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지난 7일, 안중현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가 황대헌, 이준서의 남자 1000m 경기 직후 오른손에 A4 용지와 함께 100달러 지폐를 쥐고 있는 모습이 화제로 떠올랐다.
안 코치는 이날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서 속개된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서 각 조 1, 2위로 골인한 황대헌‧이준서 선수에게 실격 판정이 나오자 항의했는데 이 모습이 취재진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A4 용지는 ‘심판 판정이 적합하다고 판단되지 않을 경우’ 코치진이 심판진에게 항의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항의서였다.
정작 눈길이 쏠린 건 항의서가 아닌 미화 100달러짜리 지폐였다.
이날 안 코치가 100달러짜리 지폐를 쥐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국제빙상연맹(ISU)의 규정 때문이다.
현행 ISU 규칙 123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 및 직권 시정’ 항목 중 ‘이의 제기 권리’ 항목에 따르면 경기의 심판 판정에 항의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경기 종료 후 30분) 이내에 100스위스프랑 또는 기타의 같은 가치로 환전 가능한 달러나 유로 등 통화와 서면 항의서를 레프리에게 제출 및 예치하도록 돼있다.
ISU가 서면 항의서와 함께 일정 수준의 금전을 제출하도록 한 배경에는 각국의 무분별한 항의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단, 심판진에 의해 항의가 수락될 경우 제출했던 지폐는 돌려받을 수 있지만 번복되지 않을 경우는 돌려받지 못하고 그대로 ISU에 송금된다.
서면 항의서를 검토한 ISU는 다음 날인 8일, ‘항의의 제한’ 연맹 규정을 근거삼아 심판이 안 코치의 항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표했다.
ISU는 “연맹 규정에 근거해 심판은 해당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경기 규칙 위반에 따른 실격 여부에 대한 심판의 판정에는 항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황대헌은 이날 준결승 1조 경기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두 명의 중국 선수들 견제 속에서 네 바퀴를 남기고 선두 자리를 끝까지 지켰던 그는 뒤늦게 진로를 변경했다며 페널티를 준 심판 판정에 따라 실격 처리돼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이어 이준서도 2위 자리를 지키며 결승점을 통과했으나 역시 뒤늦은 레인 변경 룰을 위반했다며 실격 처리됐다.
근래의 상당수 스포츠 종목들은 경기 도중 심판 판정이 불합리하다거나 ‘찰나’의 순간에 반칙이 이뤄졌을 경우 심판진은 비디오판독 등 장비의 힘을 빌리고 있다.
실제로 테니스, 배구, 배드민턴, 야구 등 인기 스포츠 종목들은 슬로우모션 카메라를 이용해 볼의 인아웃, 터치아웃 등을 판독해 경기의 질을 높였다.
찰나의 순간이 메달 색깔을 바꿀 수 있는 쇼트트랙 종목도 비디오판독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을 도입한 종목들 중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면서 금전을 제기해야 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해당 종목들이 무분별한 항의가 들어오지 않아 금전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정 종목이나 경기서 항의가 많이 들어온다면 불합리한 판단이 나오지 않도록 수준 높은 장비들을 설치하고 보다 엄선된 각국의 전현직 선수 출신들을 기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