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부 펀드’ 향한 두 가지 시선

백기사 vs 흑기사, 어떤 게 진짜 모습?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강성부 펀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경영 개선이라는 대의는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고, 어느새 행동주의 펀드는 개미 투자자들의 흑기사로 자리매김한 양상이다. 다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긍정적인 건 아니다. 단기적 이익을 위해 과도한 요구를 내세운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KCGI(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는 강성부 대표가 2018년 설립한 토종 사모펀드다. 대중에게는 흔히 ‘강성부 펀드’로 불리며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증대를 목표로 하는 행동주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
기업가치 증대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은 KCGI라는 이름이 수면 위로 부각된 시발점이었다. 2019년 11월 한진칼 지분 9%를 확보해 2대주주로 올라선 이후 꾸준히 보유주식 수를 늘렸고, KCGI는 이듬해 5월 한진칼 지분을 15.98%까지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토대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KCGI는 2019년 5월29일 ‘경영권 분쟁 소송’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 무렵 KCGI는 서울지방법원에 검사인 선임을 청구했다. 약 한 달 전 이사회에서 조원태 대표이사를 ‘회장’에 선임하는 안건이 적법하게 상정됐는지, 그렇지 않다면 회장이라는 명칭을 보도자료와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기재한 경위 등을 조사해야 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또한 KCGI는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퇴직금을 지급했는지, 퇴직금 지급 규정에 대한 주총 결의 여부 등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양호 회장의 퇴직금은 조 회장 일가의 상속세 재원이라는 점에서 관련 업계에서는 KCGI가 조 신임 회장의 승계를 흔들기 위한 시도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이후 KCGI는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3자 연합’을 결성해 조 회장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였다.

그러나 3년 넘게 이어진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은 결국 조 회장의 완승으로 끝났다. 지난해 3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자격을 강화하는 안건 등 KCGI가 낸 주주제안은 모두 부결됐다. 

이후 KCGI는 한진칼 주식을 호반건설에 전량 매각하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다만 KCGI에 득보다 실이 컸다고 보긴 힘들었다. KCGI라는 이름이 각인될 수 있었던 계기이자,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인식 제고의 기회가 됐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간 행동주의 노선을 지향한 펀드는 부정적인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먹튀, 탐욕 등의 수식어가 뒤따랐던 탓이다.

하지만 주주가치 증대를 앞세운 KCGI의 요구는 한진그룹 오너 일가에 대한 탐탁지 않은 시선과 맞물리면서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심지어 행동주의 펀드가 소액주주의 대변자이자 자본시장의 수호자쯤으로 비춰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었다.

소액주주
대변


인지도를 높인 KCGI는 최근 들어 한층 활발해진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올 초 결정된 메리츠자산운용 인수 결정이 대표적이다.

KCGI 컨소시엄은 지난달 6일 메리츠금융지주 보유 메리츠자산운용 보통주 100%인 264만6000주를 인수하는 주식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매각가는 400억~5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메리츠자산운용의 자산 규모는 3조원에 달한다.

KCGI는 영남지역 향토 건설사인 화성산업과 컨소시엄을 이뤘고, 화성산업은 2대주주가 될 예정이다. 화성산업이 인수작업에 참여한 것은 미래 성장 잠재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존 리 전 대표의 불명예 퇴진으로 메리츠자산운용의 신뢰도가 타격을 입자, 그룹 차원에서 매각을 추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메리츠자산운용은 지난해 6월 존 리 전 대표가 차명 투자 의혹으로 금융감독원 조사를 받으면서 논란을 겪었고, 존 리 전 대표는 지난해 6월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메리츠자산운용 인수 소식이 공표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KCGI는 또 한 번 의미심장한 행보를 드러냈다. 오스템임플란트 보유 주식 늘리기가 바로 그것이다. 

어느새 M&A 시장 큰 손
활약만큼 커지는 우려

지난해 12월21일 오스템임플란트는 에프리컷홀딩스가 지분 5.58%(83만511주)를 보유했다고 공시했다. 매입 금액은 1073억원 규모다. 에프리컷홀딩스는 기존에 71만7903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장내에서 11만2608주를 신규로 취득했다. 에프리컷홀딩스는 KCGI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고, 지분 취득 목적은 ‘경영권 영향’이다.

이를 계기로 KCGI는 오스템임플란트 3대주주로 올라섰다. 오스템임플란트 최대주주는 지분 20.6%를 보유한 최규옥 오스템임플란트 회장(특수관계인 포함)이다. 기관 지분은 ▲라자드에셋매니지먼트 7.18% ▲KB자산운용 5.04% ▲국민연금 5.04% 등을 포함하면 23%대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KCGI는 또 한 번 오스템임플란트 주식 사들이기에 나선 상태다. 지난달 27일 오스템임플란트는 에프리컷홀딩스가 장내 매수를 통해 자사 주식 5만9002주를 추가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에프리컷홀딩스의 오스템임플란트 보유 주식은 97만9254주에서 103만8256주로 늘어났고, 지분율은 6.57%에서 6.92%로 상승했다.

앞서 KCGI는 지난달 19일 오스템임플란트에 공개 주주서한을 보내 “후진적인 거버넌스 탓에 기업가치가 저평가됐다”며 최 회장의 퇴진과 함께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성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오너 리스크로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의 ‘흑기사’를 자처한 모양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지난해 1월 코스닥 사상 최대인 2215억원의 횡령 사건이 발생하면서 신뢰도에 커다란 흠집이 생긴 바 있다. 

오스템임플란트 최대주주 측도 곧바로 사모펀드 유니슨캐피탈코리아(UCK)와 MBK파트너스를 ‘백기사’로 끌어들여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25일 UCK와 MBK파트너스는 공동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덴티스트리인베스트먼트’를 통해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오스템임플란트 주식을 공개매수한다고 밝혔다. 장외 시장에서 239만∼1117만주(지분 15.4∼71.8%)를 주당 19만원에 오는 24일까지 공개매수한다는 계획이다.

UCK는 나흘 전 최 회장의 보유주식 가운데 144만2421주(잠재발행주식 총수의 약 9.3%)를 공개매수 가격과 같은 가격으로 매수하는 주식 매매계약 및 투자합의서를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UCK가 오스템임플란트 주식 15.4%를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최 회장으로부터 인수하는 주식과 회사가 보유한 자기주식 6% 등을 포함해 최소 34.3%로 최대주주가 된다.

진짜 모습
무엇?

금융투자업계에서는 KCGI와 유사한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행동주의 노선을 표방한 사모펀드는 경영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주주권 행사를 최우선 가치로 내건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가 등장하면 주가가 오르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 영역이 늘어난 것은 지난 정부에서 ‘대주주 의결권 3% 룰’ 등 이른바 경제민주화 법안이 대거 채택된 영향이 크다. 감사·감사위원 선임 등에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최대 3%로 제한하는 상법 규정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임, 소수 주주권 행사의 선택적 적용 명문화 이후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헤지펀드 활동이 크게 늘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대거 주식시장에 진입한 개인투자자들이 행동주의 활동에 지지를 나타내는 추세다. 기업의 ‘ESG 경영’에 대한 커진 관심도 행동주의 펀드의 입지를 넓힌 요인이다.


다만 행동주의 기능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행동주의 펀드가 단기적 이익을 위해 기업을 공격하거나 보유 지분 이상으로 기업 경영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다수의 행동주의 펀드에서는 단기간 주식을 집중 매집해 주가를 높이고 수익을 내면 손을 털어버리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 바 있다. 불합리한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표면상 목적과 달리 실리를 추구하면 떠나는 행태가 더 많다는 것이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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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