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도 승객도 뿔난 ‘택시비 인상’ 속사정

불러도 오지 않는…돌고 도는 해결책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온갖 대책에도 요지부동이다. 서울시가 결국 떠난 택시 기사들을 돌려세우기 위해 ‘요금 인상’ 카드를 꺼냈다. 생활물가가 날로 치솟는 와중에 내린 고육지책이다. 시민 반발은 당연하다 해도, 기사들 역시 회의적인 것은 예상 밖이다. 게다가 서울시가 골몰한 복안이 점차 구색을 갖추는 와중에, 일각에선 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는 최근 ‘심야 승차난 해소를 위한 택시요금 조정안 의견 청취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택시 기본요금을 내년 기존 3800원에서 4800원으로 1000원 인상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3년 만에
요금 인상

조정안에는 기본거리를 현행 2㎞에서 1.6㎞로 줄이고 거리요금 기준을 132m당 100원에서 131m당 100원으로 1m 축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시간요금도 31초당 100원에서 30초당 100원으로 조정됐다.

심야 택시 대란에 대한 별도 처방도 제시됐다. 심야 할증시간은 현재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 4시인데 이를 연말부터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로 2시간 늘린다는 방침이다. 20%로 일률 적용하던 심야 할증률을 시간대별로 20%에서 최대 40%까지 확대한다.

심야 탄력요금제 도입과 기본요금 인상 등을 묶으면 중형 택시요금은 기존 대비 19% 이상 인상될 전망이다. 이 같은 요금 인상안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불거진 ‘택시 대란’의 해결책으로 풀이된다.


코로나 유행으로 택시 수요가 줄면서 영업 수입이 급감하자 당시 많은 택시 기사가 배달‧택배업 등으로 전직했다. 특히 법인 택시 기사의 이탈이 두드러졌다. 

택시 기사들이 심야 운행을 선호하는 경우는 드물다. 취객 손님 응대와 야간 운전 등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심야 택시 공급은 운행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개인택시보다 당번제로 기사를 배정하는 법인 택시가 대부분 도맡아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인 택시 기사가 대폭 감소하다 보니 심야 택시 공급은 주간에 비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유행이 정점을 지나면서 일각에선 다시 택시 공급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택시 수입은 코로나 유행 이전에 비해 떨어지고, 택시 업계는 계속해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서울 택시 평균 영업수입은 2019년 평시보다 9.5% 감소했다. 아울러 올해 상반기 기준 수도권의 법인 택시 가동률은 유행 이전과 비교해 30~40% 쪼그라든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서울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심야 부재 해제, 심야 전용 택시 확대, 각종 인센티브 제공, 임시 승차대 설치 등 다방면에 걸친 해결책을 시행한 바 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여전히 택시 공급은 코로나 이전 수준 대비 4000~5000대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시가 사실상 최후의 수단인 요금 조정안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문제는 서울시 조정안이 시민과 택시 기사, 그 어느 쪽에게도 환영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금리와 물가가 폭등하는 이 시국에 요금을 올린다고 하니, 뿔난 시민과 조정안 효과에 회의적인 택시 기사 모두가 서울시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코로나 정점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기사들
장시간 노동·저임금 구조 해결에 사활 걸려

실제로 지난 5일 서울시가 택시 대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공청회에선 고성이 오가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발제와 패널 토론 후 질의응답을 진행하려 했지만 청중석에서 진행을 방해하면서 끝내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날 공청회엔 개인 택시 기사들과 법인 택시 관계자 등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모순적이게도 공청회에서 오간 발언들은 주로 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내용이었다.

서인석 서울시 택시정책과장은 “심야전용 택시를 비롯해 공급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어서 다음 단계인 요금 인상을 고민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서 과장은 “기존 요금이 단거리 승객을 홀대하는 요금으로 설계돼있어 장거리를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며 “이를 개선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 과장에 따르면 심야할증은 택시 대란이 심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연말연시부터 적용된다. 기본요금 인상은 소비자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택시 수요가 적은 내년 2월부터 적용한다.

이날 발제를 맡았던 안기정 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연구실 선임연구원은 택시요금이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신규 인력 유입이 줄어 개인 택시가 먼저 고령화됐고, 법인 택시가 빠른 속도로 뒤쫓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안 연구원은 “개인 택시는 기존에 50대가 주축이었지만 60대 이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5년 이상에 걸쳐 진행된 반면 법인 택시는 불과 1~2년 사이에 이런 과정을 겪고 있다”며 “고령화는 단순히 개인 택시의 문제가 아니라 법인 택시 기사들이 빠르게 떠나가는 문제와도 연관돼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전액관리제, 원급제를 시행했지만 현재 법인 택시 처우는 근로시간을 근로기준법에 준하도록 한 택시발전법 11조의2를 위반하는 동시에 최저임금 위반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학계도 택시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며 입을 모았다.

추상호 홍익대 교수는 “원가 상승을 반영해 택시요금을 조정해야 한다”며 “총운행 시간과 요금 인상에 따른 수요 감소를 함께 분석해서 요금 인상폭을 결정해 인건비와 원가 상승, 처우개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용주 국민대 교수 역시 “택시요금이 낮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데 이번 인상 폭이 생각보다 높지 않은 탓에 요금을 올려도 공급이 늘지 않을 수 있다”며 “원가 반영으로 요금이 올라가기 때문에 서비스가 개선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장시간 노동
최저임금뿐?

반면 현장의 승객과 기사 사이에선 이번 서울시 조정안에 대해 주로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택시요금 인상을 비판하는 승객들은 “인상 시점이 적절치 않다”거나 “승차 거부 등 불친절한 서비스 수준은 그대로면서 가격(요금) 인상만 요구한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반응에 일부 기사들은 이미 부담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한 개인 택시 기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택시 업계에 대한 국민 여론이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인상 논의가 더욱 여론을 악화시키진 않을지 걱정”이라며 “막상 따져보면 (조정안이)수입을 크게 늘려주지도 않는다. 부담은 부담대로 지고, 수입은 거기서 거기인 상황을 누가 반기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번 조정안이 택시 추가 공급에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개인과 법인 택시를 가리지 않고, 본질적인 공급 감소 원인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일침이 이어졌다.

그는 “개인 택시 기사들이 겪는 고충은 제도의 경직성에 있다. 야간과 달리 주간에는 여전히 부제가 시행되고 있으니 심야에 운행할 생각이 들어도 잘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또 플랫폼 택시와 비교해 요금 탄력성이 너무 떨어진다. 플랫폼 대형 택시는 지금도 심야에 많게는 두 배, 세 배까지 요금을 받게 두면서, 우리는 기껏해야 40%로 늘려주겠다고 하니 ‘역차별’이란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법인 택시에 대해선 “운행요금 인상 폭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뿐더러, 이 몫을 회사가 대부분 가져가게 둔다면 결국 기사 수입은 제자리 아닌가. 이 부분을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업계로)돌아오는 기사가 드물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서울시는 요금 인상 이외에도 택시 공급 확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 일부가 과거에 폐지됐거나 사장된 제도를 부활시키는 방향인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앞서 논란이 불거져 사라진 제도를 단순히 공급 부족을 명분으로 다시 가져오는 건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택시 공급 부족 사태를 해결할 열쇠로 ‘택시리스(임대)제’ ‘인센티브제 부활’ 등을 꼽았다. 이 중 택시리스제(법인 택시업체의 면허임대업)는 현행법상 위법이지만, 규제샌드박스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재도입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규제샌드박스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해주는 제도다.

실제로 최근 서울시가 ‘택시리스제’ 추진의 일환으로 준비한 ‘사용자인증택시’는 규제샌드박스 승인의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는 ‘관계부처 조율’과 ‘심의위원회 심의’ 절차만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용자인증 택시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 가접수된 시기는 지난 5월 말. 통상 규제샌드박스가 기본 검증 절차에만 5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진행이 일사천리인 셈이다. 

중고 제도
해법 될까?

사용자인증 택시는 야간 택시 대상 안면인식·음주측정을 거쳐야만 택시의 시동이 걸리는 기술을 법인 택시에 접목한 아이템이다. 사용자인증 택시가 규제샌드박스 승인을 받는다면 그동안 법으로 금지됐던 택시리스제가 부활할 길이 열린다.

서울시는 택시리스제 재도입을 통해 경제적 이유로 택배나 음식 배달업 등으로 이동한 법인 택시 기사들을 불러 모으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오 시장은 지난 8일 연합뉴스TV <뉴스17>에 출연해 “택시요금 인상만으로는 (택시대란 해소에)충분할지 알 수 없다”며 “본질적인 해법은 택시수입금 전액관리제(월급제)를 옛날의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수입금 전액관리제란 법인 택시 기사가 하루 종일 번 모든 돈을 회사에 입금하고, 실적과 무관하게 정해진 급여를 받도록 한 일종의 ‘월급제’로 2020년 1월부터 시행됐다.

오 시장은 “택시 대란의 본질은 택시영업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택배 일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커서 택배업으로 옮겨간 택시 기사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며 “시장원리에 따라 돈을 더 벌 수 있게 하면 택시영업 숫자가 늘어날 테니 요금을 올리기로 한 것이지만, 그 요금이 다 기사들에게 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기사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 현재의 고장 난 인센티브 시스템을 옛날 방식으로 바꾸자고 국토교통부에 건의했는데, 국토부는 아직도 월급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택시 월급제 개선을 국토부에 건의하는 한편 자체 실태조사에도 착수했다. 서울시 소재 일반택시(법인)업체 254개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고, 문제점과 개선사항을 모아 이달 말 국토부에 추가로 의견을 전할 예정이다.

그는 “택시리스제도 제안했는데, 국토부가 전향적으로 검토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일단 연말까지 국토부가 내놓은 해법대로 해보고 안 되면 내년에 (서울시의 제안을)검토한다는 것인데, 서울시는 모든 방법을 동시에 동원해야 대란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힘줘 말했다.

서울시, 고심 끝에 각종 복안 꺼냈지만
기사도 승객도 모두 입 모아 부정 평가 

업계에선 일찌감치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도 어려운 택시 기사들의 여건이 더욱 악화되고, 오히려 떠난 기사들의 복귀가 더욱 더뎌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관계자들은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법인 택시 리스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심야 택시난 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법은 택시요금체계 개선이고 택시리스제는 대안이 될 수 없는 ‘택시업계 죽이기’에 불과하다”며 제도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추진하는 ‘과거식 해법’이 택시 업계의 과거 고질병 재발에 일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오 시장이 제안한 ‘인센티브제’는 곧 ‘사납금 제도의 부활’로 풀이된다. 이렇게 된다면 승차 거부·난폭운전 등의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납금제는 택시업계의 가장 고질적인 악습 중 하나다. 택시 운행 실적과 무관하게 택시회사는 매일 기사에게 정해진 돈을 떼간다. 회사는 고정된 수익을 얻고, 기사는 해당 금액을 뺀 수익을 가져간다. 만약 택시 기사가 사납금을 채우지 못한다면 주 40시간 기준 최저임금 수준으로 책정된 기본급에서 미달 금액을 공제한다.

실적에 따른 수익 감소 부담은 온전히 택시 기사가 짊어지는 불공정한 구조가 두드러진다.

과거 일부 택시 기사들은 사납금 제도 아래서 승차 거부‧난폭 운전 등의 문제를 일삼았다. 근무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함이다. 이에 정치권은 2019년 택시 사납금을 불법화했다. 택시 운행에 따른 영업 부담을 회사와 기사가 함께 지는 구조를 구축해 택시 문제를 줄여보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현장의 전언에 따르면 불법화된 사납금은 지금도 이름만 바뀐 채 남아있다. 과거엔 하루 5.5시간의 소정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책정되던 기본급이 주 40시간 기준으로 변경돼 늘어나자, 택시회사들은 일제히 사납금을 대폭 올렸다. 과거 하루 13만원 수준이던 사납금이 현재는 20만원 안팎까지 치솟았다.

변형된 사납금은 법원과 노동청 등에서 지속적으로 무효 판단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적발이 쉽지 않은 탓에 여전히 암암리에 시행된다는 설명이다.

한 법인 택시 기사는 “불법으로 규정해놔도 편법으로 이어가며 기사들을 쥐어짜는데, 이를 합법화하면 대놓고 착취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과거 택시리스제가 금지된 맥락도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줄을 잇는다. 택시리스제는 계약체결자와 운행자가 동일인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이 같은 허점 때문에 임대 택시는 과거 살인이나 성폭력 등 강력 범죄에 수차례 악용된 바 있다.

결국 택시리스는 금지됐고, 현행법상 이를 위반한 택시회사는 영업정지·감차 등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공급 부족만으로는 명분이 떨어지고, 되레 위험도만 높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구제 방안일까
악습 부활일까

한 업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앞서 이런 제도들이 사라진 데엔 질 낮은 서비스 제공·범죄 위험성 등의 이유가 있었다”며 “단순히 공급이 부족하다고 다시 살릴 순 없다. 논의에 앞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부터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jeongun15@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