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한국인 최연소 PGA 우승 20세 김주형

허세 아닌 기세…우즈보다 빠르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첫 홀부터 큰 실수를 범하고도 평정심을 유지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20세의 어린 골프선수에게 쿼드러플 보기의 ‘충격’은 오히려 약이 된 듯하다. 김주형은 쿼드러플 보기 이후 오히려 집중력을 되찾으며 선전했다. 마지막 날에는 완벽한 경기력을 뽐내며 역전 우승을 일궜다. 한국 최연소 PGA 우승 기록을 경신하는 순간이었다.

김주형은 지난 8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의 세지필드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윈덤 챔피언십 최종 합계 20언더파 260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4라운드에서 9언더파를 몰아친 결과였다.

흔들린 시작
완벽 마무리

연이은 ‘강행군’이었다. 이번 시즌 김주형은 차기 시즌 PGA투어 출전권을 획득하기 위해 잰걸음을 이어왔다. 김주형은 지난달 스코티시 오픈에서 3위를 차지하며 PGA투어 임시 특별회원 자격을 얻었다. 세계랭킹 상위권 선수 대부분이 참가해 ‘페덱스컵’ 포인트 배점이 높은 대회였다.

임시 특별회원은 PGA투어 무제한 출전이 가능하다.

김주형은 디 오픈 대회를 치른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3M 오픈, 로켓 모기지 오픈에 출전했다. 윈덤 대회까지 5주 연속으로 대회에 참가한 셈이다. 긴 이동거리에 더운 날씨까지. 아무리 젊은 피라고 하더라도 체력적 부담이 우려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도 김주형은 지난주 로켓 모기지 오픈에서 단독 7위라는 호성적을 거뒀다. 차기 시즌 PGA투어 출전권을 사실상 확보했음에도, 그는 정규 시즌 마지막 대회인 윈덤 대회 출전을 강행했다. 혹시 모를 변수를 완벽히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불안했다. 1라운드 1번 홀에서 샷 미스가 나왔다. 김주형은 고전 끝에 쿼드러플 보기를 범했다. 한 홀에서 무려 4타를 잃은 것인데, 프로 수준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다.

체력 부담 속에 출전했던 잃을 것 없는 대회로 시작부터 최악의 실수까지 범했다면 포기할 법도 했다. 하지만 김주형은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후 1번 홀 이후로 단 한 개의 보기도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버디만 7개를 잡아내며 1라운드를 3언더파로 마쳤다.

김주형의 약진은 2라운드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2라운드에서 6언더파를 몰아쳤다. 단숨에 선두권으로 올라선 김주형은 악천후 속 펼쳐진 3라운드에서 더 줄이며 공동 3위를 수성했다.

컷 통과로 PGA투어 출전권은 이미 확보한 상황. ‘톱(TOP)10’만 기록해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김주형은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쿼드러플 보기’ 딛고 역전 우승 성공
임시 회원에서 정식 회원으로 발돋움

김주형은 최종 4라운드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과시했다. 앞선 라운드에선 다소 흔들렸던 샷은 점차 정교해졌고 높은 퍼트 정확도도 눈길을 끌었다.


김주형은 2번 홀부터 6번 홀까지 매 홀 버디 이상을 기록했다. 5번 홀에서 터진 이글까지 묶어 5개 홀에서 단숨에 6타를 줄였다. 당시 2타 앞서 있던 임성재를 제친 것도 모자라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후반에도 집중력이 빛났다. 김주형은 무리하지 않고 파를 잡는 전략을 취했다. 이미 벌려둔 격차를 활용하는 경기 운영이었다. 하지만 버디 기회가 왔을 땐 놓치지 않았다. 김주형은 3~4타 차이를 줄곧 유지해냈고, 결국 ‘챔피언 조’ 경기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 우승으로 김주형은 여러 기록을 새로 썼다. 그는 20세 1개월17일로 역대 한국인 PGA 우승자 중 가장 어리다. 김주형의 ‘우상’인 타이거 우즈보다도 빨랐다. 우즈는 20세 9개월6일의 나이에야 첫 우승을 맛봤다.

PGA투어 전체에선 조던 스피스(미국, 19세11개월14일)에 이어 2번째로 어린 우승자가 됐다. 김주형은 PGA투어 최초의 2000년 이후 출생 우승 선수이기도 하다.

또 PGA투어 역대 처음으로 1라운드 첫 홀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기록하고도 역전 우승에 성공한 주인공이 됐다. 앞서 김주형은 한국남자프로골프투어(KPGA) 코리안투어 최연소 우승(18세21일), KPGA 입회 후 최단 기간 우승(3개월17일) 등 국내 각종 기록을 갈아치운 바 있다.

김주형은 윈덤 대회를 통해 PGA투어 정식 회원이 됐다. 향후 2시즌간 PGA투어 출전권을 보장받는다. 그의 영어 이름은 톰 김이다. 애니메이션 <토마스 더 트레인(토마스와 친구들)>의 주인공인 장난감 기차 ‘토마스’의 이름을 땄다. 김주형이 각별히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알려졌다.

미국 언론은 김주형을 버디 트레인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높은 적응력
두둑한 배짱

김주형은 17세 때 프로 골프선수가 됐다. 선수 생활 초반에는 주로 아시안 투어에서 활동하다 2020년 코로나 유행을 계기로 국내로 돌아왔다. 지난해 KPGA와 아시안투어에서 동시에 상금왕에 올랐다.

올 시즌에는 처음부터 PGA투어 진출을 목표로 잡았다. 해외 투어에 나선 그는 아시안 투어에서 2승을 거두고, PGA 챔피언십과 US오픈 등 메이저대회에 참가했다. 결국 그는 임시 특별회원 자격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임시 회원 자격이 대회 출전에 큰 도움을 준 건 아니었다. 김주형은 시즌 말에 다다라 임시 특별회원이 됐다. 플레이오프를 제외하면 남은 대회는 3개뿐. 하지만 결과적으로 김주형이 특별회원이 될 점수를 얻은 건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는 얻어낸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김주형은 이번 시즌 PGA투어 9개 대회에 참가했다. 그중 메이저대회를 제외한 순수 PGA 투어 대회는 6개뿐이었다. 지난 12일부터 나흘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TPC 사우스 윈드에서 열리는 페덱스 세인트주드 챔피언십에 나섰다. PGA투어 플레이오프 첫 대회다.


기세는 한껏 오른 상태다. 임시 특별회원 자격으로 출전한 김주형이 올 시즌 플레이오프에 출전할 방법은 ‘우승’이 유일했다. 김주형은 누구도 쉽게 낙관할 수 없었던 ‘경우의 수’를 뚫고 티켓을 확보했다. 김주형의 자신감이 ‘허세’가 아니라 ‘기세’인 이유다.

플레이오프 대회는 PGA투어가 메이저대회 이외의 대회에도 흥미를 높이기 위해 만든 제도다. 정규 시즌 성적을 기준으로 페덱스컵 포인트 상위 125위 안쪽에 진입한 선수만이 출전 자격을 부여받는다. 플레이오프 대회는 내로라하는 PGA투어 선수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만이 나설 수 있는 무대라는 의미다.

갓 스물이 된 김주형에게는 큰 경험이 될 대회다.

참가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출전 명단이 화려하다. 이번 시즌 4승을 쓸어담고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한 스코티 셰플러(미국)부터, 캐머런 스미스(호주), PGA투어 2승을 챙긴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 톱랭커가 모두 나선다.

다음 도전
어디까지?

이들은 대부분 지난주 열린 윈덤 대회를 건너뛰었다. 이미 플레이오프 출전권을 확보한 상황에서 무리하기보다는 휴식을 취하는 전략이었다.


PGA투어 2시즌 출전권을 확보한 김주형은 앞으로 톱랭커들과 수없이 경쟁해야 한다. 더 큰 목표를 이뤄내려면 경쟁을 뚫고 우승을 노려야 한다. 김주형에게 이번 플레이오프는 향후 2시즌의 메이저대회를 준비하는 ‘모의고사’인 셈이다.

김주형의 강점은 높은 적응력과 두둑한 배짱이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이미 세계 곳곳을 다니며 골프를 배워왔다. 지난달 스코티시 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선 잰더 슈펠레‧패트릭 캔틀레이(미국), 토미 플릿우드(잉글랜드) 등과 우승 경쟁을 벌였다.

같은 대회에 출전했던 스미스와 조던 스피스(미국)는 공동 10위로 오히려 김주형보다 순위가 낮았다.

압박감도 크게 줄었다. 김주형은 임시 특별회원 자격을 얻은 이후로도 PGA투어 출전권을 확보하기 위해 5주 연속 대회에 출전했다. 체력적 부담에 압박감까지 더해져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하지만 김주형은 압박감을 내려놓고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그는 사실상 PGA투어 출전권 획득을 확정하고 참가한 윈덤 대회에서 보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정상에 올랐다.

김주형은 이번 대회까지 총 6주 연속 경기에 나서는 중이다. 체력 부담은 어느덧 ‘상수’가 됐다. 하지만 윈덤 대회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극복한 것처럼, 자신감과 집중력이 최고조에 오른 김주형에게 체력 문제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던 스피스 이어 2번째 어린 우승자
체력적 한계 딛고 플레이오프도 기대

이번 대회에는 기존 정규 시즌 대회보다 더 많은 페덱스컵 포인트가 걸려 있다. 통상 대회 우승자는 500점을 받는다. 하지만 이번 대회 우승자는 그 4배인 2000점을 획득한다. 우승자 이외의 상위 랭커들도 더 많은 점수를 받게 된다.

이 대회 결과는 다음 주에 열리는 플레이오프 2차전 BMW 챔피언십 출전과 직결된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125명 중 55명이 탈락하고, 상위 70명만 2차전에 진출한다. 같은 방식으로 BMW 챔피언십을 거쳐 최종 투어 챔피언십에 나서는 선수는 절반 이하인 30명이다.

김주형의 세계랭킹도 급등했다. 김주형은 대회 종료 후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평균 3.8837점을 기록하며 21위에 안착했다. 한 주 만에 34위에서 순위가 13계단이나 올랐다.

플레이오프 선전도 점쳐졌다. PGA투어는 홈페이지에서 세인트주드 챔피언십 파워랭킹을 공개했다. 김주형은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때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욘람(스페인)보다도 한 계단 위다.

PGA투어는 김주형을 “쿼드러플 보기로 1라운드 1번 홀을 시작하고도 5타 차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골프에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20세 선수”라고 평했다. 

페덱스 랭킹 34위인 김주형은 1라운드를 35위 셉 스트라카, 36위 케빈 키스너와 같은 조로 출발했다. 평소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한다는 PGA투어 ‘코리안 브러더스’ 중에서도 네 살 차이인 임성재와 김주형은 ‘골프 형제’라고 불릴 정도로 가깝다. 김주형에게 우즈가 우상이라면 임성재는 옆에서 본받고 따르는 친한 형이다. 

김주형은 우승 직후 임성재를 두고 “성재 형처럼 우승하고 싶었다”며 “평소 ‘형, 이거 이런 느낌 어때요?’ ‘형, 이런 공 칠 때 어떻게 해요”’라고 물으면 형은 참 자상하게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형에게 많이 감사하다. 제가 한 번 밥을 사야 한다”고도 전했다.

빛나는 오늘
기대되는 내일

당시 임성재는 동생 김주형에게 역전패를 당하고도 환하게 웃었다. 그는 “승부의 세계에서는 늘 이기고 지는 일이 반복된다”며 “PGA투어 특별 임시 회원 신분인 김주형이 우승해 정말 행복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정말 자랑스럽다”며 칭찬했다. 둘은 윈덤 대회에서 각각 우승, 준우승하면서 새로운 진기록을 일궈냈다. PGA투어에서 한국 국적 선수가 우승·준우승을 독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경기당 3억원’ 돈방석 앉은 김주형

김주형이 PGA투어 9경기에 출전해 33억원을 벌어들였다. 단순 계산하면 대회당 3억원 이상을 챙긴 셈이다.

김주형은 지난 8일 끝난 PGA투어 정규시즌 최종전인 윈덤 챔피언십에서 우승상금 131만4000달러(한화 약 17억원)를 받았다.

시즌 상금은 252만9338달러(약 33억원)까지 늘었다. 김주형은 상금 랭킹 44위에 올랐다.

김주형은 지난해 10월 CJ컵부터 본격적으로 PGA투어 경기에 나섰다.

그는 지난주 윈덤 챔피언십까지 9개 대회에서 컷을 8번 통과했으며 최종 10위 안쪽에는 3번이나 드는 등 호성적을 거뒀다.

김주형은 더 많은 상금이 걸린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에 출전 중이다.

현재 페덱스컵 랭킹은 34위.

2차전인 BMW챔피언십까지는 무난히 출전할 것으로 점쳐진다.

만약 30명만 출전할 수 있는 투어 챔피언십까지 뛸 수 있다면, 지금까지 벌어들인 상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전망이다.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1~2차전에는 각각 1500만달러(약 196억원)씩 상금이 걸려 있다.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 상금은 추후 결정된다.

하지만 김주형은 돈에 크게 연연하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김주형은 최근 PGA투어 관련 인터넷 라디오방송 <siriusXM>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얼마나 번 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계좌를 확인하지 않았다”며 “타이거 우즈도 그랬을 것이다. 플레이를 잘하면 모든 건 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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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