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카타르월드컵 깜짝 스타 조규성

보잘 것 없었던 ‘멸치’ 월드컵 그라운드 누비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벤투 감독이 준비한 비장의 무기였다. 월드컵 무대를 밟은 조규성은 K리그 득점왕의 진가를 어김없이 증명했다. 우루과이전 교체 출전해 예열을 마친 그는 가나전에 선발 출전해 멀티골을 기록했다.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아직 월드컵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조규성을 향한 국내외 관심이 뜨겁다. 국내 무대를 평정한 그가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규성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카타르 알 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가나의 월드컵 조별 예선 H조 2차전 후반전에 2골을 몰아넣었다. 전반전 가나에 2골을 내주고 끌려가던 상황에서 순식간에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은 귀중한 득점이었다. 이는 조규성의 18번째 A 매치에서 나온 5~6호 골인 동시에 월드컵에서 터트린 데뷔골이다.

왜소한 체격
급격한 성장

조규성은 후반 13분 교체 투입된 이강인이 왼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헤딩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불과 2분 27초 뒤에는 김진수의 크로스를 또다시 다이빙 헤딩슛으로 꽂아 넣었다. 조규성은 이날 두 골로 역대 월드컵 최단 시간 연속골 4위라는 이색 기록을 거머쥐었다.

또 조규성은 한국 선수 최초로 월드컵 한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한 주인공으로 남게 됐다. 아시아 전체로 놓고 봐도 페널티킥 득점 없이 한 경기 멀티 골을 기록한 선수는 조규성이 처음이다.

조규성을 필두로 선수들이 분전했지만, 결국 후반 23분 가나 선수 모하메드 쿠두스에게 추가 골을 허용하면서 한국은 최종 2:3으로 석패했다. 국민들은 아쉬움을 삼키면서도 조규성의 활약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아울러 조규성의 잘생긴 외모에 국내외 관심이 폭발했다. 조규성이 우루과이전에 교체한 직후부터 온라인상에는 ‘한국 9번’의 이름과 SNS 계정을 찾는 이가 속출했다. 조규성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선 영어·아랍어·스페인어 등 언어를 가리지 않고 “잘 생겼는데 축구도 잘한다” “멋있다” 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대회 직전 3만명 정도였던 팔로워는 어느덧 160만명에 육박한다.

이번 대회로 물이 오른 조규성의 기량은 해외에서도 널리 인정받는 사실이다. 조규성은 가나전 선전을 통해 축구 통계 매체들이 주관한 ‘2022 FIFA 카타르월드컵 조별 예선 2차전’ 베스트 11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유명 축구 통계 매체 <후스코어드닷컴>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명단에서 조규성은 평점 8.7점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1골1도움을 기록한 레반도프스키와 함께 2라운드 최고 공격수로 선정됐다. 폴란드 국가대표로 출전한 레반도프스키는 발롱도르 수상자인 카림 벤제마와 함께 현시점 최고의 완성형 공격수로 평가받는 ‘월드클래스’ 선수다.

명단에는 레반도프스키 외에도 앙투안 그리즈만, 브루노 페르난데스, 킬리안 음바페, 테오 에르난데스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후스코어드닷컴>뿐 아니라 또 다른 통계 매체 <소파 스코어> 역시 베스트11에 조규성을 선정했다. 

이렇듯 조규성은 이제 세계대회에서도 통하는 기량을 가진 선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높은 기대를 받아온 선수는 아니었다. 그의 축구 인생을 돌아보면, 탄탄대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규성은 1998년 1월 경기도 안산에서 태어났다. 조기 축구를 하던 일반인 아버지와 실업 배구선수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조규성은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원곡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축구부에 들어가 실력을 다졌다. 

하지만 조규성은 중학교 축구부에 들어가고도 경기를 뛰는 날보다 벤치에 앉아 있는 날이 더 많았다. 비교적 작은 덩치가 발목을 잡았다. 빠른 1998년생인 조규성은 동급생들에 비해 성장 속도가 더뎠다. 

가나전 헤더 멀티골 폭발…한국 축구 새 역사
공 잘 차는 만찢남 신드롬 ‘제2의 안정환’

경기에 잘 나오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고등학교 진학도 어려워졌다. 다행스럽게도 안양공업고등학교의 이순우 감독이 조규성의 잠재력을 높게 보고 그를 데려갔다. 

이는 조규성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로 꼽힌다. 조규성이 안양공고에 입학한 직후 지역 프로팀인 FC 안양이 창단했다. 이듬해에는 안양공고가 FC 안양의 U-18 팀으로 선정됐다. 이에 조규성은 2학년부터 자연스레 K리그 주니어에 참가하는 프로 유스 선수가 됐다.

한국 유소년 축구계에서 프로 산하 팀에 들어가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각종 지원이 뒷받침되고, 프로 지명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고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가는 것에 비하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서 고교생 조규성은 큰 행운을 누린 셈이다. 

그럼에도 조규성은 고교 시절 축구를 그만두는 걸 진지하게 고민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도 여전히 작았던 체구가 또 걸림돌이 됐다. 조규성은 지난 1월 국가대표 전지훈련장에서 당시 상황을 직접 회상했다. 

그는 “중학생 때 키가 1m60㎝대였다. 안양공고 2학년 때 ‘축구로 대학 진학이 힘들겠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받았다”며 “어머니에게 ‘겨울까지만 마지막으로 해보고 안 되면 공무원 준비할게요’라고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절실했던 조규성은 훈련에 매진했다. 당시 그는 새벽 5시부터 훈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키가 갑자기 1m80㎝대까지 자랐다. 지금 조규성의 키는 1m89㎝에 달한다. 졸업반이 된 조규성은 키도 기량도 모두 급격하게 성장했다. 

조규성은 팀 성적의 수직 상승을 견인했다. 안산공고는 전년도 K리그 주니어 A 권역에서 17위를 기록했지만, 이듬해 조규성의 활약에 힘입어 4위까지 도약했다. 조규성은 여러 승부처에서 큰 신장을 활용한 헤더 골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자신의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준 조규성은 FC 안양의 우선 지명을 받아 광주대학교에 진학했다. 1학년 때는 중앙 수비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꾸며 출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감독이 교체되면서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화위복이 됐다. 새로 부임한 이승원 감독은 조규성의 공격적 재능에 주목했다. 결국 조규성은 이 감독의 지도에 따라 공격수로 변신했다. 공격 부문의 재능이 만개했고, 과거 후방에서 뛴 경험이 큰 자산으로 남았다. 

수려한 외모
스타성 장착

공격수 조규성은 기본적인 득점력을 갖춘 동시에, 안정적인 전개와 번뜩이는 위치 선정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왕성한 활동량과 큰 키를 활용한 제공권 장악도 강점이다. 이를 기반으로 조규성은 대학 무대에서 인정받는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3학년 때는 팀의 2018 U리그 8권역 우승에 기여했다.

조규성은 2019년 1월4일 FC 안양을 통해 프로 무대에 입문했다. 그는 안양공고 출신 중 최초로 FC 안양 1군에 우선 지명으로 입단한 선수가 됐다. 데뷔 시즌 33경기 14골 4도움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프로 무대 정착을 알렸다. 득점 3위를 기록하면서 당해 K리그2 베스트11에도 이름을 올렸다. 

다음 시즌에는 K리그1의 강호 전북 현대로 이적하면서 전 소속팀인 안양에 8억8000만원이라는 구단 사상 최고 이적료를 안겨줬다. 이적 후에는 시즌 34경기 8골 3도움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해 김천 상무FC 소속으로 뛰었다. 시즌 중 27경기 8골 3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2 베스트11 공격수 부문 후보에 선정됐다. 조규성은 입대 이후 오히려 기량이 한층 상승했다. 본래 강점이었던 왕성한 활동량과 좋은 연계에 높은 골 결정력과 피지컬까지 탑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성장은 결국 지난해 9월, 생애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조규성은 올해 커리어하이 시즌을 기록했다. 시즌 도중 친정팀 전북으로 복귀(전역)한 조규성은 두 팀을 오가며 리그를 폭격했다. 그는 이번 시즌 35경기 21골 5어시스트, 리그 17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단골 우승팀인 전북에서도 13년 만에 나온 득점왕이었다.

국가대표팀 안에서의 입지도 점차 올라갔다. 파울루 벤투 축구 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9월 레바논과의 카타르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조규성을 처음 출전시킨 이후로 꾸준히 발탁했다.

이때는 기량이 완전히 올라오기 전인 상무 시절이었다. 조규성이 매번 발탁되자 의문부호가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벤투 감독은 조규성의 선발 이유로 제공권과 기술적인 움직임을 꼽았다. 벤투 감독은 조규성이 다양한 전술에 녹아들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평소에는 국가대표 주전 골잡이 황의조와 유사한 유형으로 뛰지만, 때로는 타깃형 스트라이커로 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규성은 데뷔 초 황의조처럼 공간으로 빠져 나가는 공격 패턴을 주로 구사했다. 하지만 점차 최전방에서 버텨주고 공을 지켜내는 등 연계 관여도를 높이는 역할을 맡게 됐다. 탄탄한 피지컬과 안정적인 연계 능력이 뒷받침되면서 장점이 극대화됐다.

조규성의 이 같은 움직임은 국가대표팀의 전술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조규성이 넓혀둔 공간을 손흥민·황인범 등이 마음껏 활용하면서 다양한 공격 패턴을 구현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와 관련해 조규성은 “K리그1 강팀 전북, K리그2 강팀 김천에서 뛰다 보니 공간이 안 생겨서 스타일에 변화를 줬다. 벤투 감독님도 ‘앞에서 많이 싸워주고 버텨줘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밝혔다.

준비된
스트라이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조규성의 좋은 경기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벤투 감독은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조규성에게 몇 가지 더 전수해주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조규성은 이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지난해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치러진 이라크와의 월드컵 최종 예선 6차전에서 첫 풀타임 경기를 완벽하게 마쳤다. 강점인 왕성한 활동량과 공중볼 경합 능력이 돋보였고, PK까지 얻어내는 등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이후로도 조규성은 최종 예선 7차전과 각종 평가전에 출장하며 최종 명단 승선이 일찌감치 예견됐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조규성은 주전보다는 ‘백업 자원’으로 분류됐다. 국가대표팀에서 수년간 최전방 공격수 주전 자리를 꿰찬 황의조의 벽은 높았다.

조규성은 잇달아 선발되면서도 차선책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대회 직전까지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면서 황의조와 충분히 주전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규성은 이를 결과로 증명해냈다.

조규성은 가나전 직후 “나도 솔직히 별거 없는 선수인데 월드컵이라는 세계적 무대에서 골도 넣었다”며 “끝까지 자신을 믿고 열심히 꿈을 위해 쫓아가면 이런 무대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어린 선수들도 꿈을 갖고 열심히 하면 된다. 지금은 이런 세계적 무대에서 골을 넣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런 마음뿐”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대회가 채 끝나지도 않았지만, 조규성을 향한 관심은 이미 뜨겁다. 특히 유럽 축구계 일각에서는 조규성 영입 의사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럽리그들은 스트라이커 기근 현상에 허덕이고 있다.

양발을 모두 활용하고 유럽 리그에서도 제공권을 발휘할만한 신장을 가진 조규성은 실제로도 매력적인 매물이라는 게 중론이다. 더군다나 한국 선수들의 커리어를 위협하는 병역 문제가 이미 해결된 점 역시 유럽 진출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벤투호 골잡이’에 쏟아지는 관심
완성형 공격수 유럽 기회 잡을까?

이와 관련해 이영표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지난달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우루과이와 첫 경기가 끝나고 유럽의 아주 괜찮은 구단 테크니컬 디렉터(기술이사)가 스카우트와 관련해 연락이 왔었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연락이 온 구단이 어디인지는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기술이사가 저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함께 뛰었던 친구”라고 귀띔했다. 이에 여론은 연락의 출처가 독일 분데스리가 소속 구단일 가능성을 높게 치고 있다.

독일 언론 <푸스발 뉴스>에 따르면 이영표와 도르트문트에서 뛰었고 현재 구단의 테크니컬 디렉터를 맡고 있는 사람은 독일 도르트문트의 기술이사 제바스티안 켈, 그리고 헝가리 페렌츠바로시의 기술이사 허이날 터마시 등 2명이다.

이 부회장은 “이게 두 골 넣기 전에 왔던 연락이었는데, 이제 두 골을 넣었으니까 유럽 팀들에서 훨씬 더 조규성 선수에 관해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튀르키예 언론사 <탁빔>에서는 ‘터키 페네르바흐체 SK와 프랑스 스타드 렌 FC가 조규성 영입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탁빔>은 과거 김민재의 페네르바흐체 시절 바이아웃 조항 내용을 처음으로 보도한 언론사로, 공신력이 비교적 높다는 평이다.

페네르바흐체와 조규성의 현 소속팀 전북 간에 선수 거래가 활발했던 점도 눈에 띈다. 올해 들어 전북 유스 소속의 조진호(3월), 이건혁(11월)이 잇달아 페네르바흐체로 이적했다. 도중에 다른 팀을 거치긴 했지만, 김민재 역시 전북에서 2년간 뛴 경험이 있다.

다만 원 소속팀 전북과 김상식 감독이 조규성의 이적을 쉽사리 허용할지가 의문이다. 전북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리그 5연패를 달성했지만, 올해는 우승컵을 놓쳤다. 이에 절치부심해 다음 시즌 우승컵 탈환을 노리고 있다. 이 가운데 득점왕 조규성의 이적을 허용한다면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조규성에게도 아직 증명할 요소가 조금 남아있다. 조규성은 괄목할만한 침투와 공간 능력을 가지고도 페널티 박스 안 쉬운 찬스를 더러 놓친다는 단점을 여러 번 지적받았다.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세밀한 플레이 보강에 관한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또 페널티킥을 잘 차기는 하지만, 득점 중 페널티킥 골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있다. 조규성은 이번 시즌 리그와 컵대회에서 기록한 18골 중 7개를 페널티킥으로 넣었다. 조규성이 해외리그로 이적하고도 페널티킥 키커로 발탁될지 확신할 수 없다.

만약 페널티킥을 차지 않는다면, 지표처럼 득점력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다.

빅리그
초읽기?

조규성은 10여년간의 선수생활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왔다. 막다른 길이라 여겼던 난관에서 늘 기대 이상의 도약을 보여줬다. 이제 또 다른 증명의 장 앞에 섰다. 국민들은 조규성이 이번 월드컵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앞으로 크게 도약하리라 기대하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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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