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⑭한국인의 빨강 애증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2.12.27 14:49:32
  • 호수 14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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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붉은 색깔은 한국에서 두세 가지 의미를 상징한다. 빨갱이(즉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회가 피워낸 성공학(자기계발)이다. 그리고 의외로 반공주의자도 한몫 낀다.

붉은 주홍색이 전 세계적으로 상징하는 본질(정열, 열정, 혈액 등)을 고려한다면 우리 한국인들은 조금쯤 착각 착오를 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원래 ‘빨갱이’는 잘 알겠지만 러시아어인 파르티잔(partisan, 유격대)에서 나왔다.

그게 빨치산으로 음운 변화하고 그 분자들이 차고 다니던 붉은 완장(혁명의 열정인가?)과 섞여 ‘빨갱이’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괴상망측스러운 단어가 생겨나지 않았던가 말이다.

전 세계 유일


세계적으로 한국인만큼 빨강에 대한 애증의 격차가 심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순수한 빨강에 대한 애정은 강렬하고 아리땁지만, 또한 순수한 빨강 기피심도 가치 높고 의미 깊다.

아마 만국 공통이리라.

다만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결전장으로 선택돼 처절한 동족상잔의 붉디붉은 피를 보았다.

더구나 우리 한민족끼리 진짜 싸움을 한 게 아니라 미국과 소련(일본과 중국도 포함됨)의 꼭두각시로서 대리전 놀음을 벌였기에, 그 검붉은 피 속엔 불순성이 숨어 있고 그건 언제 어느 때든 튀어나와 우리 자신의 얼굴을 몰라보게 물들여 버린다.

그래서 지금도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가? 성조기와 옛 소비에트 연방기를 흔들며… 일장기와 태극기를 혼동하며…. 

성공학이나 자기계발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으나, 일단 한국에서는 그 바탕에 붉은 색이 깔려 있어야 한다.

프랑스, 독일, 스위스 같은 데선 여러 가지 빛깔이 서로 조화를 이뤄 저마다 순수하고 독특한 꽃을 피워내는데 한국인의 마음속엔 기본적으로 빨강 앱(red app)이 깔려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나와 너의 피, 적극성, 전투성, 긍정성, 열정 따위가 없다면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리다. 

붉은 악마의 열광적인 응원을 보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는가? 혹은 직접 참여해 본 분들의 소감은…?

요즘 시대에 애국심을 들먹이긴 좀 멋쩍다. 그렇다고 순수한 스포츠 정신과 연관시키기도 좀 어쭙잖다.

그럼 뭘까? 가능하면 좋게 봐주려고 노력하자. 승리하고 성공해서 잘살아 보고픈 한국인의 소망, 아직까지 우리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는 약소국 시대의 설움과 울분의 토악질(오바이트), 현실적인 콤플렉스와 스트레스 해소 욕구, 온갖 희생을 감내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지만 좀체 선진국으로 환골탈태하지 못한 채 강소국 따위로 치부되는 부조리…

미칠 만도 하다. 미치지 않은 게 이상하지 않은가. 미치지 않기 위해서 붉은 탈을 쓰고 광란 광분하는 게 아닐까?

약소국 강소국을 넘어 진짜 ‘대한민국’을 이루어내고 싶은 열망의 외침! 붉은 절규와 함께 주름진 볼에 흘러 내리는 순백 투명한 눈물 방울. 애국심을 떠나 인간의 원초적 열정으로서 아름다울 수 있다. 

하지만 지속성이 부족한 게 문제다. 모든 지구인의 당면 현실이긴 하겠지만 한국 사람은 특히 심한 편이다.

월드컵 경기가 끝나면 한마음 한뜻이던 애국적(?) 열정은 곧 연기처럼 사그라지고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힌 진짜 ‘불그죽죽한 악마’로 변해 버린다.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타인 따윈 불행해도 좋다는 심보…. 그날 밤 술집 뒷골목에선 얼마나 많은 싸움이 티격태격 벌어지고 애욕과 육욕의 향연이 벌어질지 모르리라.

광란적인 카니발 후엔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우리에겐 인간성을 담을 그릇이 없다.

그 밝고 순수롭던 환희, 역동적인 에너지와 열정 어린 함성은 모래알 위의 신기루로 변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승리했든 패배했든, 문득 돌아갈 집이 없기에 가라오케와 모텔은 2차 3차 광란으로 꽉꽉 찬다는데….

외국인들은 과연 어떤 눈으로 볼지 궁금하다. 모종의 정신병자로 비치지나 않았으면 좋으련만…. 


성공과 빨갱이…엇갈린 의미
순진무구 레드 몬스터 노인

너무 쓸데없는 소릴 늘여 지껄였으니 이제 본론 쪽으로 슬슬 돌아가자. 

빨강에 대한 애호증과 기피증. 사실 모든 색은 아름답고 빨강 하양 파랑 노랑 검정 또한 그러하다. 하느님이 내려 주시는 햇빛이 세상 만물에 닿아 발현되는 개성미가 색깔 아니겠는가.

그것들이 잘 섞이면 새로운 조화의 미가 창출되기도 하고….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사리사욕과 아집 아견으로 인해 순수한 빛은 불순한 허세와 충동의 상징으로 퇴색해 버렸다.

빛은 인간의 정신을 높여주기보다는 육체의 쾌락을 휘감아 이끌어 가는 치명적인 원자핵쯤으로 타락한 현실인 셈이랄까. 

우리들은 빛의 본질을 변조해 사람 저마다의 욕구와 이익을 장식하는 색으로 사용한다. 진실한 빛을 도외시한 반인[半人] 반로봇 의식 회로에 붉은 색은 광증 액을 주사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 인간들은 얼핏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듯싶지만 ‘빨리빨리 일 중독증’에 빠져 정신병으로 고생하거나, 허무감을 이기지 못한 채 이 세상을 전쟁 현장으로 착각해 파괴를 울부짖지도 한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섞어 흔들며 결과적으로 한반도 땅에 남는 건 공산주의와 반공주의 그리고 성공(자기계발)주의인 셈이다. 참된 주의자라기보다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에 빠진 사이비 얼치기 추종자들….

레드 몬스터 노인은 그러운 극단적인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언행은 중도적이었고 대개 무표정해서 내면을 짐작하기가 어려웠으나 결코 폐쇄적인 편은 아니었다. 때론 어린애처럼 순진무구히 웃었다. 

“왜 늘 빨강색만 좋아하세요?” 

궁금증을 못 이긴 어떤 하숙생이 물었다. 

“흠, 꼭 좋아서 입는 건 아니지. 난 검정색이 더 낫지만, 이 나이엔 좀 칙칙한 느낌이 들어서….” 

“요즘 세상에 튀는 건 좋지만 왠지 빨갱이 같아요.”

“보는 눈에 따라 다르겠지. 후후, 요즘 시대에도 빨치산 나부랭이가 있나? 난 그냥 로맨틱한 연애를 은근슬쩍 몽상해 보는 것뿐인 걸.” 

“그러려면 완전 빨강보다 한두 부분만 강조하는 살짝 빨강 코디가 더 효과적일 텐데….” 

“흐흥, 그럴까?”

노인은 미소 지으며 얼버무렸다. 그 하숙생의 의문처럼 여느 하숙인들도 레드 몬스터 노인에게 조금씩쯤 괴상스러운 호기심을 품긴 했지만 도시의 하숙이 대개 그렇듯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아마 모종의 앙금은 마음속에 남아 있지 않았을까? 다른 하숙집으로 옮겨 가든 결혼에 성공해 한 집안의 가장이 되든 평생토록…. 

언젠가 서울역 앞을 지나가던 나는 광장 한쪽에 붉은 물체가 서 있는 걸 보곤 눈을 크게 떴다. 바로 레드맨이었다. 난 슬쩍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여기서 웬일이세요?”

“아, 그냥 산책이나 좀 하는 거지 뭐.” 

“아, 네….”

치명적 원자핵

그러운데 가만히 보니 어딘지 산책 중인 것 같진 않았다. 그는 그냥 자연스레 걷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을 수행하는 퍼포먼스 맨이나 지령받은 로봇처럼 행동했다. 서울역 정면을 향해 두 팔을 든 채 판토마임을 하거나 소리 없는 복화술로 붕어 흉내를 내기도 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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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