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좋은 소리 못 듣는 김진표 국회의장 후보

‘입조심’해야 협치 열린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은 김진표 의원을 제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했다. 정치권 반응은 극과 극이다. “온화한 성품과 5선 의원으로 풍부한 경험을 가진 김 의원이 적임자”라는 환영과 “검수완박 꼼수 통과에 일조한 이가 의사봉을 잡느냐”는 비판이 동시에 쏟아졌다. 여야의 원구성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김 의원은 갈등의 중심에 스스로 발을 들였다.

김 의원은 1947년 5월4일,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4살 때 6·25전쟁이 발발했다. 김 의원은 아버지와 함께 피란길에 올라 경기도 수원시로 향했다. 전쟁통에 생이별한 어머니와는 영영 이산가족이 됐다.

실향민에서 
정책통으로

수원에 정착한 김 의원은 그곳에서 10여년간 살았다. 서호초등학교에 이어 수원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로는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김 의원은 학업을 마치고 공직에 발을 들였다. 그는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20년간 재무 관련 부처에서 재경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김 의원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문민정부부터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극비리에 금융실명제 시행을 추진했다. 대통령비서실장도 모르게 일이 진행될 때, 김 의원을 비롯한 관료 몇 명만이 실무를 도맡았다. 금융실명제 안착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국민의정부 때는 재정경제부 차관·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국무조정실장 등을 줄줄이 역임했다. 그는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시절, 전 정권 때 도입한 금융실명제에 이은 부동산 실명제 도입 실무를 총괄했다. 차관 때는 경제성장률 10.1%를 달성하는 데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

김 의원을 눈여겨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당시)에게 “김진표를 반드시 중용하라”고 조언한 일화는 유명하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자리에 올랐다. 이때 김 의원은 신용카드 대란을 1년 만에 수습했고, 주 5일 근무제를 연착륙시켰다. 두 건 모두 시장에 타격을 줄만한 큰 사건이었지만, 큰 무리 없이 받아넘겼다는 평가다.

임무를 마친 김 의원은 본격적으로 정계진출을 타진했다. 그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 장관 겸 교육부총리를 겸직했으며, 2007년에는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2008년 열린 18대 총선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2010년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하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와의 야권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하면서 본선행이 좌절됐다. 그래도 경선 과정에서 패배한 터라 의원직은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듬해 5월에는 정세균 전 총리 등의 지원을 받아 원내대표에 당선돼 그해 말까지 임기를 이어갔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정 선거구에 출마해 3선 고지를 밟았다. 


관료 출신 경제통…진보 정권 중용
5선 최고령 의원으로 국회의장 선출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는 다시 경기도지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비로소 본선행 티켓을 따냈지만, 거기까지였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열세를 보이며 선거기간 내내 패색이 짙었다. 김 의원은 출구조사에서 앞서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결국 새누리당 남경필 후보에게 1%p 차이로 석패했다.

같은 해 7월 열린 재보궐선거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 박광온 의원을 지원해 당선에 기여했다. 이듬해 3월에는 문재인 당시 당 대표의 부름에 따라 새정치민주연합 국정자문위원장을 맡았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신설된 경기도 수원시 무 선거구에서 당선되며 원내로 복귀한다. 수원 정 선거구는 지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 의원에게 양보하고, 자신이 선거구를 옮겼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캠프의 선거 공동대책위원장과 일자리위원장을 맡아 선거 승리에 일조했다. 문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위촉됐다. 그는 위원장으로서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설계·발표했다.

특히 자신의 주전공인 경제 분야에서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성장 등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남 지사와의 경기도지사 선거 재대결 성사 여부에 정치권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불출마를 선언하고 같은 당의 전해철 후보를 지지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김 의원의 선택을 두고 경선까지 포함해서 두 번이나 패배한 전력에, 70대에 접어든 나이 탓에 재도전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후 민주당 전당대회 예비경선을 통과해 이해찬·송영길과 당 대표직을 놓고 합을 나눴다. 결과는 최종 3위로 낙선이었다. 김 의원은 이해찬 전 대표에 의해 민주당의 경제자문기구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으로 선임되며 아쉬움을 달랬다.

총리 내정설
시민단체 반발

그는 2019년 말 문재인정부의 국무총리 후보자로 검토된 바 있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크게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소상공인연합회‧외식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들이 김 의원 지지 성명을 발표했으며, 일부 보수 정치인들 역시 찬성 의사를 밝혔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정권의 총리 후보자에 대해 진보층과 보수층 찬반 여론이 엇비슷한 진풍경이 연출됐다.

하지만 김 의원 내정설이 본격화되자 여러 시민단체의 반발이 이어졌다. 민주당 권리당원들 사이에서도 찬반 대립각이 점차 날카로워졌다. 결국 심상치 않은 기류를 인식한 김 의원이 직접 문 전 대통령을 만나 고사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의 대체자로는 정 전 총리가 낙점됐다.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에서는 단수공천을 받고 5선에 성공했다. 21대 총선의 최고령 당선자로 총선 직후 전반기 국회의장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원내 최다 선수를 쌓은 박병석 전 국회의장과 최연장자 김 의원 간 경선이 결정됐다.

하지만 경선 닷새 전 김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전반기 국회의장직은 박 전 의장 몫이 됐다.

2020년 이낙연 대표 체제에서는 신설된 국가경제자문회의 초대 의장에 임명됐다. 지난해 이 대표가 대선 준비를 위해 당 대표직을 조기 사퇴한 뒤에는 후임 송영길 대표에 의해 부동산 특위위원장에 임명됐다. 여기서 김 의원은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을 주도했다.

지난 24일에는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우상호 의원을 누르고 공식 선출됐다. 민주당의 의석수를 고려했을 때, 김 의원이 본회의장의 의사봉을 잡을 것이 확실시된다.

한편 김 의원은 긴 정치 이력을 가진 만큼 숱한 논란을 몰고 다녔다. 대부분 실언에서 비롯된 구설수였다. 원내대표 시절인 2011년 “대통령은 카리스마가 있어야 국정이 안정적으로 간다”며 “카리스마가 있으면 (김대중 전)대통령 아들이 구속됐겠는가. 노 대통령은 퇴임 1년도 안 돼 저런 꼴을 당했고…”라고 발언했다.

이미 작고한 두 전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여론의 질타를 피해갈 수 없었다. 김 의원이 이들의 소속 당 원내대표라는 점, 이들의 국정운영에 동참했었다는 점 등을 들어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들끓었다.


당 대표 아닌 의장인데…
여 “중립성 없어” 반발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문재인은 정치할 사람이 아니다. 노 대통령을 수행할 때도 문 전 실장은 항상 뒤에 숨지 않았느냐”며 “문재인 전 실장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천성이 어디 가겠느냐”며 당시 떠오르던 ‘문재인 대망론’을 부정하는 발언을 남겼다.

이 발언은 그가 2019년 총리 하마평에 올랐을 때 회자되면서 진보층의 적극적 지지를 막는 걸림돌로 돌아왔다. 

김 의원은 제20대 총선 전인 2016년 2월13일, 이천 설봉산에서 조병돈 전 이천시장과 수원시 영통구 태장동 주민 등으로 이뤄진 산악회원 37명을 만난 자리에서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 의원은 불복했지만, 대법원까지 올라간 끝에 형이 확정됐다.

같은 해 3월 언론 인터뷰에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도 받았지만 이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 의원은 인터뷰에서 당시 상대 당 후보로 출마를 준비하던 정미경 최고위원이 공군력 저하를 이유로 수원비행장 이전 사업을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의 말실수는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실언은 사회적 입지가 비교적 좁은 이들에게도 서슴없이 이어졌다.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12월13일 공개 기자회견 자리에서 동성애·동성결혼의 법제화에 절대 반대한다는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 건의를 받고 “민주당은 개신교계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동성애·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발언했다.

당시 그는 민주당 종교특위 위원장이었다.

말실수 반복
갖은 논란도

이는 성소수자 인권을 인정하지 않음과 동시에 이들 인권을 탄압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불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되며 각계각층의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대선후보였던 문 전 대통령의 입장과도 정면충돌했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성소수자 인권단체 ‘무지개행동’의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동성결혼·파트너십은 우리 사회에 새로이 나타나고 있는 가족의 형태”라며 “이들의 사회적 의무와 권리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2017년 9월21일 <제정임의 문답쇼>에 출연해 정치가를 꿈꾸는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로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는 욕심을 가지는데,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다. 정치는 생업이 아니다”라며 “이른 나이에 정치를 직업으로 하면 안 된다. 특히 젊은 나이에 정치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뛰어드는 것은 가능하면 말리고 싶다”고 발언해 입길에 올랐다.

그는 이 발언으로 “청년 정치인 전체를 매도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청년들이 단지 돈과 명예·출세를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이유에서다.

2018년 당 대표 경선 때는 “당 대표가 되면 이재명을 출당시키겠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민주당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은 당시 ‘혜경궁 김씨 사건’과 ‘김부선 스캔들’로 여론의 거센 반발에 시달리고 있었다.

반면 같은 해 ‘드루킹 사건’ 피의자로 재판에 넘겨진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지지층을 늘리려 선거운동한 것”이라고 감쌌다.

두 사례 모두 당 지지세에 악영향을 미쳤음에도 상반된 반응이었다. ‘편 가르기’ ‘내부 총질’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각종 실언으로 수차례 도마 올라
강성 발언으로 중립성 의심 군불

지난달에는 검수완박 ‘꼼수’ 통과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 의원은 지난 4월 느닷없이 법제사법위원회에 배치됐다. ‘최다선·최고령 위원이 위원장을 맡는다’는 관례에 따른 조치였다. 당초 법사위 소속 최고령 의원은 69세인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이었지만, 김 의원이 그 자리를 꿰찼다. 그러고는 최대 90일까지 숙의할 수 있는 법안을 단 20분 만에 통과시켰다.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고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야당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합의에 따라 2012년 통과됐다. 김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시절이었다. 자신이 주도해 만든 법을 스스로 깨부순 셈이다.

김 의원이 국회의장 후보로 확정되자, 국민의힘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예상된 수순이었다. 특히 여당 측은 김 의원의 국회의장 후보 선출 소감을 문제삼았다. 그는 소감을 발표하면서 “제 몸에는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 당적을 졸업하는 날까지 선당후사의 자세로 민주당 동지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언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 국회의장은 입법부 수장으로서 엄격한 중립성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김 의원의 소감은 의장으로서의 중립성을 해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불씨가 됐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양금희 중앙선대위원회 대변인은 “민주당의 당 대표가 아닌 국회의장 후보를 선출하는 자리에서 후반기 국회 역시 일방적으로 운영하겠다고 선전포고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국회의장의 자리는 민주당의 피를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피로서 이뤄낸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자리”라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김 의원은 지난 16일 국회의장 출마 선언 당시에도 중립성을 의심받는 메시지를 낸 바 있다. 이날 그는 “불통과 독선의 ‘검찰공화국’으로 폭주하는 윤석열정부의 ‘불도저’식 국정운영을 막아내는 국회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민주당 당적을 강조한 발언이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여당의 반발을 부를까 걱정”이라고 전했다.

당 내부서도 
우려 목소리

일각에서는 “김 의원이 막상 취임하면 본연의 역할을 잘 해낼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당내의 대표적인 중도 성향 인사인 만큼, 능수능란하게 여야 중재를 이끌 수 있다는 얘기다. 풍부한 의정 경험은 덤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구시대적 면모는 접어두고,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만이 발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 역시 국회의장의 입에서 차별과 갈등 대신, 화합과 관록의 언어가 나오길 고대하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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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