월 소폭 하락했다가 가장 최근인 3월 둘째 주 여론조사에서는 42.6%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41.5%의 국민의힘을 근소하게 앞질렀다.

이 대표의 조기 퇴진을 원하고 있는 민주당 관계자들은 아직 민주당의 인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은 ‘지금의 퇴진’이 지지자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미 지난 3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출석했고, 올해 말쯤에는 적어도 세 번 이상 법정에 더 출석할 예정이다.

친명서 이 대표 ‘질서 있는 퇴진론’
“연말쯤 각종 송사 전 먼저 나가야”

총선을 앞두고 당 대표가 법원에 계속해서 출두하는 것은 민주당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정부를 중간평가하는 ‘중간 선거’ 성격을 띤다. 정계 전문가들은 역대 중간 선거에서 여당이 항상 유리했다고 입을 모은다.


여의도 소식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선거는 대부분 야당이 ‘언더독’ 역할을 하는 형태였다”며 “선거라는 것은 항상 중도층 싸움인데, 중도층 유권자들은 의회와 정부가 협조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번에 민주당은 쉽지 않은 선거를 치르게 될 것”이라 분석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가뜩이나 힘겨운 싸움에서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까지 안고 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있다. <일요시사>와 만난 민주당 관계자는 “퇴진 시점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을 뿐, 민주당 의원 과반 이상이 그(이재명 대표)가 퇴진해야 한다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하는 걸로 안다”며 “이 대표 스스로도 연말쯤이면 각종 공판에 참여하는 상황인데, 제대로 총선을 준비할 수 있겠나. 자진 사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혹은 2016년 총선 때처럼 새로운 리더에게 전권을 맡기고 2선으로 후퇴하는 방법도 있다”며 “실제로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 의원님이 몇 분 계신다. 총선에서 전권을 맡길 인물을 외부에서 찾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2016년 민주당은 지금과 비슷한 정도의 위기를 맞았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연합 공동 대표를 맡던 시절, 안 의원이 민주당 비노(비 노무현)계 의원을 대거 이끌고 신당을 창당한 것이다. ‘호남 홀대론’을 들고나온 비노계는 문 전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며 그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이후 당내 인사권을 독단적으로 행사한 점,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 패배한 점을 문제삼아 비노계는 문 전 대통령이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끝까지 사퇴하지 않았고, 돌아선 이들의 마음을 다시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비노계는 문 전 대통령의 손을 뿌리치고 모두 당을 떠났다.

박지원 전 의원을 중심으로 비노계가 뭉치기 시작했고, 여기에 천정배계, 김한길계, 박주선계, 정동영계 등 탈당한 모든 야권 인사들이 안 의원이 창당한 국민의당으로 모였다. 이들은 대부분 호남 출신 인사들로 ‘호남홀대론’을 새로운 당의 원천으로 삼았다.

전면 등장?
2선 후퇴?

호남에 정치적 뿌리를 둔 민주당으로선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흔들리던 새천년민주연합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교체한 뒤, 새로운 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 문 전 대통령이 야심차게 영입한 인물이 바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다.

문 전 대통령은 본인의 힘으로는 다가오는 선거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해 전권을 김 전 비대위원장에게 넘긴 후 스스로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문 전 대통령은 그해 1월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선대위에 권한을 모두 이양하고 2선으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고, 다음 날인 20일 정청래 의원 등 당시 민주당의 최고위원이 모두 동반 사퇴했다. 문 전 대통령도 그로부터 5일 뒤인 25일, 당 대표에서 공식 사퇴하기에 이른다.


선출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다시 평의원 신분으로 돌아간 것이다.

사퇴 당시 문 전 대통령은 SNS에 “지난 1년간 저와 동고동락하며 어려운 시기에 당을 이끌어주신 최고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변화와 혁신을 간절히 염원하는 국민과 당원들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당 대표 시절을 회고했다.

다수의 정계 관계자는 이때 문 전 대통령이 사퇴한 것이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의 사퇴 이후 새로운 사령탑이 된 김 전 위원장은 광폭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테러방지법 독소 개정을 주장하며 필리버스터를 주도하더니, 주요 당내 인선을 중도층을 끌어올 수 있는 인물들로 임명했다.

같은 해 3월 중순 김 전 위원장은 총선 출정식을 열고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심판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명박정부 5년과 박근혜정부의 3년은 ‘잃어버린 8년’이었다”고 선거 전 프레임 전쟁에 돌입했다.

문 전 대통령도 대표직에서 사퇴한 신분이었지만 전국 선거유세를 다니며 동료 의원들을 지원했다. 그는 특히 총선을 앞두고 광주를 방문해 ‘호남홀대론’에 대해 직접 해명하기도 했다.

그는 “노무현정부가 호남을 홀대했다는 ‘호남홀대론’은 제 인생을 부정하는 치욕을 안겨주는 것”이라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패해 호남을 실망시켰던 질책은 모두 제가 받겠다.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계를 떠날 것”이라고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어필했다.


당 대표직 사퇴와 믿을만한 인물 영입 등은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먹혔고, 민주당은 2012년 대패의 치욕을 2016년에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총선서 123석을 확보해 122석을 확보한 새누리당을 누르고 원내1당 자리를 되찾아온 것이다.

이낙연은…
생각 없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강세를 보이며 38석을 확보해 범야권은 총 161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당시의 성공을 ‘문재인의 결단’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이 쪼개지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문 전 대통령이 공천권을 내려놓고 공정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물론 새누리당 내부의 내홍도 원인이었겠지만, 문 전 대통령이 전권을 잡고 친노(친 노무현) 대 비노 싸움으로 몰고 갔다면 선거서 대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며 “그렇게 됐으면 유권자들이 보기에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별반 다를 거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7년이 지나 민주당은 비슷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민주당은 총선서도 뚜렷한 승부수를 띄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이 대표의 퇴진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 외부인사 영입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6년 향수를 잊지 못하는 몇몇 민주당 인사들은 조용히 ‘김종인 추대론’을 다시 꺼내들고 있다. 김 전 위원장만큼 경제지식도, 정치적 감각도 있는 무게감 있는 인사가 어디 있냐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김 전 위원장 영입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이제는 경제민주화를 부활시켜야 할 때”라며 “그러기 위해선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이에 국민들 대부분은 호응했다. 2016년 선거를 승리로 김 전 위원장은 이후 몸값이 한층 높아졌고 2020년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 영입되며 보수당 선거를 돕기도 했다.

비명 “지금으로선 김종인이 대안”
이번엔 어떤 제안으로 유혹하나?

당초 민주당의 새로운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됐던 인물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였으나, 민주당 소식통에 따르면 이 전 대표 측이 아직은 정치 전면에 나설 뜻이 없음을 여러 채널을 통해 민주당에 알려오고 있다.

이 때문에 플랜B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일부 민주당 인사들은 이 전 대표를 대신할 인물을 물색하고 있고, 김 전 위원장의 영입을 고려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도 최근 이 대표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서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때문에 옥신각신하고 있다. 당의 진로를 놓고 최종 결단을 내려야 할 사람은 결국 이재명 대표”라며 “(이 대표의)개인적인 사법 리스크와 당과는 관계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제대로 구분할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비명계 중진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아시다피시 김 전 위원장이 여기서도(민주당) 저기서도(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아봤고, 양쪽에서 모두 선거를 승리로 이끈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며 “그러나 그 이후 김 전 위원장의 정치적 이익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거기서 오는 배신감이 무척이나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그를 영입한다면 총선 승리 이후의 열매까지 모두 보장해야 된다. 그 정도의 제안을 해야 김 전 위원장도 민주당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며 “현재로선 김 전 위원장이 (민주당의 제안을)받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여전히 정치적 욕심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예상했다.

김 전 위원장은 2016년 총선 승리를 이끈 뒤 문 전 대통령과의 기나긴 갈등 끝에 민주당을 탈당한 바 있다. 총선 당시 비례대표 두 번째로 자진 공천한 김 전 위원장은 여의도에 입성한 뒤 각종 현안마다 문 전 대통령과 상반된 견해를 보였다. 

오랜 갈등을 이어오던 두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 던진 10차 개헌 제안에 오랜 갈등을 터트렸다. 문 전 대통령은 4년 중임제를 주장했고, 김 전 위원장은 의원내각제를 주장한 것이다.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던 둘은 결국 갈라섰다. 

김 전 위원장이 2017년 3월 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하고 야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탈당 당시 그는 “이 당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당을 떠나고 의원직도 내려놓는다”며 당내 계파 싸움에서 완패한 점을 에둘러 표현했다.

한동안 정계를 떠나있던 김 전 위원장이 정계에 다시 등장한 건 지난 2020년 총선 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미래통합당은 김 전 위원장에게 당의 운명을 맡겼고, 김 전 위원장은 수도권, 청년, 호남이라는 세가지 키워드를 세우고 다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탄핵 정국과 민주당의 강세 속에 미래통합당은 21대 총선에서 유례없는 대패를 하게 됐고, 김 전 위원장은 이 모든 책임을 안고 물러나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열매?

그는 지난해 대선에서도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의 선대위원장직을 맡았으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간 벌어진 갈등에 휘말려 선대위를 박차고 나와 그 이후 뚜렷한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그동안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에서 일해 성과를 냈으나 양쪽 모두에서 버려진 꼴이 됐다.

김 전 위원장은 이때의 아픔을 잊지 않고 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이 말한 ‘승리 뒤 권한 보장’도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조건이다. 만일 민주당이 큰 결단을 내리고 ‘김종인의 민주당’이 될 결심을 세운다면, 김 전 위원장의 민주당 복귀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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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