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 안희정 10년 큰그림

돌아왔다, 팔다리 묶인 채…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과거 더불어민주당에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차기 대권주자들이 넘쳐났다. 현재 민주당 내 대권주자는 이재명 의원 단 한 명만 언급된다. 상당수 주자들이 여론조작, 성폭행으로 사실상 정계에서 퇴출된 탓이다. 조만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돌아오는 가운데 다시 정치권에 발을 들일 수 있을까.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형을 마치고 오는 4일 만기 출소한다. 이날부로 안 전 지사는 여주교도소에서 3년6개월의 형기를 마쳤다. 측근 인사들은 안 전 지사가 출소할 때 여주교도소를 방문해 그를 맞이할 예정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안 전 지사는 형 집행이 종료된 이후에도 향후 10년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잘나가던
과거 시절

그는 성폭행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3년6개월형의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생활을 해왔다. 당분간 경기도 양평에 머물면서 침묵을 유지할 예정이다. 

안 전 지사는 성폭행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다음 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생운동을 했을 만큼 안 전 지사는 열정이 가득했다. 

대학 시절에는 반미쳥년회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출소한 이력도 있으며 이후 1989년 통일민주당 김덕룡 의원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첫발을 들였다.


199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3당이 통합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했을 때 거부하며 안 전 지사를 비롯한 18인이 잔류를 택한 바 있다. 19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 합류하면서부터 그는 줄곧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곁을 지켰다.

금강팀의 정무팀장으로 조직을 다지고 살림꾼 역할을 도맡아했다. 당시 안 전 지사의 별명이 좌희정이 됐을 정도였다.

당시 금강팀은 국회의원이었던 노 전 대통령을 대권에 도절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핵심 조직으로 베이스캠프와 다름없었다. 안 전 지사 역시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였다. 이 밖에도 이재명 (당시)성남시장을 비롯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김부겸 전 국무총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이 거론되면서 대권주자들이 넘쳐났다. 

노 전 대통령은 안 전 지사를 매우 아꼈다. 그가 정치권에서 다칠까봐 “정치 대신 농사를 짓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하기도 했고, 퇴임 전 인터뷰에서는 미안하다며 유독 애착을 드러냈다. 

그의 정치 인생은 노 전 대통령을 등에 업은 것과는 다르게 순탄치 않았다. 금강팀이 노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이른바 나라종금 사건이 터지면서 염동연 전 의원과 안 전 지사가 뇌물 수수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4일 만기 출소…10년간 피선거권 박탈
한때 문 차기 부상…몇 없는 안희정계


불법 대선자금 47억7000만원을 받고 자신의 아파트 중도금으로 1억6000만원을 쓴 사실이 드러나서다. 결국 2003년 말 구속됐고, 1년간 옥살이를 경험한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안 전 지사를 청와대 부속실장에 임명하려 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옥살이는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 감옥을 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친노(친 노무현)에서 영향력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만기 출소 뒤 안 전 지사는 정치적 자립을 시도한다. 사실 당시 안 전 지사의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였다. 

중앙 정치무대서의 커리어도 없었고, 친노 진영도 몰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추모 여론이 형성됐고, 이명박정부의 헛발질과 지지율 하락 속에서 참여정부가 재평가받으며 보수색이 짙었던 충남에 출마해 도정에 깃발을 꽂았다. 

연임까지 성공하며 안정적인 도정 활동을 인정받았고, 차기 대권주자로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 이후 잠잠했던 금강팀도 기지개를 켰다. 내친 김에 안 전 지사는 대연정 불씨까지 지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기간 내세웠던 충청대망론도 안 전 지사가 원조격이다. 시원한 말투와 연설 실력은 안 전 지사의 최대 강점이자 매력으로 꼽혔다. 여기에 정의감은 덤이었다. 

그는 자신을 직업 정치인으로 소개하며 국민에게 호평을 받았다. 자신만의 노선과 확실한 캐릭터를 가졌던 셈이다. 중도층 표심을 흡수하며 문 전 대통령을 한때 바짝 추격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민주당서도 안 전 지사를 대권 주자 중 한 사람으로 인식했다.

충남에서도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대선 경선에서도 문재인 전 대통령을 이어 2위를 기록해 아쉽게 패배했으나, 여전히 앞날이 창창한 편이었다. 보수 세력 역시 안 전 지사를 강력히 견제해야 하는 인물로 여겼다.

한 방에
급몰락

이 전 대통령도 “왜 우리 당에는 안희정 같은 사람이 없느냐”고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다.

민주당의 승리로 대선이 끝난 뒤 안 전 지사는 문 전 대통령의 볼에 입을 맞췄다. 다음 주자로서의 입지를 견고히 한 순간이었는데 자연스레 안 전 지사의 역할론도 함께 부각됐다.

문정부 출범 이후 여권에서는 안 전 지사가 민주당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앙 정치 경험이 없던 안 전 지사가 문 전 대통령의 다음이라는 쐐기를 박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주변에서는 그가 당 대표에 출마해 민주당의 얼굴이 되길 원했다고 한다. 그만큼 몸값, 이름값이 고공행진 중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에 벌어졌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논란이 터졌다. 발단은 2018년 3월 정무비서였던 김모씨가 JTBC를 통해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자 정치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성폭행 폭로 날짜는 공교롭게도 안 전 지사가 미투를 지지한 날이었다.

민주당은 긴급회의를 열고 안 전 지사를 출당, 제명 처리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2017년 7월∼2018년 2월 사이의 강제추행 4차례 등 검사 공소사실 10건 중 9건을 유죄라고 봤다. 본인도 성폭행을 인정하며 충남도지사직 사퇴와 정치활동을 중단하며 정치권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출됐다.

강력한 대권주자가 한순간에 몰락한 순간이었다. 해당 사건은 친노 세력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안 전 지사와 30년 지기인 민주당 우상호 비대위원장마저 등을 돌렸다. 우 위원장은 안 전지사와 정치적 동지였다. 안 전 지사 결혼 당시 함진아비를 맡았을 만큼 가까웠으며 함께 학생운동을 하다가 수감됐던 전력도 있었다. 

이런 탓에 자연스럽게 민주당의 대권구도도 꿈틀거렸다.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의원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의원은 당시 성남시장을 하다 경기도지사 후보 공천을 받으며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이 의원 역시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문 전 대통령 다음 대권주자로 나서게 됐다.

친노 뭉치면
다시 산다고?


대선 패배 이후 침묵을 지키던 이 의원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현재는 당 대표 출마 선언까지 하면서 자신의 세를 연일 다지는 중이다. 현재 이 의원은 당원 지지율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대세다. 

압도적인 상황에서도 여전히 불안하다. 

당권을 두고 친명(친 이재명)계와 비명(비 이재명)계가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우고 있는 탓이다.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비명계 의원들은 이 의원을 연일 타격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에는 안희정계 의원들이 몇 명 있다. 김종민·박완주·강훈식 의원이 대표적이다. 다만 안희정계로 분류되는 인물들의 입지는 견고하지 않다. 박 의원의 경우 안 전 지사처럼 성비위 의혹에 휩싸여 있다.

3선 중진 의원인 박 의원은 성추행 의혹으로 비판받아온 만큼 이번 지방선거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당 대표 출마에 나선 강 의원의 경우 지지세가 크지 않다. 이 의원에게 타격을 주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강 의원은 당권 도전 선언 당시 안 전 지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기존 주류 세력이던 친노, 친문 표심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내 입지가 크지 않은 까닭이다. 이런 탓에 정치권에서는 안 전 지사의 영향력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역시 친노의 길을 걸어왔지만, 강원도지사 선거서 패배하며 친노의 세가 약해졌음을 보여줬다. 

그나마 최근 사무총장으로 임명되며 조금이나마 자존심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사무총장은 안 전 지사와 함께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며 노 전 대통령의 곁을 함께 지켰던 인물이다. 

당분간 지방서 잠행할 듯
이재명도 친노 연일 의식

이렇다고 해도 안 전 지사가 살아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중앙 정치에 자신의 세력이 없고, 측근 역시 그가 별다른 메시지를 내지 않을 것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 인사들 역시 안 전 지사를 향해 특별한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이 의원 역시 안 전 지사 옹호 입장을 내봤자, 여론이 악화되는 것은 뻔하다.

정치 행보 역시 당장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형 집행 종료 후 10년간 피선거권에 제한을 받는 데다, 끌어안으려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전 지사의 정치권 복귀 핵심은 친노 세력의 부활 여부다. 현재 친노 세력은 민주당 내에서 비주류로 분류된다. 그러나 친노 카드는 여전히 정치권에서 잘 먹혀드는 전략이다. 노 전 대통령의 향수를 여럿 갖고 있는 덕분이다. 대선 기간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지지율 하락을 타파하기 위한 타개책으로 삼기도 했다. 

친노를 강조한 이유는 김해 일대에 포진한 PK 내 민주당 지지층을 겨냥할 수 있고, 중도층 역시 공략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애초부터 친노 계열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노무현 정신 계승 행보는 최근에 발견됐다. 지난달 17일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로 향했다. 추도식 이후 두 달 만에 다시 찾았다. 

그는 “노무현의 길을 따라왔다”며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꿈을, 이기는 민주당을 제가 실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민주당 적통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당내 지적을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였다. 

현실적으로
재기 불능?

장설청 공론센터 소장은 “안 전 지사의 정치적 재기는 당분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복귀하기 상당히 어려운 범죄다. 출소해서 바로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한다는 게 국민을 이해시키기 어렵다”며 “당 대표 선거에서 이 의원이 승리한다면 견제할 가능성이 높다. 싹이 보이면 사전에 짓밟아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 다른 잠룡 김경수 전 지사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2017년 주목받던 민주당 대권주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드루킹과 공모해 여론을 조작했다는 혐의가 불거지며 지난해 7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김 전 지사는 창원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일각에서는 김 전 지사가 8·15 특별사면에 포함되는 게 아니냐고 추측한다. 

민주당에서는 김 전 지사의 사면 문제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달 26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지사 사면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강훈식 의원 역시 “국민통합을 위해 사면을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다음 대선주자 중 한 명으로 김 전 지사를 염두에 뒀다.

그러나 출소한다고 해도 5년간 선거에 나설 수 없다.

정치권은 민주당이 김 전 지사 사면을 촉구하는 이유는 친문 세력이 김 전 지사를 중심으로 모일 수 있다는 점 때문으로 본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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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