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소상공인 두 번 울리는 ‘해썹’ 불신론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3.14 16:04:28
  • 호수 13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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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게 주고 차는 ‘안전 완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식품은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공급’ ‘안전성’ ‘기호성’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특히 식품의 안전성이 무너지면 사람 건강에 바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안전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식품 안전성을 위해 정부는 1997년 해썹(HACCP) 근거 규정을 신설했지만 신뢰성·효율성 문제가 계속되고 있어, 소규모 식품업체들은 해썹 때문에 문을 닫는 경우도 발생한다.  

해썹(HACCP)은 위해 요소 분석(Hazard Analysis)과 중요 관리점(Critical Control Point)의 영문 약자다. 여기서 말하는 ‘위해 요소 분석’이란 원료와 공정에서 발생 가능한 병원성 미생물 등 생물학적·화학적·물리적 위해 요소를 분석하는 것이다.

너무 힘든
인증 과정

‘중요 관리점’은 식품의 위해 요소를 예방·제어 또는 허용 수준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공정이나 단계를 중점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즉 해썹은 식품의 원재료부터 제조·가공·보존·유통·조리단계를 거쳐 최종 소비자가 섭취하기 전 발생할 우려가 있는 위해 요소를 규명하는 것이다. 

해썹 의무적용 품목은 ▲어육 가공품(어묵) ▲냉동수산물(어류, 연체류, 조미 가공품) ▲냉동식품(피자류, 만두류, 면류) ▲과자류(빙과류) ▲비가열 음료 ▲레토르트식품 ▲김치류(배추김치)다.

해썹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사전단계에서 ▲해썹 팀 구성 ▲제품설명서 작성 ▲사용 용도 확인 ▲제조공정흐름도 작성 ▲공정흐름도 현장 확인을 거친다.


본 단계에서는 ▲위해 요소 분석 ▲중요 관리점 결정 ▲한계 기준 설정 ▲모니터링 체계 확립 ▲개선 조치 방법 수립 ▲검증 절차 및 방법 수립 ▲문서화 및 기록유지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하면 해썹 인증  마크를 받는다. 하지만 사후관리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해썹 인증이 취소된다. 이 같은 전 과정은 식품의약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관리한다.

현재까지 해썹 인증 마크를 받은 업체는 ▲식품 인증업소 9251곳 ▲축산물 인증업소 1만4887곳 ▲안전관리통합 인증업체 62곳으로 총 2만4200곳이다.

해썹 인증을 받은 업체가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이 같은 추세로 보면 식품 안전성에 문제가 없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정을 다 밟기가 너무 힘들고 시설 투자에도 많은 돈이 들어가며, 시설 유지가 매우 어렵다. 

이런 문제점에 더해 사후관리도 문제가 되고 있다. 2015년 2월2일에는 떡 전문 판매 기업인 송학식품의 떡볶이용 떡에서 대장균이 발견돼 해썹 인증이 취소됐다.

시험 비용에 수백∼수천만원 필요
“의무 적용 아닌 청결로 판단해야”

2018년 9월5일에는 풀무원푸드머스가 공급하고 더블유원에프엔비가 제조한 우리밀 초코블라썸케익 제품이 문제가 됐다. 해당 제품을 먹은 학생 2207명이 식중독 의심 증세를 보였는데, 더블유원에프엔비는 해썹 인증을 받은 곳이었다.


지난해 9월에는 해썹 인증을 받은 던킨도너츠 공장의 위생이 논란이 됐고, 올해에는 해썹 인증을 받은 1호 김치명인의 한성식품도 큰 논란이 됐다. 

한성식품은 곰팡이가 핀 배추로 김치를 만들었고, 공장 내부 곳곳과 설비된 기계에도 곰팡이가 껴 있었다. 천장은 누렇게 변해 있으며 물방울도 맺혀 있었고, 비가 오면 공장 전체에 물이 샜다.

하지만 식약처가 현장점검을 나올 때는 이미 깨끗하게 청소를 했기 때문에, 식약처는 공장 내 용기와 시설에서만 문제점을 발견했다. 

당시 공익신고자가 8개월 동안 모은 내부 영상과 보고서에는 불량한 현장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식약처가 현장 조사를 갔을 때 실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식품위생법 위반이 인정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과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처하지만, 한성식품은 과태료 50만원을 문 게 전부였다.

한편 한성식품은 2005년에 식약처의 ‘기생충 알이 검출된 김치 리스트’에 포함된 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성식품의 해썹 인증은 취소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 식약처 관계자는 해썹 부적합으로 나와도 해썹 인증이 아니고, 식품위생법상 지자체가 행정처분을 의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다.

안전성 보장?
신뢰도 제로

스스로를 임산부라고 밝힌 소비자는 한 포털사이트에서 댓글로 “명인김치는 ‘명인’이라고 광고하면서 가격을 더 비싸게 팔았을 텐데, 이런 식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니 황당하다. 먹는 거로 장난치면 천벌 받는데 이참에 크게 벌받고 사업을 접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번거롭고 힘들어도 김치를 사서 먹는 것보다는 해 먹는 게 안전하겠다”는 의견이 퍼지고 있다.

여러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해썹 인증은 식품 안전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해썹의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식약처는 2020년 12월1일부터 연 매출 1억원 미만 또는 종업원 5인 이하 업체도 해썹 적용 대상으로 확대됐는데, 국내 식품업체의 80%가 연 매출 1억원 미만 또는 종업원 5인 이하에 해당한다.


이런 방침으로 소규모 식품업체는 큰 타격을 받았다. 소규모 식품업체가 해썹 인증을 받으려면 너무 큰 돈이 들기 때문에 생업을 포기하게 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먼저 해썹 인증을 위해서는 고가의 금속검출기를 구매해야 한다. 이 제품은 700만원에서 1500만원 이상의 돈이 들고 운영을 위해서 직원도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금속검출기 모니터링 일지도 허위로 작성한다는 현장의 의견이 많다. 

울부짖는
소규모 업체

시험 비용에 필요한 돈도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이상 소요된다. 이 시험은 원료·작업 과정 중의 위해 파악을 생물학적 위해·화학적 위해 및 위생관리 상태로 나눠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음식 가짓수가 다양한 급식업소는 매년 억대의 시험 비용 등이 들어간다. 모니터링 장비들인 온도계, 저울, 타이머 등 검‧교정 비용도 들고 문서 작성을 위한 별도의 인력도 채용해야 한다.


업체들은 공장을 운영하며 해썹 인증을 병행하기 어렵다. 보통은 해썹 인증을 받기 위해 컨설팅 회사에 의뢰하니 추가 금액이 더 발생한다.

결국 해썹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대부분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 같은 이유로 해썹 인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식품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해썹에 의한 소규모 식품제조업의 목소리가 국민청원에까지 올라왔다. 해당 글을 올린 A씨는 식품 제조가공업을 운영 중이며, 직원은 2명이다. A씨는 10만원에 제품을 납품하면 재룟값, 배달비, 월세, 인건비, 세금 빼면 2만원이 안 남는다고 밝혔다.

또 공장은 방 3칸으로 운영 중인데, 해썹 규칙은 최소한 8개를 만들어야 한다. 사용하지도 않는 방을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작은 기업은 해썹 인증을 받기 위한 추가 서류 업무를 잠을 쪼개 처리했다. 

A씨는 “수많은 업체 중 몇 천만원을 들여 쉽게 공사할 수 있는 업체가 얼마나 되냐. 이 모든 것을 말해도 공무원들은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해썹 의무 적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건강하고 깨끗한 식품 브랜드로 만들어서 국민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 불법을 저지르지 않으면서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전했다.

수원에서 식품제조업을 하는 B씨도 “5인 이하 식품제조업에게 해썹 의무 인증 기간을 늘려달라”고 주장한다. B씨의 설명에 따르면 약 10만개의 업체가 해썹으로 불법영업을 하게 됐다.

그는 홀로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기며 식품제조업을 꾸려갔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백화점 즉석식품 판매행사는 모두 공산품 행사로 바뀌었고, B씨의 빵 공장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공간 확보 어렵다” 시장 상인들 울상
90% 이상 불법시설 전락해 생계 걱정

납품금액은 4분의 1로 줄었다. 새로운 거래처와 계약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고, 덕분에 납품금액은 늘었다. B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해썹이었다. 해썹 시설비를 마련할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B씨는 담당 공무원에게 방앗간이나 떡집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물으니, 담당 공무원은 “5인 이하 사업자들에 대한 방침은 내려온 게 없다. 즉석판매제조가공업들은 업종 변경을 하라고 유도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B씨는 “수만명의 자영업자가 해썹 때문에 생계를 잃고 불법영업을 하게 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대책을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축산물 시장도 비상이다. 축산물 시장이 해썹 인증을 받으려면 66㎡ 이상의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 원재료가 가게로 들어오는 별도의 입구와 보관실, 작업실 등 분리된 공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00여개의 업소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마장축산물시장은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

마장축산물시장에는 500여곳이 해썹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 중에서 10% 정도만 해썹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의 시장 상인들은 갑작스레 불법시설로 전락해 생계를 걱정해야 될 상황을 맞았다. 

축산물 관계자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 해썹 인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썹 인증을 받은 사람은 계속 유지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말 그대로 ‘배 째라’식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며 “해썹 인증을 받았어도 이후에 계속 관리하면서 드는 돈이 커 큰 부담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식품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우선 한국은 해썹 인증을 받기 위해 컨설팅을 받고 공장 시설 투자에 초점을 둔다. 결국 해썹 인증을 위해선 해썹을 위한 필수시설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은 해썹이나 국제식품안전협회(GFSI)인증을 모두 민간인증 기관에서 주도한다. 시설면에서는 한국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기록 관리나 개별검사 등 감시체계가 훨씬 까다롭다. 미국 식품 공장에서는 기록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회사 자체적으로 엄한 처벌을 내린다.

발각 시 정부기관으로부터 형사고발을 당하거나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는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식품 컨설팅 관계자는 “한국은 법 위반 시 부과되는 형 집행이 너무 가벼워서 해썹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 현실적인 해썹 제도의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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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