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이냐 공천이냐 ‘이재명발’ 민주당 분당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국내 헌정사상 분당을 통해 성공한 정치세력은 드물었다. 기존 당에 ‘배신’했다는 이미지는 정치인들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독립한 당은 유권자들에게 인지도가 낮아 자주 홀대받는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은 ‘웬만하면’ 분당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본인의 공천권이 불투명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배신 이미지와 정치적 명분은 본인의 공천 앞에서 매우 사소한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비명(비 이재명)계 진영에 비상등이 켜졌다. ‘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의 당선 뉴스가 전해지면서다. 지난 27일 있었던 민주당 전당대회 최종 발표 현장에서 이재명 후보는 ‘당 대표 당선인’으로 호명됐다. 그의 이름이 호명되자 친명(친 이재명)계 의원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고, 비명계 의원들의 얼굴엔 썩은 미소가 번졌다. 

꽃놀이패
쥐고 골탕?

당 대표뿐만 아니라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친명계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민주당 지도부 자리 대부분을 가져오게된 친명계는 이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꽃놀이패’를 손에 쥐게 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비명계다. 지난 대통령 경선 과정에서부터 친명계와 갈등을 빚어온 이들은 이 대표의 보궐선거 출마와 당 대표 출마 때도 지속해서 싸웠다.

계속 싸우긴 했지만, 계속해서 패배했다. 결과적으로 이 대표의 앞길을 막지 못한 것이다. 이 대표는 보궐선거는 물론, 당 대표 선거마저도 승리했다. 자연스레 외로운 싸움을 하던 그를 지켜온 친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 당선의 ‘공신’으로 떠올랐고, 출마를 반대했던 의원들은 ‘역적’으로 몰릴 위기에 놓였다. 

후자 쪽은 정세균계와 친문(친 문재인)계 의원들로 당초 이들 좌장격 의원들은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며 이 대표에 대한 압박을 시도했다. 당내 계파 싸움이 치열하니 양 계파에서 후보를 아예 내지 말자며 설득에 나선 것이다. 시작은 홍영표 의원이었다.


지난 6월24일 충남의 한 리조트에서 민주당은 워크숍을 연 바 있다. 당시 친문계 의원들은 하나둘 이 대표에게 찾아가 불출마할 것을 요구했다. 홍 의원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과연 이재명 후보나 내가 출마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우리가 판단해 보자고 (이 의원에게)이야기했다”고 말했다.

후에 홍 의원은 불출마를 실천했고, 당 대표 후보로 거론되던 또 다른 의원인 전해철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친문계에서는 최종적으로 아무 후보도 내지 않았다. 

두 의원이 불출마로 이 대표를 막으려 했다면, 설훈 의원은 직접 출마해 그의 당권 도전을 막으려 했다. 설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출마의 이유를 ‘분당될까 봐’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분당은 막아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의원이 대표가 되면 분당의 위험성이 커진다”며 “지금도 이 의원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는 강성 팬덤이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막고 있다. 이 의원이 대표가 된다면 더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설 의원 말대로 이 대표의 강성 팬덤은 비명계 의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이들은 문자폭탄과 팩스 돌리기, 댓글 테러 등의 수단으로 이 대표를 견제하는 세력을 공격했다.

강성 팬덤의 공격을 경험한 한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는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안 쓰이기도 하고 반반이다. 그러나 의원실 직원들이 힘들어 할 때는 조금 위축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친명계 의원들 중심으로 지도부 완전 장악
안 그래도 힘들었는데…설 자리 없는 비명계


이 대표의 팬덤이 의원들의 언로를 막고 있다는 지적에는 민주당 내 대부분의 인사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 대표의 강성 팬덤은 친문 의원들의 지지자들과 본질적으로 결합할 수 없는 세력이다. 이들은 ‘개혁’을 위해서 이 대표가 필요하고, 친문 의원들은 구태 세력이라 생각해 적으로 인식한다.

‘구태’에 ‘적’이 돼버린 친문 의원들은 어떤 행보를 해도 이 대표의 팬들에게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의 출마를 말린 것은 친문계 좌장들뿐만 아니다. 지난 6월22일 재선 의원 34인은 비공개 간담회 후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 발표를 맡은 송갑석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가 계파 간 세력 싸움이 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며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는 분들은 전당대회에 나서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선언했다.

이날 입장문에 구체적으로 이름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당시 언론은 친문의 핵심인 홍영표·전해철 의원 및 86세대의 대표 격인 이인영 의원 등과 함께 이 대표에 대한 불출마 요구로 풀이했다. 

이렇게 많은 반대를 이겨내고 나온 이 대표에게 이제 칼자루가 쥐어졌다. 공천권이라는 칼이다. 대표가 된 이 의원은 친명계로 가득찬 최고위원들과 함께 본인의 입맛대로 민주당을 구성할 권리가 생겼다.

<일요시사>가 만난 민주당 인사 대부분 이 대표가 ‘뒤끝’이 있는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겉으로는 통합을 외치지만 결국 자신과 갈등을 빚었던 의원들을 ‘용서하지 않을’ 성격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한 비명계 의원실의 보좌관은 “이 의원은 대선 때 적극적으로 도왔던 의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지역구를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딱히 비명계에 대한 견제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대표가 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일요시사>에 귀띔했다. 

그러나 분당의 가능성은 낮게 봤다. 이 대표의 ‘견제 행보’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분당까지 가기에는 동력도, 명분도 부족하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게다가 기존 정당을 이탈한 정치세력이 국민들에게 사랑받기란 쉽지도 않다.

그간 국내 헌정 역사에는 이해관계가 틀어져 분당한 사례가 수차례 있었다. 

방아쇠
당기나

3당 합당 당시 쪼개졌던 민주당이 그랬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의 열린우리당이 그랬으며 2009년 친이(친 이명박)계의 공천 학살로 떨어져 나왔던 ‘친박연대’가 있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새누리당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쪼개졌다.

그간 정당 역사상 분당에는 ‘명분’과 ‘리더’라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보통 분당한 정당은 성공을 이루진 못했지만 몇몇 성공적인 사례가 있다. 신한국당에서 쪼개져 나왔던 ‘한나라당’이 대표적이다.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YS의 영향력 아래에서 자연스레 상도동계 의원들 또한 신한국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심판하고 금융실명제 등을 실시해 인기가 높았던 YS 덕분에 신한국당의 상도동계 의원들은 당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이들의 영화는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며 끝이 났다.

국가가 부도나며 생활에 큰 타격을 입자 국민들이 비난의 화살을 일제히 대통령에게 돌렸기 때문이다. 이때 YS는 역대 정부 중 가장 심한 레임덕을 앓았다고 평가받는다.

대통령의 추락과 함께 신한국당 내부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상도동계 의원들이 중심이 된 지도부는 힘을 잃어갔고, 다음 총선에 대한 대비도 전무한 상태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신한국당 내에서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던 이 전 총재는 YS의 인기가 떨어지자 보수의 새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의 슬로건도 ‘삼김 청산’이었고, YS를 포함한 기존의 ‘구태 보수’를 개혁하자는 뜻을 신한국당과 유권자들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썩소와 
박수갈채


이런 강력한 리더가 등장하자 ‘신한국당 분당설’이 점차 힘을 받게 된다. YS의 영향력이 강한 당을 해체하고 이 전 총재를 중심으로 새판을 그리자는 전략이 의원들에게 먹혀들어 갔다.

당시 보수당에 몸담던 의원들 또한 본인의 다음 공천을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천 자체도 받기 힘들뿐더러 공천을 받는다하더라도 인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신한국당을 국민들이 외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 전 총재는 결국 ‘한나라당’을 창당하게 된다.

그가 창당한 한나라당은 한국 역사상 가장 큰 전성기를 누린 보수정당으로 회자되고 있다. 지금의 국민의힘 역시 이때 이 전 총재가 창당한 한나라당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창당을 단행하며 YS 계파인 상도동계를 적으로 돌리고 강경보수 세력인 공화계, 민정계와 손을 잡았다.

이런 탓에 기존의 기치였던 ‘보수 개혁’에 대한 명분은 약해졌다. 그러나 선거에서는 승승장구했다. 4회 지방선거와 17대 총선, 그리고 4년 뒤 18대 총선까지 한나라당은 내리 3연승을 기록했다. 한때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지지율과 30~40%가량 꾸준히 차이를 벌리며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한나라당은 보수의 염원으로 여겨졌던 정권교체도 이뤄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내리 패하며 10년간 정권을 잃은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내세우며 정권을 되찾아오려 노력했다.

당장 리더 있어야 하는데…
이낙연 전 대표 귀국 주목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선거 구호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어 갔고 경제위기와 북핵 문제 등이 겹치며 보수정당이 호재를 탔다. 결국 이 후보는 당시 민주당 정동영 후보를 큰 표 차이로 따돌리고 정권을 보수 지지자들에게 돌려줬다.

이는 한나라당의 성공적인 분당 사례로 남아있다. 당시 성공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당을 가능케 했던 것은 역시 이회창의 ‘존재감’과 다음 총선에 대한 의원들의 ‘두려움’이었다.

현재 민주당은 현재 공천 학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의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자 공격을 한번이라도 받은 친문 의원은 본인이 ‘개혁 대상’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고, 대립각을 깊게 세운 의원들은 ‘확신’하고 있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았던 의원이 대다수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분당을 이끌 ‘이회창’과 같은 리더는 찾아볼 수 없다. 친문계의 리더라고 인식되는 이낙연 전 대표는 현재 미국에 가 있고 정세균 전 총리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분당을 이끌만한 리더들이 모두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이 전 대표가 분당의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 이사장의 임기는 2025년까지여서 2024년 총선 전에 분당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 전 대표의 귀국 시점은 내년으로 잡혀 있다. 전당대회가 끝나고 세력 싸움이 한창일 무렵, 이 전 대표의 복귀가 예정돼있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은 세가 약해진 조직이지만 분명한 리더 한 명이 나타날 경우,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며 “이낙연 전 대표가 됐든, 다른 새로운 리더가 됐든 공천 학살이 일어나는 시점이 분당의 시점이 될 것”이라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그의 말대로 비명계는 상황을 뒤집을만한 힘이 다분하다. 민주당 내 헤게모니를 차지한 기간이 무척 길었던 점이 있고, 아직도 민주당 의원의 과반 이상이 비명계로 분류돼있기 때문이다.

모델은 
한나라당?

민주당은 그동안 네 번이나 분당을 경험한 바 있다. 그때마다 진보정당의 입지는 줄었고 선거에서 늘 불리한 조건으로 보수정당을 상대해야만 했다. 이 대표는 본인이 민주당의 리더가 되면 그간의 계파 갈등을 모두 청산하고 의원들을 하나로 품을 것이라고 수차례 공언해왔다. 이제 그 ‘말’을 ‘행동’으로 보여줄 차례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국민의힘 분당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전면전 선포로 일각에서 국민의힘 측에도 분당설이 제기된 바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말, 권성동 원내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간의 사적 대화가 언론 카메라에 공개되며 한차례 고역을 치룬 바 있다.

유출된 문자메시지 내용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권 원내대표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고 전했다.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고 잠행을 이어가던 이 전 대표는 해당 문자가 보도되자마자 잠행을 깨고 다시 내부 총질을 시작했다.

지난 22일에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탄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을 행해 ‘이XX 저XX’하던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려고 부단히 뛰었던 제 심정이 진정한 선당후사”라며 장제원, 권성동 등 윤핵관을 향해 다음 총선에서 험지로 출마해 당선해오라는 주문을 했다. 그것이 자신과 국민들이 인정하는 진정한 선당후사라는 것이다.

이 전 대표가 대통령과 윤핵관들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 전 대표가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흘러나왔다.

국민의힘에서 입지가 좁아진 이 전 대표가 본인 중심의 새로운 보수정당을 출범시켜 아예 새 판을 짤 것이라는 분석 아래서다.

그러나 이 전 대표의 측근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며 “이미 한 번 새 보수정당을 출범했다가 망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확실시 되자 유승민·장제원 의원 등과 함께 바른정당을 만들어 새 정치를 꿈꿨던 바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바른정당을 외면했다. 기존 보수 지지층은 여전히 새누리당을 더 지지했고, 중도 지지층은 더불어민주당으로 급격히 쏠려갔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분당이 불가능한 또 다른 이유로 이 전 대표의 ‘리더십 상실’을 들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국민의힘 내부 당심은 이 전 대표에게 좋지 못한 상태다.

이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물러간 후 ‘이핵관’이라 불렸던 그의 세력이 와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일요시사>에 알려왔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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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