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⑭한국인의 빨강 애증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2.12.27 14:49:32
  • 호수 14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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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붉은 색깔은 한국에서 두세 가지 의미를 상징한다. 빨갱이(즉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회가 피워낸 성공학(자기계발)이다. 그리고 의외로 반공주의자도 한몫 낀다.

붉은 주홍색이 전 세계적으로 상징하는 본질(정열, 열정, 혈액 등)을 고려한다면 우리 한국인들은 조금쯤 착각 착오를 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원래 ‘빨갱이’는 잘 알겠지만 러시아어인 파르티잔(partisan, 유격대)에서 나왔다.

그게 빨치산으로 음운 변화하고 그 분자들이 차고 다니던 붉은 완장(혁명의 열정인가?)과 섞여 ‘빨갱이’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괴상망측스러운 단어가 생겨나지 않았던가 말이다.

전 세계 유일


세계적으로 한국인만큼 빨강에 대한 애증의 격차가 심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순수한 빨강에 대한 애정은 강렬하고 아리땁지만, 또한 순수한 빨강 기피심도 가치 높고 의미 깊다.

아마 만국 공통이리라.

다만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결전장으로 선택돼 처절한 동족상잔의 붉디붉은 피를 보았다.

더구나 우리 한민족끼리 진짜 싸움을 한 게 아니라 미국과 소련(일본과 중국도 포함됨)의 꼭두각시로서 대리전 놀음을 벌였기에, 그 검붉은 피 속엔 불순성이 숨어 있고 그건 언제 어느 때든 튀어나와 우리 자신의 얼굴을 몰라보게 물들여 버린다.

그래서 지금도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가? 성조기와 옛 소비에트 연방기를 흔들며… 일장기와 태극기를 혼동하며…. 

성공학이나 자기계발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으나, 일단 한국에서는 그 바탕에 붉은 색이 깔려 있어야 한다.

프랑스, 독일, 스위스 같은 데선 여러 가지 빛깔이 서로 조화를 이뤄 저마다 순수하고 독특한 꽃을 피워내는데 한국인의 마음속엔 기본적으로 빨강 앱(red app)이 깔려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나와 너의 피, 적극성, 전투성, 긍정성, 열정 따위가 없다면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리다. 

붉은 악마의 열광적인 응원을 보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는가? 혹은 직접 참여해 본 분들의 소감은…?

요즘 시대에 애국심을 들먹이긴 좀 멋쩍다. 그렇다고 순수한 스포츠 정신과 연관시키기도 좀 어쭙잖다.

그럼 뭘까? 가능하면 좋게 봐주려고 노력하자. 승리하고 성공해서 잘살아 보고픈 한국인의 소망, 아직까지 우리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는 약소국 시대의 설움과 울분의 토악질(오바이트), 현실적인 콤플렉스와 스트레스 해소 욕구, 온갖 희생을 감내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지만 좀체 선진국으로 환골탈태하지 못한 채 강소국 따위로 치부되는 부조리…

미칠 만도 하다. 미치지 않은 게 이상하지 않은가. 미치지 않기 위해서 붉은 탈을 쓰고 광란 광분하는 게 아닐까?

약소국 강소국을 넘어 진짜 ‘대한민국’을 이루어내고 싶은 열망의 외침! 붉은 절규와 함께 주름진 볼에 흘러 내리는 순백 투명한 눈물 방울. 애국심을 떠나 인간의 원초적 열정으로서 아름다울 수 있다. 

하지만 지속성이 부족한 게 문제다. 모든 지구인의 당면 현실이긴 하겠지만 한국 사람은 특히 심한 편이다.

월드컵 경기가 끝나면 한마음 한뜻이던 애국적(?) 열정은 곧 연기처럼 사그라지고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힌 진짜 ‘불그죽죽한 악마’로 변해 버린다.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타인 따윈 불행해도 좋다는 심보…. 그날 밤 술집 뒷골목에선 얼마나 많은 싸움이 티격태격 벌어지고 애욕과 육욕의 향연이 벌어질지 모르리라.

광란적인 카니발 후엔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우리에겐 인간성을 담을 그릇이 없다.

그 밝고 순수롭던 환희, 역동적인 에너지와 열정 어린 함성은 모래알 위의 신기루로 변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승리했든 패배했든, 문득 돌아갈 집이 없기에 가라오케와 모텔은 2차 3차 광란으로 꽉꽉 찬다는데….

외국인들은 과연 어떤 눈으로 볼지 궁금하다. 모종의 정신병자로 비치지나 않았으면 좋으련만…. 


성공과 빨갱이…엇갈린 의미
순진무구 레드 몬스터 노인

너무 쓸데없는 소릴 늘여 지껄였으니 이제 본론 쪽으로 슬슬 돌아가자. 

빨강에 대한 애호증과 기피증. 사실 모든 색은 아름답고 빨강 하양 파랑 노랑 검정 또한 그러하다. 하느님이 내려 주시는 햇빛이 세상 만물에 닿아 발현되는 개성미가 색깔 아니겠는가.

그것들이 잘 섞이면 새로운 조화의 미가 창출되기도 하고….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사리사욕과 아집 아견으로 인해 순수한 빛은 불순한 허세와 충동의 상징으로 퇴색해 버렸다.

빛은 인간의 정신을 높여주기보다는 육체의 쾌락을 휘감아 이끌어 가는 치명적인 원자핵쯤으로 타락한 현실인 셈이랄까. 

우리들은 빛의 본질을 변조해 사람 저마다의 욕구와 이익을 장식하는 색으로 사용한다. 진실한 빛을 도외시한 반인[半人] 반로봇 의식 회로에 붉은 색은 광증 액을 주사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 인간들은 얼핏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듯싶지만 ‘빨리빨리 일 중독증’에 빠져 정신병으로 고생하거나, 허무감을 이기지 못한 채 이 세상을 전쟁 현장으로 착각해 파괴를 울부짖지도 한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섞어 흔들며 결과적으로 한반도 땅에 남는 건 공산주의와 반공주의 그리고 성공(자기계발)주의인 셈이다. 참된 주의자라기보다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에 빠진 사이비 얼치기 추종자들….

레드 몬스터 노인은 그러운 극단적인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언행은 중도적이었고 대개 무표정해서 내면을 짐작하기가 어려웠으나 결코 폐쇄적인 편은 아니었다. 때론 어린애처럼 순진무구히 웃었다. 

“왜 늘 빨강색만 좋아하세요?” 

궁금증을 못 이긴 어떤 하숙생이 물었다. 

“흠, 꼭 좋아서 입는 건 아니지. 난 검정색이 더 낫지만, 이 나이엔 좀 칙칙한 느낌이 들어서….” 

“요즘 세상에 튀는 건 좋지만 왠지 빨갱이 같아요.”

“보는 눈에 따라 다르겠지. 후후, 요즘 시대에도 빨치산 나부랭이가 있나? 난 그냥 로맨틱한 연애를 은근슬쩍 몽상해 보는 것뿐인 걸.” 

“그러려면 완전 빨강보다 한두 부분만 강조하는 살짝 빨강 코디가 더 효과적일 텐데….” 

“흐흥, 그럴까?”

노인은 미소 지으며 얼버무렸다. 그 하숙생의 의문처럼 여느 하숙인들도 레드 몬스터 노인에게 조금씩쯤 괴상스러운 호기심을 품긴 했지만 도시의 하숙이 대개 그렇듯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아마 모종의 앙금은 마음속에 남아 있지 않았을까? 다른 하숙집으로 옮겨 가든 결혼에 성공해 한 집안의 가장이 되든 평생토록…. 

언젠가 서울역 앞을 지나가던 나는 광장 한쪽에 붉은 물체가 서 있는 걸 보곤 눈을 크게 떴다. 바로 레드맨이었다. 난 슬쩍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여기서 웬일이세요?”

“아, 그냥 산책이나 좀 하는 거지 뭐.” 

“아, 네….”

치명적 원자핵

그러운데 가만히 보니 어딘지 산책 중인 것 같진 않았다. 그는 그냥 자연스레 걷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을 수행하는 퍼포먼스 맨이나 지령받은 로봇처럼 행동했다. 서울역 정면을 향해 두 팔을 든 채 판토마임을 하거나 소리 없는 복화술로 붕어 흉내를 내기도 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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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