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문]
대한민국의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가야만 하는 군대.
2000년 이후 군대 징병률은 평균 약 87%로, 2016년 군 당국은 현역 판정 비율을 90%로 올리겠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징병제도 강화와 달리 군 복무 중 일어난 사건/사고에 대해선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죠.
전투 수행을 목적으로 구성된 조직이라는 군대 특성상 훈련을 받는 병사들은 크고 작은 부상을 입기 마련입니다.
2009년 입대해 2년 간의 군 복무를 마친 이재준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역 후 10년이 흘렀지만, 그는 극심한 이명 증상으로 현재 공황장애와 우울증 에피소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강원도 ○○군 소재 A사단에서 81mm 박격포 특기병을 맡았던 이재준씨는 ‘훈련 중 귀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합니다.
Q.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달라.
제가 특급중대라는 걸 참여하게 됐었는데 그러면서 사격을 많이 했었고, (훈련)끝나고 바로 삐~ 거리는 증상, 소음성 난청, 아예 안 들리는 현상이 시작됐습니다.
부사수하고 대기 인원에게는 귀마개가 지급되지 않았고, 사수에게는 귀마개가 지급될 때도 있었고 안 될 때도 있었습니다.
Q. 대화하면서 훈련하기 때문에 귀마개를 주지 않았던 건가.
그렇진 않았고 그냥 애초에 안 줬습니다.
Q. 당시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 중에서도 이명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나.
네. 단기간에 호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었고 사격을 하고 나면 바로 느끼는 거죠.
바로 귀가 먹으니까… 대화하는데 한 쪽만 들리는 거죠.
하지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병사들의 이명과 달리, 재준씨와 후임 병사의 증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상함을 느낀 재준씨는 이명 증상을 상관에게 보고하고, 국군 B 병원을 수차례 내진하며 군의관을 만나 진찰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당시 “U자형 발굽(튜닝 포크)으로 제 머리 뒤에서 띵~ 해서 소리가 들리는지, 그 진료만 받고 ‘이명은 낫는 병’이라는 말과 함께 약을 7일 혹은 3~4일 치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재준씨는 B 병원의 진료를 믿고 2011년 만기전역했습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시작한 재준씨의 이명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재준씨가 국민신문고에 올린 진술서에 따르면, 그는 “귀가 안 들리는 증세가 있을 때마다 군의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내가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조금이라도 푹 쉬려고 노력해야지’ ‘군의관 말대로 곧 사라질 거야’라고 생각하며 꾹꾹 참으며 지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재준씨는 결국 전역 후 2년6개월 만에 C 병원을 찾았습니다.
해당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H91.20과 H93.1 바로 돌발성 난청과 이명.
재준씨가 군 복무 중 후유장애를 갖게 됐다는 첫 진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 대상자를 신청했지만, 국가보훈처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A사단에 있어야 할 생활기록부와 국군 B 병원을 다녀온 진료기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재준씨는 “(생활기록부의)법정 보관 기간이 전역 후 5년인데, 제가 (전역 후)3~4년쯤 달라고 했을 때 못 받았다. 전자자료는 ‘낙뢰, 벼락 맞아서 사라졌다’고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결국 군 복무 중 다쳤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었던 재준씨는 국가유공자 청구를 기각당했습니다.
이에 대해 육군 관계자는 “낙뢰를 맞았다고 확인했고, 그 외의 세부적인 원인들은 너무 오래되다 보니 확인이 제한되는 상황”이라면서 “두세 번째도 동일하게 기한이 많이 지난 부분이 있어서 상세 원인은 제한이 된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그때 당시 관련된 사람들을 확인해서 조사를 했을 텐데, 지금 상황에서도 책임 소재를 다루기에도 제한이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기상청의 기록은 A 사단의 주장과 달랐습니다.
A 사단은 2014년 9월5일에 발생한 낙뢰로 인해 재준씨의 진료기록부가 소실됐다고 주장했지만, 기상청에서 발표한 ‘2014 낙뢰 연보’에 따르면 2014년 9월 한 달 동안 강원도 OO군에서 발생한 낙뢰는 0건이었습니다.
Q. 국가보훈처의 답변은 어땠나.
자료가 없다 보니까 국가보훈처에서는 전혀 인정하지 않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B 병원에 간 기록이 있으면 사실 2년6개월이라는 기간이 의미가 없는 건데, 그 기록이 없다 보니까 ‘어? 넌 (전역 후)2년 6개월 뒤에 이명이 발생한 거야’ 이렇게 말을 하거든요.
Q. 현재 증상 및 심경은 어떤가.
이명으로 인한 수면장애, 그리고 이명으로 우울증, 에피소드,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조금 있고…
이명이 사라지면 사실 국가유공자는 필요 없거든요. 이렇게 싸울 이유도 없고.
근데 안 사라지니까 문제인 거예요.
그리고 이 사람들이 저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간다는 것.
해외에서는 미국만 하더라도 어디 파병을 갔다 왔다거나 어딜 갔다 왔으면 예우해주는데…한국에서는 어떻게 예우라는 단어는 고사하고 어떻게든 ‘돈 나갈 사람’으로 보는 거예요.
판결문도 피고 측 입장문을 읽어보면 ‘돈이 나갈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선택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래서 국가유공자를 등록하는 데 있어 신중해야 한다’ 계속 이렇게 피력하거든요.
그러면 사실 애초에 (청년들을)군대에 부르면 안 되는 거죠.
그냥 최저시급도 못 받고 일한 건데 다쳤다고 이렇게 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재준씨는 마지막으로 “저 같은 피해자가 안 생겼으면 좋겠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20대의 귀중한 시간을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 대한민국의 병사들.
병사들의 인권은 언제쯤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취재: 김민주
내레이션: 강운지
구성&촬영&편집: 배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