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이냐 공천이냐 ‘이재명발’ 민주당 분당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국내 헌정사상 분당을 통해 성공한 정치세력은 드물었다. 기존 당에 ‘배신’했다는 이미지는 정치인들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독립한 당은 유권자들에게 인지도가 낮아 자주 홀대받는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은 ‘웬만하면’ 분당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본인의 공천권이 불투명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배신 이미지와 정치적 명분은 본인의 공천 앞에서 매우 사소한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비명(비 이재명)계 진영에 비상등이 켜졌다. ‘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의 당선 뉴스가 전해지면서다. 지난 27일 있었던 민주당 전당대회 최종 발표 현장에서 이재명 후보는 ‘당 대표 당선인’으로 호명됐다. 그의 이름이 호명되자 친명(친 이재명)계 의원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고, 비명계 의원들의 얼굴엔 썩은 미소가 번졌다. 

꽃놀이패
쥐고 골탕?

당 대표뿐만 아니라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친명계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민주당 지도부 자리 대부분을 가져오게된 친명계는 이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꽃놀이패’를 손에 쥐게 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비명계다. 지난 대통령 경선 과정에서부터 친명계와 갈등을 빚어온 이들은 이 대표의 보궐선거 출마와 당 대표 출마 때도 지속해서 싸웠다.

계속 싸우긴 했지만, 계속해서 패배했다. 결과적으로 이 대표의 앞길을 막지 못한 것이다. 이 대표는 보궐선거는 물론, 당 대표 선거마저도 승리했다. 자연스레 외로운 싸움을 하던 그를 지켜온 친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 당선의 ‘공신’으로 떠올랐고, 출마를 반대했던 의원들은 ‘역적’으로 몰릴 위기에 놓였다. 

후자 쪽은 정세균계와 친문(친 문재인)계 의원들로 당초 이들 좌장격 의원들은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며 이 대표에 대한 압박을 시도했다. 당내 계파 싸움이 치열하니 양 계파에서 후보를 아예 내지 말자며 설득에 나선 것이다. 시작은 홍영표 의원이었다.


지난 6월24일 충남의 한 리조트에서 민주당은 워크숍을 연 바 있다. 당시 친문계 의원들은 하나둘 이 대표에게 찾아가 불출마할 것을 요구했다. 홍 의원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과연 이재명 후보나 내가 출마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우리가 판단해 보자고 (이 의원에게)이야기했다”고 말했다.

후에 홍 의원은 불출마를 실천했고, 당 대표 후보로 거론되던 또 다른 의원인 전해철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친문계에서는 최종적으로 아무 후보도 내지 않았다. 

두 의원이 불출마로 이 대표를 막으려 했다면, 설훈 의원은 직접 출마해 그의 당권 도전을 막으려 했다. 설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출마의 이유를 ‘분당될까 봐’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분당은 막아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의원이 대표가 되면 분당의 위험성이 커진다”며 “지금도 이 의원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는 강성 팬덤이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막고 있다. 이 의원이 대표가 된다면 더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설 의원 말대로 이 대표의 강성 팬덤은 비명계 의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이들은 문자폭탄과 팩스 돌리기, 댓글 테러 등의 수단으로 이 대표를 견제하는 세력을 공격했다.

강성 팬덤의 공격을 경험한 한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는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안 쓰이기도 하고 반반이다. 그러나 의원실 직원들이 힘들어 할 때는 조금 위축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친명계 의원들 중심으로 지도부 완전 장악
안 그래도 힘들었는데…설 자리 없는 비명계


이 대표의 팬덤이 의원들의 언로를 막고 있다는 지적에는 민주당 내 대부분의 인사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 대표의 강성 팬덤은 친문 의원들의 지지자들과 본질적으로 결합할 수 없는 세력이다. 이들은 ‘개혁’을 위해서 이 대표가 필요하고, 친문 의원들은 구태 세력이라 생각해 적으로 인식한다.

‘구태’에 ‘적’이 돼버린 친문 의원들은 어떤 행보를 해도 이 대표의 팬들에게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의 출마를 말린 것은 친문계 좌장들뿐만 아니다. 지난 6월22일 재선 의원 34인은 비공개 간담회 후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 발표를 맡은 송갑석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가 계파 간 세력 싸움이 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며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는 분들은 전당대회에 나서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선언했다.

이날 입장문에 구체적으로 이름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당시 언론은 친문의 핵심인 홍영표·전해철 의원 및 86세대의 대표 격인 이인영 의원 등과 함께 이 대표에 대한 불출마 요구로 풀이했다. 

이렇게 많은 반대를 이겨내고 나온 이 대표에게 이제 칼자루가 쥐어졌다. 공천권이라는 칼이다. 대표가 된 이 의원은 친명계로 가득찬 최고위원들과 함께 본인의 입맛대로 민주당을 구성할 권리가 생겼다.

<일요시사>가 만난 민주당 인사 대부분 이 대표가 ‘뒤끝’이 있는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겉으로는 통합을 외치지만 결국 자신과 갈등을 빚었던 의원들을 ‘용서하지 않을’ 성격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한 비명계 의원실의 보좌관은 “이 의원은 대선 때 적극적으로 도왔던 의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지역구를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딱히 비명계에 대한 견제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대표가 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일요시사>에 귀띔했다. 

그러나 분당의 가능성은 낮게 봤다. 이 대표의 ‘견제 행보’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분당까지 가기에는 동력도, 명분도 부족하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게다가 기존 정당을 이탈한 정치세력이 국민들에게 사랑받기란 쉽지도 않다.

그간 국내 헌정 역사에는 이해관계가 틀어져 분당한 사례가 수차례 있었다. 

방아쇠
당기나

3당 합당 당시 쪼개졌던 민주당이 그랬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의 열린우리당이 그랬으며 2009년 친이(친 이명박)계의 공천 학살로 떨어져 나왔던 ‘친박연대’가 있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새누리당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쪼개졌다.

그간 정당 역사상 분당에는 ‘명분’과 ‘리더’라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보통 분당한 정당은 성공을 이루진 못했지만 몇몇 성공적인 사례가 있다. 신한국당에서 쪼개져 나왔던 ‘한나라당’이 대표적이다.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YS의 영향력 아래에서 자연스레 상도동계 의원들 또한 신한국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심판하고 금융실명제 등을 실시해 인기가 높았던 YS 덕분에 신한국당의 상도동계 의원들은 당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이들의 영화는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며 끝이 났다.

국가가 부도나며 생활에 큰 타격을 입자 국민들이 비난의 화살을 일제히 대통령에게 돌렸기 때문이다. 이때 YS는 역대 정부 중 가장 심한 레임덕을 앓았다고 평가받는다.

대통령의 추락과 함께 신한국당 내부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상도동계 의원들이 중심이 된 지도부는 힘을 잃어갔고, 다음 총선에 대한 대비도 전무한 상태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신한국당 내에서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던 이 전 총재는 YS의 인기가 떨어지자 보수의 새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의 슬로건도 ‘삼김 청산’이었고, YS를 포함한 기존의 ‘구태 보수’를 개혁하자는 뜻을 신한국당과 유권자들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썩소와 
박수갈채


이런 강력한 리더가 등장하자 ‘신한국당 분당설’이 점차 힘을 받게 된다. YS의 영향력이 강한 당을 해체하고 이 전 총재를 중심으로 새판을 그리자는 전략이 의원들에게 먹혀들어 갔다.

당시 보수당에 몸담던 의원들 또한 본인의 다음 공천을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천 자체도 받기 힘들뿐더러 공천을 받는다하더라도 인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신한국당을 국민들이 외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 전 총재는 결국 ‘한나라당’을 창당하게 된다.

그가 창당한 한나라당은 한국 역사상 가장 큰 전성기를 누린 보수정당으로 회자되고 있다. 지금의 국민의힘 역시 이때 이 전 총재가 창당한 한나라당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창당을 단행하며 YS 계파인 상도동계를 적으로 돌리고 강경보수 세력인 공화계, 민정계와 손을 잡았다.

이런 탓에 기존의 기치였던 ‘보수 개혁’에 대한 명분은 약해졌다. 그러나 선거에서는 승승장구했다. 4회 지방선거와 17대 총선, 그리고 4년 뒤 18대 총선까지 한나라당은 내리 3연승을 기록했다. 한때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지지율과 30~40%가량 꾸준히 차이를 벌리며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한나라당은 보수의 염원으로 여겨졌던 정권교체도 이뤄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내리 패하며 10년간 정권을 잃은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내세우며 정권을 되찾아오려 노력했다.

당장 리더 있어야 하는데…
이낙연 전 대표 귀국 주목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선거 구호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어 갔고 경제위기와 북핵 문제 등이 겹치며 보수정당이 호재를 탔다. 결국 이 후보는 당시 민주당 정동영 후보를 큰 표 차이로 따돌리고 정권을 보수 지지자들에게 돌려줬다.

이는 한나라당의 성공적인 분당 사례로 남아있다. 당시 성공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당을 가능케 했던 것은 역시 이회창의 ‘존재감’과 다음 총선에 대한 의원들의 ‘두려움’이었다.

현재 민주당은 현재 공천 학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의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자 공격을 한번이라도 받은 친문 의원은 본인이 ‘개혁 대상’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고, 대립각을 깊게 세운 의원들은 ‘확신’하고 있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았던 의원이 대다수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분당을 이끌 ‘이회창’과 같은 리더는 찾아볼 수 없다. 친문계의 리더라고 인식되는 이낙연 전 대표는 현재 미국에 가 있고 정세균 전 총리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분당을 이끌만한 리더들이 모두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이 전 대표가 분당의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 이사장의 임기는 2025년까지여서 2024년 총선 전에 분당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 전 대표의 귀국 시점은 내년으로 잡혀 있다. 전당대회가 끝나고 세력 싸움이 한창일 무렵, 이 전 대표의 복귀가 예정돼있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은 세가 약해진 조직이지만 분명한 리더 한 명이 나타날 경우,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며 “이낙연 전 대표가 됐든, 다른 새로운 리더가 됐든 공천 학살이 일어나는 시점이 분당의 시점이 될 것”이라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그의 말대로 비명계는 상황을 뒤집을만한 힘이 다분하다. 민주당 내 헤게모니를 차지한 기간이 무척 길었던 점이 있고, 아직도 민주당 의원의 과반 이상이 비명계로 분류돼있기 때문이다.

모델은 
한나라당?

민주당은 그동안 네 번이나 분당을 경험한 바 있다. 그때마다 진보정당의 입지는 줄었고 선거에서 늘 불리한 조건으로 보수정당을 상대해야만 했다. 이 대표는 본인이 민주당의 리더가 되면 그간의 계파 갈등을 모두 청산하고 의원들을 하나로 품을 것이라고 수차례 공언해왔다. 이제 그 ‘말’을 ‘행동’으로 보여줄 차례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국민의힘 분당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전면전 선포로 일각에서 국민의힘 측에도 분당설이 제기된 바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말, 권성동 원내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간의 사적 대화가 언론 카메라에 공개되며 한차례 고역을 치룬 바 있다.

유출된 문자메시지 내용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권 원내대표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고 전했다.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고 잠행을 이어가던 이 전 대표는 해당 문자가 보도되자마자 잠행을 깨고 다시 내부 총질을 시작했다.

지난 22일에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탄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을 행해 ‘이XX 저XX’하던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려고 부단히 뛰었던 제 심정이 진정한 선당후사”라며 장제원, 권성동 등 윤핵관을 향해 다음 총선에서 험지로 출마해 당선해오라는 주문을 했다. 그것이 자신과 국민들이 인정하는 진정한 선당후사라는 것이다.

이 전 대표가 대통령과 윤핵관들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 전 대표가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흘러나왔다.

국민의힘에서 입지가 좁아진 이 전 대표가 본인 중심의 새로운 보수정당을 출범시켜 아예 새 판을 짤 것이라는 분석 아래서다.

그러나 이 전 대표의 측근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며 “이미 한 번 새 보수정당을 출범했다가 망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확실시 되자 유승민·장제원 의원 등과 함께 바른정당을 만들어 새 정치를 꿈꿨던 바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바른정당을 외면했다. 기존 보수 지지층은 여전히 새누리당을 더 지지했고, 중도 지지층은 더불어민주당으로 급격히 쏠려갔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분당이 불가능한 또 다른 이유로 이 전 대표의 ‘리더십 상실’을 들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국민의힘 내부 당심은 이 전 대표에게 좋지 못한 상태다.

이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물러간 후 ‘이핵관’이라 불렸던 그의 세력이 와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일요시사>에 알려왔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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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