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⑩일단 당선되면 맘대로 욕심대로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2.11.29 17:13:54
  • 호수 14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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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흥, 전직 대통령들이 가장 문제야. 권력을 독점한 채 옛 왕조시대보다 더 제멋대로 굴잖아. 아마 옥황상제님보다 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게 한국 대통령일 거야. 더군다나 옥황상제님은 하지 않는 깡패 조폭 같은 짓도 마음만 먹으면 은근슬쩍 자행해 버리곤 미소 지을 수 있는 괴상스러운 옥좌야. 

무소불위

아, 국민들이여! 무지한 인간들아!… 좌파든 우파든 일단 대통령에 당선되면 자기 파당의 이익을 위해 노력·봉사하지 않을 수 없어. 나보다 더 잘 알면서 왜 모르는 척만 하구 그래? 우파든 좌파든 국민 뜻을 빙자하면서 지들 멋대로 70, 80% 이상 선뜻 가져가 버리니까. 우리네 불쌍한 국민들은 그들의 똥찌끄러기나 빨아 먹어야 하는 거지.”

그는 상대방의 대꾸를 기다리는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독백을 늘어놓았다. 

“그럼 어찌 해야 할까? 우선 낡아빠질 대로 빠진 헌법을 오늘날에 맞게 고쳐야 해. 헌법은 영원하겠지만 낡은 헌 법[法]은 현실에 맞게 고치는 게 순리야. 그런데 우리는 2020년대에 살고 있으면서, 헌법은 군사독재 시대인 1980년대 말에 대충 날조 개정한 과도기적 사꾸라 틀 아래 억눌리고 있다잖아.


흥, 국회의원 개새끼 나리들의 양복은 최고급 울트라 맞춤식이라 아무리 똥배가 튀어나온 뚱보라도 제 맘대로 늘어나건만…. 나 같은 일반 보통 국민들은 낡아빠지고 좁아터진 1980년 독재표 헌 잠바 속에 갇혀 끙끙거리는 상태인걸.

우리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이 시대에 알맞은 우리 옷을 만들어 입어야 해! 옛 옷 속엔 바늘이나 칼날 그리구 가위도 들어 있어. 뭔가를 위해 슬쩍 남겨둔 거겠지. 흐흘, 실수라기보다 속셈…

깡패나 조폭보다 더 비열한 정치꾼 모리배 년놈들! 국민들은 바늘 끝에 찔리고 칼에 토막나고 가위 날에 매일매일 삶이 생째로 잘리는데도, 그들은 껄껄 웃어대며 자기네의 이익을 챙기는 데 혈안이 돼 있어. 흥, 그들은 세월호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참사를 인재가 아니라 자연재해라고 우기지만 저 참새 녀석마저 깔깔 웃겠구만.

아니, 인간이 신을 이기고 있는 판국인데 뭔 자연재해니 자연의 보복이니 뭐니 지껄여댈 필요가 있냐, 응? 참 개같은 인간들이라니깐! 인간들의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위한 사실 왜곡은 이미 도를 확 넘어 하늘까지 죄다 더럽혀져 버렸어.

그래서 역설적으로 외로워진 인간들은 영웅호걸 따위 좀 꽤나 특출하면서 독재적인 위인을 인신이니 신인이니 추앙하다가 결국엔 진짜 신처럼 만들어 버리는 거지. 아니할 말로 저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각종 신들, 기독교의 예수, 일본의 천황 등도 인간이 인간에게 신성을 투여한 게 아니냔 말야.

흠, 한국으로 오면 훨씬 저급스러워지지. 원래는 고급스러웠는데, 온갖 세월 동안 외세에 시달리다보니… 지금은 맥아더 이하 미군 사령관들과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이승만 등이 각종 당파에 따라 거의 뭐 신과 비스무리하게 대접받는 실정이랄까.

무당 집을 한번 둘러보면 알 수 있어. 진짜 신의 입장에서 보면 가관이겠지. 대체 왜 좌빨이니 우빨이니, 개미 똥구멍 빠는 진딧물 같은 좀비 인간이 많을까? 차라리 좌측 이빨로 오징어 무침을 씹고 우측 이빨로 두부조림을 꼭꼭 씹는다면 풍부한 영양분을 섭취해 건강에 좋을 텐데…


왼쪽 이빨과 오른쪽 이빨이 짝을 불신하며 서로 잘났네 싸우다가 혀를 물어 뜯고 편식한 결과 우리 몸 전체가 건강을 잃은 채 골골거리고 있지 않냔 말야. 윗니 아랫니가 서로 이해하는 건 당연지사고… 건강이란 상하 좌우의 뇌, 눈, 귀, 코, 손발, 음양, 남녀 합궁, 천지 자연의 도리…

흥, 난 잘 몰라. 다만 이건 좀 짐작이 돼. 자기쪽 편에 의치[義齒]를 해 넣으면 입 안이 어찌 되든 상대를 막 씹어 뱉을 수 있거든. 진실과 허위의 혓바닥까지도…

옛 왕조시대보다 더 제멋대로
옥살이 전직 대통령도 우상화

흠, 조선 왕조가 끝난 이후 여러 명의 대통령이 나왔지만 대부분 불행했지. 지금도 감옥 속에 전직 각하가 갇혀 있잖아. 왜 이유를 몰라? 과욕. 국민들이 그들에게 떠넘겼지 뭘. 민주주의 선거라는 미명하에… 자기 욕망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해 권리와 권력을 살쾡이 거머리들에게 맡겨 놓은 채 자유방임하는 거지 뭘.

설령 아무리 악독한 놈이라 하더라도 일단 선거에 의해 뽑혀 대통령 옥좌에 오르면 화장술사(메이크업 전문가)들과 마인드 마스터들이 붙어 깜짝 놀랄 만큼 선량하고 멋진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겉보기엔 성현 군자 같지만 속은 야수와 강도 심보가 더 날뛰게 된단 말야. 흥, 가면을 쓴 채 한순간 만인지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그 허연 손아귀에 장악하게 되잖아, 응?

그렇잖아요, 국민 여러분! 일단 그런 다음엔 최소한 대한민국 땅에선 신마저 고유의 진리와 진실과 자연의 순수한 빛을 펼칠 수가 없어. 왜냐? 대통령과 그의 하수인들이 5년간 신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며 국민의 삶과 삼천리 ‘금수[禽獸]강산’을 제맘대로 변조 개작할 수 있으니까. 국민의 이름으로…

에잇 씨팔! 나 같은 놈이 뭘 알겠어. 하지만 대통령이란 이름부터 좀 바뀌면 좋겠어. 흐흐, 대통령, 흐흐흐… 그건 국민이 지은 이름이 아니야. 지들이 멋대로 지어 붙인 것일 뿐…

흠, 우리가 북한의 수령이란 명칭을 도둑놈 두목 같다고 비웃지만 뭐 피장파장이야. 같은 피를 나눈 놈들이 뭐 크게 다르겠어. 이 쪼그만 땅에 뭘 그리 다스릴 게 있답시고 대(大) 자를 붙이고 지랄이야. 그냥 통령이라고만 해도 될 텐데…

야, 개새끼들아! 너희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미국도 그저 한 구역 책임자라는 의미의 프레지던트라는 단어를 쓰는데, 너희 허위 인간들은 책임은 무시하고 국민 유권자의 가슴속에 맺힌 홍시만 따서 홀랑 삼키곤 얌얌 짭짭 더 입맛을 다시잖아. 응?” 

피에로씨는 달아오른 얼굴의 열기를 좀 배출하듯 콧방귀를 몇 번 뀐 후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입속에 넣고 굴리며 사설을 이었다. 나는 그가 혹시 미치지 않았는지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아무튼, 대통령 선거든 국회의원 뽑기든… 일단 당선된 놈은 너무 잘난 척 지랄치고 낙선한 자는 허접스러워져 버려. 웃기는 얘기야. 사실상 득표율은 몇 프로 차이나지도 않으면서… 그럼 낙선자를 찍은 유권자는 뭐가 되냔 말야.

하긴 당선된 후엔 대개 안하무인 번지레한 낯짝으로 찍어 준 사람을 무시하고 제 욕망 채우기에 급급하니까. 후훗… 사꾸라 민주주의는 말만 그럴듯할 뿐 사실상에 있어서는 정통 독재보다 못하고, 전통적인 왕조 시대의 시스템보다 더 후진 게 아닐까?


흠, 여보시우, 내가 횡설수설한다고 넘겨짚진 마슈. 난 그놈들보다 멀쩡하니까… 음, 그럼 이제 애초의 본론으로 돌아가쥬. 죽은 자와 과거의 죄악을 용서해야 하느냐, 혹은 어떤 식으로든 처벌하는 게 더 좋으냐? 

특히 일반인이 아닌 전직 대통령 국회의원 나리 같은 스스로 위대하다고 망상 착각하는 분들… 화장술과 가면을 벗기면 우리보다 훨씬 더 저열할 수도 있는 가짜 인간… 그럼 대체 누가 그 화장술과 가면을 쓰게 해주었는가?

바로 나, 그리고 국민 여러분이 아닌가 쫌 궁금하우. 히힛…

전직 대통령의 죄를 사면해주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미 벗겨져 사라진 왕관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가진 고집통들일 거야. 죽은 왕들의 머리에 씌워졌던 왕관과 미신 종교의 후광을 사실보다 더 중요시하는 거겠지. 정치와 종교는 바른 길을 벗어나는 순간 다 미쳐버리니까 말야. 

광인에게 정언은 통하지 않지. 죽은 대통령을 우상화하고 감옥에 갇힌 전직 대통령을 추종해 그 똥구멍이라도 빨아 주려는 이른바 ‘똥빨’들의 심리 심보는 과연 무엇일까? 흥, 적어도 내가 볼 때는… 그들이 퍽 너그러워서라기보다 오히려 자기들의 죄악과 과오 때문이 아닐까 싶어.

즉, 그 영웅들의 죄를 통해 자신의 악을 대속하고, 대리만족하려는 거지. 자기들이 만든 영웅에게 영광과 함께 죄악을 덮어씌워 버리곤 외면하는 비겁자들… 자기가 직접 투우장에 나서기보다 관중석에서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을라나.” 


비겁자

피에로 씨는 중얼거림을 멈추자 옆을 슬쩍 바라보았다. 청중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는 듯.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는 허허 웃으며 절룩절룩 계단을 걸어 내렸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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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