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⑬한국사회 나이와 예의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2.12.20 16:16:26
  • 호수 14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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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사람이란 여느 짐승과 달리 참 이상하다. 발걸음 겨우 떼는 세 살배기 어린애도 갓난 동생 앞에서는 노인장 행세를 하려 들고, 예순 살 넘은 중늙은이도 일흔 여든 노인네 앞에선 어리광을 부려 본다. 

대체 어떤 짐승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던가?

아니, 도대체 왜 그러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수염값

한마디로 말해 인간 문화 혹은 동양 유교 극장에서 대대로 상영돼 내려온 삼류 코믹물이 아닌가 싶다. 장유유서, 나이치레, 수염값 따윌 잘 섞어 살짝 비틀면 틀림없이 희극이 발생한다.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이나 학문적 연구가 풍부한 일본 등지에선 불가능한 대한민국만의 특징이랄까.

진짜 유교가 아닌 가짜 유교 풍습, 진짜 불교가 아닌 속류 불교, 그리스도의 진리를 빙자한 사이비 교회와 목사들의 천국….

제 아무리 신심 깊은 선남선녀일지라도 일단 사원이나 교회당에 들어가게 되면 사제나 목사 그리고 승려들의 주구[走狗]가 되는 꼴이다. 아무리 유치한 설교라도 경청해야 하며 제 아무리 할 말이 많더라도 꾹 참아야 한다.

꼴통 사이비 유교식 제사니 의례 준칙이니 뭐니 하는 건 사람을 개장 속에 가둬 놓는 일종의 반[半]살해 방식이 아닐까? 생명을 자기들 입맛에 알맞게스리 억압하는 게 그네들의 궁극 목적이지 싶다. 

한편으론 치받기도 있다. 열 살 갓 넘은 애들이 할배 수염을 쓰다듬는 건 재롱이라 치자(하긴 요즘 수염 기른 할배는 없지만 수염이 상징하는 사물은 훨씬 더 많다).

애들은 사춘기를 지나 20대가 되면 기성세대 중에서 ‘성공’하지 못한 손위 사람들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겉으론 대접하는 척하면서 언제든 앞통수든 뒤통수든 칠 준비를 맘속에 지니고 있다.

자기는 그 나이가 되면 훨씬 멋지게 성공할 수 있다는 몽상과 강박관념을 내장한 채.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자기가 무시하던 사람보다 더 하찮은 꼴로 30대를 맞이하면 공상을 한층 강화해 40대를 깔보고, 제 40이 되면 남 50을 비웃다가 겨우 평범한 불평분자로 추락하거나, (자기가 비웃던 손위 사람에게 빌붙어)기생충처럼 살아가거나, 심지어 제 한몸 감당치 못해 인생 비극의 종막을 스스로 끄집어 내리기도 한다.

인생살이가 만만찮건만 그들은 잘 인식하지 않으려 한다. 젊어 고생은 돈 주고 사서 한다는 옛 속담을 비웃으며 성공 꽃 깔린 탄탄대로만 걸으려 애쓴다.

참된 인생의 성공자는 누구인가?

철사 우리 속에 든 병아리들이 나름 삐악삐약거리며 횃대 위로 올라 보려 형제 자매를 짓밟고 쟁투하지만 과연 몇이나 흙마당 초원으로 나가 뛰날아 보려나.

봉황 몇 마리 빼곤 모두 식용 닭이 되는 신세 아닌가… 비유가 너무 지나친 것 같다. 무슨 말을 하려다 여기까지 왔는지 되돌아가 보자. 

동방예의지국이니 뭐니 하지만 사실상 한국만큼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비인간적으로 취급하고,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깔보는 곳도 없는 성싶다.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기보다 무슨 물건처럼 취급하는 나쁜 버릇… 대대로 이어져 왔고 만약 당신이 고치지 않는다면 자식 대대로 이어지는 나쁜 습속이 되리라. 

너무 비관적으로 말하려는 건 아니다.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이란 말이 전세계적으로 회자되는 시대가 아닌가!

우리가 조금만 더 우리 자신을 바로 보고…

가짜 사랑, 가짜 행복, 거짓 풍요, 가짜 애국심, 가짜 진실과 진리, 거짓 종교, 가짜 뉴스, 가짜 의술, 가짜 교육, 사이비 악질 광고 따위로부터 해방돼(8·15 해방보다 더 힘들겠지만) 개, 소, 닭 등 애완 가축만큼의 양심을 지닌다면 만물의 영장이며 홍익인간의 실천자로서 칭찬받을 텐데…

전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코리아는 이른바 동방의 등불을 넘어 세계의 빛이 되련만….

동양 유교 극장의 삼류 코믹물
옥탑방 노인네의 괴상한 생김새


이제 군소리 따윈 집어치우고 한마디로 끝내자. 왕조시대에 목숨 걸고 정론을 펼친 선비들이 대단했기로서니 꿀릴 건 없다.

조선시대의 왕이나 사대부 선비님들보다 오늘날의 평범한 시민들이 훨씬 더 진실하고 양심적이고 열려 있다.

다만, 대통령이든 뭐든 다 비판할 건 하되 자기 당파의 개짓거리에 대해서도 재채기나마 할 수 있다면, 즉 이기적인 좀비 근성만 사라진다면 요즘 코로나 좀비 바이러스를 잘 관리해 전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이 땅 금수강산에서 티격태격하며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부부간에도 그렇지만 정치판 여야도 서로 싸우지 않으면 별 재미없다. 하하…

코피 터지게끔 싸우되 일반 국민들이 각자 나름의 목소리로 웃으며 구경할 만큼만 룰을 지킨다면 대한민국은 구태를 벗어나 새로운 현대의 동방 서방 예의지국 뉴 모델이 될 텐데….

세 살짜리 아이가 할아비 수염을 잡아 흔들든 할매가 손자의 코피를 내든 어떠하랴. 그건 억압 없는 생명의 자연스러운 율동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옥탑방의 괴상한 노인네는 젊은 애들을 가지고 놀긴 하되 그런 풋풋한 생명감이 없었다. 젊음을 애완물로 여기며 희롱하려는 측면도 있었다.

자기는 청춘 시절에 아름답고 극적인 연애를 많이 했고, 때론 수녀나 비구니 그리고 무당의 애처로운 외로움도 달래 줬노라고 흐뭇한 표정으로 회상했다.

그래서 그런지 조개방 같은 음란 성폭행 사이트의 파렴치한 악행에 대해서도 꽤나 너그러웠다.

헌데 자기와 비슷한 연배의 노인을 만날 경우 인상이 훽 바뀌었다. 그 따위 삶이 뭐냐, 청춘을 허비하고 그렇게 어영부영 살아가는 건 죄악이야, 하고 꾸짖는 표정이었다.

자기보다 더 연로한 늙은이들은 아예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고 멸시했다. 자신은 더욱 징그러운 꼬라지면서도…. 

그건 혹시 늙어 죽기 싫은 마음과 두려움 그리고 영원히 영화를 누리고픈 욕망의 굴절된 표현이 아닐까? 아마 어린 녀석이 윗사람을 치받는 경향성도 그런 원초적인 소망이 내장돼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바로 그 괴상스러운 노인네의 마음속에…. 

다만 한 사람 괴노인을 주눅들게 하는 천적 같은 존재가 있었다. 하숙생들이 ‘레드 몬스터’라고 부르는 사람이었다.

가끔 누군가 올드 로맨티스트라고 불러 주기도 했다. 그는 무지개 식당의 하숙생이 아니었으며 다른 미지의 어느 시공간에 사는 듯 이따금 슬쩍 들르곤 했다.

노인네들이 사라져 가는 열정을 마음으로나마 보강키 위해 붉은 색을 몸에 걸치는 건 이해할 만하지만 그는 퍽 유별났다.

아마 옛날이라면 ‘빨갱이’란 누명을 쓰고 경찰서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했으리라. 사실상 해방촌이나 서울역 부근을 거닐다 보면 그런 빨간 요괴 같은 노인이 가끔 눈에 띈다.

그 빨갱이가 이 빨갱인지 저 빨갱이가 그 빨갱인지 좀체 확인할 수가 없을 정도로 헷갈린다(아무튼 가능한 한 자세히 묘사해 보기도 하자. 이 땅에 레드 콤플렉스, 즉 빨강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없는 사람은 드물 테니까).

복잡하게 묘사하기보다 차라리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명료할 듯싶다. 

‘그는 약간 황달기가 있는 눈과 흰 코털과 허연 안색만 빼면 완전히 붉은 색깔로 치장한 인간이었다’.

새빨간

백발을 감춘 모자, 옷, 양말, 구두, 가방이나 배낭, 가끔 타고 다니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휴대폰과 이어폰도 새빨간 색깔이었다.

심지어 마스크도 진홍색이었으며, 메모할 때 보면 만년필에서 흘러나오는 잉크 또한 피 같은 빛깔이었다. 노르스름한 눈알은 좀 징그럽지만 불그무레한 안경 속에선 모종의 위엄을 발휘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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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