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아픈 '부동산 집도의' 원희룡 국토부 장관 후보자

메스 들고 대장동부터 도려낼까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지난 대선 정국을 기점으로 연일 주가를 높이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4위를 기록하며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했고, 이후 선거대책위원회 정책총괄본부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을 거쳐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발탁됐다. 그동안 여권 부동산 정책 비판에 앞장섰던 원 후보자. 그가 부동산 시장에 내릴 ‘약방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1964년 2월 제주도 서귀포시(당시 남제주군)에서 태어났다. 원 후보자 집안은 14대째 제주도에서 살고 있던 ‘토박이’였다. 원 후보자 역시 중문국민학교, 중문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제주 토박이로 자랐다.

운동권 투사
보수 소장파

유년 시절 집안 사정이 좋지 못했다. 같은 동네에서만 10번 넘게 이사를 다녔고, 온 가족이 빚쟁이에게 시달리기도 했다. 원 후보자는 가난의 어려움을 몸소 실감하면서 공부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그의 학창 시절은 수석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었다. 아울러 전국적으로 치러진 시험에서도 12번 모두 수석을 차지했다. 원 후보자는 1982년 제1회 대입학력고사에서도 수석을 꿰차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다”고 공부 비결을 밝혔다. 원 후보자의 인터뷰는 두고두고 회자되면서 수재들의 유행어가 됐다. 원 후보자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수석으로 진학했다. 그는 “장차 대한민국을 위해 막스 베버와 같은 법사회학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학 생활 초반에는 학업에 충실했던 일명 ‘도서관파’였다. 하지만 이후 신군부의 폭압적 정치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이내 운동권에 발을 들이게 됐다.

원 후보자는 서울대 교정 안에서 발생한 ‘전경 여학생 추행 사건’ 항의 시위에 참가했다. 이때 소지품 중 시위 관련 유인물이 발견돼 경찰서로 연행됐다. 며칠 구금된 뒤 훈방 조치됐지만 학교에서는 유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운동권 활동에 오히려 더 몰입하게 됐다.

1984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오거리에서 데모 유인물을 배포하다가 구속 위기를 맞고, 당국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혀 수배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야학과 노동운동에도 열심이었다. 원 후보자는 구로공단의 교회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열고 인천 금속공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현장을 몸소 느꼈다.

생활비는 과외와 번역으로 근근이 벌었다.

20대의 대부분을 사회운동에 바친 그였지만, 결국 전향하며 운동권에 작별을 고한다. 1980년대 말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을 목격한 것이 사상 전환의 주된 계기가 됐다.

제적과 휴학을 반복했던 원 후보자는 입학한 지 8년 만인 1989년 2월이 돼서야 가까스로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군 복무 면제로 ‘군백기’도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 셈이다.

군 면제 사유는 후천적 발가락 기형이다. 원 후보자 설명에 따르면 그는 5살 무렵 리어카에 올라 타다가 리어카 바퀴에 발가락이 끼어 들어가면서 오른발 2번째 발가락이 골절·일부 절단됐다. 사고 직후 봉합 치료를 받았지만, 발가락을 수직으로 붙인 탓에 끝내 환부가 후천적 기형으로 남고 말았다.


훗날 정치에 입문한 후, 군 면제 이력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때 원 후보자는 자신의 발가락을 직접 공개하면서 논란을 잠재웠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 전국 수석
운동권서 개혁보수 정치인으로

1990년 말부터는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그는 2년간의 수험생활 끝에 제34회 사법시험을 수석으로 통과했다. 사법연수원(24기)은 5등으로 수료했다.

학생운동,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었음에도 1995년 검사 임관에 성공했다. 초임지는 서울지방검찰청이었다. 그는 검사 재직 시절 재개발조합 사기사건, 딱지어음사건, 다단계 피라미드 범죄 등 주로 경제사범 소탕에 열중했다. 부산지방검찰청 강력부에 있을 때는 지역 내 조직폭력 및 마약사범과 사투를 벌였다.

1998년 8월 검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소프트웨어재산권보호위원회 고문변호사, 전국 PC방 연합회 고문변호사, KBS 방송자문 변호사 등 당시만 해도 생소한 개념이었던 지식재산권·IT 분야 전문 변호사로 족적을 남겼다.

이듬해인 1999년에는 정치에 입문한다. 당시 ‘젊은 피’ 수혈 경쟁을 벌이던 한나라당과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의 전신) 양쪽에서 모두 영입 제의를 받았다.

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 측은 원 후보자에게 고향인 제주도 지역구 공천을 약속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서울 지역구 공천을 약속했다.

이때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김부겸 총리가 원 후보자를 영입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리는 “힘들겠지만 맡아서 5년 내지 10년을 하면 답이 나올 것”이라며 원 후보자에게 한나라당 입장을 적극 권유했다.

결국 원 후보자는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그는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를 이루겠다”고 입당 소감을 밝혔다. 운동권 출신이 개혁 보수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2000년 4월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갑 지역구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입당을 권유했던 김 총리와 함께 국회에 입성했다. 다만 김 총리가 임기 중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한 이후로는 다른 길을 걷게 됐다.

논란 일면
정면돌파

당선 이후로는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정병국 전 의원과 함께 일명 ‘남원정’으로 불리며 당내 개혁을 주도하는 소장파로 자리매김했다. 때로는 당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까지 적극적으로 개혁 의견을 내비쳤다.


이러한 행보 덕택인지, 탄핵 역풍에 휩쓸렸던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생존했다. 당 안팎의 거센 비판 속에서도 소신을 지키고, 지역구인 양천구 목동 곳곳을 돌며 민심을 살핀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총선 직후 치러진 한나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이때 당 최연소 최고위원 기록을 새로 썼다. 

원 후보자는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경선에 나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비록 대통령 경선에서는 탈락했지만 40대 대권주자로 나서 완주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이는 차기 대권 유력 주자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과반 득표로 여유롭게 3선 고지에 올랐다. 2009년에는 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돼 당내 쇄신을 주도했다.

2010년 서울시장 자리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오세훈 후보(현 서울시장)의 대항마를 정하기 위한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전 의원에게 석패했다.

이후 2010년 7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한나라당 사무총장, 공천심사위원장, 최고위원 등을 두루 역임해 당내 입지를 다졌다.


이를 바탕으로 2011년 당권에 도전했다. 당시 원 후보자는 ‘한국 정당정치의 비정상적 공천시스템 개혁’과 ‘선진 정치를 위한 선거구 개편’을 핵심 의제로 내걸었다. 하지만 차기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까지 쳤음에도 최종 4위로 낙선하고 말았다.

이 여파로 2012년부터 1년여간 잠시 정치권을 떠나기도 했다.

당초 행안부·법무부 장관 하마평
대장동 1타·주택찬스 공약 영향?

원 후보자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독일 아데나워 재단‧중국 베이징대 등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수학하고 2013년 말 귀국했다.

2014년 2월, 금융 3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하자 ‘개인정보유출 국민변호인단’을 꾸리며 이목을 끌었다. 당시 원 후보자는 국내 피해자 5만여명을 대리해 무료 공익소송을 주도했다.

같은 해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출마로 복귀전을 치를 것’이라는 세간의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원 후보자가 새누리당 지도부로부터 ‘당내 중진 차출론’이라는 명목으로 제주지사 출마를 압박받으며 무산됐다.

결국 제6회 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에 출마했다. 정치에 입문한 지 1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60%의 득표율로 무난히 당선됐다. 취임 이후에는 제주도 내 부동산 투기 규제 강화 정책과 중국을 비롯한 외국 자본 투자 유치 견제에 집중했다.

이외에도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16위로 최하위권이던 제주 지역 청렴도를 임기 중 4위까지 끌어올리고, 4000억원가량의 지방부채를 모두 상환하는 등 체질 개선에 힘썼다.

임기 중 두 차례나 탈당을 감행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2017년 1월 초 탈당해 바른정당 창당 일원으로 합류했다. 이어 같은 달 말에는 “지역사회에 해결해야 할 현안이 많아 도정에 전념하겠다”며 대통령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8년 4월에는 바른미래당 합당에 반발해 탈당했다. 이후 2년여간 무소속 상태를 유지하면서 오랫동안 정치적 공감대를 구축해왔던 남 전 지사(자유한국당 복당)나 정 전 의원(바른미래당 합류)과는 각기 다른 행보를 보였다.

원 후보자는 무소속으로 제주도지사 재선에 도전했다. 정당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현직 지사라는 프리미엄을 살린 ‘인물론’ 전략으로 낙승을 거뒀다. 

재선 후 임기 초반 협치를 중시하는 행보를 보였다. 당시 제주도의회 의석을 ‘싹쓸이’한 민주당을 달래기 위한 포석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원 후보자는 지사가 추천하는 제주·서귀포시 행정시장 내정자로 각각 고희범 전 민주당 제주도당위원장과 양윤경 제주 4·3희생자유족회장을 선택했다. 친민주당 성향의 내정자들은 청문회에서 무난하게 ‘적격’ 판정을 받았다.

당선 3달 뒤인 9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당시 원 후보자는 사전선거운동 위반·허위사실공표 등 총 5개 혐의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 검찰에 기소됐고, 2019년 2월 1심에서 벌금형 80만원을 선고받아 지사직은 지켜냈다. 재판부는 “공소 사실이 모두 인정되지만, 기존에 발표된 공약을 발표하거나 다른 후보자를 비방한 게 아니고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이후 검찰과 원 후보자 양측 모두 항소를 포기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2020년 2월, 박형준 혁신통합추진위원장의 제의를 받아들여 미래통합당 창당에 합류했다. 이후 같은 해 5월 대권 도전을 시사했고, 지난해 8월 들어 제주도지사를 퇴임하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똑바로
똑똑하게

경선 초반에는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하지만 2차 컷오프 직전 ‘대장동 1타 강사’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덕에 컷오프를 통과할 수 있었다.

유튜브의 한 채널에 출연해 대장동 개발사업 논란을 요약·설명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자타공인 ‘이재명 저격수’가 된 셈이다. 원 후보자는 최종 경선에서도 이러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며 자신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후보를 상대할 적임자라고 자부했다. 

경선에서는 최종 4위에 그쳤지만, ‘대장동 1타 강사’ 직함으로 인지도를 끌어올린 것이 기회로 작용했다.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결정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의해 선거대책위원회 정책총괄본부장에 임명됐다. 차기 정권의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맡은 만큼, 윤석열정부가 탄생하면 중용 가능성이 클 것으로 관측됐다.

지난 1월 초 선대위가 해체되면서 잠시 거취가 불투명해지기도 했지만, 선거대책본부의 정책본부장으로 재신임받으며 가능성을 이어나갔다. 

이후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하마평에 오르는 등 향후 행보에 대한 예측이 이어졌다.

그러나 대선이 치러지기까지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원 후보자의 행선지는 대선 승리 이후에나 결정됐다. 윤 당선인이 그에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이어 지난 10일에는 윤석열정부 초대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낙점됐다. 

“의외의 인선”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인수위 합류 이후 원 후보자의 입각 가능성은 높게 점쳐졌지만 직함이 예상 밖이라는 평가다. 원 후보자는 당초 행정안전부·법무부 장관이나 대통령비서실장 하마평에 오르내린 바 있다.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이 해당 장관직에 정치인 기용을 자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 변수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아울러 원 후보자가 경선 중 ‘대장동 1타 강사’ ‘주택 찬스 공약’ 등으로 이목을 끈 점이 이 같은 인선으로 이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 당선인은 “(원 후보자는)3선 국회의원, 제주지사 재선을 지내며 혁신적 도시 행정을 펼친 분”이라며 “공정과 상식이 회복되어야 할 민생 핵심 분야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이해가 높은 분”이라고 발탁 배경을 전했다. 이어 “수요가 있는 곳에 충분히 주택을 공급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균형 발전 핵심 지역인 공정한 접근성과 광역 교통체계를 설계할 적임자라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원 후보자는 발탁 직후 “정부 역량을 집중해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를 안정시키고 꿈을 잃은 젊은 세대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하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전문 경력이 없다’는 지적에는 “국민들의 눈높이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잘 접목시켜 정무적 역할을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다.

이제 관건은 여소야대 청문회 문턱을 넘는 일이다. 민주당은 발표 직후부터 강력하게 반발하며 험난한 청문회를 예고하고 나섰다. 민주당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지난 10일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를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공개 저격했다.

이재명 저격
청문회 어쩌나

그는 “원 후보자의 제주도지사 시절 제주 신공항 등 제주 도정에 대한 성과를 보면 전문성, 추진력, 협상력 등을 겸비해야 할 국토부 장관에 적합하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원 후보자의 발탁 배경을 두고선 “지난 대선 과정에서 허위와 과장된 정치공세에 앞장섰던 것에 대한 논공행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국정 운영 파트너로서의 민주당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일방적인 처사”라고 날을 세웠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5전 5승’ 민주당 숙적 원희룡, 왜?

원희룡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적어도 선거에서만큼은 더불어민주당의 ‘숙적’으로 불릴만하다. 1999년 정치에 입문한 뒤 민주당을 상대로 무패행진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민주당 후보를 국회의원 선거에서 3번, 지방선거에서 2번 만나 모두 과반의 득표로 승리했다.

2004년 탄핵 역풍이 거셀 때도, 2018년 보수 궤멸 선거 때도 ‘개인기’를 바탕으로 승리를 거두며 존재감을 뽐냈다.

특히 2018년 7회 지방선거 당시, 원 후보자는 대구‧경북 외의 지역에서 당선된 유일한 보수 진영 광역단체장이었다.

원 후보자는 지난해 대선 경선에 나섰을 때 이 같은 이력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열린  국민의힘 경선 예비후보 1차 TV토론회에서 ‘나는 귤재앙이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민주당과 선거에서 다섯 번 싸워 다섯 번 이겼다. 민주당이 볼 때는 내가 재앙”이라고 발언했다.

이어 “민주당 후보로 예상되는 (민주당)이재명 후보에게 귤재앙의 신맛을 실컷 맛 보여드리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운>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를 둘러싼 정치권 로비·금품 제공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이른바 ‘통일교 특검’이 본궤도에 올랐다. 여야는 통일교의 정치권 금품 지원 의혹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법을 각자 발의한 뒤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김은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31일 “2차 종합특검, 통일교·신천지 특검(법의 국회 통과)을 설(내년 2월17일) 연휴 전에 반드시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정치인 줄줄이 특검 수사의 초점은 정치인 개개인의 비위 여부를 넘어, 통일교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정치권에 접근해 정책·인사·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 제공이 있었는지 여부도 핵심이다. 수사선상에는 통일교 지도부와 핵심 실무 라인은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명이 거론된 정치권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 로비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특검은 출범과 동시에 통일교 내부 자금 흐름과 의사결정 구조를 정밀 추적하고 있다. 수사의 출발점은 통일교 고위 간부였던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의 진술과 관련된 자료다. 윤 전 본부장은 검찰·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에게 현금과 고가 물품이 전달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 진술의 신빙성을 가리기 위해 통일교 본부 및 산하 단체 회계, 자금 집행 내역, 내부 문건을 대거 확보해 분석 중이다. 통일교 측은 “조직 차원의 불법 지시는 없었다”며 일부 인사의 개인적 일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나, 특검은 지도부 보고·승인이 있었는지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보고 있다. 이번 특검이 주목받는 이유는 수사의 외연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와 수사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의원, 광역단체장, 정부 인사들의 이름이 잇따라 등장했다. 민주당에서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성 전 의원, 강선우 의원,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이름이 언론 보도에서 거론됐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성동 의원, 김규환 전 의원 등이 수사 관련 기사에 등장했다. 이들 대부분은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거나 “통일교와의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이었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진술과 물증을 대조해 사실관계를 가려내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계열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인물은 전 전 장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18년 전후 통일교 고위 인사로부터 현금 또는 고가 물품을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이 수사 과정에서 나왔다. 여야 각자 특검법 발의 후 협의키로 여야 막론 정교 유착 전모 밝혀지나 해당 의혹은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이후 경찰과 특검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핵심 쟁점은 실제 금품 전달 여부와 함께, 당시 전 전 장관의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전 전 장관은 관련 보도 직후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해 오고 있다. 같은 당의 임 전 의원 역시 통일교 정치권 로비 의혹 명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의 경우 구체적인 금액이나 전달 시점이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통일교 측이 “여야 정치인 다수에게 자금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 과정에서 실명이 언급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특검이 임 전 의원을 포함한 인사들에 대해 소환 조사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쟁점은 통일교와의 관계가 단순한 접촉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하는 금품수수로 이어졌는지다. 임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강 의원은 금품수수보다는 ‘접촉·관리 대상’ 의혹으로 이름이 거론됐다. 보도된 통일교 관계자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언급에서 강 의원의 이름이 등장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다. 해당 보도들은 통일교 측이 정치권 인사들을 분류·관리하며 접근 전략을 세웠다는 의혹을 전하는 맥락에서 강 의원을 언급했다. 현재까지 강 의원과 관련해 현금이나 물품 제공 정황이 확인됐다는 보도는 없다. 그는 통일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노 전 실장 역시 통일교 인사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문건에서 이름이 언급됐다는 언론 보도로 연관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경우도 금품수수 의혹보다는, 통일교가 ‘영향력 있는 정치·권력 인사’로 인식하고 접촉을 시도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노 전 실장 측은 통일교와의 불법적 관계나 금품수수는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 의원이 통일교 특검 국면에서 가장 무겁게 거론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이 권 의원에게 정치자금 또는 현금 성격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압수수색이나 계좌 추적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권력 과시 여야 통일? 쟁점은 자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 전달됐다면 정치자금으로 신고됐는지, 그리고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권 의원 측은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통일교 측이 관리·접촉 대상으로 삼았던 정치인 명단 관련 보도에서 이름이 등장했다. 그의 경우도 구체적인 금품 전달 사실이 확인됐다는 보도보다는,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접점 인사’로 분류됐다는 정황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통일교 자금과의 실질적 연결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했다. 이들 사례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공통적인 흐름이 드러난다. 2018년 전후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로비를 담당하는 실무·재정 라인이 가동됐다는 진술이 나오고, 2022년 이후 통일교 지도부 관련 사건이 불거지면서 과거 정치권 접촉 내역이 재조명됐다. 2024~2025년에는 경찰 수사와 특검 출범을 계기로 통일교 고위 인사 진술, 녹취, 내부 문건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며 정치인 실명 보도가 잇따랐다. 의혹의 유형을 나누면 세 가지로 첫째, 전재수·권성동처럼 현금 또는 정치자금 성격을 띤 자금 제공 의혹이 직접 제기된 경우다. 둘째, 임종성처럼 통일교 측 진술에서 ‘자금 전달 대상’으로 언급됐으나 구체성이 아직 부족한 경우다. 셋째, 강선우·노영민·김규환처럼 통일교 내부 녹취나 문건에서 ‘접촉·관리 대상’으로 거론된 경우다. 특검은 이 세 유형을 종합해 통일교의 정치권 접근이 우발적이었는지, 아니면 계획적·조직적이었는지를 판단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특검의 법적 판단은 몇 가지 체크 리스트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자금 또는 물품이 실제로 정치인 또는 그 측근에게 전달됐는지에 대한 물증(계좌 흐름, 현금 출처, 구매 내역)이 확보되는지 여부다. 줬다는데 안 받았다 또 해당 정치인의 직무와 관련된 청탁이나 편의 제공 요구가 있었는지, 즉 대가성이 입증되는지다. 이어 자금이 개인 차원의 일탈이 아니라 통일교 지도부 또는 조직의 승인·묵인 아래 이뤄졌는지 여부다. 또 정치자금으로 볼 경우 신고 누락이 있었는지, 뇌물로 볼 경우, 공소시효와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다. 현재까지 통일교 특검에서 거론된 정치인들과 관련한 보도는 모두 ‘의혹 제기’ 또는 ‘수사 진행 상황’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특검이 이 사안을 개별 정치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종교단체가 정치권을 상대로 벌인 장기적 로비 구조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소환과 기소 여부에 따라 파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특검이 향하는 끝이 어디인지, 그리고 정치권 전반의 신뢰 문제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검 수사의 또 다른 축은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를 둘러싼 고가 선물 수수 의혹이다. 통일교 측이 명품 가방과 귀금속 등을 전달하며 각종 편의를 기대했다는 의혹이다. 이 사안은 정치인 대상 로비와는 별도의 트랙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특검은 통일교 지도부가 동일한 자금·조직 라인을 활용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며, 두 사건을 구조적으로 연결해 보고 있다. 특검이 들여다보는 ‘로비 방식’은 전통적인 봉투 전달에 국한되지 않는다. 통일교 및 연계 단체들은 국제회의, 평화 포럼, ‘평화대사’ 위촉 행사 등을 통해 정치인과의 접점을 넓혀 왔다. 문제는 이 같은 공식 행사 뒤편에서 현금·물품 제공이나 정치적 대가성 요구가 있었는지다. 특검은 행사 전후 일정, 면담 기록, 수행 인력 동선, 통신 기록 등을 종합 분석해 접촉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다. 특히 정치자금법상 신고되지 않은 후원이거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청탁금지법·뇌물죄 적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여야 모두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파장 관리에 고심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하나같이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 레퍼토리 반복···한 입서 나온 증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불법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원칙론을 내세웠다. 여권과 야권 일각에서는 “특검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특검 수사 대상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면서, ‘편파 수사’ 논란은 힘을 잃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특검의 성패가 ‘대가성 입증’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한 친분 관계나 종교 행사 참석만으로는 처벌이 어렵고, 금품 제공과 구체적 직무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공소시효 문제도 변수로 작용한다. 특검이 초기부터 강제수사에 나선 배경에는 이 같은 시간적 제약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통일교 특검은 한국 정치사에서 반복돼온 ‘종교-정치 유착’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종교의 자유와 정치의 독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어디에서 충돌하는지, 그 경계선을 명확히 그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수사가 개인 처벌에 그칠지, 아니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통일교 특검이 던진 질문은 “정치가 누구의 돈과 조직에 의해 움직였느냐?”다. 특검의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지, 그 결과가 한국 정치의 신뢰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핵심 피고인·피의자로는 통일교 지도부(한학자 총재)와 통일교 고위 간부(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등이 거론된다. 한 언론은 특별검사팀 발표를 인용해 한 총재가 통일교 자금의 유용 및 증거인멸 지시, 정치자금법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됐고, 김건희(전 영부인)씨 및 권 의원(국민의힘) 등에게 전달된 것으로 의심되는 금품·자금이 수사의 초점이라고 전했다. 특히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은 2022년 1월 권 의원에게 1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 2022년 7월 김씨에게 명품 등을 제공했다는 의혹 등이 ‘수사기관 주장’으로 적시돼있으며, 당사자들은 부인 취지 입장을 밝혀왔다. 로비 자금의 ‘규모’ 논란을 키운 장면은 통일교 핵심 시설(가평 천정궁) 압수수색 과정에서 거액 현금이 발견됐다는 보도였다. <MBC>는 특검 압수수색 당시 한학자 총재 개인 금고에서 외화 포함 약 280억원 상당 현금이 확인됐다며, 이 돈이 통일교 회계와 별개로 관리된 자금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권 로비 자금’ 의심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2022년 지방선거 전후 ‘정치 후원금’ 형태의 지원 의혹으로는, 법정 진술을 인용해 유상범 의원(국민의힘), 백경현(경기 구리시장), 김진태(강원도지사) 등의 이름과 액수가 거론됐다고 알려졌다. 또 나온 김건희 통일교 로비 의혹의 ‘작동 방식’으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산하·연계 조직의 외피를 통한 접점 확보다. 예컨대 UPF(천주평화연합) 같은 NGO 성격 단체가 각종 국제 행사(월드서밋 등)를 주최하고, ‘평화대사’ 위촉 등으로 정치인·지자체 관계자·지역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는 설명이 반복된다. UPF가 권역을 나눠 주요 인사를 접촉·관리하는 구조였다는 의혹을 전하며, 자금 집행과 조직적 접촉이 실제 정치자금 제공이나 청탁과 연결됐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라고 짚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