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그라운드 떠나는 ‘조선 4번타자’ 이대호

‘홈런 쾅! 쾅!’
세계기록 보유도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영원할 것 같았던 ‘조선의 4번 타자’ 선수 생활에도 끝이 다가왔다. 20년 넘게 프로야구 무대를 누빈 이대호는 ‘박수 칠 때 떠나는’ 길을 택했다. 그는 한 점의 후회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여전한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유일하게 이뤄보지 못한 꿈,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이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그는 마지막 불씨를 살리려 구슬땀을 흘린다. 

스타 플레이어에겐 수많은 별명이 붙는다. 이대호 역시 많은 별명을 가졌지만 ‘조선의 4번 타자’만큼 이대호를 잘 설명하는 별명은 없다. 그는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KBO(한국야구위원회)리그와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로 군림했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

이대호의 타고난 신체조건과 출중한 기량을 보면 그가 탄탄대로의 엘리트 야구인 코스를 밟았을 것으로 넘겨짚기 쉽다. 하지만 이대호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야구를 접한 선수는 손에 꼽는다. 그는 형과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그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가했다. 할머니는 시장 좌판에서 김치와 된장 등을 팔며 형제를 어렵게 키웠다. 

이대호가 야구와 인연을 맺은 건 지금도 절친한 추신수(SSG 랜더스)의 손에 이끌려서다. 롯데 박정태 코치(당시 선수)의 조카인 추신수는 야구를 하기 위해 부산 수영초등학교로 전학 갔다. 그때부터 유난히 덩치가 컸던 이대호는 추신수 눈에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추신수는 감독에게 이대호를 추천했고, 이대호에겐 같이 야구하자고 설득했다.

당시 부산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야구란 종교와 같았다. 하지만 이대호는 ‘스카우트’ 제의에도 선뜻 야구부에 들어갈 수 없었다. 매달 몇 십만원에 달하는 회비는 곤궁했던 그에게 ‘오를 수 없는 나무’와 같았다.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대호는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야구가 이대호의 운명이었다. 그의 삼촌들은 고민 끝에 그가 야구를 할 수 있게 힘을 합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렇듯 이대호는 천신만고 끝에 야구계에 첫발을 디딜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은 여전했고, 지원은 넉넉지 못했다. 이대호는 자신을 스카우트한 중학교 감독의 집에서 2년 반 동안 더부살이하며 야구 경력을 이어갔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이대호는 꾸준히 기량을 갈고 닦았다. 그 결과 부산 지역의 ‘야구 명문’ 경남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대호를 야구계로 이끈 추신수는 라이벌 학교인 부산고등학교로 향했다. 이대호와 추신수는 고교 시절 촉망받는 투수로 발돋움했다. 

이대호는 하루빨리 프로야구에 입성해 할머니를 호강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구슬땀을 흘렸다. 하지만 이대호의 꿈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할머니가 고등학생 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대호는 “할머니에게 제대로 된 효도를 하지 못한 게 영원한 한으로 남았다”고 자주 언급한다.

이대호의 뒷바라지는 일찍이 취업 전선에 뛰어든 형이 이어받았다.


이대호는 추신수·정근우·김태균 등과 함께 2000년 애드먼턴에서 열린 U-18 야구선수권대회에서 미국을 꺾고 우승을 이끈 주역이 됐다. 당초 지역 야구팀 롯데 자이언츠에서 재회할 것이 유력했던 이대호와 추신수는 또 다른 갈림길에 섰다.

추신수가 롯데 자이언츠의 1차 지명을 거부하고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체결하면서다.

어려운 가정환경 딛고 국대 야구 선수로
타고난 신체조건과 유연한 동작으로 평정

반면 이대호는 추신수에 이어 롯데 자이언츠의 2차 지명을 받고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입단 직후 어깨 부상을 당한 이대호는 타자로 전향했다. 당시 우용득 2군 감독이 이대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타자 전향을 추진했다. 

입단 첫해 이대호는 타자 전향 훈련을 받으며 2군에 주로 머물렀다. 그러다 시즌 막바지 용병 펠릭스 호세의 출장 정지 처분을 계기로 1군 무대를 밟았다. 이대호는 입단 첫해인 2001년 1군 6경기에 출장해 8타수 4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2002년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1군 감독으로 승격한 우용득이 이대호를 붙박이 4번 타자로 기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롯데 전력이 비교적 약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1군 경험이 거의 없는 신인에게 4번 타자를 맡긴다는 상황 자체가 이대호에 거는 기대가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이대호는 개막전부터 4번 타자 출전했다. 시즌 개막 후 한 달간 홈런은 1개에 그쳤지만, 타율은 3할대 중반을 기록하며 신인왕 후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신인들이 으레 그렇듯, 이대호는 시즌 중반으로 접어들며 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2군행을 통보받았다.

그러던 중 이대호를 적극적으로 밀었던 우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후임 백인천 감독은 “이대호가 좋은 타자가 되기 위해서는 살을 빼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이를 위해 백 감독은 이대호에게 쪼그려 뛰기와 오리걸음 훈련을 지시했다.

거구인 이대호가 무릎 부상에 시달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결국 이대호는 무릎 부상 때문에 2002년과 2003년 시즌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시점은 양상문 감독이 취임한 2004년부터다. 이대호는 이때부터 전 시즌 주전을 꿰차고 성장세를 그렸다. 이때 이대호는 타율은 낮아도 높은 파괴력을 자랑했다. 2004년 2할4푼8리 20홈런 68타점을, 2005년엔 2할6푼6리 21홈런 80타점을 기록하며 조금씩 가능성을 보였다.

문제는 병살타가 너무 많아 항상 의문부호가 따라붙었다는 점이다.

만개한 기량
압도적 성적


하지만 한국 야구의 전설적인 타자 장효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2004년 한 기자와의 대화에서 이대호의 성공을 일찌감치 확신했다. 장효조는 이대호가 194cm라는 거구임에도 뛰어난 유연성을 가졌다는 점에 집중했다. 그는 “(이대호가) 머지않아 터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장효조의 말대로 이대호의 기량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만개했다. 2006년 이대호는 타율, 타점, 홈런 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84년 이만수(삼성 라이온즈)가 기록한 이후 22년 만의 트리플 크라운이었다. 이대호는 이를 통해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우뚝 섰다. 

이대호는 2007년 1루수 골든글러브 2연패,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의 기록을 남기며 국내외에서 맹활약했다. 이후 2010년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대호의 2010년은 역대 모든 타자들의 이력 중에서도 손꼽히는 ‘커리어 하이’ 시즌이다. 이대호는 그해 도루를 제외한 모든 타자 기록 1위 자리를 휩쓸며 사상 최초의 타격 7관왕에 올랐다. 이 기록은 여전히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대호는 시즌 MVP까지 수상하면서 시상식에서 상 8개를 독식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아울러 9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면서 이 부문 세계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 시즌 이대호가 기록한 홈런 수는 총 44개. 종전 롯데의 팀 최고기록 37개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국내 리그를 평정한 이대호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일본 프로야구(NPB) 오릭스 버펄로스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는 정규 시즌 144경기에 모두 4번 타자로 출전했다. 그는 91타점과 24홈런을 만들어내며 각 부문 1·2위에 올랐다. 


이후 오릭스에서 2년간 뛴 이대호는 2014년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해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대호는 우승 반지와 함께 한국인 최초로 일본 시리즈 MVP 선정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2016년 이대호는 소프트뱅크의 파격적인 제안을 뒤로한 채 또 다른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 메이저리그로 향했다. 연봉과 출전 보장 등의 조건을 크게 낮추면서, 정말 꿈 하나만 바라보고 감행한 모험이었다.

그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고정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14홈런과 49타점을 생산했다. 

2017년 한국으로 돌아온 이대호는 어느덧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노장이 돼있었다. 복귀 후 잠시 부침을 겪으며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결국 2017년과 2018년 모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가장 큰 부침은 2019년 찾아왔다.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는 15년 만에 최하위를 기록했고, 개인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그나마 개인 통산 300홈런을 달성한 것을 위안거리로 삼을 수 있었다. 

이대호는 2020년과 지난해 시즌을 거치면서 4번 타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선수 생활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무거운 책임감을 한결 덜어낸 셈이다. 타율은 3할을 살짝 밑도는 등 기대치는 채웠지만 특출나진 않았다. 김태균‧정근우 등 오랜 시간 함께 뛰어온 동갑내기 선수는 하나둘 은퇴를 선언했다.

결국 이대호도 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은퇴 시기를 공식적으로 못 박았다. 2년 계약이 끝나는 올해가 이대호의 마지막 시즌이다. 그 사이 유한준‧이성우 등이 은퇴하면서 이대호는 리그 최고령 선수가 됐다. 처음 ‘은퇴 투어’가 논의됐을 때는 리그 안팎의 상황이 좋지 못해 이견이 갈렸다.

헤어질 결심
뜨거운 안녕

이에 부담을 느낀 이대호 본인도 고사하면서 무산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이후 10개 구단의 논의 끝에, 그의 공로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은퇴 투어 시행이 확정됐다. ‘국민타자’ 이승엽에 이은 두 번째 공식 은퇴 투어다. 등번호 ‘10번’의 영구결번도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다. 현재 롯데 자이언츠의 영구결번은 대투수 최동원의 ‘11번’ 뿐이다.

이대호는 지난 3월 자신의 마지막 KBO 미디어데이에 참석해 “마지막 전지훈련과 시범경기가 모두 끝났다. 후배들에게 마지막 시범경기라고 얘기했는데, 뭔가 울컥하는 게 있었다”고 심경을 전했다. 아울러 ‘친구’인 추신수와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을 두고 “실력이 좋은 친구들이기 때문에 오래 더 좋은 성적을 가지고 그라운드에서 뛰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들은 모두 1982년생 동갑이지만, 이 중 이대호가 가장 생일이 빨라 최고령 타이틀을 떠맡았다.

추신수는 “대호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자라면서 많은 시련을 겪으며 이 자리까지 왔다. 부산에서 야구대회를 하면서 라이벌로 성장해오면서 (대호가)있었기 때문에 내가 미국까지 가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아직 은퇴를 생각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나도 겪어야 할 일이다. 당장 내년, 내후년이 될 수도 있다”며 “이렇게 박수를 받고 떠날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야구를 전 세계에 알리고 떠나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대호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은퇴를 앞뒀다는 사실이 무색하도록 연일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팬과 리그에 전하는 마지막 ‘뜨거운 안녕’이다.

불혹을 넘긴 이대호는 롯데가 치른 경기 대부분에 나섰다. 그가 결장한 경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타율 3할3푼3리, 18홈런 83타점 46득점 152안타 등 전성기 못지않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앞선 몇 년간의 시즌보다도 높은 성적이다.

베테랑의 투혼은 리그 전체 타격 지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타율 3위, 홈런 8위이고, 타점과 안타 각각 7위와 4위에 올라있다(지난 6일 기준). 또,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친 OPS 역시 7위를 기록 중이다.

그와 경쟁을 중인 선수 면면을 살펴보면 이대호의 위상이 여전히 건재함을 확신할 수 있다. 리그를 통틀어 타율에서 이대호보다 앞선 선수는 외국인 용병 호세 피렐라(삼성 라이온즈)와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뿐이다. 여타 기록에선 박병호(kt 위즈)와 김현수(LG 트윈스) 나성범(기아 타이거즈) 김혜성(키움 히어로즈) 등과 경쟁 중이다.

‘박수 칠 때 떠난다’ 현역 생활 마무리
‘이대호는 이대호다’ 마지막 목표 우승

이대호는 적게는 3살부터 많게는 16살까지 차이나는 후배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자웅을 겨루고 있다.

팀 내부적으로도 도드라지는 지표다. 이대호는 롯데 자이언츠 타격 지표에서 도루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부분을 이끌고 있다. 현재 이대호는 롯데 자이언츠 안에서 타율 2위, 홈런 1위, 타점 1위, 득점 4위, 안타 1위, 장타율 2위, 출루율 2위, OPS 2위를 기록 중이다. 

올 시즌 후반기 영입돼 표본이 적은 잭 렉스를 빼고 보면 이대호는 타율과 장타율, 출루율, OPS 등에서도 사실상 선두다. 은퇴가 목전인 선수가 무려 6개 부문에서 팀 내 1위를 싹쓸이하고 있는 셈이다.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 우승은 마지막까지 이대호 몫이었다. 이대호는 지난 7월1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 10개의 아웃카운트를 모두 소진하기도 전에 5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당당히 우승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이번 우승으로 이대호는 3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특히 3번 우승한 선수는 더러 있어도,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에 모두 우승해본 선수는 이대호가 유일하다.

여전히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는 이대호. 그만큼 은퇴에 대한 아쉬움은 커지는 법이다. 하지만 이대호가 은퇴를 번복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미 은퇴 투어를 진행하며 전국을 돌고 있는 데다, 지속적으로 은퇴를 번복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이대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지난해까지는 관심이 없었는데 올해에는 야구에 재미를 붙였다. 내가 TV에 나오면 좋아하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나보고 ‘아빠, 야구 더 해’라고 한다. 작년에 이랬으면 올해 은퇴를 안 했을 것 같은데 남자가 한 번 말을 뱉으면 지켜야지 않나”라고 난감한 표정과 함께 농을 던졌다.

타들어 가는 롯데 팬들의 마음과는 반대로, 이대호의 은퇴 투어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마음을 비운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욕심이란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이다. 

롯데는 6위에 올라 있다(지난 6일 기준). 가을야구 마지노선인 5위 자리의 기아 타이거즈와는 네 경기 차이다. 우승까지 갈 길은 멀지만, 가을야구라도 할 수 있다면 나름의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이 역시 잔여 경기 수를 감안하면 쉽진 않겠지만, 아직 포기할 수준은 아니다.

끝까지
최선을

특히 최근 기아가 3연패 수렁에 빠지면서 롯데가 순위 공략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이대호 역시 “시즌 초반에 많이 이겼으면 좋았겠지만 지금도 열심히 이기고 있다. 나도 선수들도 포기하지 않고 매 경기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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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