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표’ 사정기관 새 단장 플랜

반년 내내 물갈이…엇갈린 희비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윤석열정부 출범 반년 만에 주요 사정기관들의 새 단장이 얼추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검찰에 이어 경찰·국정원도 고위직 대규모 물갈이가 단행됐다. 일각에선 정부가 검찰을 중심으로 한 사정기관 서열 재편을 끝냈다고 분석한다. 정권이 다른 사정기관들의 힘을 빼고, 검찰을 ‘원톱’으로 띄우기 위해 이들을 활용할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검찰이 주도하는 야권 사정국면은 점차 공고해지는 분위기다.

윤석열정부는 취임 반년 만에 검찰을 중심으로 사정기관 서열을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출범 직전 검수완박법이 통과되면서 계획이 틀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당초 의도한 바를 대체로 이뤄낸 형국이다.

꽂아넣고
갈아엎고

검찰 요직에는 ‘윤 대통령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들어섰다. 다른 사정기관에 대해서도 정부가 인사권을 꽉 쥐고 흔드는 모양새다. 그 결과 감사원은 정치 중립성 의무 위반 논란에 휩싸였고, 경찰과 국정원은 안팎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 정권부터 검찰과 경쟁 관계에 놓인 경찰의 난맥상이 두드러진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2·3급 간부 보직인사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100여명에 달하는 간부가 보직을 받지 못했다. 문재인정부에서 요직을 거쳤던 인물도 대거 ‘대기발령’ 상태에 놓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정부 때 임명된 1급 간부 전원이 퇴직한 지 석 달 만이다. 


김규현 국정원장은 지난 9월 초 1급 간부 20여명을 교체한 직후부터 2·3급 인사작업에 착수했다. 관련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김 원장은 직무평가와 내부 감찰 등을 통해 대공업무 등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은 인사들을 주요 보직에 배치했다. 

반면 전 정권의 시책을 뒷받침하는 업무에 투입됐던 인사에겐 보직을 부여하지 않았다. 대북 관계 지원부터 간첩 수사·대북 공작 분야를 맡았던 간부들이 된서리를 맞은 셈이다. 아울러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과 가까웠던 것으로 분류된 인사들도 무보직 신세로 전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기관의 대규모 인사에서 대기발령으로 남은 이들은 통상 교육·지원 부서 등 한직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윤정부 출범 직후부터 국정원 물갈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국정원 물갈이는 정권교체마다 관례처럼 이뤄져왔다. 

김영삼정부는 집권 초반인 1994년 국정원(당시 국가안전기획부, 안기부) 직원 300여명을 대기발령했다. 국회에는 정보위원회를 설치해 외부 감시장치를 마련했다. 김대중정부는 안기부를 국정원으로 바꾸면서 직원 10% 이상을 줄였다. 10년 만에 정권을 넘겨받은 문정부는 국정원 내부에 ‘적폐 청산TF’를 설치하고 고강도 개혁과 활동범위 조정 등을 단행했다. 

‘검찰 원톱’ 서열 재편 완료
경찰·국정원은 대규모 인사

윤정부는 김 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에 감찰심의관 자리를 신설해 현직 부장검사를 파견했다. 국정원은 감찰심의관을 앞세워 전 정권 때 진행된 북한 관련 업무에 관해 강도 높은 내부 감찰을 진행해왔다. 

그간 감사원과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귀순 어민 북송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국정원은 지난 7월 초, 서 전 실장과 박 전 원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서 전 실장은 귀순 어민 사건 당시 정부합동조사를 강제로 조기 종료시킨 혐의를, 박 전 원장은 서해 사건 관련 첩보를 무단 삭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윤정부는 이와 전 정권 대북 업무를 한데 묶어 국정원 인사 정리 명분으로 삼은 셈이다. 아울러 국정원은 검수완박으로 타격을 입은 검찰의 입지 회복용 제물로 쓰이는 모양새다.

검찰은 윤정부 들어 국정원 관련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발 일주일 만에 국정원 청사에서 압수수색을 단행한 데 이어 서욱 전 국방부 장관·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서 전 실장 등을 잇달아 구속수사했다. 검찰은 박 전 원장도 조만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일각에선 이번 국정원 물갈이 양상이 앞선 ‘경찰 길들이기’와 겹쳐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이 인사권을 쥐고 수뇌부를 압박하는 구도를 짠다는 점에서 방식이 비슷하다는 주장이다. 

윤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줄곧 “경찰을 휘어잡으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5월12일 임명 직후 행안부 장관 산하에 ‘경찰제도 개선 자문 위원회’를 꾸리라고 지시했다. 즉각 꾸려진 자문위는 바로 다음날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한 달 동안 총 4차례 회의한 끝에 경찰국 신설 방안을 발표했다.

공을 넘겨받은 정부는 발표 후 약 열흘 만에 국무회의에서 경찰국을 신설하는 시행령을 의결했다. 경찰국은 경찰 고위 간부 인사권을 쥔 채로 지난 8월2일 출범했다. 아울러 이 장관은 지난 6월 당시 경찰청장 후보군으로 꼽히던 치안정감 승진·내정자 6명과 일대일 면담을 가진 뒤 “필요하다면 경찰청장 후보 면접을 보겠다”고 발언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윤석열 사단
야권 사냥꾼

당시 경찰 내부에서는 “처음에는 경찰 길들이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길들이기가 아니라 통제한다고 선포한 것 아니냐”는 강도 높은 비판이 나왔다.

정치권에선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경찰의 정권 충성 경쟁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들은 참사 당일 경찰 수뇌부가 대통령 퇴진 시위 통제와 대통령 관련 시설 경호에 과도한 인력을 배치한 이유가 인사권을 쥔 정권에 잘 보이려는 속셈에 있었다고 의심한다. 

다만 경찰국은 10·29 참사 이후 존재 명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정부 책임론’을 논할 때 인사권과 충성 경쟁 간의 연결고리가 지속적으로 언급되면서다. 비록 철회되기는 했지만, 한때 내년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경찰에 가하는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우여곡절을 겪긴 했어도, 경찰국과 인사권은 아직도 정부 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안팎으로 곤경에 처해있는 경찰은 당분간 별다른 대응을 보이기 어려울 전망이다.

경찰은 경찰국 설치 논란이 불거진 이후로 잇달아 부침을 겪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 안팎의 비판 세례로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는 논란 당시 경찰국 설치를 사실상 방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참사 발생 당시에는 미흡한 대처가, 이후 진상조사 국면에서는 책임을 현장 일선으로 돌리는 듯한 행보가 도마에 올랐다.

아울러 최근에는 몇 달간 억눌려 있던 경찰국 설치 반대 여론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최근 윤 청장이 경찰청 중앙징계위원회에 류삼영 총경을 중징계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류 총경은 울산중부경찰서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7월 행안부 경찰국 설립에 반발해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최한 인물이다. 


감·검
원투펀치

부산경찰청 16개 경찰관서 직장협의회 회장단(이하 직장협)은 지난 6일 ‘류삼영 총경 중징계 요구에 대한 입장문’에서 “경찰국 설치가 정당한 것인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세미나 형식의 회의를 개최한 것이 복무규정 위반이라고 징계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직장협은 “경찰 조직 내 현안이 있을 경우 경찰관들이 공식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총경회의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외에도 현직 경찰 간부들이 잇달아 수사선상에 오르내리는 점도 경찰 내부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일찌감치 전열을 재정비한 검찰은 어느덧 사정국면을 주도하고 나섰다. 

윤정부는 지난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하루 만에 단행한 검찰 고위 간부 인사와 한 달 뒤 열린 첫 정기인사에서 ‘검찰 빅4’로 불리는 요직에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전면 배치했다. 

당시 임명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신자용 법무부 감찰국장·김유철 대검 공공수사부장·신봉수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등은 모두 윤석열 라인의 ‘코드인사’로 분류된다.


검찰 안팎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전반적인 인사는 탕평책처럼 진행됐다. 하지만 전 정권 관련 수사가 유력한 일선 검찰청에는 어김없이 특수통 출신 검사장들이 자리했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동부지검,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대전지검, 국회를 관할하는 서울남부지검 등은 모두 윤석열 사단의 지휘를 받고 있다. 

이들에게 공을 넘긴 건 또 다른 사정기관인 감사원이다. 감사원은 윤정부 출범 이후 줄곧 정치 중립성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유병호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표적 감사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일각에서는 윤정부가 검찰과 감사원을 ‘원투펀치’로 쓰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감사원이 감사를 통해 위법 사항을 밝히고 고발하면 검찰이 사건을 이어받아 수사하는 식이다.

검, 검수완박 버텨내고 야권 정조준
전 정권·이재명 넘어 전방위 타격

아울러 검찰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관한 수사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장동 의혹의 ‘키맨’으로 꼽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가 입을 열면서 의혹 규명이 급물살을 탔다. 검찰은 여세를 몰아 민주당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구속했다. 

이외에도 검찰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같은 당 노웅래 의원 등 야권을 겨냥한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연결점이 많다고 해서 의도성을 예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래도 그 여부를 떠나 검찰의 전방위적 야권 수사가 둘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겠나. 검찰은 조직 역량을 다시금 입증하고, 정부는 야권 비위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고 짚었다.

검찰은 특수본 수사 및 국정조사 결과에 따라 존재감이 더욱 커질 가능성도 남아있다. 진상규명이 ‘용두사미’에 그치면 검찰의 진상규명 경험·역량을 다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1404호 ‘열리는 이태원 국조’ 몰래 웃는 검찰 속내). 향후 총선에서 여권이 승리한다면 정권 내 수사권 복구까지 바라볼 수 있다. 

정부가 경찰국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사회 각계에서는 치안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정권의 시선이 국정원을 향하면서 비슷한 우려가 반복되고 있다.

박 전 원장은 지난 6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정권교체 때마다 정치보복이 일어나선 안 된다”며 “이렇게 일괄적으로 비리도 없는 27명의 1급 부서장이 4~5개월간 대리인 체제로 가면 이 나라의 안보 공백이 온다”고 말했다.

치안·안보
공백 우려

그러면서 대기발령을 받은 인사들에 관해 “박근혜정부에서 잘나갔던 인사들이 국내 정보 수집·분석이 폐지돼 정치 관련 일을 하지 않으니까 굉장히 한직에 가 있었다”며 “나중에 알고 유능하기 때문에 다 좋은 보직을 줬다. 제가 그 사람들을 발탁하지 않았으면 지금 더 좋은 보직으로 와서 잘 일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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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