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직원-검사역 커넥션 신협 ‘청탁 감사’ 의혹

4년 만에 드러난 2600만원의 진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8년부터 시작된 전남의 한 단위신협과 신협중앙회 간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단위신협 직원과 중앙회 검사역 간에 돈이 오고 간 사실이 4년여 만에 드러난 것. 신협 직원은 4촌 이상의 사람과 사적 금전대차를 할 수 없고 검사역은 수검 조합으로부터 식사 제공도 받아서는 안 된다.

신용협동조합(신협)중앙회 대구경북지역본부는 지난달 14~16일, 경북의 한 단위신협에 대한 특별검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검사역이 수검 조합 간부로부터 점심식사로 복요리를 대접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검사팀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간부와 두터운 친분관계가 있어 자리를 함께했다”고 해명했다.

밥도 문젠데
돈 오갔다고?

신협중앙회 내부 규정 ‘검사원 복무수칙’에 따르면 “검사원(검사역)은 직무와 관련해 수검 조합으로부터 직접, 간접을 불문하고 사례‧증여(금품‧선물) 또는 식사접대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있다. 부득이한 경우에 3만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공되는 간소한 식사는 가능하지만 그마저도 ‘인근 조합’으로 한정했다. 

지난 8월 전남 영광군 법성포에 위치한 ‘영광굴비골신협’ 직원과 신협중앙회 검사역 간에 돈 거래가 이뤄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일요시사>가 당시 내용을 토대로 같은 달 5일, 해당 직원에게 문답을 진행한 ‘문답서’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해당 직원은 이날 문답에서 신협중앙회 검사역에게 돈을 송금한 사실을 시인했다. 


문답서에 따르면 당시 영광굴비골신협 군남점 지점장을 맡고 있던 김모 전 차장은 2018월 7월2일과 17일 각각 600만원, 2000만원을 장모 전 신협중앙회 검사역에게 송금했다. 김 전 차장은 장 전 검사역과 업무적으로 통화하는 과정에서 병원비가 필요하다고 해 돈을 빌려줬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차장은 아버지의 계좌를 사용해 돈을 송금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창구를 통해 돈을 송금하려면 계좌 개설 시 등록한 인감 등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김 전 차장은 해당란에 자필로 서명했다. 위임장을 받는 등의 필요한 절차는 지키지 않았다. 

장 전 검사역에게 돈을 송금하고 두 달 뒤인 9월13일 계좌를 해지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당사자가 아닌 대리인이 계좌를 해지할 때는 예금주의 위임장, 인감증명서 및 도장, 통장, 비밀번호가 필요하다. 이 중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책임자에게 승인을 받아 ‘편의취급’ 절차로 처리 가능하다.

아버지 계좌로 두 번 보내
두 달 뒤 계좌 ‘셀프 해지’

문제가 된 부분은 이 편의취급 절차로 처리한 사람이 김 전 차장 본인이라는 점이다. ‘셀프 승인’을 한 셈이다.

김 전 차장은 아버지 계좌를 이용해 차명으로 거래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가족이 위임해줘서 처리한 부분’이라고 해명했다. 해당 계좌 자체가 가족이 같이 사용하는 것이고 자신은 관리를 맡았다고 덧붙였다. 돈을 송금하고 계좌를 해지할 때 서명으로 처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착오’라고 답했다. 

하지만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김 전 차장이 장 전 검사역에게 돈을 송금한 시기다. 당시 김 전 차장은 상사인 주모 전 영광굴비골신협 전무에 대한 내부고발을 한 상태였고 신협중앙회가 그 내용을 근거로 검사를 나왔다. 장 전 검사역은 당시 검사팀 가운데 한 명이었다. 


실제 장 전 검사역은 5번에 달하는 영광굴비골신협 검사(2017년 5월15~17일, 2017년 10월11~13일, 2018년 2월26~28일, 2018년 8월28~31일, 2018년 11월19~23일)에 모두 참석했다. 이 사건의 전말은 한 직원이 거래전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장 전 검사역과 같은 이름을 발견하면서 드러났다.

영광굴비골신협 직원들에겐 장 전 검사역이 그만큼 각인돼있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공교로운 점은 김 전 차장이 주 전 전무의 후배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주 전 전무가 어떤 이유로든 퇴직할 경우 그 자리에 김 전 차장이 갈 확률이 높았다는 것. 

영광굴비골신협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친 신협중앙회의 검사, 임직원에 대한 형사고소‧고발, 징계 요구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특히 사건의 중심에 있는 주 전 전무는 지난해까지 면직 요구, 고발 등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됐다. 현재도 신협중앙회와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가족이라
괜찮다?

사건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앞서 진행된 영광굴비골신협 부문 검사에서 드러난 비위 행위에 대한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7년 신협중앙회의 부문 검사에서 주 전 전무의 사적 금전대차 기록이 발견됐다.

주 전 전무는 2012년 한 조합원이 급하게 쓸 일이 있다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하자 자신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3000만원을 빌려줬다. 

두 달 뒤 해당 조합원은 주 전 전무에게 100만원을 더해 3100만원을 갚았다. 주 전 전무는 이 중 이자 60만원을 포함해 3060만원을 상환했다. 문제는 그가 나머지 40만원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파악한 신협중앙회는 주 전 전무를 고발했다.

2018년 8월22일 광주지검은 주 전 전무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사금융 알선 등)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여기에 김 전 차장은 주 전 전무 등에 대한 17건의 비위 행위를 정리해 신협중앙회에 내부고발을 진행했다. 신협중앙회는 김 전 차장의 내부고발을 근거로 검사를 진행해 주 전 전무 등을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주 전 전무는 “내부고발, 공익제보는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해 고발하고 제보하는 것도 내부고발, 공익제보라고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후 2018년 8월28~31일 신협중앙회에서 영광굴비골신협에 대한 검사를 나왔다. 김 전 차장이 장 전 검사역에게 돈을 송금하고 한 달 반 뒤에 진행된 일이다. 검사 첫날 영광굴비골신협의 한 조합원이 주 전 전무를 ‘횡령, 사문서 위조, 위조 사문서 유용,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하는 일도 있었다.

해당 사건은 경찰의 불기소-재정신청 끝에 2019년 주 전 전무의 결백이 입증됐다. 


단위신협
잡으려고?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신협중앙회는 ▲CSS(개인의 신상, 직장, 자산, 신용, 금융기관 거래정보 등을 종합 평가해 대출 여부를 결정해주는 자동전산 시스템)에 따라 산정된 대출 가능 범위를 초과해 대출해준 점 ▲동일인에게 신용대출한도를 초과해 돈을 빌려준 점 등을 근거로 들어 주 전 전무를 포함한 임직원 4명에 대해 개선(임원에게 내리는 면직 처분), 면직, 정직 등의 중징계를 내렸다. 

주 전 전무는 2019년 8월5일 면직처분을 받아 해고되기에 이른다. 이후 전남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주 전 전무 등이 제기한 구제신청을 받아들여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징계 사유는 인정되지만 양형이 과하다는 게 골자였다.

주 전 전무는 “신협중앙회는 나 하나 잡겠다고 온 역량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이번에는 행정소송이 문제로 떠올랐다. 2019년 10월4일 신협중앙회는 신용협동조합 검사및제재에관한규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조합은 필요한 경우 중앙회를 보조 참가자로 신청할 수 있다’에서 ‘중앙회는 징계 관련 소송에 보조 참가를 신청할 수 있고 이 경우 조합은 중앙회의 지도에 따라 공동으로 소송대리인을 선임해야 한다. 다만 조합 자체적으로 소송대리인을 선임할 시 감독이사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법원에 서면을 제출 시 중앙회에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로 바꿨다. 

단위신협에서 진행되는 소송에 신협중앙회가 관여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역 단위신협에서 일어난 일로 신협중앙회 내부 규정을 바꾼 것이 아니냐며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협중앙회는 단위신협을 관리·감독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운영에 있어서는 조합원의 뜻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

게다가 지역 단위신협은 엄연한 독립법인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도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2017~2018년 5번 진행
임직원 4명 중징계·고발

결국 신협중앙회는 주 전 전무 등 중징계를 받은 3명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이미 중징계를 받은 직원에게 ‘이중 징계’한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멈추지 않았다. 총 17건의 비위 행위를 근거로 고발이 이뤄졌는데, 이 중 6건이 기소돼 재판 중이다.

1심 재판부는 주 전 전무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다른 2명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김 전 차장과 장 전 검사역의 돈 거래가 드러나면서 영광굴비골신협은 발칵 뒤집혔다. 지난 5월 거래전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한 직원부터 관련자에 대한 조사가 대대적으로 진행 중이다.

검사역은 수검 조합 관계자와 식사만 해도 문제가 되는데 돈이 오간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이 확대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영광굴비골신협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자체적으로 조사가 진행 중이다. 김 전 차장에 대한 형사고발 여부 등에 대해서도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 인사위원회 개최를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직 조사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신협중앙회에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신협중앙회 관계자는 “확인 결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들은 바가 없다”면서 “장 전 검사역은 올해 개인사정으로 퇴사했다”고 밝혔다. 직원의 비위 행위가 퇴직 이후에 발각되면 어떻게 처분하느냐는 질문에는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퇴직하면 끝이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더 나아가 신협에 대한 소관부처의 관리·감독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협은 금융위원회 소관이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을 통해 신협의 자산건전성을 관리한다. 

신협중앙회
“퇴사했다”

주 전 전무는 “규정을 지키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없이 내 잘못이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징계양정이 과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신협중앙회는 단위신협 직원을 동원해 거짓정보를 만들고 그 정보를 이용해 형평성 없는 검사를 진행했다”며 “단위신협을 관리·감독하는 신협중앙회, 신협중앙회를 관리‧감독하는 금융감독원까지 모두 다 잘못돼있다”고 일갈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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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