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합정동 절두산 기슭에 뱀파이어들이 집단 서식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비밀리에 전해져왔다. 합정동과 망원동, 서교동 일대에 자주 출몰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그들의 존재. 그들이 마침내 움직인다.
최근 <푸른 사과의 비밀> 1·2권이 동시 출간돼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우울함과 고단함을 단숨에 날려줄 흥미진진한 뱀파이어 이야기다. 역사와 지역성, 이종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
저주받은 아담과 이브의 빨간 사과가 인류를 전쟁과 혼란으로 내몰았고 인류를 한데 묶으려던 스티브 잡스의 은빛 사과가 고독과 외로움 속에 잿빛으로 변질됐으나, 시간을 지나 현재 파스칼은 합정동과 망원동 일대를 비행하며 상처받은 젊은 영혼들을 구해낸다.
인간보다 인간을 더 사랑한 뱀파이어 파스칼. 그는 250년 전 노르망디의 뱀파이어가 되었으나, 신의 부름을 받은 뒤 조선 땅의 수호천사가 된 것이다.
그런 그의 평화로운 일상에 '그녀'가 등장했다. 파스칼은 양화대교에서 몸을 던진 '강민주'를 구해내지만, 목덜미에 선명한 상처를 내고 만다. 민주가 뱀파이어로 변한다면 우리는 영겁의 세월을 함께 할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18세기부터 현재,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시작해 합정동, 뱀파이어 증후군인 포르피린증 치료제에서 우생학적인 유전자 선별을 위한 인공 자궁 공장까지, 파스칼은 신비한 힘으로 민주를 뱀파이어의 세계에 초대해 인간계와 뱀파이어계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무한 스펙 사회의 이단아? “능력 없는 게 능력!”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소설 속 세계관은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 그 중에서도 합정과 망원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피를 먹는 대신 비건을 지향하고, 인간과 동물을 친구로 여기는 21세기형 뱀파이어가 등장하는가 하면, 주인공 ‘민주’는 성소수자, 학교의 무한경쟁, 생명윤리까지 다양한 이슈를 맞닥뜨린다.
고등학생 ‘민주’는 뱀파이어 무리의 대장인 ‘파스칼’과 우연히 마주치고,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려나간다. 민주는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평범한 성적, 평범한 외모, 평범한 재력...
그런데 파스칼은 패배감에 시달리는 민주에게 “능력이 없는 게 능력”이라고 말한다. 먼저 나아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 같은 선상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이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요한 위로가 아닐까.
아담과 이브의 빨간 사과, 스티브 잡스의 은빛 사과에 이어 뱀파이어가 건네는 ‘푸른 사과’는 메마른 감수성을 깨우고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