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코로나19 확진까지 가는 길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3.28 14:41:28
  • 호수 13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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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서 걸릴 거 같아요”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000만명을 육박했다. 선별진료소의 PCR(유전자증폭) 검사 외 병·의원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가 시작되면서 확진자 수는 빠르게 올라갔다. 환자들은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보건소 PCR 검사보다 생활반경에서 받을 수 있는 신속항원검사를 선호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코로나19로부터 일반 환자를 보호해주는 장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부는 지난 14일 한 달간 한시적으로 응급용 선별검사(PCR)와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이하 신속항원검사)에서 양성 결과가 나온 경우 의사 판단하에 확진으로 간주해 PCR 검사 양성 확진과 동일하게 관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호흡기 전담 클리닉 76개 기관을 조사한 결과, 신속항원검사 양성과 PCR 검사 양성이 94.7% 동일해서 결정했다.

분리 없어

여태까진 PCR 검사 결과로만 코로나19 확진 판정이 가능했다면, 동네 병·의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아 양성이 뜨면 확진 판정을 받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신속항원검사 결과에 따라 바로 진료·상담·처방이 가능해졌다. 전국의 7588개 호흡기 전담 클리닉 및 호흡기 진료 지정 의료기관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을 수 있다.

보통 보건소의 PCR 검사는 결과를 하루 정도 기다려야하는 반면, 신속항원검사는 검사 후 10분 이내로 결과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선호한다. 또 증상이 있는 경우는 빨리 약을 복용해야 해서 신속항원검사를 선택한다.

지난 18일 기자는 자가진단키트에 두 줄이 떴다. 당시 내근 중이었기 때문에 자가진단키트 결과를 보고하고 바로 짐을 싸서 회사에서 나와 근처 내과에 방문했다. 오전 10시30분쯤이었다.  


코로나19가 의심되는 상황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A 내과는 일반 환자가 너무 많았고, 신속항원검사를 한다는 표시가 없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신속항원검사는 오후에만 가능했다.

병원 내부가 협소해서 일반 환자와 코로나19 환자를 분리할 수 없으니, 시간을 나눠 환자가 겹치지 않도록 조치한 것이다. 일반 환자가 많은 장소에서 기다릴 수 없어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회사 근처에 병원은 신속항원검사를 시행하고 있지 않았다. 대부분 규모가 협소한 병원이었다. 접근이 편한 인근 병원에 전화를 했다.

도떼기시장처럼 인파 북적 
검사자·의료진 감염 공포

그 병원은 신속항원검사를 시행하고 있진 않았지만 신속항원검사를 하고 있는 B 병원을 알려줬다. 혹시 모르니 B 병원에 전화해 먼저 물어보라고 조언을 했다.

B 병원에 전화해서 문의하니 “지금은 환자가 너무 많아서 와도 검사를 못 받는다. 오후 2시 지나서 방문해달라”고 말했다. 오전 중에는 직장인들이 검사를 받으러 오기 때문에 환자가 몰린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오후 3시쯤 B 병원에 방문하니 한두 명의 환자만 있는 한산한 분위기였다. 오전에 사람이 많았을 때는 확인하지 못해서 알 수 없지만, 이곳은 코로나19 의심 환자와 일반 환자를 분리하지 않았다.


사실상 좁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분리할 수도 없었다. 진료 대기실 소파 위에 ‘일반 환자’ ‘신속항원검사 환자’라고 표시돼있었지만 환자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간호사들은 KF94 마스크를 쓰고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우선 신속항원검사를 받을 거라고 진료예약을 했고 곧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장갑을 끼고 파란색 가운과 KF94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혹시 증상이 있어서 왔냐는 질문에 가벼운 감기 증상과 자가진단키트 검사 결과 2줄이 나왔다고 말했다. 의사는 잠시 기다리면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고 진료 대기실에서 10분쯤 기다렸다.

그 사이 일반 환자들이 3, 4명 방문했다. 이 환자들 역시 기자와 마찬가지로 증상을 말하고 진료 대기실 소파에 앉았다.

검사 결과를 듣는 방은 신속항원검사 검사실 바로 옆이었다. 나름 공간을 분리한 것으로 보였다. 의사는 검사 가운을 벗고 마스크만 쓰고 있었다.

바로 신속항원검사 결과인 2줄을 보여주며 “코로나19 확진된 걸로 보인다. 증상은 어떠냐”고 물었다.

간단하게 증상을 말하니 “앞으로 증상이 바뀔 수 있다. 열이 나거나 두통이 생긴다. 그럴 땐 전화로 진료해서 약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혼자 사는 사람은 약을 어떻게 받아야 하나”고 물으니 “요샌 확진받고도 사람들이 다 다니더라”고 답했다.

병원은 코로나19 환자 등록을 해줬다. 관련된 서류 작성을 하고 돈을 지불하는 과정 중에서도 내원하는 환자들이 있었다.

한 명의 의사가 신속항원검사를 하고 일반 진료도 보는 상황이었는데 병원 내 감염이 이뤄질 수 있었다. 문제는 병원이 신속항원검사를 실시하는지 모르고 방문하는 경우다. 특히 면연력이 약한 임산부·아동·노인이 이에 해당된다.

증상자 넘쳐나는 병원
일반 환자는 어디로? 

한 포털사이트 카페에서 본인을 임산부라고 밝힌 C씨는 최근 임당검사를 하기 위해 산부인과에 방문했다.

하지만 C씨가 다니던 산부인과는 신속항원검사를 실시했고, 대부분 임산부보다는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러 온 코로나19 의심환자들이었다.


C씨는 해당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담당 의사가 신속항원검사를 하던 진료실에서 임당검사를 받았다. 

C씨는 혹시 본인이 코로나19에 걸린 게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산부인과에는 산모가 거의 없고 거의 검사를 받으러 온 유증상자들이었다. 대부분 자가진단키트 두 줄이 나온 사람들”이라며 “아무리 병원 환기를 잘하고 소독해도 병원에서 확진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신속항원검사 안하는 산부인과로 옮겨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글 댓글에는 “대부분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는데, 저라면 그 병원은 못 다닐 것 같다. 신속항원검사를 하면 보조금이 나오니까 하는 거 아닌가” “나도 산부인과에서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방역이 제대로 안 돼 정말 문제가 많았다” “소아전문병원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데리고 주말에 진료받으러 갔다가 코로나19 검사 대기자들 때문에 너무 놀랐다”는 등의 글이 달렸다.

그렇다고 모든 병원이 코로나19 환자와 일반 환자를 구분하지 않는 건 아니다. 공간이 분리될 수 있는 대형 병원은 환자를 분리했다.

D 산부인과는 병원 입구부터 모든 동선을 분리했다. 정문은 일반 환자들이 다니는 길이었고, 후문은 코로나19 의심 환자들이 이용했다. 이 병원을 내원하고 있는 산모들도 불편함이 없다는 의견이었다.


의료진이 신속항원검사에 관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글이 국민청원에 올라왔다. 글을 남긴 E씨는 의사 1명, 간호사 1명, 간호조무사 2명이 근무하는 작은 의원의 간호사였다. 

E씨는 “작은 의원급 병원은 의사의 결정에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이 마스크 하나로 코로나19 양성 환자들을 접하고 있다”며 “나는 이런 환경에서 근무할 수 없어 병원을 그만뒀지만, 보통은 직장을 쉽게 그만둘 수 없다. 다들 코로나19 감염을 걱정하면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선 겹쳐

이어 “이 같은 병원 환경은 기존 환자들에게도 위협이 된다. 코로나19 환자를 더 많이 양산시킬 수밖에 없다”며 “적어도 직원들과 기존 환자들에게 감염 위험이 없는 시설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고 신속항원검사를 할 수 있는 허가를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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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