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위기’ 무너지는 성남제일초교, 왜?

땅 내려앉고 벽 갈라져도…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경기도 성남제일초등학교에서 ‘등교 거부 사태’가 빚어졌다. 노후화된 학교 시설 여러 곳에서 균열이 발견된 가운데, 학부모들은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학교 측은 당초 이를 수차례 부인하다가 전문가 경고 이후 태도를 바꿨다. 안전 검사 결과를 근거로 ‘수수방관’하던 교육지원청과 시청 등도 ‘뒷북 대응’ 행렬에 따라나서는 모양새다.

성남제일초등학교(이하 제일초)는 1969년 11월 문을 열었다. 오르막길에 세워진 제일초는 높이 4m 이상, 길이 200m에 달하는 옹벽이 학교 삼면을 감싼 구조다. 개교 53년째, 역사를 함께한 건물과 옹벽도 어느덧 낡은 시설이 됐다. 오래된 연식과 인근 아파트 공사가 맞물리자, 시설 안전 문제가 차츰 수면 위로 부상했다.

붕괴 위험

2018년 아파트 공사가 시작된 이래로, 학교는 꾸준히 금이 갔다. 학부모들은 2020년 2월부터 학교 측에 꾸준히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들은 그해 1월, 별관 4층 화장실 벽에 균열이 생긴 걸 뒤늦게 알았다. 이후 학교에선 간담회를 거쳐 지반 검사, 보강공사 등을 실시했다.

검사 결과만 놓고 보면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제일초 학부모회 관계자는 “당시 LH가 학교 건물은 ‘내진 보강이 필요한 수준이나 주시하면 된다’고 했고, 옹벽은 ‘균열이 발견돼 보강이 필요하지만, 추가적인 균열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며 “이 말대로라면 지금 문제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급기야 학교는 공사 일정과 내용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기 시작했다. 학부모 항의가 계속된다는 게 이유였다. 관련 내용은 당시 학부모회 회장과 운영위원장 등에게만 한정적으로 전달됐다. 일반 학부모가 LH에 직접 문의하고서야 공사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난해 들어 교장이 바뀌었지만, 답답한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여전히 적절한 조치보다 납득 못할 해명이 앞섰다.

지난 4월, 별관 화장실에 재차 균열이 발생했다. ‘단순 외부 균열’이라는 해명으로 흐지부지 넘어간 지 한 달 뒤, 건물에선 물이 나오지 않았다. 성남시청과 성남교육지원청은 각각 인근 공사장과 급식실 용수 과다 사용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려앉는 땅과 금 간 옹벽, 그리고 단수 현상을 떼놓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50년 된 옹벽 붕괴?…학교 건물·도로에도 균열
지반 침하·단수 사태에도 “안전 점검 이상 무” 

학부모회 관계자는 “바로 옆에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공사장·급식실에서 물 좀 썼다고 단수될 정도면 (아파트)입주 후에는 단수 문제가 심해질 것 아니냐”며 “하중 문제로 중단됐던 물탱크 설치 방안을 누더기로 고칠 생각보다, 제대로 된 단수 원인을 파악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부터는 건물 하부균열과 지반 침하현상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별동 건물과 지반 사이에는 성인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큰 구멍이 발견됐다. 본관 쪽 고압전기시설 안전망은 이미 10도가량 휘었다. 

결국 학교는 학부모 요청에 따라 별관 교실을 본관으로 이전했다. 이번 2학기부터는 전교생이 본관에서 수업을 듣게 됐다. 


이런 가운데 옹벽 붕괴 징후는 계속 포착됐다. 옹벽 석축의 토사가 유실되면서 나무뿌리 일부가 드러나고, 갈라진 옹벽 틈새에는 이끼가 자랐다. 이에 학부모들은 학교·교육지원청·시청에 재차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여전히 “문제없음”이었다.

관련 기관들이 주된 근거로 삼은 것은 이번에도 ‘안전 점검 결과’였다. 제일초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시행된 정밀 안전 점검·진단에서 줄곧 ‘B등급’을 받았다.

교육지원청 자료에 따르면 B등급은 ‘보조부재에 경미한 결함이 발생했으나 기능 발휘에는 지장이 없으며, 내구성 증진을 위해 일부 보수가 필요한 상태’다. 2020년 한 차례 C등급을 받은 바 있지만, 일부 보수공사를 거친 뒤 곧바로 B등급으로 복귀했다. 지난 2월 실시한 점검에서도 B등급이 나왔다. 

제일초 건물과 도로·옹벽에 간 금이 점차 늘어가는 중에도, 검사 결과는 꿋꿋이 안전을 담보하고 있었던 셈이다.

참다못한 학부모 등교 거부…전교생 절반 동참 
학교 측, 무단결석 처리하려다 뒤늦게 번복

결국 학부모들은 지난 22일부터 등교를 거부했다. 총 400여명(병설 유치원생 포함)에 달하는 전교생 중 절반 수준인 약 200명이 학교에 가지 않았다. 이튿날인 23일에도 비슷한 수가 결석·조퇴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가 남긴 소견이 등교 거부운동의 신호탄이 됐다. 그는 지난 21일 제일초를 직접 찾아 “옹벽 붕괴는 이미 진행 중”이라며 “지금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국내 토목공학 분야 최고 권위자로, 2011년 우면산 산사태와 2018년 상도유치원 붕괴 사태를 미리 경고한 바 있다.

학부모회는 학교 측에 진상파악과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학부모회 관계자는 “안전불감증 가득한 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순 없었다”며 “그동안 여러 번 문제 해결을 요청했음에도 진전된 건 없었다”고 토로했다.

학교 측은 ‘무단결석’ 처리로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일부 학부모는 ‘가정체험학습’을 신청했지만 반려됐다. 가정체험학습은 원칙적으로 사흘 전에 신청해야 하는데, 전날이나 당일 신청하는 것은 절차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학부모회 일각에선 학생들을 무단결석 처리한 대목에서 학교 입장을 엿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침상 결석은 인정 결석과 미인정 결석으로 나뉜다. 인정 결석이란 여러 사유에 따라 결석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경우로, 결석에 따른 불이익이 사실상 없다. 미인정 결석은 이와 배치되며, 무단결석은 미인정 결석에 속한다.

문제는 인정 결석의 범위가 교장 재량에 따라 폭넓게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 시설 안전 문제로 결석한 학생에게 인정 결석 대신 무단결석이 주어진 건, 안전 문제를 사실상 부인한 걸로 읽힌다는 게 일각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학교 측이 내세운 안전 점검 결과의 신뢰성을 의심한다. 그는 지난 22일 49페이지에 달하는 자문 의견서를 공개하며 붕괴 위험성을 거듭 경고했다. 해당 의견서에 따르면 앞선 안전 점검은 옹벽 붕괴 진행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의견서 내용을 종합하면 그간의 안전 점검은 ▲조사 표본 수가 부지 규모에 비해 매우 불충분했고 ▲옹벽 석축 인근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석축 뒤쪽 지질 상태를 파악하지 못했으며 ▲균열·침하 현상에 대한 원인 규명이 부족했다.

이수곤 교수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아”
관련 기관 이 교수 나서자 황급히 태세 전환

이 교수는 인근 아파트 공사를 옹벽 붕괴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각종 징후를 종합해볼 때, 인근 아파트 공사와 옹벽 붕괴 현상 사이에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며 “옹벽이 붕괴되면서 지반 균열과 침하, 단수 현상 등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석축 인근에서 지하 터파기 공사가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며 “공사 중 보강공사를 했다고는 하지만, 석축 곳곳에서 균열과 튀어나온 지점이 발견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제일초 옹벽은 철저한 보강공사가 시급하며, 일부 보수보다도 전면 개축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짚었다.

자문 의견서가 전달된 뒤, 학교와 교육지원청은 태세를 완전히 전환했다. 제일초는 다시 내부 협의를 거쳐 학생 출석 여건을 보장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교육지원청 역시 문제 재진단을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제일초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출석 문제는 ‘기타 인정 결석’으로 처리하기로 다시 협의했다”며 “결석 기록을 꺼리는 학생은 가정체험학습으로 돌릴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안전 점검을 재차 시행하기 위해 교육지원청과 계속 협의 중”이라며 “‘그린스마트 학교’로 선정돼 2025년 리모델링을 앞둔 만큼, 안전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제일초는 내부 협의를 통해 온·오프라인 동시 수업을 추진하고 있다. 학교에 나오지 않은 학생들도 온라인으로 실시간 수업을 듣도록 해 교육여건을 보장한다는 구상이다.

성남교육지원청 관계자는 “2020년에 이어 올해도 관련 민원이 있어 각종 조사와 간담회를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었다”며 “안전 검사 결과에 대한 반박이 제기된 만큼, 시청과 LH 등에 공문을 발송해 관련 절차를 다시 밟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해당 사안은 경기도교육청까지 보고가 올라간 사안”이라며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사태를 파악하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임 교육감은 지난 23일 오후 제일초를 찾아 학부모 간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교육감 간담회 자리에서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학부모들은 간담회에서 교육청에 “점검 대신 옹벽 개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정밀검사를 진행한 뒤 결정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대신 “교육청과 학부모 측이 각각 검사 업체를 선정해 비교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학부모들은 “다른 이들도 교육청 제안에 동의할지, 학부모 전체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외에도 간담회에서는 ▲학교 건물 그린스마트 개축 ▲학생 긴급 이동 공간 확보 ▲전기시설 균열 임시 보수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교육청은 이마저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사실상 반려했다. 등교 역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별관·옹벽 등과 달리 본관 건물은 안전하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관련 기관들이 문제를 다시 살피고는 있지만 “사실상 답보 상태의 연장선일 뿐”이라는 불만도 제기된다. 모두 엄중한 상황을 인식했음에도, 시원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곳은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학부모 사이에선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한 학부모는 “기관에서 검토한다는 것도 재점검 여부를 가리키는 것이지, 개축 여부를 논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이번에는 학생 안전을 위한 조치가 최대한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가운데 최근 성남시청 홈페이지 ‘행복소통청원’ 게시판에는 제일초 관련 청원이 수차례 올라왔다. 그중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청원은 접수 나흘 만에 지지수 2100건을 넘겼다. 현재 진행 중인 청원 중 최고치다. 청원인은 게시글에서 ‘학교 시설 폐쇄 및 안전지대 임시 모듈러 교실 설치’와 ‘지반 기초 다지기’ ‘본관과 별관 개축’ 등을 요청했다.

“성남시청
대답해야”

성남시청은 조만간 해당 청원에 대한 ‘답변 영상’을 게시할 것으로 보인다. 성남시청에 따르면 청원 접수 후 30일간 2000명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청원이 성립된다. 성립된 청원은 관련 부서 검토를 거친 공식 답변을 받을 수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토목 전문가 이수곤 교수
“반복되는 붕괴 원인은 시스템 부재”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27년이 지났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붕괴 위기·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올해만 해도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사고,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 등이 터졌다. 무엇이 문제일까.

전문가는 ‘구조’에서 원인을 찾는다.

개인의 안전불감증보다도 정확한 상황 진단을 막는 점검 체계 자체가 문제라는 의미다.

이 같은 사실은 이번 ‘성남 제일초 붕괴 위기’ 사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정밀 점검 결과가 기존과 다르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모두들 당시 (점검을) 주관했던 직원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겠느냐”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시스템이 미비한 것이지, 정해진 대로 따른 사람에게 책임을 다 떠넘겨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재난관리 시스템은 형해화 상태다. 안전 점검을 할 때 크로스체크가 이뤄져야 하고, 또 이중삼중의 그물망으로 촘촘한 체계가 필요한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며 “공무원들도 업무 범위를 벗어나 판단·행동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놓고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 ‘실수’로 모는 행태는 너무 야박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사고가 난 뒤 누구 잡아 처벌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가장 중요한 건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라며 “재난 관리 시스템 아래 예방 대책이 마땅치 않다. 담당 인력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도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운>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