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참사’를 말하다…법치의학자 윤창륙 조선대 명예교수

“망자를 가족의 품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택시기사는 몇 번이나 주소가 맞는지 물었다. 광주에서 20년 넘게 택시 운전을 했지만 이 길은 처음이라고 했다. ‘차를 돌릴 수 있을까’ 걱정이 나올 때쯤 3층집이 보였다. 벨을 누르자 개 짖는 소리가 온 산을 울렸다. 추사재, 생각을 따라가는 집에 도착했다. 

“무등이 앉아, 손. 그다음에 간식을 줘야 돼요.” 추사재를 찾은 취재진은 나란히 서서 ‘무등이 아빠’의 지시에 따랐다. 온 집안이 떠나가라 짖던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의 무등이는 한 사람, 한 사람과 나름의 의식을 치른 후 얌전해졌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탁탁’ 바닥에 꼬리치는 소리만 가끔 날뿐 조용히 기다렸다. 

책과 술

1.5층 높이의 서재는 2만5000권 분량의 책으로 가득했다. 3층집 곳곳 어딜 가도 책이 놓여있었다. 책뿐이랴. 추사재에는 술도 그득했다. 지난 15년 동안 윤창륙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법의치과학교실 명예교수가 마개를 딴 와인만 4500여병에 이른다. 단순히 계산해도 1년에 300여병 수준이다. 

지난 8월5일 작열하는 태양 아래 책 향기와 술 향기가 공존하는 곳, 추사재에서 윤 교수를 만났다. 윤 교수는 “추사재는 생각을 따라가는 집, 지나온 생을 반추해 미래를 지향하는 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책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 중 이기백 작가의 <근대한국사논선>을 꺼내 들며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1989년 조선대 치과대에 부임한 윤 교수는 지난해 2월 은퇴했다. 전공은 법의치과학으로 법의학의 한 분야다. 일반적으로 법의학자가 죽음의 원인, 죽음의 발생 기전 등을 살핀다면 법치의학자는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낸다. 사건·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사체나 그 사체로부터 분리된 조각이 누구 것인지를 찾아내는 ‘개인 식별’ 작업이다.


현재 활동 중인 국내 법치의학자는 윤 교수를 비롯해 7명에 불과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부산대, 가톨릭대 등에서 근무한다. 윤 교수는 이 일을 40년 가까이 하고 있지만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치대 공부를 ‘너무 하기 싫어’ 도망 다니던 학생이었다고 고백했다. 본인하고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윤 교수 인생의 수레바퀴가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건 본과 3학년 때 김종열 연세대 교수의 법의학 강의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윤 교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후 그는 ‘사부’ 김 교수를 찾아가 법의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소위 말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전국 7명뿐인 법치의학자
사체 신원 찾는 ‘개인 식별’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딱 두 분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김종열 사부님. 한 분은 개인적인 삶에 영향을 줬고 한 분은 내 전공에 영향을 주셨습니다. 젊었을 때뿐만 아니라 은퇴한 이후에도 계속 저한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싫어하면서도 좋아하고, 미워하면서도 존경하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죠.”

법치의학자로서 윤 교수의 삶은 ‘참사’와 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3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형 참사가 발생한 곳으로 향하면서 전 세계를 누볐다. KAL기 폭파사건, 중국 민항기 추락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대구지하철 화재사건, 세월호 사건, 남아시아 대지진(쓰나미) 때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윤 교수가 있었다.

특히 윤 교수는 2003년 대구지하철 사건과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 중앙역에 갔는데 현장이 시커멓게 다 재로 변해 있었다. 같이 간 정낙은 선생에게 ‘욕심내지 말자. (사망자의)30%만 찾아서 유족에게 돌려 드리면 신도 우리가 정말 잘했다 하실 거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현장 상황이 참담했다”고 회상했다.

실제 대구지하철 사건에서 사망자의 90% 이상 개인 식별이 이뤄졌다. 사후 자료는 존재하지만 생존 자료가 없어 비교를 하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망자를 밝혀낸 셈이다.


윤 교수는 “그때 정말 많이 울었다. 왜 이 사람들이 죽어야 했는지 많이 생각했다. 70일 정도 현장에 있었는데 사람이 각자의 영역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작은 태만과 이기심이 얼마나 큰 사고로 돌아올 수 있는지 뼈저리게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사건 때는 큰 충격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트라우마로 술도 마시지 못했다. 아이들이 왜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야 했는지 하염없이 되묻는 시간이었다. 윤 교수는 “현장에서 ‘우리 어른의 잘못으로 너희들이 이렇게 죽어 갔구나. 이 잘못된 세상, 우리가 바꿔주마.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말하곤 했다”고 읊조렸다.

지문과 치아, 유전자 중 하나만 일치하면 개인 식별이 이뤄진다. 지문은 종생불변 만인부동(모든 사람이 다르고 평생 변하지 않음)이기 때문에 확인만 된다면 빠른 속도로 개인 식별을 마칠 수 있다. 하지만 불에 탄 사체는 지문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치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구지하철·세월호 사건 현장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치아는 모든 장기 중에 가장 단단하기 때문에 현장에 가장 오래 남아 있습니다. 치아 하나만 있으면 성별과 연령을 파악할 수 있고요. 치아를 자르면 그 안에 분포돼있는 신경과 혈관 등을 통해 DNA를 채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치아는 일단 손상되면 절대 재생이 안 되기 때문에 충치치료를 한 흔적 등으로 생전 자료를 찾아낼 수 있어요.”

윤 교수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8년. 그중 6년을 치대 공부와 전혀 관계없이, 말 그대로 ‘놀러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김종열 교수의 강의를 듣고 ‘각성’한 뒤 2년 동안 다시 말해 자신의 적성을 찾은 순간부터 그는 치대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몰두했다. 그 결과 7000여명(국과수 기록)의 누군가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줬다.

윤 교수는 법치의학자로서의 삶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말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문에 나오는 표현이다. 정조 때 문장가인 유한준이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에 부친 발문에서 나온 표현을 유 교수가 약간 수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제가 이 일을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법의학에 종사하면서 사체를 부검하고 사건·사고를 접하는 과정에서 망자의 억울함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한 분, 두 분 살피는 과정에서 사명감이 생긴 거죠. 사명감이 생기면 내 학문을 사랑하게 되고 법의학을 사랑하게 되고요. 연역법이 아니라 귀납법으로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아마 다들 그럴 겁니다.”

생각을 따르다

윤 교수는 전 세계 도처에 희생된 이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망자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했다. 평생에 걸쳐 현장에서 배운 경험으로 망자의 안식을 돕겠다는 취지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체라도 따뜻한 곳에 묻을 수 있고 그 나라의 장례 풍습에 따라 영원한 안식을 비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게 내가 해왔고 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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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