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왼쪽에서는 중국이, 오른쪽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노려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한국 입장에서 이들을 대처하는 방안은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자니 다른 한쪽의 눈치가 보이고, 중립을 지키자니 실익이 없는 외교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그동안 중국과 미국이라는 강국을 중심으로 외교 노선을 짜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의 권력을 놓고 다투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을 해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중’ ‘친미’ 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지만, 다수의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이 뚜렷하게 어느 나라의 편에 서진 않았다고 평가했다.
친중친미
다만 그들은 ‘미국 우선’ 외교를 펼친 정부와 ‘중국 우선’ 외교를 펼친 정부는 엄연히 존재했다고 말했다. 이는 정권의 이념에 따라 나뉘어졌다. 대체적으로 보수당이 배출한 대통령은 미국 쪽에, 진보당이 배출한 대통령은 중국 쪽에 더 친화적인 외교 노선을 구축했다.
‘보수=친미’ ‘진보=친중’이라는 외교 공식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하고 있었고, 심지어 미국과 중국에서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공식이 언젠가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보수당에서 배출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중국 전승절에 노란 옷을 입고 망루에 올라서서 열병식을 참관하면서부터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정부의 외교정책에서부터 모든 게 꼬여버렸다”며 “그때 망루에 올라가는 바람에 중국은 북한뿐만이 아니라 한국까지도 자국의 영향력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김 부장은 “망루에 올라선 것은 엄청나게 큰 의미다. 시진핑, 푸틴과 함께 서서 관람한다는 것 자체가 큰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라며 “그 이후에 미국은 한국이 중국화됐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친중’ 노선을 타기 시작한 박정부는 정권 초기와 중기에 노골적으로 '중국 친화' 정책을 펼쳤다.
‘보수=친미’ ‘진보=친중’ 공식 그대로
미-중 사이서 균형 잡기 어려운 상태
또 다른 외교 전문가는 그 이유에 대해 “박정부가 ‘통일대박론’을 들고 나오면서 중국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박정부는 통일의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는 상황이라고 인식했고, 친중 외교를 통일을 위한 길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정부는 몇 년 동안 중국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자 뒤늦게 ‘친미’로 갈아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박정부는 중국이 격렬히 반대하는 사드(THAAD)를 배치하는 등 초강수를 두면서 퇴임 직전 중국에 등을 돌린 바 있다. 정권 말기에는 오히려 중국과 극강의 대립구도를 만든 것이다. 중국은 이에 보복이라도 하듯 한국에 대한 대대적인 경제 제재에 들어갔다.
비관세 장벽 강화와 중국인 관광객 통제, 불매운동 등을 펼치며 한국을 압박했고, 한국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당시 경제보복으로 인해 한국 측이 약 8조원의 손실이 봤다고 추산했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친중 행보는 재개 됐지만, 상황은 반전되지 않았다. 한 외교전문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문재인정부가 아무리 친중 노선을 택했다 해도 해결책은 없었을 것”이라며 “이렇다 할 ‘실익’은 챙기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제 공은 새로 출범한 윤석열정부에게 넘어갔다. 윤정부는 지난 정권들의 외교 노선을 이어받아 새로운 전략을 구축했다. 그리고 최근 그 전략의 방향이 공개됐다. 윤정부의 외교는 ‘중국’이 없는 방향을 택했다고 평가받는다.
사실 이런 행보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윤 대통령은 대선 승리 직후 기자회견에서 ‘사드 추가 배치’ 가능성을 언급할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때의 예측은 현실로 이뤄졌다. 최근 한국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가입한 것이다. IPEF란 바이든 행정부의 주도로 만들어진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안보 플랫폼 및 국제기구다. IPEF에 가입한 나라들은 관세가 인하되고 부분적인 규제 철폐 혜택 등을 받는다.
양자 간 자유 무역 협정인 FTA 혜택을 IPEF 회원국이 일괄 적용받는 셈이다.
한쪽 편들면 데미지 크고
중립 지키자니 실익 없어
IPEF는 대외적으로는 ‘경제협력’이라는 대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미국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기구다. 미국은 중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가들을 차례로 가입시켜 중국에 광범위한 압박을 넣고 있다.
현재 IPEF에는 미국과 한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이 가입돼있다.
이에 중국 측은 강력히 반발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화상으로 개최된 유엔총회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어떠한 군사집단과 진영 대결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분명하게 거부한다”고 불쾌한 기색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왕 부장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은 이 지역의 운명뿐 아니라 세계의 미래와도 직결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사드’ 보복만큼의 경제 제재가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윤정부 측도, 중국 측도 아직은 관계가 악화되고 있지는 않다고 보고 있다.
외교안보정책의 ‘키맨’으로 알려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친미 노선을 탄 것이 아니냐’는 <일요시사>의 질문에 “친미 노선을 탔다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며 “윤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꾸준히 주장했듯, 대한민국정부는 중국과 상호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 대사관 측도 “중국은 한국을 매우 중요한 교역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고, 최근 출범한 새로운 정부와의 협력도 계속 기대 중”이라며 “일각에서 불거진 한중 간의 외교 위기는 현재로선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요시사>에 알려왔다.
아직은…
김 부장 또한 인터뷰에서 “그동안 한미 동맹이 워낙 소강 국면이었다. 이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라며 “다만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어려운 상태가 된 것은 사실이다. 이제 한국은 어느 한쪽을 정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윤정부의 외교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뻗어나갈지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