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비밀경찰 의혹’ 왕해군 황금 인맥 추적

왕서방 뜨자 서둘러 인연 지우기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와 중국의 관계가 악화일로다. 국제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가 공개한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 의혹 문건이 화근이 됐다. 국내에서는 서울의 한 중식당이 비밀경찰 의혹의 중심에 섰다. 중식당 주인 왕해군 동방명주 대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하지 못했다.

왕해군 동방명주 대표는 중식당 사업 외에 여러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정치권 인사들과의 교류가 끈끈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라인인 국민의힘 친박(친 박근혜)계 인사를 포함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친분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 등이 꼽힌다.

세이프가드
의혹 폭로

스페인 마드리드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이하 세이프가드)는 지난해 9월, 중국이 ‘해외 110 서비스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의 비밀 해외경찰서 54곳을 불법 운영 중이라고 폭로했다. 최근에는 한국 등 48곳에서도 추가 시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10은 한국의 ‘112’에 해당하는 중국 경찰 신고번호다. 이 단체는 중국이 비밀경찰서를 통해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 국적자들을 감시하고 괴롭히며 경우에 따라 본국으로 송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이프가드가 공개한 ‘해외 110. 중국의 초국가적 치안 유지 난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중국이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 21개국에 54개의 비밀경찰서를 개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망친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비밀경찰서에서 잡아들이고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 당국은 이 시설들이 주재국 현지에 사는 중국 국적자들의 운전면허 갱신이나 여권 재발급 등 서류 작업에 행정적 도움을 주려는 것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공관이 문을 닫는 등 서류 작업이 지연되면서 어려움을 겪은 중국 국적자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시설들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세이프가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해외 110 서비스 스테이션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대유행보다 몇 년 전이다. 중국 당국의 해명과 달리 중국의 비밀경찰서는 일본과 캐나다 등 세계 곳곳에서 실체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달 19일 도쿄 등 2개 도시에서 중국 공안국이 개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비밀경찰서를 파악했다고 보고했다. 또 캐나다 경찰도 지난해 10월27일 토론토 일대에 3곳의 중국의 비밀경찰서가 설치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네덜란드 정부도 지난달 1일 자국 내 ‘중국 불법 경찰서’ 2곳을 즉시 폐쇄했다고 발표했다.

미국도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 의혹에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 11월 미 연방수사국(FBI)의 크리스토퍼 레이 국장은 미 상원 국토안보위원회에서 의원들의 관련 질의 때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 경찰서들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100여곳 존재
일부 국가 조사 후 폐쇄

우리 정부도 범정부 차원에서 국내의 중국 비밀경찰서 실태 파악에 나섰다. 이번 실태 파악은 군과 경찰의 방첩 조직과 외교부 등 관련 정부부처가 동원됐다.


국내 중국 비밀경찰서로 지목된 동방명주 식당 대표 왕씨는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나섰으나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하지 못했다. 동방명주는 자본 잠식 상태에도 불구하고 5년 동안 영업을 해온 사실 등으로 인해 방첩당국의 의심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3000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내지 않아 이 식당의 운영권을 가진 임대인과 갈등을 빚는 상황이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운영을 지속하다 의혹 제기 후 문을 닫았다는 지적에 대해 왕씨는 “총 60년의 계약을 체결하고 이미 45억원 이상을 리모델링 등에 투자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영업 종료는)새로 유선장을 인수한 업체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선박 안전 문제가 제기됐던 것이고, 타이밍이 공교로웠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왕씨는 자신을 ▲한화중국평화통일촉진연합총회 및 중국재한교민협회 총회장 ▲중화국제문화교류협회장 ▲서울화조센터(Overseas Chinese Service Center·OCSC) 주임 ▲서울 화성예술단장 ▲동방명주 실질 지배인 ▲HG문화미디어 대표 등으로 소개했다.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를 중국으로 송환하는 것을 돕는다는 의혹이 제기된 OCSC에 대해서는 “중국 국적의 중환자나 정신질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안전하게 귀국하도록 도운 것”이라며 “반중 인사 강제 연행 같은 일은 절대 없었으며, 그럴 능력이나 권한도 없다”고 강조했다.

법무부·경찰
관계자들 접촉

OCSC는 국내에서는 화조중심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비밀경찰서로 이어지는 통로로 알려져 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OCSC는 국무원 화교판공실의 지원을 받아 현지 중국교포들을 위한 긴급 지원, 통일 교육, 법률 지원, 빈곤 완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단체다.

하지만 중국 언론의 설명과 달리 OCSC는 단순한 민간단체가 아니다. 2016년부터 화조중심센터 대표를 맡아온 왕씨는 2017년 5월부터 서울 영등포 여의도 인근 한강 유람선에서 주한중국대사관 영사부, 서울 남부 출입국 관리사무소, 재한중국교민협회총회 등을 초대해 화교와 중국인의 고충을 해결해주기도 했다.

이들은 세미나에서 ▲중국인이 귀국 시 국민연금 되돌려 받는 법 ▲취업비자 발급방법 ▲중국 방송 불법송출 예방법 등을 정부 관계자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씨와 부인 배모씨(39)는 평소 ‘친중 행보’를 보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왕씨는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 자회사인 한국채널과 문화콘텐츠업체, 재한교민협회, 중국화교연합회 등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개발·여행·문화교류 등 사업에도 참여한 바 있다.

배씨 또한 유명 연예 엔터테인먼트 F사의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중국 자본이 들어간 사극 드라마 제작에 참여했다.

2002년 왕씨가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를 설립할 때 “협회의 취지와 방침은 ‘중국의 교민사업’과 ‘평화통일 사업’을 위한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은 이들이 “우리는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부의 관리를 받는다” “중국대사관의 지도를 받았다”고 언급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통일전선부는 중국 공산당 하부 조직으로 해외 정계·고위 공직자와의 교류, 중국에 대한 비판 약화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영사 역할
OCSC 실체

OCSC는 중국 반체제 인사들에게 비판적이었던 한국 화교 1세대 인사의 건물에 주소지를 둔 바 있다. OCSC는 2015년 서울 강남구의 한 빌딩에 입주했다. 이 건물은 한국 화교사회의 원로였던 고 한모씨가 소유했다가 현재는 아들 명의로 돼있다.

한씨는 2002년 중국 교민협회를 주도적으로 세웠고 초대회장을 맡았다. 이 협회는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며 대만과 홍콩의 독립에 반대하고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기 위한 취지로 설립됐다. 종종 반체제 인사에 대한 비판 의견도 냈다.

한씨는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비공식 주치의로서 한·중 수교를 위한 ‘비밀특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만큼 중국 내 인맥이나 영향력이 탄탄했던 인물로 볼 수 있다.

OCSC는 중국 국무원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소속 관할구역 ‘대사관’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중국 화교 네트워크’ 홈페이지에는 2015년 ‘한국 화조중심’이라는 제목과 함께 관할구역, 교단명칭, 연락 방법 및 주소와 전화번호 등이 나와 있다.


화조중심은 OCSC의 중국식 표기다. 중국 국무원 소속 화교판공실이 교민들을 위한 정보제공을 위해 운영하는 홈페이지로 일종의 정부 공식정보인 셈이다. 이 게시글에는 관할구역을 뜻하는 관구에는 ‘사관’이라고 적혀 있다. 통상 ‘대사관’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OCSC는 2017년부터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까지 ‘1일 영사관’ 행사를 진행했다. 2017년 5월과 12월에는 한 업체에서, 2018년 10월에는 동방명주에서 진행했다. 이렇게 세 번의 행사에는 주한중국대사관 영사부 직원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찰청과 법무부 관계자도 참석했다.

윤상현·홍문표·김두관…
정치권 막강 라인 과시

경찰청, 법무부 직원들은 이 자리에서 생활안전, 출입국 등에 관해 중국 교민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왕씨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의외의 정치권 인맥을 형성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2015년 8월 왕씨는 한중민간경제협력포럼 정례회에서 당시 대통령 정무특보였던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과 이기주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장석영 전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실 선임행정관, 유진규 전 동티모르 대사, 정승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오신환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을 만났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과의 인연도 있다. 김 의원은 경남도지사 시절 2012년 중국 투자 유치와 경남 관광 홍보를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 김 의원의 자녀는 2004년 베이징에 머물며 공부해 중국인민대학을 졸업해 중국은행 서울지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2020년 10월 동방명주에서 열린 ‘태권도 세계화 개척의 역사 사진 전시회’에 참석했다. 당시 월남전 파견 교관단과 국회태권도협회장인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과 윤 의원, 윤영석 의원,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김두관 의원, 서춘수 전 함양군수가 참석했다.

김 의원은 같은 해 11월12일 왕씨와 동방명주에서 ‘코로나 시대 한·중 문화 및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왕씨와 김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한·중 발전을 위한 기자협의회’ 발대식이 열리기도 했다.

2021년 6월에는 조선족 경제인들의 구심체가 되는 재한동포경제인연합회가 창립됐다. 이 자리에는 김 의원을 포함해 문희상 전 국회의장, 민주당 이해찬·이낙연·송영길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김무성 국민의힘 전 의원 등이 참석했다.

여야 가리지
않고 친분

중국 측에서는 중국 외교부 산하 아주경제발전협회 권순기 회장과 왕씨가 자리했다. 같은 달 열린 서울차세대영화제에는 윤 의원과 이왕재 서울대학교 교수가 참석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형식적 자리에 간 것이지, 왕씨와 깊은 친분이 있는 분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도 “윤상현 의원이 실제로 왕씨와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게 논란이 될만한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