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열리는 ‘김만배 게이트’ 막전막후

언론, 법조계…다음은 정관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장동 의혹’ 핵심 멤버들의 전방위적 로비 정황이 드러났다. 대상은 언론계에 그치지 않았다. 현직 판사와 검찰 고위직 인사 여럿이 연루됐다. 법조계에서는 뇌물죄를 적용해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제 식구를 겨눠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지속적 언급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장동 핵심 멤버들은 사업이 틀어질 위험성에 대비하기 위해 개발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금액으로 수년간 법조·언론계에 전방위적 로비를 시도했다. 중앙 일간지 간부 등 전·현직 기자들은 언론사를 퇴직하고 화천대유 임직원으로 계약한 후 거액의 연봉을 받거나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만배씨와 수억원대 금전거래를 하기도 했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지는 모양새다.

드디어 열리는
판도라의 상자

검찰은 김씨가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1호에서 빼낸 자금을 추적 중이다. 이 돈은 김씨가 2019년부터 3년간 자신이 대주주인 회사에서 장기 대여금과 수표 인출 등으로 빼낸 금액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씨가 빼돌린 자금 중 사용처가 불분명한 금액은 화천대유 80억원, 천화동인 168억원 등 총 248억원이다. 검찰은 대장동 핵심 멤버인 남욱 변호사가 2014년 조성한 40억원대 비자금이 대장동 사업 시작 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측에 대한 뇌물 혐의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다졌다.

김만배의 수백억은 대장동 사업이 어그러질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돈으로 해석된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남 변호사의 수십억원대 비자금 중 일부는 박영수 전 특검 측에 흘러 들어갔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팔짱만 끼고 있다. 제 식구 감싸기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대장동 멤버들이 언론계에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상세하게 드러난다. 2020년 3월24일, 김씨는 정영학 회계사에게 “너 완전히 지금 운이 좋은 거야”라면서 “수사 안 받지. 언론 안 타지. 비용 좀 늘면 어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기자들 분양도 받아주고 돈도 주고, 응? 회사(언론사)에다 줄 필요 없어. 기자한테 주면 돼”라고 한다.

같은 해 7월 김씨는 정 회계사에게 “대장동 막느라고 너무 지쳐. 돈도 많이 들고. 보이지 않게”라면서 금품을 돌리며 대장동 관련 비리가 불거지는 걸 막고 있다고 말한다. 김씨는 “끝이 없어. 이놈 정리하면 또 뒤에서 숨어 있다가 다시 나오고”라고 했다.

이어 김씨는 “어차피 광고 내려면 그 정도 내라 그러면 어떻게 해”라고 말하면서 언론사에 광고비를 주는 대신 기자들에게 돈을 주고 대장동 관련 기사 작성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녹취록을 보면, 김씨는 녹취 당일 저녁에도 여러 기자와 만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상당수에게 로비한 정황이 드러난다.

김씨는 “오늘 (기자들이)되게 많이 오는데”라고 말하자 정 회계사가 “형님, 맨날 기자들 먹여 살리신다면서요”라면서 김씨에게 상품권을 건네는 정황이 나온다. 상품권을 확인한 김씨는 “와, 이 정도면 대박인데. 아이, 걔네(기자)들은 현찰이 필요해”라고 했다.

대장동 사업 불발 우려에 기자 수년간 관리
현금·상품권에 아파트 분양까지 사실상 뇌물

이에 정 회계사가 “아, 현찰로 할까요? 다음에는?”이라고 묻자 김씨는 “아니야. 아니야. 그래서 내가 지금 하고 있어”라고 말한다.


이외에도 대장동 멤버들이 언론계를 관리한 정황은 여럿 등장한다. 김씨는 대장동 사업 이후 경기도 분당 오리역 인근의 LH 사옥 부지를 매입해 개발하는 사업을 계획했다. 김씨는 녹취록에서 이 사업이 성공하면 자신이 가져갈 이익이 최소 3000억원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언론에 대장동 관련 특혜가 언급되면 사업이 무산될 수 있기에 로비를 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1월6일, 정영학 녹취록에서 김씨는 대장동 사업을 재빠르게 마무리해야 한다고 정 회계사에게 강조한다. 개발업자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준공을 받은 후에야 번 돈을 전부 빼갈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씨는 “준공이 늦어지면 이익이 얼마 남니, 뭐니, 지역신문이나 터지면 어떻게 해. 응? 너랑 나랑. 응?”이라면서 “지금까지(기사를) 돈으로 막았는데…기자들 떠들면 어떻게 해”라고 우려했다. 이어 “지회도 떠들고”라고 말했는데, 정 회계사는 자필로 ‘지회’란 단어에 ‘신문사 모임’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김씨가 돈으로 관리하던 기자 모임인 ‘지회’가 실제 존재한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해당 사실이 드러나자 2019∼2020년 김씨에게 총 9억원을 받은 <한겨레신문> 간부 기자 A씨는 이번 사건으로 전날 해고 조치됐다. A씨는 물론 김씨와 금전을 거래한 <중앙일보> 간부 B씨, <한국일보> 간부 C씨가 만일 대장동 사업과 관련해 유리한 기사를 보도하도록 했다면 배임수재죄로 볼만하다는 해석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3부는 최근 B씨 명의의 은행 계좌에 김씨가 추가로 1억원을 보낸 사실을 파악했고 B씨는 이날 사표를 냈다.

김씨는 대장동 업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을 목적으로 수시로 고위 법조인들을 만나왔다. 2013년을 전후로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남 변호사와 자금책 조우형씨 등을 수사할 당시, 김씨와 <머니투데이> 사회부 법조팀 출신이자 천화동인 7호 소유자인 배성준씨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서 수사를 무마한 정황이 녹취록에도 등장한다.

뇌물 리스트
수사 어디까지?

2013년 3월5일에 김씨는 정 회계사에게 “터지면 대장동 사업 못해” “그 당시에 그걸 다 깔끔히 막았잖아”라며 자신이 수사를 무마했단 취지로 말한다. 그러면서 김씨는 “형이 공적으로 쓴 것 말고 사적으로 쓴 돈이 더 많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적으로 들어간 돈 따지면 형이 더 받아야 해”라고도 말한다.

여기서 김씨가 언급하는 ‘공적으로 들어간 돈’의 정체에 대해 정 회계사는 “로비한 돈”이라고 적어놨다. 대화가 이뤄진 2013년 시점을 감안하면, 이날 김씨가 막았다는 수사는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에 대한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수사였던 걸로 보인다.

당시 검찰은 대장동 업자들이 최 의장에게 1억원의 뇌물을 준 것으로 보고 수사했지만, 결국 무혐의로 종결됐다.

김씨의 법조인 로비 정황은 남 변호사의 진술에서도 확인된다. 2021년 10월20일, 검찰이 작성한 남 변호사 피의자신문조서에 따르면 남 변호사는 검찰에 “(김만배가)판·검사들하고 수도 없이 골프를 치면서 100만원씩 용돈도 줬다고 들었다. 골프 칠 때마다 500만원씩 가지고 간다고 했고, 그 돈도 엄청 썼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남 변호사는 “이 사건 터지고 나서 국회에 있는 <조선일보> 기자와 통화했는데, 윤석열 밑에 있는 검사들 중 김만배한테 돈 받은 검사가 워낙 많아서 이 사건 수사를 못할 거라 했다”고 강조했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그가 자필로 남긴 ‘대장동 로비 인맥도’도 있다. 이 인맥도는 정 회계사가 2012년 8월~2014년 7월에 녹음한 녹취록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인맥도의 정중앙엔 김씨가 있다. 녹취록에는 김수남 전 검찰총장, 윤갑근 전 고검장, 신경식·강찬우 전 검사장 등 고위 법조인 4명이 등장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윤 전 고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나머지 3명은 수원지검장을 지냈다.

2012년 8월18일 정 회계사가 “원래 그쪽하고 좀 친하신 사이?”라고 묻자, 남 변호사는 “(만배 형이)김수남 검사장하고 정말 친하대요”라고 답한다. 남 변호사는 배씨로부터 ‘김만배와 김수남이 깐부’일 정도로 친하단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말한다.

2012년 8월은 최 전 의장이 대장동 업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내사(수사 직전 단계)를 받고 있던 때였다. 또 녹취록에는 ‘형, 내가 대장동 사업에 참여하고 있어’라면서 수사하지 말 것을 청탁한 정황이 담겨있다. 남 변호사가 김씨로부터 들은 얘기를 다시 정 회계사에게 설명하는 상황이다.


남 변호사는 정 회계사에게 “(김만배에 따르면)김수남 검사장이 어디서 무슨 얘기까지 들었는지는 자세하게 얘기는 안 하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쭉 하면서, 그래서 만배형이 형(김수남), 저 그 최 회장님하고 내가 이 사업 대장동…”이라고 말한다.

이어 남 변호사는 “근데 뭐 (최윤길)땅이 (대장동에)있다는 얘기도 있고 뭐, 시행사에서 돈 받았다는 얘기도 있고 뭐, 별 얘기가 다 있는데…그런 것 아니야. 그런 거 없어. 그런 줄 아시오. 그랬더니. (김수남이) 응, 알았다. 뭔 말인지”라고 답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씨가 현재 변호사인 김 전 총장의 이름값을 이용하거나 실제 수사 무마 청탁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김 전 총장은 ‘50억 클럽’에서도 이름이 등장한 바 있다.

남 변호사는 정 회계사에게 “(김만배)다음 주에 한 번 들어가실 것 같아요. 윤갑근 차장 만나러”라고 말한다. 이때 윤 전 고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이었다. 당시 최 전 의장 내사는 성남지청에서 맡았다. 그러나 윤 전 고검장은 김씨와의 수사 무마 청탁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50억 클럽 수사 제자리…박영수·김수남 봐주나
“지난해부터 알았다” 전방위 로비 의혹도 묻히나

윤 전 고검장은 “김씨와 아는 사이는 맞지만 그 당시에 미팅을 한 적은 없다”고 전했다.

강 전 검사장은 대장동 핵심 멤버 중 일부가 2015년 수원지검의 수사를 받을 때 수원지검장이었다. 당시 이들의 변호를 맡은 건 박영수 전 특검이다. 남 변호사는 당초 ‘횡령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았지만, 검찰이 남 변호사를 재판에 넘기는 과정에서 ‘횡령’ 혐의를 지웠다. 이후 남 변호사는 재판에서 물러났다.

강 전 검사장은 퇴직 후 2018년, 자신이 속한 로펌에서 화천대유의 법률 자문을 맡아 구설에 올랐다. 녹취록을 보면, 김씨가 정 회계사와 대화하면서 ‘사실은 박영수나, 강찬우에 대한 자문료도 남욱이 다 부담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인맥도에 나오는 고위 법조인으로 김만배 ‘50억 클럽’에도 들어간 김 전 총장의 경우, 녹취록에 관련 사건과 청탁 과정이 비교적 자세히 언급된다. 김씨의 ‘허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남 변호사는 지난해 11월21일 열린 대장동 재판에서 “사실 확인을 한 적은 없지만, 김씨로부터 김 전 총장께 최 전 의장의 뇌물수수 사건을 잘 봐 달라,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외에도 검찰 대장동 수사팀은 김씨가 2017년 당시 부장판사였던 변호사 및 판사와 술자리를 가진 뒤 비용을 지불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술집 직원으로부터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의 경우 따로 술을 마신 뒤 김씨가 사후 정산했다는 진술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사자인 판사는 최근 언론을 통해 “잠깐이라도 들러 인사나 하고 가라는 연락을 받고 술자리 중간에 동석해, 길지 않은 시간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며 “중간에 자리를 떴으므로 술값을 누가 계산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같은 사실을 지난해부터 알고 있었다. 피의자 신분 소환조사가 아닌 대부분 서면조사로 강도가 약한 수사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진퇴양난 검
여론전 대비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내부가 어수선하다. 지난해부터 알고 있던 내용인데 이걸 어떻게 수사해야 하나 난감해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을 제외한 검찰의 50억 클럽 수사는 사실상 멈춰있다. 최근 드러난 김씨의 법조·언론계 전방위 로비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이유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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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