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소상공인 두 번 울리는 ‘해썹’ 불신론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3.14 16:04:28
  • 호수 13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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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게 주고 차는 ‘안전 완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식품은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공급’ ‘안전성’ ‘기호성’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특히 식품의 안전성이 무너지면 사람 건강에 바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안전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식품 안전성을 위해 정부는 1997년 해썹(HACCP) 근거 규정을 신설했지만 신뢰성·효율성 문제가 계속되고 있어, 소규모 식품업체들은 해썹 때문에 문을 닫는 경우도 발생한다.  

해썹(HACCP)은 위해 요소 분석(Hazard Analysis)과 중요 관리점(Critical Control Point)의 영문 약자다. 여기서 말하는 ‘위해 요소 분석’이란 원료와 공정에서 발생 가능한 병원성 미생물 등 생물학적·화학적·물리적 위해 요소를 분석하는 것이다.

너무 힘든
인증 과정

‘중요 관리점’은 식품의 위해 요소를 예방·제어 또는 허용 수준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공정이나 단계를 중점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즉 해썹은 식품의 원재료부터 제조·가공·보존·유통·조리단계를 거쳐 최종 소비자가 섭취하기 전 발생할 우려가 있는 위해 요소를 규명하는 것이다. 

해썹 의무적용 품목은 ▲어육 가공품(어묵) ▲냉동수산물(어류, 연체류, 조미 가공품) ▲냉동식품(피자류, 만두류, 면류) ▲과자류(빙과류) ▲비가열 음료 ▲레토르트식품 ▲김치류(배추김치)다.

해썹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사전단계에서 ▲해썹 팀 구성 ▲제품설명서 작성 ▲사용 용도 확인 ▲제조공정흐름도 작성 ▲공정흐름도 현장 확인을 거친다.


본 단계에서는 ▲위해 요소 분석 ▲중요 관리점 결정 ▲한계 기준 설정 ▲모니터링 체계 확립 ▲개선 조치 방법 수립 ▲검증 절차 및 방법 수립 ▲문서화 및 기록유지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하면 해썹 인증  마크를 받는다. 하지만 사후관리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해썹 인증이 취소된다. 이 같은 전 과정은 식품의약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관리한다.

현재까지 해썹 인증 마크를 받은 업체는 ▲식품 인증업소 9251곳 ▲축산물 인증업소 1만4887곳 ▲안전관리통합 인증업체 62곳으로 총 2만4200곳이다.

해썹 인증을 받은 업체가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이 같은 추세로 보면 식품 안전성에 문제가 없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정을 다 밟기가 너무 힘들고 시설 투자에도 많은 돈이 들어가며, 시설 유지가 매우 어렵다. 

이런 문제점에 더해 사후관리도 문제가 되고 있다. 2015년 2월2일에는 떡 전문 판매 기업인 송학식품의 떡볶이용 떡에서 대장균이 발견돼 해썹 인증이 취소됐다.

시험 비용에 수백∼수천만원 필요
“의무 적용 아닌 청결로 판단해야”

2018년 9월5일에는 풀무원푸드머스가 공급하고 더블유원에프엔비가 제조한 우리밀 초코블라썸케익 제품이 문제가 됐다. 해당 제품을 먹은 학생 2207명이 식중독 의심 증세를 보였는데, 더블유원에프엔비는 해썹 인증을 받은 곳이었다.


지난해 9월에는 해썹 인증을 받은 던킨도너츠 공장의 위생이 논란이 됐고, 올해에는 해썹 인증을 받은 1호 김치명인의 한성식품도 큰 논란이 됐다. 

한성식품은 곰팡이가 핀 배추로 김치를 만들었고, 공장 내부 곳곳과 설비된 기계에도 곰팡이가 껴 있었다. 천장은 누렇게 변해 있으며 물방울도 맺혀 있었고, 비가 오면 공장 전체에 물이 샜다.

하지만 식약처가 현장점검을 나올 때는 이미 깨끗하게 청소를 했기 때문에, 식약처는 공장 내 용기와 시설에서만 문제점을 발견했다. 

당시 공익신고자가 8개월 동안 모은 내부 영상과 보고서에는 불량한 현장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식약처가 현장 조사를 갔을 때 실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식품위생법 위반이 인정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과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처하지만, 한성식품은 과태료 50만원을 문 게 전부였다.

한편 한성식품은 2005년에 식약처의 ‘기생충 알이 검출된 김치 리스트’에 포함된 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성식품의 해썹 인증은 취소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 식약처 관계자는 해썹 부적합으로 나와도 해썹 인증이 아니고, 식품위생법상 지자체가 행정처분을 의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다.

안전성 보장?
신뢰도 제로

스스로를 임산부라고 밝힌 소비자는 한 포털사이트에서 댓글로 “명인김치는 ‘명인’이라고 광고하면서 가격을 더 비싸게 팔았을 텐데, 이런 식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니 황당하다. 먹는 거로 장난치면 천벌 받는데 이참에 크게 벌받고 사업을 접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번거롭고 힘들어도 김치를 사서 먹는 것보다는 해 먹는 게 안전하겠다”는 의견이 퍼지고 있다.

여러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해썹 인증은 식품 안전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해썹의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식약처는 2020년 12월1일부터 연 매출 1억원 미만 또는 종업원 5인 이하 업체도 해썹 적용 대상으로 확대됐는데, 국내 식품업체의 80%가 연 매출 1억원 미만 또는 종업원 5인 이하에 해당한다.


이런 방침으로 소규모 식품업체는 큰 타격을 받았다. 소규모 식품업체가 해썹 인증을 받으려면 너무 큰 돈이 들기 때문에 생업을 포기하게 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먼저 해썹 인증을 위해서는 고가의 금속검출기를 구매해야 한다. 이 제품은 700만원에서 1500만원 이상의 돈이 들고 운영을 위해서 직원도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금속검출기 모니터링 일지도 허위로 작성한다는 현장의 의견이 많다. 

울부짖는
소규모 업체

시험 비용에 필요한 돈도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이상 소요된다. 이 시험은 원료·작업 과정 중의 위해 파악을 생물학적 위해·화학적 위해 및 위생관리 상태로 나눠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음식 가짓수가 다양한 급식업소는 매년 억대의 시험 비용 등이 들어간다. 모니터링 장비들인 온도계, 저울, 타이머 등 검‧교정 비용도 들고 문서 작성을 위한 별도의 인력도 채용해야 한다.


업체들은 공장을 운영하며 해썹 인증을 병행하기 어렵다. 보통은 해썹 인증을 받기 위해 컨설팅 회사에 의뢰하니 추가 금액이 더 발생한다.

결국 해썹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대부분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 같은 이유로 해썹 인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식품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해썹에 의한 소규모 식품제조업의 목소리가 국민청원에까지 올라왔다. 해당 글을 올린 A씨는 식품 제조가공업을 운영 중이며, 직원은 2명이다. A씨는 10만원에 제품을 납품하면 재룟값, 배달비, 월세, 인건비, 세금 빼면 2만원이 안 남는다고 밝혔다.

또 공장은 방 3칸으로 운영 중인데, 해썹 규칙은 최소한 8개를 만들어야 한다. 사용하지도 않는 방을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작은 기업은 해썹 인증을 받기 위한 추가 서류 업무를 잠을 쪼개 처리했다. 

A씨는 “수많은 업체 중 몇 천만원을 들여 쉽게 공사할 수 있는 업체가 얼마나 되냐. 이 모든 것을 말해도 공무원들은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해썹 의무 적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건강하고 깨끗한 식품 브랜드로 만들어서 국민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 불법을 저지르지 않으면서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전했다.

수원에서 식품제조업을 하는 B씨도 “5인 이하 식품제조업에게 해썹 의무 인증 기간을 늘려달라”고 주장한다. B씨의 설명에 따르면 약 10만개의 업체가 해썹으로 불법영업을 하게 됐다.

그는 홀로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기며 식품제조업을 꾸려갔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백화점 즉석식품 판매행사는 모두 공산품 행사로 바뀌었고, B씨의 빵 공장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공간 확보 어렵다” 시장 상인들 울상
90% 이상 불법시설 전락해 생계 걱정

납품금액은 4분의 1로 줄었다. 새로운 거래처와 계약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고, 덕분에 납품금액은 늘었다. B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해썹이었다. 해썹 시설비를 마련할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B씨는 담당 공무원에게 방앗간이나 떡집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물으니, 담당 공무원은 “5인 이하 사업자들에 대한 방침은 내려온 게 없다. 즉석판매제조가공업들은 업종 변경을 하라고 유도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B씨는 “수만명의 자영업자가 해썹 때문에 생계를 잃고 불법영업을 하게 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대책을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축산물 시장도 비상이다. 축산물 시장이 해썹 인증을 받으려면 66㎡ 이상의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 원재료가 가게로 들어오는 별도의 입구와 보관실, 작업실 등 분리된 공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00여개의 업소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마장축산물시장은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

마장축산물시장에는 500여곳이 해썹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 중에서 10% 정도만 해썹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의 시장 상인들은 갑작스레 불법시설로 전락해 생계를 걱정해야 될 상황을 맞았다. 

축산물 관계자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 해썹 인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썹 인증을 받은 사람은 계속 유지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말 그대로 ‘배 째라’식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며 “해썹 인증을 받았어도 이후에 계속 관리하면서 드는 돈이 커 큰 부담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식품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우선 한국은 해썹 인증을 받기 위해 컨설팅을 받고 공장 시설 투자에 초점을 둔다. 결국 해썹 인증을 위해선 해썹을 위한 필수시설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은 해썹이나 국제식품안전협회(GFSI)인증을 모두 민간인증 기관에서 주도한다. 시설면에서는 한국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기록 관리나 개별검사 등 감시체계가 훨씬 까다롭다. 미국 식품 공장에서는 기록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회사 자체적으로 엄한 처벌을 내린다.

발각 시 정부기관으로부터 형사고발을 당하거나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는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식품 컨설팅 관계자는 “한국은 법 위반 시 부과되는 형 집행이 너무 가벼워서 해썹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 현실적인 해썹 제도의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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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