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현대중공업의 승계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룹내 유력 후계자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이를 두고 시선이 곱지 않다. 노사갈등으로 그룹 내 상황이 어수선한 가운데 그룹 내부서 분위기 파악 못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14일 사장단 및 자회사 대표 인사를 단행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의 부사장 승진 소식이었다. 그는 진급과 동시에 계열사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를 맡아 본격적인 경영에 나섰다.
역시 금수저
정 대표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다. 재계에서는 정 대표가 현대중공업그룹을 이끌 유력 후보로 꼽았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 같은 평가가 무리도 아니다. 1982년생인 정 대표는 서울서 태어나 청운중학교, 대일외고를 거쳐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1월 현대중공업에 대리로 입사한 이후 같은 해 8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위해 미국 유학길에 나섰다. 유학 과정을 마친 뒤에는 보스턴컨설팅그룹 한국지사에서 근무했다.
2013년 6월 다시 현대중공업에 부장으로 입사했다가 약 1년 반이 지난 이후 2014년 10월 기획재무부문장 총괄 상무로 진급했다. 상무에 오른 지 1년 반 만에 또다시 전무로 오르면서 재계에서는 승계작업에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내놨다. 재입사 4년만에 부장서 부사장으로 직급이 수직 상승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대내외적으로 일감 부족 등 어려운 경영환경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경영진 세대교체를 통해 현재의 위기상황을 보다 적극적으로 돌파해 나가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인사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안팎의 평가가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내외 상황이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정 대표가 재입사한 2013년부터 핵심계열사 현대중공업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2013년부터 적자행진이 시작된 것.
적자는 3개년 연속 계속됐다. 업계가 불황인 탓도 있겠지만 이를 대비하지 못한 경영진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회사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노조 측은 힘든 시기를 버텼지만 흑자로 돌아선 이후에도 사측은 구조조정의 움직임이 보이면서 노사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사측은 “조선 경기 침체로 발주가 급감한 가운데 최근 주력 선종인 고부가치 대형선박 수주에도 월등한 원가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에 밀리는 등 일감 확보에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지금은 회사 생존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본급 20% 반납 철회 대신 인력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경영 악화에 노사 갈등까지
이 와중에 대물림 작업 박차
노조 측은 반발했다. “이미 2만5000여명이 구조조정의 칼날에 길거리로 내몰려 울산을 떠났다”며 “사측의 제시안은 고용불안을 더욱 부채질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측이 사측에 요구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주된 내용은 고용안전이다.
공교롭게도 노조와 회사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상황서 정 대표는 승승장구하는 모양새가 됐다. 더군다나 그룹 재편 과정서 정 대표의 지분 확대의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사 현대로보틱스는 유상증자를 통해 상장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하는 공정거래법상 행위 제한 조건서 벗어났다.
당시 주식스왑으로 현대로보틱스의 계열사 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지분율은 각각 27.84%, 27.64%, 24.13%까지 높아졌다. 정 이사장의 지분율도 이를 통해 기존 10.2%에서 25.8%로 상승했다.
결과적으로 정 이사장은 이를 통해 그룹의 지배력을 높였다. 이를 통해 승계 작업에 착수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현대로보틱스로 지주사를 전환함에 따라 자사주 비율만큼 배정받은 신주의 의결권이 주어진다.
자사주에는 의결권이 없으나 이를 배정받게 되면 의결권이 생기고 이는 경영권 강화로 이어진다. 가령 현대로보틱스가 분할 과정서 현대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13.4%, 현대오일뱅크 지분 91.1%를 넘겨받을 경우 의결권이 생기게 된다.
정 이사장도 이번 신주발행을 통해 지분을 넘겨 받아 정기선 전무에게 양도할 경우 경영승계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현대중공업 측은 지주사 전환에 대해 “경영효율성 제고를 통한 경영정상화가 목적”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회사 측은 경영승계에 시나리오에 대해서 “현재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능력은 검증?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의 노사 갈등이 해결되지 못 하고 긴장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정기선 대표의 진급 소식은 내부서 부정적으로 읽힐 수 있다”며 “이른바 금수저의 엘리베이터 승진이 사내 구성원들에게 허탈감을 주는 양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