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버스 용역 시비’ 부산외대 녹취 조작 진실공방

“소송 지고 증거까지 건드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부산외국어대학교가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패소하자 관련 정보를 조작한 뒤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단 학교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설득력 있는 근거는 대지 못했다. 학교가 ‘조작 의심 자료’를 보낸 곳은 현재 회사와 법적 분쟁 중인 한 회사. 앞서 학교는 수차례에 걸친 자료 전달 요구를 모두 거부한 것으로 드러나 의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비대면 강의 실시였다. 부산외국어대학교(이하 부산외대)와 A 버스 회사(이하 A사)는 2020년 2월 셔틀버스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3월부터 A사 소속 버스 8대가 셔틀 운행에 나서는 대가로 부산외대가 A사에 매월 일정 대금과 운행거리에 비례하는 유류비를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대금 끊고
강요·갑질

그런데 학생들은 개강 이후에도 등교하지 않았다. 비대면 강의 여파였다. 결국 셔틀버스는 5월 중순이 돼서야 운행을 시작했다. 이마저도 부분 운행이었다. 이에 A사는 3~4월 유류비를 제외한 운영 대금만 받았다. 문제는 운행 중단 사태를 바라보는 양측 시각이 현저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학교 측은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은 만큼 지급 대금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부산외대는 2020년 8월까지만 대금을 정상 지급하고, 그 이후로는 실제 운행량에 비례한 금액만 법원에 공탁했다. 아울러 앞선 6개월 동안 A사에 관련 대금을 전액 지급한 직원을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반면 A사는 학교 측 요청으로 운영 규모를 운행 상황과 같게 유지했던 만큼, 관련 대금 역시 온전히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양측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가운데, 부산외대의 자체 감사가 시작됐다. A사 대표 B씨는 그해 8월 부산외대 감사실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 당시 “처음 운행이 중단됐을 때 학교를 방문해 ‘중단 기간과 재개 시점을 보다 명확하게 알려달라. 이를 근거로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해 인건비를 감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며 “하지만 학교는 ‘언제는 차량이 들어갈 것 같다’거나 ‘언제 운행할 것 같다’는 등 계속 운행 준비를 하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이에 즉시 운행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B씨 설명에도 학교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감사실은 조사 도중 B씨에게 “앞으로는 대금을 일부만 지급하겠다”고 통보했다.

B씨는 “당시 감사실장이 근거도 없이 회사와 총무팀의 유착관계를 의심했다”며 “이외에도 ‘계약 내용 변경에 동의하라’거나 ‘소송을 통해 과지급된 용역비를 환급받을 것’이라는 등 나를 겁박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1시간30분이라는 시간 동안 감사실 직원 3명이 한 일은 정상적인 조사가 아니었다. 강요와 갑질이었다”고 비판했다.

‘일방적 계약 위반’ 유류비 지급 분쟁
정보공개 청구 과정서 정보 왜곡 발견

그날 이후 A사는 학교로부터 대금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 부산외대는 남은 계약기간 6개월 중 3개월간 운행 중지를 지시하고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셔틀버스가 일부 운행된 두 달은 일방적으로 대금을 계산해 법원에 공탁했다. 결국 1년 계약 후반기 동안 A사가 당초 합의한 대금을 받아든 건 단 한 번뿐이었다.


B씨는 “애초에 부산외대 계산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버스 운전사들은 일용직 노동자가 아니다. 모두 우리 회사에 소속된 정규직원들”이라며 “학교 입맛에 따라 버스 운행 여부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직원들에게는 기본급이 꾸준히 지급돼야 한다. 회사로서는 학교 요청에 따라 고용 규모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는 “부담을 줄일 방법을 먼저 제시했음에도 학교가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고선 뒤늦게 막무가내로 계약 변경을 종용한 것은 갑질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B씨는 조사 이후 부산외대 측에 당시 녹음파일과 감사결과 보고서를 공개할 것을 꾸준히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이를 넘겨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부산외대에 관련 내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부산외대는 사학재단이 운영하는 학교지만 정보공개법상 ‘공공기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산외대는 B씨가 당시 감사실장을 강요죄로 고소하는 과정에서도 녹취파일 제출을 요구받았다. 이번에도 학교는 불응했고, 감사실장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부산외대의 연이은 거부 행렬은 법원이 B씨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다. B씨는 지난해 부산외대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내 목소리”
제공 거부 왜? 

<일요시사>는 해당 재판의 판결문을 입수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부산외대 측은 B씨의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로 ‘정보가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이 초래됨’ ‘원고(B씨)에게 이 사건 정보를 공개할 경우 유사한 민원이 증가하게 됨’ ‘원고가 향후 부산외대와의 민형사 분쟁에서 이 사건 정보를 왜곡해 악용할 우려가 있음’ 등을 들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같은 학교 측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정보가 공개될 경우 부산외대 감사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관련 주장을 일축했다.

이어 “원고에게 이 사건 정보를 공개한다는 이유만으로 유사한 민원이 증가한다고 단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산외대가 정보공개법상 공공기관에 해당하는 이상 정보공개에 관한 민원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원고가 이 사건 정보를 왜곡해 이용하리라는 근거가 없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사건 정보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 피고(부산외대)로서는 이를 수정·반박할 기회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B씨가 청구한 정보 중 직원 인적사항을 제외한 모든 정보의 공개거부 처분을 취소했다. B씨는 법적 다툼에서 이기고 나서야 본인 목소리가 함께 담긴 녹음파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녹음파일을 들어본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기억하고 있던 당시 대화 중 일부가 녹음파일에서는 빠져 있었다. B씨는 녹음파일이 편집·조작된 것을 확신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삭제된 부분은 10곳에 달했다. B씨가 녹음파일을 확인한 시점은 조사가 있었던 날로부터 불과 5개월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존재했던 대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없던 대화를 열 곳이나 만들며 착각한 것으로 치부하기는 상식적으로 어렵다.

더군다나 B씨는 “빠진 대화 주제들을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조사 당일 주차 문제로 예정보다 10분가량 늦게 도착했었다. 그런데 녹취파일과 함께 받은 녹취록에 명시된 시각은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또 삭제된 내용 대부분은 하필 학교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만한 발언들”이라고 지적했다.

“확인 불가”
전면 부인

부산외대는 녹음파일 편집 사실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학교 측은 지난해 초 B씨에게 보낸 공문에서 “해당 파일은 삭제·편집한 바 없는 원본임을 확인한다”며 “원본이 아니라면 증거를 제시하라”고 밝혔다.

B씨는 녹음파일의 편집·조작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음향 감정까지 받았다. 감정서에 따르면 녹음파일에서는 녹취 후 편조작 시 발생 가능한 현상이 다수 발견됐다. 일명 ‘배경 잡음’이 비정상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반복해서 관찰된 것이다.


대부분의 현상에 대해서 “다른 요인을 배제할 수 없어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달렸지만, 감정서는 배경 잡음의 비정상적 변화를 5건 이상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감정서는 녹취파일 31분44초 시점에 대해 “B씨 발화 시 배경 잡음이 급격히 감소되는 특이점과 함께 그 전후 근접부에서도 간헐적으로 유사한 현상이 발생한다”며 “이는 해당 음성부를 여타 재가공해 편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다. 다만 녹취기기의 주파수 응답 특성을 알 수 없어 단정하기는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파형과 주파수 분석에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발견됐다. 감정 소견에는 “스펙트로그램상 음향 정보의 과다 지속과 그 연관 현상으로 배경 잡음의 순간적 특성 변화가 관찰되는 바, 이는 원본 녹취 후 여타 편집 시 발현된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이어진 총평에서는 “녹취록상 기재 발화 내용 및 발화자 특정에 오류 가능성이 관찰되고, 음향정보 전반에서 특이점이 관찰되는 등 감정 대상물로서의 온전성에 결함을 보인다”고 평했다.

B씨는 감정 결과를 부산외대에 통보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계속해서 녹취파일 편집·조작 사실을 부인했다. 이에 B씨는 지난달 초 부산외대에 “책임 있는 사과와 변상이 없다면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10군데 삭제…편집·조작 확신” 주장
음향 감정 결과에도 “전혀 사실무근”

부산외대는 “감사실에 당시 직원이 남아있지 않아 조작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B씨는 “부산외대는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녹음파일 재검증을 해보자는 제안에도 응하지 않았다. 사실 확인이 불가한 게 아니라, 그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일요시사> 취재 결과 당시 교직원 대부분은 자리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부산외대 재직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계약기간 만료로 퇴사한 계약직 감사반장을 제외한 감사실장과 감사직원은 현재 각각 다른 부서로 발령받아 근무 중이다.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은 사건의 사실관계를 단순히 ‘부서 변경’을 이유로 확인할 수 없다는 학교 측 입장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일요시사>는 부산외대에 제기된 의혹에 관한 입장을 직접 문의했다. 부산외대 관계자는 “당시 근무했던 직원 중 2명이 여전히 교내서 근무 중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나간 직원이 A사에 파일을 전달한 당사자다. 그래서 사실관계 파악이 어렵다고 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학교 측도 편집·조작 사실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 부분까진 파악이 잘 안 되는 것은 맞다”며 “그래도 우리는 그 파일이 원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쪽에 남아있는 것과 동일하다”고 답했다. 

부산외대 측은 앞선 대금 지급 논란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A사와 부산외대는 현재 대금 지급을 놓고 민사 재판을 벌이고 있다.

A사는 계속해서 법적 절차를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감사실장 강요죄 혐의는 녹음파일 제출과 이의신청을 통해 다시 고소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음향 감정에 소요된 비용 등도 법적 대응을 통해 받아낸다는 구상이다.

“강력히 대응”
결국 법정으로

B씨는 “법원 판결에 따라 제공한 증거를 조작한 건 사법부 기만 행위”라며 “이에 대한 부산외대 책임을 제대로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전적인 부분은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면 된다. 추가적인 법적 절차를 밟는 게 돈을 돌려받기 위한 포석은 아니다”라며 “다만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는지 답을 듣고 싶다. 그들이 왜 일부 녹음을 삭제한 것인지 알고 싶을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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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