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풍경을 본다는 것은 생생한 대상의 경험을 총체적이며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그려내는 것이다. 풍경과의 조우는 여전히 새롭고 나날이 새로운 (생생화화·生生化化) 인식과 정신의 지평을 여는 일이다.”(정주영)
갤러리현대가 정주영 작가의 개인전 ‘그림의 기후’를 준비했다. 이번 전시는 ‘산-풍경’ 시리즈 중 ‘알프스’ 연작의 최신작과 기상학을 주제로 산 너머의 하늘과 구름, 대기 등의 풍경으로 시선을 넓힌 ‘M’ 연작 등 60여점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풍경의 초상
정주영은 한국 미술계를 이끄는 중견 화가로 ‘산의 작가’로 통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산 풍경을 캔버스로 옮겨 그렸다. ‘산’은 서양회화에서 풍경화, 동양회화에서 산수화로 불리는 장르의 대표적인 주제다.
정주영에게 풍경화는 회화의 방법론을 실험하기 가장 좋은 소재다. 그는 단원 김홍도나 겸재 정선의 산수화 일부를 차용해 대형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을 시작으로 북한산, 인왕산, 도봉산 그리고 알프스 등 국내외 산을 테마로 봉우리나 바위의 면면을 캔버스에 담았다.
알프스·M 연작
60점 작품 소개
정주영은 산을 매개로 한 일련의 연작을 통해 풍경에 관한 인식론적 투사나 그 배경에 관한 문화사적 사고를 드러내려 했다. 그는 “관념과 추상을 넘어선 감각과 체험의 구체적이며 원조적인 차원으로 우리 인식의 뿌리를 잡아 이끄는 풍경의 초상”이라고 산 연작에 대해 설명했다.
정주영이 그린 산-풍경은 진경과 실경, 관념과 실재, 추상과 구상 사이에 놓인 이중적인 ‘틈’ 회화의 세계를 제시한다고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의 출발점에는 알프스 연작이 있다. 정주영은 석회암으로 이뤄진 거대하면서 뾰족한 봉우리와 빙하가 어우러진 일대를 2006년 답사했다.
당시 촬영한 사진 자료와 기억을 기반으로 2018년부터 알프스 연작을 제작하고 있다.
지각변동과 침식작용 끝에 생긴 절묘한 형상 그리고 마그네슘, 칼슘, 철 등이 함유돼 붉은색을 띠는 암석을 그렸다. 산의 원형적 풍경을 사람의 얼굴과 손, 다리 등 신체의 일부를 연상하게끔 표현했다. 보는 이에게 인식과 감각의 전환, 나아가 내면을 투영하도록 안내한다.
하늘에 관심
사고의 전환
알프스서 마주한 웅대하고 낭만주의적인 하늘 풍경은 M 연작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정주영은 알프스 연작을 준비하면서 계절과 시간을 나타내는 하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변화의 상태가 더 긴박하게 다가왔고 예상치 못한 사고의 전환을 갖게 됐다. 산과 바위에서 하늘로 회화의 공간을 확장하고 동시에 재현할 수 있는 것에서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에서 알 수 없는 것으로 회화적 방법론이 이행해갔던 것이다.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그림의 기후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산과 바위서 물과 안개, 구름과 하늘의 영역으로 회화의 공간을 확장해나가는 정주영의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며 “정주영은 고정된 대상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재현 불가능한 기후를 그리며 그림의 새로운 변화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회화의 확장
이어 “정주영의 풍경 연작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이 일상인 동시대 수많은 사람에게 다시금 불가해한 하늘의 공간을 보게 함으로써, 가장 원형적인 풍경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의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정주영은?]
▲학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1992)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 마이스터슐러 취득 (1997)
▲개인전
‘그림의 기후’ 갤러리현대(2023)
‘살과 금’ 누크갤러리(2021)
‘큰 한 해’ 이목화랑(2019)
‘풍경의 얼굴’ 갤러리현대(2017)
‘정주영’ 논밭갤러리(2015)
‘부분 밖의 부분’ 갤러리현대(2013)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