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기준 총 7개(해외법인 제외)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오너일가 지분이 있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회사는 '한미정밀화학'과 '한미아이티' '한미메디케어' '한미사이언스'등 무려 4개사에 이른다. 이들 회사는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적지 않은 실적이 '안방'에서 나왔다.
1984년 설립된 한미정밀화학은 항생물질 등 각종 의약품을 제조해 한미약품에 납품하고 있다. 주거래처 역시 한미약품. 그렇다보니 한미약품에 매출을 크게 의존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분석 결과 100%에 가까운 매출을 내부거래로 채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매년 800억원대 고정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의존도 99%
한미정밀화학은 지난해 매출 809억원 가운데 798억원(99%)을 한미약품과의 거래로 올렸다. 한미약품은 2010년에도 한미정밀화학의 매출 973억원 중 965억원(99%)에 달하는 '일감'을 퍼줬다.
그전에도 마찬가지였다. 한미정밀화학이 한미약품과 거래한 매출 비중은 ▲2000년 98%(총매출 289억원-내부거래 284억원) ▲2001년 99%(335억원-333억원) ▲2002년 96%(401억원-384억원) ▲2003년 99%(466억원-460억원) ▲2004년 99%(521억원-517억원) ▲2005년 98%(558억원-547억원) ▲2006년 97%(617억원-600억원) ▲2007년 99%(677억원-667억원) ▲2008년 99%(787억원-776억원) ▲2009년 98%(876억원-859억원)로 나타났다.
2005년 설립된 한미아이티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다. 한미약품과 거래하는 병·의원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소프트웨어를 주로 그룹 계열사들에 공급하고 관리한다. 문제는 한미아이티의 자생력이다. 계열사들이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속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한미아이티는 지난해 136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내부거래액이 96억원(71%)에 이른다. 한미아이티에 일거리를 준 곳은 한미약품(93억원), 한미메디케어(1억원), 한미사이언스(1억원) 등이다. 2010년의 경우 한미약품(68억원), 한미사이언스(56억원), 한미메디케어(1억원) 등과 거래해 매출 151억원에서 내부거래액이 126억원(83%)이나 됐다.
한미아이티의 내부거래율은 ▲2006년 54%(234억원-127억원) ▲2007년 88%(180억원-158억원) ▲2008년 99%(126억원-125억원) ▲2009년 84%(170억원-143억원)를 기록했다.
한미정밀화학과 한미아이티 외에도 내부거래 비중이 심상찮은 한미 계열사는 또 있다. 바로 한미메디케어와 한미사이언스다.
2000년 설립된 한미메디케어는 유착방지제·당뇨측정기·청진기 등 의료기기 업체로, 지난해 계열사 의존도가 50%로 조사됐다. 매출 519억원에서 한미약품(250억원), 한미아이티(9억원) 등 내부거래로 거둔 금액이 259억원에 달했다.
계열사 절반서 몰아주기 "사실상 자생 불능"
모두 오너일가 지분 소유 …한미약품에 의존
과거엔 더 심했다. 한미메디케어의 내부거래율은 ▲2008년 82%(143억원-117억원) ▲2009년 68%(633억원-429억원) ▲2010년 60%(520억원-313억원)로 드러났다.
1973년 설립한 한미사이언스는 자회사들을 관리하는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한미약품(40%), 일본한미약품(100%), 한미유럽법인(100%), 에르무루스(95%) 등을 거느린 한미사이언스를 장악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이 회사의 계열사 의존도가 처음부터 높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갑자기 급증했다. 한미사이언스의 계열사 의존도는 ▲2005년 2%(3765억원-75억원) ▲2006년 2%(4222억원-67억원) ▲2007년 2%(5010억원-98억원) ▲2008년 1%(5583억원-72억원) ▲2009년 2%(6161억원-101억원) ▲2010년 3%(3134억원-102억원) 등 1∼3%에 불과했다.
한미사이언스는 2010년 한미약품을 분할하면서 한미홀딩스로 상호를 변경한데 이어 지난 3월 다시 현 상호로 변경했는데, 내부거래가 늘어난 것이 이때부터다. 한미약품 매출이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내부거래율이 올라갔다. 한미사이언스는 지난해 매출 151억원 가운데 115억원(76%)을 계열사에서 채웠다. 거래처는 한미약품(74억원), 북경한미약품(36억원), 한미아이티(4억원), 한미메디케어(1억원) 등이다.
이들 4개사의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두 오너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미정밀화학은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이 12%(14만4000주)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임 회장은 중앙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종로에서 ‘임성기약국’을 운영하다 1973년 한미약품을 창업했다.
한미아이티는 임 회장의 장남 임종윤 사장(39%·78만주)과 차남 임종훈 상무(23.5%·47만주), 장녀 임주현 상무(23.5%·47만주)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임 사장은 미국 보스턴대를 졸업하고 2000년 한미약품 전략팀 과장으로 입사해 북경한미약품 기획실장, 부총경리(부사장), 총경리(사장) 등을 거쳐 2009년부터 한미약품 사장을 맡고 있다. 임종훈 상무는 벤틀리대를 나와 경영기획 부문을, 임주현 상무는 보스턴대를 나와 인재개발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수백억씩 거래
임 회장의 자녀들은 한미메디케어 지분도 쥐고 있다. 임 사장이 6.12%를, 그의 두 동생 등 특수관계자들이 18.39%를 보유 중이다.
한미사이언스는 지주사답게 오너일가의 지분이 많다. 최대주주인 임 회장(50.76%·2520만6705주)을 비롯해 임 사장(3.02%·150만705주), 임주현 상무(2.97%·147만4895주), 임종훈 상무(2.96%·146만9870주) 등이 주요주주. 임 회장의 형 임완기씨(4.47%·221만7515주) 등 임씨일가 15명(친인척)도 지분이 있다. 이중엔 미성년자인 임 회장의 손자·손녀도 끼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