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온' 이재명 막는 걸림돌

주류행 열차 ‘끽’하면 나락행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리더는 여러 가지 능력을 가져야 한다. 내부를 통솔할 수 있는 카리스마와 그때그때 전략을 설정할 수 있는 판단력, 기조를 끌고 끝까지 끌고 나갈 수 있는 추진력 등이다. 여기에 요즘 같이 어지러운 시국에는 한 가지 능력이 더 필요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기지’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 능력을 고루 갖춘 인물로 이재명 상임고문을 지목하고 있다.

당내 ‘비주류로 정치판에서 수십년간 정치생활을 이어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대선을 치르며 자신의 인기와 능력을 입증한 이 고문은 정치인 인생 제2막으로 넘어가려 한다. 민주당 물밑에서 영향력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지금 차기 당 대표, 그리고 차기 대통령 후보감으로 성장 중이다.

위기를
기회로

이 고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였다. 비록 ‘10년 정권교체 주기설’을 깨며 이례적인 패배를 기록한 민주당이지만, 세간에서는 이 고문에게 만큼은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인 ‘졌잘싸’ 타이틀을 붙여줬다.

시작부터 불리했던 대선에서 미미한 차이의 패배를 이끌어냈다는 긍정적인 평가였다. 그의 대권 가도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던 정치 평론가들은 이 고문의 개인 비리를 문제삼은 바 있다.

여러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대권후보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주요 패인이라며 민주당의 패인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 고문은 실제로 대장동 사건을 비롯해, 아들의 도박 논란, 부인의 갑질 논란 등이 연이어 터지며 여러 차례 곤혹을 치렀던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 의견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이런 곤혹을 치를 때마다 이 고문이 능력을 입증해냈다는 의견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민주당 의원들은 보통 대선후보였다면 낙마 수순을 밟아야 할 사건들이었지만, 기지를 발휘한 이 고문이 논란들을 차근차근 해결해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 고문이 ‘사과’와 ‘반박’을 적절히 섞어서 대응했다고 평가했다.

대장동 사건으로 부당한 세력이 과한 이익을 챙겨간 것에 대해서는 ‘최종 결정권자’로서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지만, 개인 비리에 대해서는 거세게 반박했다.

거대한 부당이익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본인이 노력해서 어느 정도 이익을 회수해 성남시민들에게 돌려줬다는 논리로 맞선 것이다.

그는 지난 경선 과정에서 붉어진 화천대유 대장동 특혜 이익에 대해서 “대장동 개발사업의 고정이익을 확정해 공공에 70% 환수되는 것은 내가 설계한 것”이라며 “1조3000억원의 사업비 중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걸 예상한 당초 수익은 6000억원대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중 70%가량인 5500억원을 성남시가 고정이익으로 먼저 받도록 한 것이 대장동 개발사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공격을 방어함과 동시에 자신의 성과를 홍보하는 방식으로 대장동 건을 대응한 것이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난해 11월에는 “해명보다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먼저여야 했다”며 “‘내가 깨끗하면 됐지’ 하는 생각으로 많은 수익을 시민들에게 돌려 드렸다는 부분만 강조했지, 부당이득에 대한 국민의 허탈한 마음을 읽는 데에 부족했다”고 처절한 반성문을 SNS에 올렸다.

“반은 내편” 이만하면 ‘졌잘싸?’
리더의 부재, 이재명계가 메꿀까

태도가 180도 바뀐 데에는 이 고문의 정치적 식견이 한몫 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보단 민심을 읽어내 표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가미된 것이다. 민심에 따라 바뀌는 적절한 대응법은 본선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자녀의 도박 문제가 불거지자 “아들의 잘못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부모로서 자식을 가르친 데 부족함이 있었다”고 논란 하루 만에 재빠르게 사과했다.

공세를 이어가던 국민의힘 측에서는 사과 후 크게 공격할 수 없었고, 사건은 큰 영향 없이 마무리되어 가족 비리 관련 논란을 잘 방어한 사례로 남았다.

배우자 김혜경씨에 대한 ‘갑질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이 고문은 “문제가 드러날 경우 규정에 따라 책임지겠다”고 밝히면서 “이번을 계기로 가족, 주변까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겠다”고 언급했다.

이후 대선운동에서 김씨의 행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극민의힘 측은 상대적으로 배우자 문제는 없다고 자부하던 터라 이 역시 타격이 클 것이라 예상했지만 사건은 미미한 역풍 수준을 맞고 지나갔다.

흔들리는 배에서 키를 잡은 선장이 뱃길을 읽고 위기를 빠져나가듯, 이 고문의 대선 행보는 늘 절묘했다.

이때 생겨난 그에 대한 믿음은 그를 주류 정치인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최근 있었던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재명계의 복심이라 평가받았던 3선의 박홍근 의원이 당선된 것이다.

이로써 이 고문은 수십년간 이어왔던 ‘비주류’ 정치인 인생을 청산하고 ‘주류’ 정치인으로 나아갈 기지개를 켰다.지방선거에서 이재명계 의원들이 주도해 승리로 이끈다면, 8월에 있을 전당대회에서 이 고문은 당 대표까지 노려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앞길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다. 이 고문의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을 사람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어난 숱한 논란은 그를 주류 정치인으로 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기도 하다.

주류 견인차
덧나는 상처


더욱이 상처는 계속해서 덧나는 중이다. 가장 크게 덧나고 있는 상처는 역시 대장동이다. 

검찰은 대장동 수사를 진즉에 시작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세간의 이목을 끈 사건이니 만큼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대장동 의혹은 지난해 8월 말 처음 제기된 꽤 오래된 사건이다.

민주당 경선 예비후보였던 이낙연 캠프는 대장동 의혹을 무기로 지속해서 이 고문을 공격했다. 이렇게 흠결이 많은 후보가 민주당의 대권주자로 나서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검찰은 논란이 불거지고 한 달이 지난 9월28일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이튿날 전방위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화천대유 핵심 관계자로 알려진 정영학 회계사가 녹취 파일 19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부터다.

해당 파일에는 내부 고발성 내용이 담겨 있어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 검찰은 생각했다. 녹취록으로 수사에 탄력을 받은 검찰은 이 고문의 측근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구속했고,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과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연달아 소환 조사했다.


주요 인사들의 소환 조사와 더불어 천화동인 1호 소유주로 알려진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와 화천대유의 자회사 NSJ(천화동인 4호)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남욱 변호사를 구속 수사하기에 이른다.

이 고문의 앞길을 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대장동 관련 인물들의 입이다. 대선 전까지 유 본부장과 김씨, 남 변호사는 이 고문에게 유리한 증언들만 쏟아낸 바 있다. 

유 본부장은 모든 혐의를 부인한 채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지 않은 상태고, 김씨는 오히려 이 고문 때문에 본인들의 사업이 더 힘들어졌다고 말한 것이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공개된 녹취록에서 그는 “이재명 시장 욕을 많이 했다”며 “공산당 같은 X이 우리 사업을 뺏어가려 한다”고 발언했다.

이 녹취는 그동안 이 고문이 주장했던 ‘공공이익 환수’가 실제로 이뤄졌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대장동 관련 또 다른 김씨의 녹취에서 이 고문의 대결 상대였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겨냥한 치명적인 말도 드러났다.

그는 “나는 윤석열과도 싸우는 사람”이라며 “내가 입만 열면 윤석열은 죽는다”고 말해 세간의 의심을 윤 당선인 쪽으로 쏠리게끔 만들기도 했다.

대선 패배 후
재판으로 직행?

이렇게 이 고문에게 ‘불리하지 않게’ 돌아가던 대장동 관련 검찰 수사가 점점 이 고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대선이 끝난 후부터다. 

이 고문과 그의 최측근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실장 등 ‘성남시 윗선’ 라인이 대장동 사업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정황들을 다른 사람들이 증언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증언을 한 사람은 황무성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이다. 그는 대장동 개발의 걸림돌이 되는 자신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 이 고문이 사퇴를 종용했다는 증언을 했다.  

황 전 사장은 대선이 끝난 지 한달 뒤인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심리로 열린 대장동 공판에서 “유한기 전 개발사업본부장이 이재명의 지시로 사표를 내라고 했다”는 발언을 했다. 실제로 황 전 사장은 대장동 개발사업 직전에 사퇴한 바 있다.

이른바 성남시 윗선 라인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이 나온 것이 이것이 처음이다.

황 전 사장은 “내가 대형 건설사를 대장동 사업 컨소시엄에 넣으라고 했는데, 이재명(당시) 시장이 대형 건설사를 빼라고 한 것과는 반대됐다. 내가(이재명 시장의 뜻을 따르지) 못했다”며 이 고문이 당시 자신의 사퇴를 종용하게 된 뒷배경을 설명했다.

이 고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은 황 전 사장만이 아니다. 대장동 사업 관련 로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민용 변호사는 성남시장 비서실을 수차례 찾아가 관련 보고서를 직접 전달했다는 증언을 했다.

대선이 끝난 후 5일이 지난 지난달 14일, 정 변호사는 형사합의 22부 심리로 열린 14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정민용 팀장이 보고서를 성남시장 비서실에 갖다준 일이 복수의 횟수로 있었다”고 증언했다.

지난달 11일에도 출석해 “타당성 용역 자체가 현금 흐름에 관한 가정이 보수적일 수 있다. 용역 결과보다 많은 이익이 생길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는 두 차례 증언에서 모두 이 고문을 겨냥했다. 대장동 개발에 대한 보고서를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고문이 봤을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와 개발 이익이 매우 높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증언이다. 두 증언은 모두 이 고문이 그동안 대장동 사건에 대응하며 했던 발언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법조계는 지금까지 했던 대장동 수사보다 앞으로의 수사가 더욱 예리하게 이 고문의 목을 조일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대장동 수사와 내부 권력이 변수
86그룹·송영길 합류 ‘거대 계파’

한 법조계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선이 끝난 후, 검찰의 완전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윤 당선인의 뜻이 검찰 내부에 전달되고 있다”며 “대장동 수사가 이에 완전히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라 말했다. 법조계는 대장동 수사는 앞으로 더 힘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내부 결속 부재도 만만치 않은 장애 요인이다.

비주류 정치인으로 살았던 이 고문이 주류로 자리 잡으려면 그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주류가 자리를 내줘야만 한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일조하고 국정을 책임지던 ‘친문(친 문재인)계’ ‘친낙(친 이낙연)계’ 의원들이 그들이다.

최근 원내대표를 ‘친이재명계’에게 내줬지만, 그동안 갖고 있었던 모든 기득권은 아직 내려놓지 않았다.

민주당 인사들은 지방선거까지 약 2개월, 전당대회까지 약 4개월 남은 현 시점에서 이 고문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고 말하지만, 아직 ‘주류’로 평가받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직 민주당 내부에는 절대다수의 친문 의원들이 자리하고 있고, 소수의 ‘정세균계’ 의원들 또한 ‘반이재명계'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유독 약했다고 평가받는 ‘원팀 정신’이 지방선거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 고문의 주류행 열차는 제대로 탄력받지 못한다.

복수의 민주당 인사들은 친문계와 정세균계 의원 중 몇몇이 이 고문을 극도로 꺼려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지난 대선 본선에서 이낙연 전 대표가 공식적으로 선거운동에 함께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낙연 캠프에 몸담았던 몇몇 인물이 윤 당선인을 도와주는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송영길 전 대표와 운동권으로 대표되는 86그룹(80학번·60년대생)이 이재명계에 힘을 보태면 친문에 버금가는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정계 인사들은 이들을 결속력이 매우 약한 집단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으로 뭉친 친문과는 달리 이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따라 모인 집단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패배한다면 모두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더 무서운
내부 총질

대장동 수사와 민주당 내부 세력은 현재 이 고문이 걷고 있는 꽃길에 재를 뿌리고 있다. 그러나 대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선에서 위기들을 차근차근 헤쳐나갔던 그가 당권 가도에서도 똑같은 기지를 발휘해 문제들을 해결해나간다면 무난하게 당권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다. 이재명의 ‘주류행’ 열차는 이제 막 출발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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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정-조국 딸 스캔들 오버랩

심우정-조국 딸 스캔들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심우정 검찰총장이 ‘딸 특혜 채용 논란’에 휩싸였다. 자격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외교부에 최종 합격했다. 외교부가 오직 심 총장의 딸을 위해 전형까지 엎었다는 게 골자다. 외교부는 특혜가 아니라던 입장을 뒤집고, 심 총장 지녀 채용을 보류했다. 정치권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사안처럼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며 맹공을 펼치고 나섰다.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 심모씨는 ‘아빠 찬스’로 취업에 성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국립외교원 기간제 연구원과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에 합격할 수 없었다. 지원 자격 자체가 미달 수준이었다. 일각에서는 입시 비리 혐의를 받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사안보다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수사기관이 심씨를 즉각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아빠 찬스? 수상한 합격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지난달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 질의서 심씨의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했다. 이 문제는 지난해 9월 심 총장의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서 언급됐었다. 당시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은 심 총장의 장녀가 1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국립외교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는데, 심 후보자가 이와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당시 “후보자 장녀가 최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석사 과정을 이수했다”며 “후보자 자녀는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국립외교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다. (장녀가)서울대 국제대학원 1학년 때 박철희 교수에게 수업을 받았다”며 “박 교수는 현직 주일대사고, 후보자 본인 장녀가 입사할 당시 국립외교원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철희 국립외교원장은 나카소네 야스히로상 수상자”라며 “제1회(수상자) 박철희 주일대사고, 윤석열정부서 ‘중요한 건 일본 마음’이라고 말한 김태효 차장이 제5회 장려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심 총장이 “문제가 없다”고 답변하자, 박 의원은 “그러면 채용 서류를 내라.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전부터 채용서류 전체를 내라고 하는 것”이라며 “의원실서 계속 요구하지만 후보자 동의가 없어서 (외교원이) 내질 않고 있다”고 따져 물었다. 외교부의 지난 1월 1차 공무직 연구원 채용 공고에는 ‘경제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가 응시 자격이었다. 그런데 한 달 뒤인 2차 공고는 갑자기 심씨가 전공한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됐다. 외교부는 응시 가능 대상을 확대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변경 전에 응시했던 이들은 2차 공고 때는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공정채용 가이드라인 등에 따르면, 채용공고를 변경할 때는 채용 관련 심의기구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외교부는 인사기획관실과 서면 협의만 거쳤다. 심의기구를 통한 공정성을 확보하지 않은 채 채용 공고를 변경한 셈이다. 채용 경력을 두고도 외교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심씨에게 특혜를 줬다는 지적도 거세다. 채용 공고에는 해당 분야 실무 경력 2년 이상이 응시 자격이었다. 그러나 심씨의 경력은 국립외교원 연구원 8개월,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보조원 22개월, UN 경제사회국 인턴 6개월로 실제 경력은 8개월에 불과했다. 경력 1년도 안 되는데 스펙 과대 포장해 지원 외교부 전형까지 뒤집어…기존 면접자는 탈락 외교부는 학창 시절의 경험도 경력으로 인정한다고 해명했지만, 외교부 산하 기관서 2022년과 2023년에 낸 채용공고엔 인턴이나, 교육생, 학위 취득에 소요되는 행정조교 등은 경력서 제외한다고 적시돼있다. 심씨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산하 EU센터서 연구보조원으로 근무했다고 실무 경력에 적었다. 하지만 서울대 국제학연구소가 발간한 2023년 연례보고서에는 심씨가 연구 보조원이 아닌 EU센터 ‘석사 연구생’으로 적혀 있다. 민주당은 지난 2일 심씨의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 관련 진상조사단을 출범했다. 조사단에는 한 의원을 포함해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영배·홍기원·이재강 의원,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기표·박희승 의원,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이용우 의원, 정무위원회 소속 강준현·이정문 의원,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성회 의원, 교육위원회 소속 고민정·백승아 의원 등 총 12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심 총장을 포함한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고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외교부는 지난 1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면접까지 통과해 현재 신원 조사 절차만 남겨둔 심씨의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 채용은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유보됐다. 공익감사는 감사 대상 기관이 자체 감사기구서 직접 처리하기 어려운 경우 등에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 윤재관 대변인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감사원은 검찰의 2중대 역할을 자처해 왔다.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며 “감사원을 동원해 면죄부를 받으려는 시도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사단은 심 총장 자녀 관련 ‘권력형 비리’ 의혹과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규명하고 대응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심 총장 딸의 외교부 특혜 채용 비리 의혹 및 서민금융 대출 논란, 심 총장 아들의 장학금 수령 특혜 의혹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앞서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외교원 연구원 채용 공고상 자격 요건에 ‘해당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 또는 학사학위 소지자 중 2년 이상 관련 분야 근무 경험자’라고 돼있지만 심 총장 딸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특혜 채용 의혹을 주장한 바 있다. 급 바뀐 채용공고 심 총장은 입장문을 내고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검찰총장의 자녀는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청년들과 같이 본인의 노력으로 채용 절차에 임했다. 국회에 자료 제출을 위한 외교부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도 동의했다”고 반박했다. 한 의원은 최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심씨 특혜 채용에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 박장호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장이라고 주장했다. 한 의원은 “(박장호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장은)윤석열정권 출범 직후 2022년 7월 정도에 대통령실 외교비서관실로 들어갔다가 2024년 1월에 외교부로 복귀해 5월 말, 한반도 평화교섭본부를 없애고 새롭게 신설한 외교전략정보본부 외교정보기획국장으로 보직받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한 의원에 따르면 2023년 외교부 연구직 채용 1차 공고 당시 직접 면접에 참여한 박 국장은 지원자 A씨를 “한국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하지만 A씨는 한국서 나고 자라 학위까지 받은 인물로 언어능력을 문제 삼을 만한 근거는 부족했다. A씨의 탈락 이후 외교부는 2차 공고를 내며 채용 자격을 경제 관련 석사학위 소지자에서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했다. 이때 국제협력 분야를 전공한 심씨가 합격하게 된 것이다. 한 의원은 박 국장의 대통령실 근무 경험이 심씨의 채용 과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채용 실무가 인사기획관실이 아닌 외교정보기획국 산하 외교정보1과서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는 “아무래도 용산에 파견 나가 있으면 조금 더 넓게 여러 부처와 관련된 사람들을 접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 과정서 어떤 방식이든지 어떤 접점이 이뤄지지 않았겠냐라고 하는 것은 있는데 그 부분은 저희가 조금 더 깊이 파봐야 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 먹잇감 심 총장과 갈등을 빚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심씨의 사건은 좋은 먹잇감이다. 지난 3일 공수처는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하 사세행)이 심 총장과 조태열 장관을 직권남용, 특정범죄가중법상 뇌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3부(부장검사 이대환)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수사3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석방을 지휘해 고발당한 심 총장 사건도 수사 중이다. 사세행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검찰의 수장인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을 뇌물성 채용한 행위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하면서 감사원이 공익감사 청구를 각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공익감사 청구는 6개월 이내 결과를 내놔야 하되 기한은 자체 판단으로 늘릴 수 있는데, 그전에 감사에 착수할지 여부부터 감사위원회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감사 청구를 각하하는 이유는 통상 이미 같은 사안에 대한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가 많다. 공수처 수사가 각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법상 감사원이 거부할 수 없는 국회 요구 감사의 경우에도 수사나 재판을 이유로 ‘사실상 각하’했던 최근 사례도 있다. 감사원은 지난달 25일 국회가 요구한 방송통신위원회 2인 구조 등 감사를 두고, 같은 사안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위법성 여부를 감사원이 결론 내리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매듭지은 보고서를 내놨다. 정치권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심씨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입시 비리 논란을 일으켰던 조 전 장관 부부가 받았던 수사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면 검찰의 이중적 잣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조 전 장관이 받았던 검찰 수사를 보면 입시 비리 혐의만으로도 압수수색 등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같은 혐의를 받는 심 총장 딸의 경우 멀쩡하게 살고 있다는 걸 국민 눈높이서 봤을 때 형평성 논란이 일 것”이라며 “이건 상식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조민은 집유 “강도 높게 수사해야” 용산 파견 키맨 박장호 국장 뒷배? 여당인 국민의힘도 조용하다. 지난달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간부 자녀 특혜 채용을 두고 “제2의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를 넘어 제2의 조국 사태”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공수처가 심 총장과 심씨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력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요 고발 사건이 이어지면서 수사 지연은 불가피하다. 지난 4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인사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3명 등 4명의 검사 임명을 대통령실에 제청했지만 두 달이 넘도록 임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는 인사위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해 9월에도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2명 등 3명의 검사를 추천했지만 대통령실은 반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답이 없는 상태다. 윤 전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될 때까지 이들을 임명하지 않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송창진 수사2부장의 면직을 재가하면서도 신규 검사 임명은 하지 않았다. 한 총리의 뒤를 이은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경찰청 등 부처 인사는 진행하면서도 공수처 검사는 임명하지 않았다. 신규 검사 임명이 늦어지면서 고질적인 공수처 인력난도 지속되고 있다. 공수처 검사 정원은 처장과 차장을 포함해 25명이지만 현재 검사 인원은 휴직자 1명을 포함해 14명에 불과하다. 정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신규 검사 7명을 임명해도 정원보다 4명이 부족하다. 공수처 내부에서는 과부하 상태라는 우려가 나온다. 12·3 비상계엄 수사와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비위 의혹 수사 등 기존 수사에 인력이 집중돼있어 타 수사를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는 토로도 상당하다. 수사? 미지수 공수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고발 사건이 이어지고 있지만 배당받은 사건을 전부 들여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통령실이 하루빨리 검사 임명을 해줘야 타 사건도 들여다볼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박에 반박 나선 외교부 외교부가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입장을 재반박하는 장문의 입장문을 내놨다. 외교부는 “관점에 따라 제도 운영 과정서 미흡했던 부분이 지적될 수는 있겠지만, 이를 특정 인물에 대한 특혜로 연결 짓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석사학위 소지자 또는 학사학위 소지 후 2년 이상 관련 분야 근무자’를 대상으로 채용 공고한 국립외교원 기간제 연구원에 석사 취득 예정 상태였던 심씨가 채용된 것에 대해 심씨만 특별히 배려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학위 취득 예정서를 공식 증명서로 증빙하면 자격요건을 갖춘 것으로 인정했던 사례가 2021~2025년까지 총 8건 더 있었다”고 반박했다. 외교부는 올 초 외교부 정책조사 연구원 채용 과정서 이미 최종 면접까지 마친 응시자가 불합격 처리되고, 심씨를 위한 ‘맞춤형’으로 응시 자격을 바꿔 재공고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경제 관련 석사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1차 공고를 냈을 때 응시 인원이 6명에 불과했고, 그 중 유일하게 경제 관련 석사학위를 소지한 응시자 1명에 대해 외부 인사 2명과 내부 인사 1명으로 구성된 면접위원회가 최종 면접을 했으나 채용 부적격 판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1차 채용 공고문에 ‘응시자 중 적격자가 없을 경우 선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사전에 공지했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2차 공고에선 응시 가능 대상을 넓히기 위해 자격 요건을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했고, 그 결과 19명의 지원자가 응시해 심씨를 포함한 5명이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번처럼 1차 공고 후 적격자가 없어 전공·자격증 분야 등 응시 자격 요건을 변경해 재공고한 사례는 타 부처는 물론 외교부 내에서도 과거 전례가 있다면서 “(심씨가)유일하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앞서 외교부의 이 같은 설명에 대해 “응모한 사람이 적더라도 (같은) 채용 공고 사이트를 보면 재공고를 해서라도 기한을 연장해 해당 분야 사람을 찾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심씨가 또 다른 응시 요건인 ‘실무 경력 2년 이상’을 충족했는지도 논란이 큰 쟁점이다. 외교부는 심씨의 실무 경력을 국립외교원 경력 8개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보조원, 유엔 산하 기구 인턴 등을 포함해 총 35개월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인턴, 조교 등은 통상 실무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경험과 경력은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