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만나다> 한국 재즈보컬 1세대 김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1.30 15:55:26
  • 호수 14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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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재즈 같은 삶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빨간 마후라 사나이/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 말아라/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이란다/ 석양을 등에 지고 하늘 끝까지/폭음이 흐른다 나도 흐른다/그까짓 부귀영화 무엇에 쓰랴.” (쟈니 브라더스, <빨간 마후라>, 1964)

한국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1세대이자 원로 가수. 보컬리스트 김준의 수식어다. 1940년 1월14일에 태어난 김준은 ‘한국 재즈 100년의 역사’에 기록됐고, 현재까지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 그를 만난 것은 서울시 종로구의 째즈바 ‘천년동안도’였다. 연주자와 보컬 평균 연령 70대 후반인 재즈 그룹이 공연하는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공연 관람자도 보통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관람 연령이 20대부터 60대까지로 모두 ‘재즈 매니아’의 면모가 엿보였다.

산증인

보컬과 연주자는 자유로웠고 관람자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그날의 감상평이다. 젊은 재즈 연주자가 넘쳐나는 시대, 노련한 재즈 연주자의 모습 자체가 새로웠다.

김준은 “재즈는 내 인생이다. 나는 언제나 나를 위해 노래한다. 그래서 재즈 공연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관객이 공연을 보러와 주고 좋아해주니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인생이 재즈다”. 음악이 업인 사람도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김준의 인생은 ‘음악이 인생’이라는 명제가 어색하지 않다. 그렇다고 편하게 음악인의 길을 간 것도 아니다.

김준의 아버지는 평안북도 신의주 사람으로 삼대독자였다. 그는 20대 중국서 행상을 한 돈으로 고향 신의주의 밭과 땅을 샀다. 그는 만석꾼으로 살았고, 1945년 8월15일 해방 이후 계속 신의주에 머물렀다. 하지만 부유한 삶을 산 것도 잠시였다.

김일성이 1946년에 북한을 소련식 사회주의 경제에 편입하겠다고 발표하며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만석꾼이었던 삶도 끝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김준의 가족은 남한으로 향했다.

사실 그 당시는 누구에게나 평탄하지 않은 시대였고 김준도 마찬가지였다. 김준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원주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6·25 전쟁이 터졌다. 그 길로 걸어서 부산까지 피난 갔다. 그 후, 강원도 영월군 주천초등학교로 전학을 간 뒤 다시 목포로 이동했다. 1·4후퇴 때 제주도로 다시 피난 간 뒤 그곳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김준이 재즈를 처음 접한 곳도 제주도였다. 당시 제주도에는 미 육군통신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김준은 미군부대에 하우스보이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이를 계기로 군부대 안에 있는 교회서 예배를 드렸다.

40년생,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
축구 선수서 보컬리스트로 대변신

미군부대 교회 목사는 체플리 게일이라는 흑인이었다. 예배가 끝나면 목사는 김준을 조용히 집무실로 불렀다. 목사는 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고 인생에 관한 조언도 했다. 그때 집무실에는 루이 암스트롱, 엘비스 프레슬리 등 항상 재즈 음악이 틀어져 있었다.


김준은 “피난 시절 목사님 집무실에서 재즈 음악을 접했다. 어린 시절이라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걸 몰랐다. 그런데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했다. 특히 탁성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이런 부분에 매력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유년 시절을 회상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칭찬을 받긴 했지만, 김준은 유년 시절 축구선수였다. 이런 그가 노래를 시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덕분이었다. 

김준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전국 고등학교 콩쿨대회가 생겼다. 그가 졸업한 학교에도 공문이 왔고, 평소 김준의 노래 실력을 눈여겨봤던 교장 선생님은 그를 추천했다. 물론 불법이었다. 김준은 다시 머리를 자르고 교복을 입었다.

콩쿨대회에는 고등학생 성악부만 85명이 참가했다. 여기서 상을 받게 됐고, 김준은 대회 수상을 계기로 경희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예그린 악단(서울 시립가무단의 전신)에 취직하게 됐지만 1년 뒤 해체됐다. 

예그린 악단의 해체가 아쉬웠던 합창단원 4명이 모여 4중창을 결성했고 이름을 ‘쟈니 브라더스’라고 지었다.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노래자랑 방송 프로그램에서 특상을 받았고, 1962년 KBS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로 부른 <빨간 마후라>가 히트쳤다.

<빨간 마후라>로 쟈니 브라더스는 슈퍼스타가 됐지만, 쥐꼬리만한 출연료로는 쟈니 브라더스를 이어갈 수 없었다. 

피란 때 흑인 목사 통해 들어 
“위로도 얻고 용기도 생겨요”

오히려 김준에겐 기회였다. 꾸준히 연습했던 작곡과 재즈로 바로 솔로 가수로 데뷔했다. 1970년대였다. 솔로 데뷔 후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했지만, 그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김준은 매일 일기를 쓰듯 작곡했다. 솔로 데뷔를 대비해서 곡 레퍼토리를 준비했다. 그야말로 생활이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그는 한국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1세대가 됐다. 

김준이 재즈 가수로만 활동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예그린 악단에서 만화 성우 활동도 했었다. 대표작은 <인어공주>의 세바스찬과 <미녀와 야수>의 루미에다.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만화 OST인 ‘Under the Sea’ ‘Be Our Guest’와 같은 유명 곡의 한국어 더빙도 참여했다.

수원여자대학교 대중음악과 겸임교수로 재직한 적도 있다. 김준은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의 음악성을 발굴하는 데 매진했다. 다만 그가 처음 재즈를 접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방식을 택했다. 수업 시간에는 교수와 학생 구분 없이 테이블에 앉아서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을 듣고 감상을 평가하는 시간도 가졌다. 편하게 음악성을 끌어내는 것이 김준의 방법이다.


김준은 아직도 현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재즈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재즈는 미국 뉴올리언스 흑인에 의해 시작됐다고 알려졌어요. 그런데 문헌에 보니까 프랑스에서 시작됐다고 나옵니다. 이 사람들이 이민하고 정착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음악이란 거죠. 재즈는 흑인의 애환을 담은 음악이라서 그런지 영감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재즈가 영적인 것을 표현하고 위로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재즈를 부르면서 위로도 얻고 용기도 생겨요.”

편하게

김준의 바람이 있다면 대중이 재즈를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음악을 들을 때 관객이 ‘내가 피아노 연주자다’ ‘색소폰 연주자다’ 이렇게 생각하면 더 흥미롭고 즐겁잖아요. 자주 들으면 친숙해져요. 저는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와 토미 배넷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많이 듣고 있어요. 우리 주위에 항상 재즈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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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