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 세습' 대기업 뺨치는 예배당 대물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남 여수의 한 대형 교회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주는 일이 일어났다. 한국 개신교 교단을 떠들썩하게 했던 ‘명성교회 세습 논란’을 연상하게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요시사>가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세습,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직업 따위를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음. 우리나라에서는 세습이라는 단어가 유독 교회라는 단어에 잘 따라 붙는다. 교회 세습, 담임목사직이 직계로 이어지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꼼수 써서
변칙으로

교회 헌법은 담임목사직 세습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변칙 세습’ 등의 꼼수를 통해 법망을 비켜가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어왔다. 일단 한 번 자리를 물려주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교회 세습에 있어 교단의 자정 기능이 잘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더 나아가 개신교에 대한 국민 신뢰를 깎아 먹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교회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종교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개신교, 불교, 천주교 등 3대 대중 종교 중에서는 개신교의 신뢰도가 가장 낮다. 신도 비율은 불교와 함께 1~2위를 다투는 인기 종교지만 비종교인의 불신은 상당한 수준인 셈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해 3~4월 기준 국민 10명 중 4명만 ‘종교가 있다’고 답했다. 2004년 과반(54%)에서 2014년 50%로 떨어진 데 이어 지난해 40%까지 줄었다. 20~30대의 탈 종교화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20대는 22%, 30대 역시 30%만이 현재 믿는 종교가 있다고 답했다.

종교인은 불교, 개신교, 천주교에 대부분 분포돼있다. 한국갤럽이 조사를 시작한 1984년 이래 불교인 비율은 16~24%, 개신교인은 17~21%, 천주교는 6~7%를 기록했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개신교(17%), 불교(16%), 천주교(6%) 순이었다. 

현재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가장 호감을 느끼는 종교는 불교(20%)였다. 개신교는 6%에 불과했다(천주교 13%). 종교 분포 비율로 따지면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는 교세에 비해 낮은 편이다. 

비종교인이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는 ‘관심이 없어서’가 과반(54%)으로 나타났다. 이어 ‘종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19%), ‘정신적·시간적 여유가 없어서’(17%) 등이 뒤를 이었다. 관심이 없다는 응답 비율은 1997년 26%에서 지난해 54%로 약 25년 새 2배로 늘었다.

우리나라에서 종교의 위상이 점차 하락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대형교회, 아들은 개척교회
합친 뒤 후임 담임목사로 청빙 결의

최근 여수의 한 대형 교회에서 개신교 교단을 발칵 뒤집는 일이 일어났다. 해당 대형 교회 담임목사가 자신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준 것이다. 세습 과정이 변칙적으로 이뤄졌다는 비판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교회는 여수에서 많은 신도 수와 큰 규모를 자랑하는 ‘여수은파교회’로 등록 신도만 3000여명, 연간 재정은 60억원에 이르는 여수에서 가장 큰 교회로 알려져 있다. 고만호 여수은파교회 목사는 호남신학대학교 이사장과 전남CBS 이사장을 역임했다.

총회 세계선교부장, 총회 반동성애대책위원장 등을 지내는 등 교단 내 입지가 탄탄하다. 

2020년 7월에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의 주최로 진행된 제12회 한국 장로교의 날 기념예배에서 ‘2020 자랑스러운 장로교인 상’(목회 분야)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주최 측은 “교회를 개척해 건강하게 성장시키고, 600여명의 선교사 훈련 및 지원활동을 펼쳐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고 목사는 지난달 26일 공동의회를 열고 자신의 후임으로 아들인 고요셉 목사를 선출했다. 이날 공동의회는 여수은파교회와 고요셉 목사가 목사로 있는 여천은파교회를 합친 합병 교회의 위임 목사로 아들 고 목사를 청빙하겠다는 안건으로 진행됐다. 

고 목사는 이날 회의를 직접 주관했는데, 투표는 공개적으로 진행됐다. ‘가(찬성)’하면 ‘예’ 아니면 ‘아니요’라고 대답하도록 한 것. 신도들은 ‘예’라고 대답했으며, 아니면 아니라고 하라는 고 목사의 말에는 침묵했다. 안건이 통과된 순간이었다. 

교회 헌법
유명무실?

익명을 요구한 목사 A씨는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건은 공동의회의 결의를 거쳐야 하는 게 맞다. 그리고 공동의회를 주관하는 것은 담임목사의 역할”이라면서도 “이번 여수은파교회의 경우 고만호 목사는 아들 고요셉 목사 청빙 건을 직접 다뤘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담임목사직 세습 과정에서 꼼수가 동원됐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지난해 6월 고요셉 목사는 여수은파교회 인근에 개척교회인 여천은파교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6개월 뒤 여수은파교회와 여천은파교회를 합병하면서 고요셉 목사가 담임목사로 추대된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은 2013년부터 직계가족 간에 담임목사직 세습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교회 헌법에는 교회 통합에 대한 규정이 없어 그 틈새를 이용했다는 지적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여수은파교회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요셉 목사 청빙은 교인들이 원했고 교회 안정을 위해 진행된 일이라고 해명했다. 목사 A씨는 “담임목사(고만호 목사)가 일일이 신도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가부를 묻는데 그 자리에서 누가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여기에 고요셉 목사가 설립한 개척교회인 여천은파교회가 사실상 ‘페이퍼 처치’라는 의혹이 나왔다. 광주MBC에 따르면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할 시간에 고요셉 목사가 여수은파교회에 출석해 있거나 심지어 설교까지 한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또 여수은파교회가 보낸 문자메시지에 ‘여수은파교회에 헌금을 하면 다시 여천은파교회 재정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하다’며 ‘여천은파교회의 계좌로 바로 보내라’는 내용이 담겼다는 주장도 나왔다. 


여수은파교회 측은 논란을 정면돌파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뉴스앤조이>에 따르면 고만호 목사는 최근 새벽 설교에서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면 악의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이 있다. 목회자 아들 청빙한다고 세습? 옛날 이조 시대인가? 열댓 살 먹은 애, 자격도 실력도 없는데 아무 준비도 안 돼있는 애를 그렇게 앉히나? 우리 교인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이냐”고 했다. 고요셉 목사 청빙 결정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페이퍼 처치
의혹도 나와

여수은파교회 세습 논란에 교계 시민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지난 13일 논평을 내고 “교단 헌법 28조 6항, ‘세습금지법’이 있음에도 법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이 결정에 참담한 마음뿐”이라며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이라 포장하고, 탐욕을 교회의 안정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모습은 참담하며 소위 ‘페이퍼 처치’라 불리는 거짓과 기만에 대해서는 분노를 감출 수 없다”고 전했다. 

전남동부기독교교회협의회(NCC)도 13일 여수은파교회 세습 논란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놨다. NCC는 “(담임목사직 세습이)불법인 줄 뻔히 알면서도 왜 자꾸 목회지 대물림을 하려는 것일까요”라며 “교회를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주의 종이어야 할 담임목사의 지위를 권력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여수은파교회의 세습 논란은 명성교회 세습 논란을 상기시키고 있다. 명성교회 세습 논란은 교회를 설립한 김삼환 목사가 2015년 정년퇴임한 후 아들인 김하나 목사를 담임목사로 앉힌 일이 발단이 됐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4년 명성교회가 경기도 하남에 새노래명성교회를 따로 세운 뒤 김하나 목사를 담임목사를 앉힌 일이 시초다. 명성교회가 2017년 3월 김하나 목사를 청빙하면서 새노래명성교회 합병안까지 통과시키자 교계에선 변칙 세습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4년 3월부터 계산하면 해당 논란은 2019년까지 5년 넘게 이어졌다. 당시 명성교회는 김삼환 목사가 퇴임하고 2년이 지난 뒤 김하나 목사를 청빙했기 때문에 교단 헌법의 세습 금지 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회 세습에 반대하는 교계 시민단체 등이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명성교회 측이 교단 헌법의 취지를 왜곡했다며 청빙 결의 무효 소송을 냈다. 그때부터 교회 헌법 해석을 놓고 핑퐁 싸움이 벌어졌다. 

교단 재판국은 2018년 8월 김하나 목사의 청빙이 적법하다며 명성교회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한 달 만인 같은 해 9월 열린 교단 총회에서 재판국이 판결 근거로 삼은 교단 헌법 해석에 문제가 있다면서 판결을 취소했다. 공은 재심으로 넘어갔다.

재심을 맡은 교단 재판국은 2019년 8월 김하나 목사 청빙 결의를 무효로 판결했다. 

2019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이 수습안을 내놓으면서 명성교회 세습 논란은 일단 일단락되는 모양새를 보였다. 수습안에 따르면 명성교회의 부자 세습은 교단 헌법을 위반해 무효라고 선언한 재판국 재심 판결을 수용하게 만들면서도 김하나 목사가 지난해부터 부친인 김삼환 목사가 세운 교회에서 위임 목사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시민단체 “철회해야”
여수노회 “입장 유보”

교단의 수습안 발표 이후에도 진통은 계속됐다. 교단이 명성교회의 부자 세습을 사실상 허용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또 교단의 결정이 이미 국내 대형 교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목사직 세습 관행에 사실상 합법적인 길을 열어준 것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여수은파교회 논란에서도 여수노회, 총회에 대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지교회(여수은파교회)를 행정적으로 지도하고 권징(권고하고 징계)해야 할 노회와 총회가 책임을 저버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여수노회의 무책임한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큰 분노가 치민다”며 “여수노회는 사전에 불법 세습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모른 척 했고, 이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음에도 방기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모든 사태의 배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의 불법이 있다”며 “돈과 권력을 지닌 이들의 불법에는 한없이 너그러운 예장통합 총회는 겉으로는 세습을 금지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불법 세습을 부추기는 사기극을 진행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불법 세습은 교회를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회적 고립으로 안정을 해치고 하나님의 정의를 거스르며, 사회적 정당성을 잃는 길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면서 여수은파교회의 불법 세습을 반드시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여수노회는 여수은파교회 불법 세습 논란에 대해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최종호 여수노회 노회장은 <뉴스앤조이>의 취재에 “우리 노회는 은파교회와 관련해 어떠한 의견도 유보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목사 A씨는 “젊은 목사들 사이에서는 여수은파교회 불법 세습 논란을 두고 자괴감을 느낀다는 말이 많다.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면서도 노회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명성교회 세습 논란의 결말도 그렇고, 현재 여수노회의 입장도 그렇고 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체념이었다.

신학대생
“자괴감”

그러면서 그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신학대학생들 사이에 이른바 성골·진골·6두품 등 계급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성골은 대형 교회 목사의 아들, 진골은 중소형 교회 목사의 아들, 6두품은 집안에 종교인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며 “진정한 목회를 목적으로 신학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큰 박탈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고만호 목사, 또 다른 논란 ‘과거 5·18 망언’으로 뭇매

고만호 여수은파교회 목사는 이번 세습 논란 외에도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고 목사는 2019년 3·1절 100주년 기념예배에서 3·1운동을 언급하면서 5·18민주화운동과 비교했다. 

그는 “끔찍한 폭력이 있었어요. 예, 무기고 털어서 총 들고 나갔어요. 폭탄을 그 도청 안에다가 어마어마하게 장치를 했어요. 교도소를 막 습격을 했어. 끝난 다음에 제가 광주 시내를 돌아보니까요. 이건 뭐 전쟁터요, 완전히”라고 말했다.

“그런 뜻 아냐? 사과하기도

그러면서 “이편저편 따질 것 없이 무슨 뭐 여러 가지 말들을 하지만요, 어떤 이유로 해서든 폭력은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하략)”라고 발언했다.

교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일어나자 고 목사는 “설교 중에 민주화운동 때 폭력이 있었다고 말한 것은 3·1운동이 비폭력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당시 현장에 있었고, 동기의 희생을 가슴 아파했던 한 사람으로서 어떤 왜곡이나 폄훼할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고 사과한 바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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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