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피어 컨템포러리에서 개관전 ‘In the waiting line’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티파니 리, 정윤영 작가의 2인전으로 구성됐다. 예술가로서, 또 팬데믹 속 개인으로서 ‘기다림’에 관한 문제의식을 주제로 삼았다.
MZ세대의 힙플레이스로 불리는 서울 성수동에 복합문화공간 ‘피어 컨템포러리’가 생겼다. 현대 예술의 바다에서 항해 중인 예술가를 위한 일종의 정박소(Pier) 역할을 한다는 취지다. 오래된 기계공장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피어 컨템포러리는 티파니 리와 정윤영의 2인전을 개관전으로 준비했다.
생일
두 작가는 수년간 교류하면서 서로의 문제의식을 교환하곤 했다. 이 과정에서 ‘팬데믹 시대의 아티스트’에 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 것이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 됐다. 티파니 리는 다매체를 응용한 작업, 정윤영은 회화를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왔다.
▲티파니 리 ‘Happy Birthday Project’ = 티파니 리는 2012년부터 유토피아적 기호들을 재전유하는 과정을 작업으로 표현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해피 버스데이 프로젝트는 ‘생일’이라는 특정 기호를 재전유하는 과정을 담은 작업이다. 알록달록한 구성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곁들였지만 어쩐지 낯설고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게 특징이다.
이 작업에서 아이콘이 부유하는 설치작업은 반대 벽의 영상이 되고, 이 영상은 다시 평면이 되며, 평면작업은 설치의 요소로 작용한다. 영상에서 느릿하게 울리는 생일 축하 노래는 얼핏 설치물과 어울리는 것 같지만 재전유 된 기호 사이에 뚜렷한 인과관계는 없다. 매체가 옮겨가는 과정에서 생일이라는 기호에 관한 재전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기 때문.
생일을 재전유한 작업
낯설고 이상한 파티
해피 버스데이 프로젝트는 코로나19 이후 각종 미디어에서 접하는 소식과 실존 사이의 괴리감으로 혼란스러웠던 작가의 감각을 매체의 상호작용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기약 없는 기다림 중에 열린 생일 파티의 황당함을 의도했다.
생일이라는 언어적 기호를 구현한 이 작업은 주인공 없는 생일 파티라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티파니 리는 “팬데믹 시대에 생과 사의 중간에서 또는 삶과 예술의 중간에서 여전히 서성이며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목적 없이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며 “생일이라는 기호를 재전유한 이 작업을 통해 각자가 기다리는 것의 실체에 대해 떠올리며 질문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정윤영 ‘뭉툭하지만 생생한 어떤 것’ = 극소수의 인기 작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가가 처한 현실은 여전히 팍팍하다. 정윤영은 이번 전시에서 창작자로서의 삶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예고와 미대를 거치며 오랜 시간 함께 미술을 공부했던 수많은 동료는 예술계에서 자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정윤영은 이런 현실을 자조적으로 풀어냈다.
그는 “이런 모습들이 때때로 남들이 보기에는 배부른 짓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고, 무모하고 형편없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창작은 선명하지 않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일지라도 꽤 절실한 것이었고 투박하지만 생생한 어떤 것이었다”고 말했다.
창작자의 팍팍한 현실 조명
응원만으론 해결 못할 본질
이어 “솔직하게는 돈벌이도 아닌데 절대 시간이 필요한 창작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이, 그리고 그런 작품을 전시에서 모두 선보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모멸감과 자괴감을 느낄 때가 꽤 있었다”고 털어놨다.
어딘가에 적을 두지 않은 채 부유하듯 살면서 작업을 이어온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고, 불안정한 기다림의 연속이다. 예술가가 처한 척박한 현실은 자본으로부터의 소외, 전시공간으로부터의 소외,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진다. 그저 더 치열하게 열심히 하라는 응원의 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본질적인 문제인 셈이다.
소외
피어 컨템포러리 관계자는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20여점의 영상, 설치, 회화 작품들은 예술적 신념과 사회적 상황의 간극에 주목해 풀어냈다”며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모티브로 삼아 막연한 망설임, 기다림 등에 대한 작가적 해석이 돋보인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전시는 오는 2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