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람에 충성하는 조직을 넘어 조직에 충성하는 국민의힘을 불태워 버려야 한다”며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을 공격했고, 내부 총질 문자 관련 윤석열 대통령의 지도력 위기까지 언급하면서 곧 후폭풍이 불 것이라고 밝혔다.
긴급 기자회견치고는 꽤 긴 62분 동안의 이 대표 발언을 들으면서, 혹시 이 대표가 신당 창당도 염두에 두고 가진 기자회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나면 선거를 승리로 이끈 정당 내에서 대통령 핵심세력이 항상 당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세를 규합했다. 그리고 핵심세력에 들지 못한 세력이 탈당 후 신당 창당을 하거나, 아니면 대통령 핵심세력이 아예 새로운 세력을 모아 신당을 창당해왔다.
김영삼(YS)정부를 탄생시킨 민자당 때는 대선 후 YS 핵심세력인 민주계가 당권을 장악하자, 결국 김종필계가 탈당해 자민련을 창당했고, 김대중정부를 탄생시킨 새정치국민회의 때는 대선 후 전국 정당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YS 핵심세력이 뭉쳐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다.
노무현정부를 탄생시킨 새천년민주당 때도 당내 주류가 아닌 노 대통령 핵심세력이 주류측과 개혁 방향을 놓고 엇박자를 내자, 여야 개혁 성향 의원들이 모여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이명박(MB)정부를 탄생시킨 한나라당 때도 MB 핵심세력이 공천권을 휘두르자, 친박(친 박근혜)계가 탈당해 친박연대를 창당했고, 박근혜정부를 탄생시킨 새누리당 때도 박 대통령 핵심세력이 당을 장악하자, 비박(비 박근혜)계가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윤석열정부를 탄생시킨 국민의힘도 대선 후 윤 대통령 주변의 핵심세력인 윤핵관이 급하게 비대위까지 구성하면서 당권 장악을 시도하자, 이에 이준석 대표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당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언론은 현재 집권 초기 국민의힘의 비대위 체제를 우리나라 정당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기사화하고 있지만, 위에 열거한 우리나라 집권 초기 여당발(發) 신당 창당 역사를 보면 다른 때보다 조금 빠를 뿐이지 당연한 수순에 불과하다.
현재 국민의힘에서 내분이 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걱정보다 향후 대통령 핵심세력이 새로운 신당 창당을 할 것인지, 아니면 핵심세력에 밀린 세력이 탈당 후 신당을 창당할 것인지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정치사가 지금까지 매번 그런 식으로 흘러왔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후보측이 선대위를 6개 총괄본부로 설계할 때 이준석 대표는 “윤 후보의 선대위가 이기기 위한 방식을 취한 게 아니라 정계개편 같은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는 기획인지 의심이 간다”며 대선 승리 후 당 내 주도권 싸움을 예견했고, 당시 홍준표 의원(현 대구시장)도 ”윤 후보가 선대위와 병렬 조직으로 새시대준비위원회를 만든 것은 신당 창당을 염두에 둔 것 같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원래 정가에서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내 확실한 기반 위에 대선후보가 된 게 아니고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의 지지로 후보가 되어 대선까지 승리한 경우라 윤핵관이 당정 문제에 조금만 깊이 개입해도 당 내분과 함께 당이 갈라질 수도 있다고 예상해왔다.
그리고 정가의 말마따나 윤석열정부 100일을 눈앞에 둔 현재 국민의힘 내에서는 내분과 함께 윤핵관 중심의 ‘헤쳐모여’ 신당 창당설 소문이 돌고 있고,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도 “윤핵관이 당을 장악하면 이준석과 유승민이 손잡고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까지 윤핵관은 신당 창당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고 있고, 이 대표는 “신당 창당은 없다”며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지만, 집권 초기 여당발 분당을 많이 경험해온 우리 국민은 이를 믿지 않는다. 신당 창당 시기가 언제일지에만 더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언론도 신당 창당을 염두에 두고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표가 낸 비상대책위원회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인용 여부가 분당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본다. 인용 여부에 따라 윤핵관이나 이 대표 중 누군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처분 신청 심문은 오는 17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다.
만일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할 경우, 당 윤리위 징계와 비대위 전환 후 당 대표직 자동 상실 상황이 뒤집혀 이 대표의 당내 입지가 살아나면서 윤핵관과 갈등을 빚게 될 것이고, 결국 윤핵관 중심으로 ‘헤쳐모여’ 신당 창당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것이다.
그러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경우, 이 대표는 자신이 몸담은 당을 향해 법적 대응을 한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것이고, 결국 이 대표는 거대 여당 국민의힘을 상대로 법정 공방과 여론전을 펼치다가 2024 총선 전 탈당 후 신당 창당이라는 정치공학적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핵관과 이 대표는 지금까지 집권 초기 당 내분을 못 이겨 새 정부의 국정운영에 도움을 준다는 명분으로 대통령 핵심세력이 신당을 창당해 성공한 사례가 없었고, 영·호남이라는 탄탄한 지역 기반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의 핵심세력과 싸움에서 밀려 탈당 후 신당을 창당해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024 총선 전까지는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정부 실정과 국민의힘 내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점과 최근 8·28 전당대회를 앞두고 경선에서 이재명 상임고문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자, 공천권을 의식한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슬쩍 뒤로 빠지면서 민주당이 똘똘 뭉치고 있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는 점도 윤핵관과 이 대표가 명심해야 할 이유다.
하필이면 법원 심리가 열리는 17일은 윤 대통령 취임 100일이 되는 날이다. 이날 이후 국민의힘 내분이 어떤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느냐에 따라 윤정부의 향후 운명도 달라질 것이다.
오늘(16일)은 임시국회가 시작되는 날로 국민의힘이 회기 중 민생법안도 챙겨야 하지만, 비대위원 인선 발표와 함께 비대위가 본격적으로 출범하는 날이기도 해서 당장 당 내분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하는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어깨가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 이 기고는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