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도 승객도 뿔난 ‘택시비 인상’ 속사정

불러도 오지 않는…돌고 도는 해결책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온갖 대책에도 요지부동이다. 서울시가 결국 떠난 택시 기사들을 돌려세우기 위해 ‘요금 인상’ 카드를 꺼냈다. 생활물가가 날로 치솟는 와중에 내린 고육지책이다. 시민 반발은 당연하다 해도, 기사들 역시 회의적인 것은 예상 밖이다. 게다가 서울시가 골몰한 복안이 점차 구색을 갖추는 와중에, 일각에선 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는 최근 ‘심야 승차난 해소를 위한 택시요금 조정안 의견 청취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택시 기본요금을 내년 기존 3800원에서 4800원으로 1000원 인상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3년 만에
요금 인상

조정안에는 기본거리를 현행 2㎞에서 1.6㎞로 줄이고 거리요금 기준을 132m당 100원에서 131m당 100원으로 1m 축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시간요금도 31초당 100원에서 30초당 100원으로 조정됐다.

심야 택시 대란에 대한 별도 처방도 제시됐다. 심야 할증시간은 현재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 4시인데 이를 연말부터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로 2시간 늘린다는 방침이다. 20%로 일률 적용하던 심야 할증률을 시간대별로 20%에서 최대 40%까지 확대한다.

심야 탄력요금제 도입과 기본요금 인상 등을 묶으면 중형 택시요금은 기존 대비 19% 이상 인상될 전망이다. 이 같은 요금 인상안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불거진 ‘택시 대란’의 해결책으로 풀이된다.


코로나 유행으로 택시 수요가 줄면서 영업 수입이 급감하자 당시 많은 택시 기사가 배달‧택배업 등으로 전직했다. 특히 법인 택시 기사의 이탈이 두드러졌다. 

택시 기사들이 심야 운행을 선호하는 경우는 드물다. 취객 손님 응대와 야간 운전 등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심야 택시 공급은 운행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개인택시보다 당번제로 기사를 배정하는 법인 택시가 대부분 도맡아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인 택시 기사가 대폭 감소하다 보니 심야 택시 공급은 주간에 비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유행이 정점을 지나면서 일각에선 다시 택시 공급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택시 수입은 코로나 유행 이전에 비해 떨어지고, 택시 업계는 계속해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서울 택시 평균 영업수입은 2019년 평시보다 9.5% 감소했다. 아울러 올해 상반기 기준 수도권의 법인 택시 가동률은 유행 이전과 비교해 30~40% 쪼그라든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서울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심야 부재 해제, 심야 전용 택시 확대, 각종 인센티브 제공, 임시 승차대 설치 등 다방면에 걸친 해결책을 시행한 바 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여전히 택시 공급은 코로나 이전 수준 대비 4000~5000대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시가 사실상 최후의 수단인 요금 조정안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문제는 서울시 조정안이 시민과 택시 기사, 그 어느 쪽에게도 환영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금리와 물가가 폭등하는 이 시국에 요금을 올린다고 하니, 뿔난 시민과 조정안 효과에 회의적인 택시 기사 모두가 서울시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코로나 정점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기사들
장시간 노동·저임금 구조 해결에 사활 걸려

실제로 지난 5일 서울시가 택시 대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공청회에선 고성이 오가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발제와 패널 토론 후 질의응답을 진행하려 했지만 청중석에서 진행을 방해하면서 끝내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날 공청회엔 개인 택시 기사들과 법인 택시 관계자 등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모순적이게도 공청회에서 오간 발언들은 주로 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내용이었다.

서인석 서울시 택시정책과장은 “심야전용 택시를 비롯해 공급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어서 다음 단계인 요금 인상을 고민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서 과장은 “기존 요금이 단거리 승객을 홀대하는 요금으로 설계돼있어 장거리를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며 “이를 개선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 과장에 따르면 심야할증은 택시 대란이 심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연말연시부터 적용된다. 기본요금 인상은 소비자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택시 수요가 적은 내년 2월부터 적용한다.

이날 발제를 맡았던 안기정 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연구실 선임연구원은 택시요금이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신규 인력 유입이 줄어 개인 택시가 먼저 고령화됐고, 법인 택시가 빠른 속도로 뒤쫓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안 연구원은 “개인 택시는 기존에 50대가 주축이었지만 60대 이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5년 이상에 걸쳐 진행된 반면 법인 택시는 불과 1~2년 사이에 이런 과정을 겪고 있다”며 “고령화는 단순히 개인 택시의 문제가 아니라 법인 택시 기사들이 빠르게 떠나가는 문제와도 연관돼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전액관리제, 원급제를 시행했지만 현재 법인 택시 처우는 근로시간을 근로기준법에 준하도록 한 택시발전법 11조의2를 위반하는 동시에 최저임금 위반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학계도 택시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며 입을 모았다.

추상호 홍익대 교수는 “원가 상승을 반영해 택시요금을 조정해야 한다”며 “총운행 시간과 요금 인상에 따른 수요 감소를 함께 분석해서 요금 인상폭을 결정해 인건비와 원가 상승, 처우개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용주 국민대 교수 역시 “택시요금이 낮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데 이번 인상 폭이 생각보다 높지 않은 탓에 요금을 올려도 공급이 늘지 않을 수 있다”며 “원가 반영으로 요금이 올라가기 때문에 서비스가 개선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장시간 노동
최저임금뿐?

반면 현장의 승객과 기사 사이에선 이번 서울시 조정안에 대해 주로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택시요금 인상을 비판하는 승객들은 “인상 시점이 적절치 않다”거나 “승차 거부 등 불친절한 서비스 수준은 그대로면서 가격(요금) 인상만 요구한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반응에 일부 기사들은 이미 부담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한 개인 택시 기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택시 업계에 대한 국민 여론이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인상 논의가 더욱 여론을 악화시키진 않을지 걱정”이라며 “막상 따져보면 (조정안이)수입을 크게 늘려주지도 않는다. 부담은 부담대로 지고, 수입은 거기서 거기인 상황을 누가 반기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번 조정안이 택시 추가 공급에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개인과 법인 택시를 가리지 않고, 본질적인 공급 감소 원인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일침이 이어졌다.

그는 “개인 택시 기사들이 겪는 고충은 제도의 경직성에 있다. 야간과 달리 주간에는 여전히 부제가 시행되고 있으니 심야에 운행할 생각이 들어도 잘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또 플랫폼 택시와 비교해 요금 탄력성이 너무 떨어진다. 플랫폼 대형 택시는 지금도 심야에 많게는 두 배, 세 배까지 요금을 받게 두면서, 우리는 기껏해야 40%로 늘려주겠다고 하니 ‘역차별’이란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법인 택시에 대해선 “운행요금 인상 폭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뿐더러, 이 몫을 회사가 대부분 가져가게 둔다면 결국 기사 수입은 제자리 아닌가. 이 부분을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업계로)돌아오는 기사가 드물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서울시는 요금 인상 이외에도 택시 공급 확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 일부가 과거에 폐지됐거나 사장된 제도를 부활시키는 방향인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앞서 논란이 불거져 사라진 제도를 단순히 공급 부족을 명분으로 다시 가져오는 건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택시 공급 부족 사태를 해결할 열쇠로 ‘택시리스(임대)제’ ‘인센티브제 부활’ 등을 꼽았다. 이 중 택시리스제(법인 택시업체의 면허임대업)는 현행법상 위법이지만, 규제샌드박스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재도입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규제샌드박스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해주는 제도다.

실제로 최근 서울시가 ‘택시리스제’ 추진의 일환으로 준비한 ‘사용자인증택시’는 규제샌드박스 승인의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는 ‘관계부처 조율’과 ‘심의위원회 심의’ 절차만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용자인증 택시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 가접수된 시기는 지난 5월 말. 통상 규제샌드박스가 기본 검증 절차에만 5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진행이 일사천리인 셈이다. 

중고 제도
해법 될까?

사용자인증 택시는 야간 택시 대상 안면인식·음주측정을 거쳐야만 택시의 시동이 걸리는 기술을 법인 택시에 접목한 아이템이다. 사용자인증 택시가 규제샌드박스 승인을 받는다면 그동안 법으로 금지됐던 택시리스제가 부활할 길이 열린다.

서울시는 택시리스제 재도입을 통해 경제적 이유로 택배나 음식 배달업 등으로 이동한 법인 택시 기사들을 불러 모으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오 시장은 지난 8일 연합뉴스TV <뉴스17>에 출연해 “택시요금 인상만으로는 (택시대란 해소에)충분할지 알 수 없다”며 “본질적인 해법은 택시수입금 전액관리제(월급제)를 옛날의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수입금 전액관리제란 법인 택시 기사가 하루 종일 번 모든 돈을 회사에 입금하고, 실적과 무관하게 정해진 급여를 받도록 한 일종의 ‘월급제’로 2020년 1월부터 시행됐다.

오 시장은 “택시 대란의 본질은 택시영업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택배 일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커서 택배업으로 옮겨간 택시 기사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며 “시장원리에 따라 돈을 더 벌 수 있게 하면 택시영업 숫자가 늘어날 테니 요금을 올리기로 한 것이지만, 그 요금이 다 기사들에게 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기사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 현재의 고장 난 인센티브 시스템을 옛날 방식으로 바꾸자고 국토교통부에 건의했는데, 국토부는 아직도 월급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택시 월급제 개선을 국토부에 건의하는 한편 자체 실태조사에도 착수했다. 서울시 소재 일반택시(법인)업체 254개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고, 문제점과 개선사항을 모아 이달 말 국토부에 추가로 의견을 전할 예정이다.

그는 “택시리스제도 제안했는데, 국토부가 전향적으로 검토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일단 연말까지 국토부가 내놓은 해법대로 해보고 안 되면 내년에 (서울시의 제안을)검토한다는 것인데, 서울시는 모든 방법을 동시에 동원해야 대란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힘줘 말했다.

서울시, 고심 끝에 각종 복안 꺼냈지만
기사도 승객도 모두 입 모아 부정 평가 

업계에선 일찌감치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도 어려운 택시 기사들의 여건이 더욱 악화되고, 오히려 떠난 기사들의 복귀가 더욱 더뎌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관계자들은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법인 택시 리스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심야 택시난 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법은 택시요금체계 개선이고 택시리스제는 대안이 될 수 없는 ‘택시업계 죽이기’에 불과하다”며 제도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추진하는 ‘과거식 해법’이 택시 업계의 과거 고질병 재발에 일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오 시장이 제안한 ‘인센티브제’는 곧 ‘사납금 제도의 부활’로 풀이된다. 이렇게 된다면 승차 거부·난폭운전 등의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납금제는 택시업계의 가장 고질적인 악습 중 하나다. 택시 운행 실적과 무관하게 택시회사는 매일 기사에게 정해진 돈을 떼간다. 회사는 고정된 수익을 얻고, 기사는 해당 금액을 뺀 수익을 가져간다. 만약 택시 기사가 사납금을 채우지 못한다면 주 40시간 기준 최저임금 수준으로 책정된 기본급에서 미달 금액을 공제한다.

실적에 따른 수익 감소 부담은 온전히 택시 기사가 짊어지는 불공정한 구조가 두드러진다.

과거 일부 택시 기사들은 사납금 제도 아래서 승차 거부‧난폭 운전 등의 문제를 일삼았다. 근무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함이다. 이에 정치권은 2019년 택시 사납금을 불법화했다. 택시 운행에 따른 영업 부담을 회사와 기사가 함께 지는 구조를 구축해 택시 문제를 줄여보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현장의 전언에 따르면 불법화된 사납금은 지금도 이름만 바뀐 채 남아있다. 과거엔 하루 5.5시간의 소정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책정되던 기본급이 주 40시간 기준으로 변경돼 늘어나자, 택시회사들은 일제히 사납금을 대폭 올렸다. 과거 하루 13만원 수준이던 사납금이 현재는 20만원 안팎까지 치솟았다.

변형된 사납금은 법원과 노동청 등에서 지속적으로 무효 판단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적발이 쉽지 않은 탓에 여전히 암암리에 시행된다는 설명이다.

한 법인 택시 기사는 “불법으로 규정해놔도 편법으로 이어가며 기사들을 쥐어짜는데, 이를 합법화하면 대놓고 착취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과거 택시리스제가 금지된 맥락도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줄을 잇는다. 택시리스제는 계약체결자와 운행자가 동일인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이 같은 허점 때문에 임대 택시는 과거 살인이나 성폭력 등 강력 범죄에 수차례 악용된 바 있다.

결국 택시리스는 금지됐고, 현행법상 이를 위반한 택시회사는 영업정지·감차 등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공급 부족만으로는 명분이 떨어지고, 되레 위험도만 높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구제 방안일까
악습 부활일까

한 업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앞서 이런 제도들이 사라진 데엔 질 낮은 서비스 제공·범죄 위험성 등의 이유가 있었다”며 “단순히 공급이 부족하다고 다시 살릴 순 없다. 논의에 앞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부터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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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