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Walk in Emptiness' 최수환

구멍을 채운 빛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구를 통해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최수환 작가는 이 질문에서 출발해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안구를 통해 사물의 표면을 읽어내는 방식에 집중했다. 대구 중구 소재의 봉산문화회관에서 최수환의 개인전 ‘Walk in Emptiness’를 선보인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바라본다. 손에 잡힐 듯한 선명한 빛은 반짝임을 넘어 부유하는 이미지로 시각적 환영을 연출한다. 빛으로 형상된 풍경의 이미지는 보는 이의 움직임과 빛의 발산에 따라 유기적으로 바뀐다. 화려한 빛의 향연을 보고 있는 순간 문득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라는 실존적 의문이 떠오른다. 

보이는 것이

전원을 끄면 아무것도 없는 어둠의 공간에서 실존의 부재를 느끼는 순간, 모든 것이 허상으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는 어둠의 공간에서 오히려 감각의 예민함을 회복하며 사물에 대한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화려한 빛 형상 속에 배제된 감각과 사유를 직면하는 순간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게 하는 역설적인 접근이다. 

20세기 초반부터 미술은 재료의 포용성을 가지며 쓰레기나 기타 물질 그리고 정크 아트와 같은 여러 종류의 ‘아상블라주’까지 재료의 범위를 확장하게 됐다. 아상블라주는 폐품이나 일용품을 비롯해 여러 물체를 한데 모아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기법과 그 작품을 뜻한다.

최근에는 금속과 플라스틱 등 산업제품 및 전기기구 등을 활용하면서 그 범위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라이트 아트’는 물질의 수용을 뜻하는 ‘뉴머티어리얼스’를 미술에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광을 이용한 패턴과 빛의 변화 등을 선보이며 산업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변화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특히 LED(발광다이오드)의 상용화는 미술의 고정된 가치를 넘어서는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안구를 통해 보는 사물의 본질
바늘로 뚫은 종이 너머에 전율

최수환도 우연이지만 필연적으로 인공의 빛을 작품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유년 시절 유달리 기계에 관심을 보였던 작가는 전기와 관련된 제품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계기는 미국 유학시절에도 있었다. 손목을 다쳐 붓질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최수환의 눈에 검정색 종이와 바늘이 들어왔다. 바늘로 종이에 구멍을 뚫고 조명에 비춰본 후의 전율은 작가에게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예술가는 미술에 대한 거대한 담론을 생성하거나 시대를 고찰하기 위한 창작활동을 하기보다도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기인하거나 가벼운 유희에서 창작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최수환도 LED를 창작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물의 본질에 대한 실체적 이미지를 숨길 수 있는 환영의 도구이자 직관과 감정, 이성적 사고가 조화롭게 적용되는 최적의 뉴머티어리얼스로 여겼다.

최수환은 초기 작업에서 초상이나 정물 등 주변의 오브제를 빛으로 재현했고, 이후 정교한 아라베스크 무늬와 같은 장식적이면서 추상적인 소재를 평면에서 입체로 넘나드는 환영적인 작업으로 연결시켰다. 그러나 최근 작품에서는 우리가 흔히 산책하며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소재를 변화시켰다. 

그는 “우리는 매일 미디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고 자극적인 이미지로 시각적 스트레스에 노출되며 매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강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전시실에서 만이라도 관람객에게 편안함과 명상의 시간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시대 미술의 난해함, 일방적인 소통, 가치의 사유화 등 전통적 형식에서 변형된 미술의 자극성에서 벗어나 관람객들과 편안하게 소통하며 다가가고 싶다는 의미다. 

천공 작업은 힐링
“편안한 소통되길”

최수환은 이미지를 찍어서 흑백으로 전환한 뒤 포토샵으로 원하는 명도로 조절한다. 이후 프린트를 한 후 라미네이터판에 붙인다. 음영에 따라 0.35~3㎜ 드릴을 이용해 구멍을 뚫는다.

그는 “일반적으로 천공 작업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게는 힐링 포인트”라고 전했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하루에 10시간 이상, 수개월 동안 수만개의 구멍을 뚫는 과정이 명상의 시간이고 잡념을 없애는 수련의 시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 LED를 부착할 때의 빛을 조절하는 과정은 민감하다. 필라멘트 전구의 감성적인 빛과 다르게 LED는 폭력적이고 냉정한 빛이다. 컨트롤러를 부착하거나 맞는 제품을 설치해 빛의 온도를 조절해야 한다. 

최수환은 “인식된 사물의 형태와 표면을 물리적 제거(구멍)와 동시에 다른 매체(빛)로 채우는 과정에서 평면적 이미지가 입체적 이미지로 인지되는 시각적 착시가 생긴다”며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사물의 표피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아닐까’하는 질문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그리고 익숙한 사물 인식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해의 시작점이 되길 희망한다”고 설명했다.

전부가 아니다

봉산문화회관 관계자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에 최수환은 쉽사리 많은 작품을 보여줄 수 없다”며 “대구에서 10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는 모두 미발표 신작으로, 라이트 아트 광원 자체의 효과를 이용한 ‘Emptiness’ 연작 시리즈로 구성됐다. 관람객들에게 빛의 근원적인 속성에 다가가는 감각적 체험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jsjang@ilyosisa.co.kr>

 

[최수환은?]

▲1972년 경주 출생

▲학력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석사 졸업(2006) 
추계예술대학교 미술대학 졸업(1998) 


▲개인전
‘기억공작소 최수환’ 봉산문화회관(2021)
‘COMPLEX EMPTINESS’ Pontone Gallery(2019)
‘Walk in Emptiness’ 표갤러리(2016)
‘from dot’ MakeShop Art Space(2015)
‘Walk in Emptiness’ 갤러리 이배(2015)
‘Emptiness’ 유아트스페이스(2012)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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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비판을 들을지언정 정국 대응에 일사불란하다. 이는 강성 지지층의 압박으로 형성된 중앙집권 형태의 정치 때문이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역구에서 봉건 영주처럼 군림하는 봉건제 형태 정치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무기력함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가 진행되면 ‘맹탕’이란 표현이 나온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올해엔 ‘추태’란 표현도 나왔다. 미국 의회에선 상시 청문회 제도를 안착시켜 아주 촘촘한 청문회 제도를 운용한다. 이를 토대로 “정기 국정감사를 없애고, 상시 국정감사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어김없이 나왔다. 변함 없는 맹탕 국감 국민의힘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과거 이력과 함께 그와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려고 한다. 국민의힘은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에 당력을 기울였다.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운영위원회는 물론,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도 그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범여권에선 방어막을 쳤다. 당력을 기울여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막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태도는 김 실장에 대한 각종 의혹을 키운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김 실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하더라도 국민의힘이 그에 대한 각종 의혹을 명쾌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4일엔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이 반말 논란으로 설전을 벌였다. 박 의원은 법사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질의를 이어갔다. 박 의원이 발언 시간 초과로 마이크 전원이 나간 이후에도 계속 질의를 이어가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를 제지하려 들었다. 박 의원이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자, 신 의원은 “왜 반말을 하느냐”고 반발했고 다시 박 의원이 “난 옛날부터 너한테 말 내렸다” 등 언쟁을 벌였다. 한술 더 뜨는 논쟁은 같은 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서 이어졌다. 민주당 김우영 의원은 박 의원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문자 중엔 박 의원이 김 의원에게 “에휴, 이 찌질한 X아”라는 욕설이 들어가 있었다. 이때 박 의원의 휴대전화 번호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에 항의하던 박 의원은 김 의원에게 “한심한 XX는 나가”라고 소리쳤다. 박 의원은 “지난달 2일 상임위에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방통위 관련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저를 지칭해 ‘저 인간만 없으면 과방위가 좋을 텐데’라고 말했다”며 “김 의원이 시끄럽게 전화 통화까지 하길래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욕설을 퍼붓고 멱살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제 가족 사진까지 화면에 띄우면서 저를 비판했다”며 “김 실장의 경기동부연합 연루 사실까지 폭로했더니 제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고 강조했다. 친여 성향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지난달 13일 조희대 대법원장을 상대로 진행된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조 대법원장과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합성한 사진을 제시하면서 ‘조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다음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도움되지 않았고, 조 대법원장을 국회에 불러 압박해 망신을 줬단 프레임에 갇혔다”며 “지나치게 과했다”고 지적했다. 강성 지지층 눈치에 몰아치는 민주당 특유의 봉건제…국감서도 의욕 상실 최 의원은 지난달 20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배우자 김재호 춘천지방법원장을 상대로 “나 의원의 언니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의 내연남 김충식씨의 새 내연녀를 소개했다”고 주장했다. 김 법원장은 “나 의원에겐 언니가 없다”고 반박하면서 최 의원에 대한 비판·조롱이 이어졌다. 최 의원은 이튿 날 진성철 대구고등법원장에게 재판소원 관련 질의를 하는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 옆에 있다가 바라보는 자세로 몸을 돌렸다. 이어 주 의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 중 국회 사랑재에서 딸 결혼식을 진행해 파문을 일으켰다. 최 의원이 배포한 모바일 청첩장엔 신용카드 결제 링크가 포함돼있었다. 지난달 초엔 청첩장을 과방위 소속 국회 사무처 직원들에게도 전달했다. 최 의원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는 기이한 해명을 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는 지난달 26일엔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보좌진에게 “축의금을 피감기관들에 돌려주라”고 지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돼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결혼식 축의금 50만원을 냈다가 돌려받은 사람 중 1명은 다름 아닌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였다. 청탁금지법 시행령이 지정한 경조사비 한도는 5만원이다. 여야의 정쟁 때문에 국정감사가 중단되는 등 파행이 일어나는 사례는 연례행사 중 하나다. 국정감사엔 다수의 증인·참고인이 출석한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시간을 쪼개 출석 의무에 응했거나, 출석할 필요가 없는데도 출석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시간·일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모적인 정쟁을 거듭하면서 이들 증인의 시간도 잡아먹는다. 이는 국회의원 특유의 꼰대질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김 의원과 박 의원이 욕설을 주고받는 현장엔 사이버 레커들로부터 피해를 본 유튜버 쯔양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있었다. 쯔양은 이들이 욕설을 주고받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몰아치는 사법개혁 이날 여야는 박 의원이 보낸 문자메시지에 대한 공방을 밤 늦게까지 이어갔다. 양당은 국정감사가 이어진 지난달에도 자신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김 의원이 박 의원의 전화번호를 공개한 후 박 의원은 이날 내내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내는 문자폭탄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를 필두로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포함하는 재판소원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2017년 추진되는 듯했다가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의 반대로 사그라들었던 법원행정처 폐지도 다시 추진할 조짐을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5월1일 이재명 대통령의 허위 사실 공표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후 민주당은 일사불란하게 대법원을 겨냥하고 있다. 대법관 수 증원은 민주당 내 사법개혁 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확정한 방안이다. 재판소원은 민주당 김기표 의원이 당 지도부와 협의해 당론 법안으로 별도 추진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의 사법개혁 방안을 일컬어 “과도하다”고 비판한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9일 사설에서 “대법원이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기 전엔 법원의 각종 숙원사업을 들어주려고 했다”며 “판결 이후 개혁을 명분으로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마구잡이로 던지는 것”이라며 “법원이 마음에 안 드는 결정을 할 때마다 단세포적으로 대응한단 느낌마저 든다”고 해석했다. 반대 진영의 날 선 지적에도 민주당은 특유의 몰아치기를 유지하고 있다. 검찰·법원 등 개혁은 민주당의 오랜 관념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강성 지지층의 욕구는 몰아치기와 일부 의원들의 과도한 언행으로 이어진다. 민주당 소속이 아닌 최 의원도 대법원·국민의힘 공격 최전선에 서자,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송금받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반대로 예의 무기력함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나름대로 ▲김 실장 관련 의혹 제기 ▲정희철 단월면장 사망 등 김건희 특검의 과잉 수사 의혹 제기 ▲10·15 부동산 대책 비판 등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의힘 특유의 무기력함이 국민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선 별다른 의욕도 느껴지지 않고, 국민이 관심가질 만한 내용도 발언으로 채우지 못했다. 이는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옮긴 김상욱 의원이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진짜 친윤)’ 그룹의 존재를 주장한 이후 많은 사람에게 인식된 국민의힘 특유의 봉건제로부터 비롯된다. 토착 세력 주도 형태 김 의원이 주장하는 ‘언더 찐윤’은 대구·경북·강원 등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두고, 지역구 관리에만 몰두하는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지역구의 왕이자 소리 없이 국민의힘을 움직이는 핵심 그룹이다. 이들은 “당권을 지켜 공천만 계속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기반을 완전히 움켜쥐고, 중앙 정치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토착 세력이 주도하는 정치 형태는 봉건제 정치 형태와 비슷하다. 국민의힘 내부의 봉건제는 전제 왕조 시절의 봉건제보다 후퇴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언더 찐윤 의원들이 지역구를 스스로 개척해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봉건제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중국 주나라에선 왕이 제후들에게 국가의 힘이 미치지 않는 이민족 중심 미개척지를 봉토로 하사했다. 이는 “미개척지를 개척·장악하면, 봉토로 인정해주겠다”는 취지였다. 주나라는 봉건제를 토대로 중앙의 왕이 각지의 제후들을 통제하는 통치 형태를 완성했다. 초기엔 주로 종친들을 제후로 책봉했기 때문에 가부장적 질서가 유지됐지만, 세월이 흘러 혈연 의식과 왕실의 힘이 약해지자 춘추전국시대란 난세가 열렸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중앙 정치에선 적당히 치적으로써 지역에서 내세울 만한 ‘사진’만 얻으면 된다. 이런 성향이 핵심 지지 기반에 퍼져 굳어지자,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전 대표와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추진했던 체질 개선이 번번이 무력화됐다. 그럴수록 당은 무기력해지고, 존재감을 잃는다. 반면 민주당에선 강성 지지자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의원들도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면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당론을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이는 중앙집권형 정치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는 국민의힘 같은 무기력한 야당을 만나면 상대적인 장점으로 보일 소지가 강하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질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한번 어긋나면 결정적인 파국으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였던 지난 2021년 12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갈등하던 중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이들을 ‘봉건 영주’라고 지칭했다. 당시 이 대표는 “윤 후보가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싶어하는 봉건 영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선을 치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 정치는 ‘사진’만 얻으면 그만? 귀족이 왕권 능가했던 백제의 끝은? 이들이 바로 훗날 김 의원이 규정한 ‘언더 찐윤’이라고 볼 수 있다. 핵심 지역 기반에서 자리 잡은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앙당으로부터 지역구를 ‘분봉’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봉받은 지역구의 공작 작위를 받아 공국을 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봉건제 국가에서 외침이 발생하면 제후들이 각자 군을 이끌고 와서 연합군을 구성한 후 전쟁에 나선다. 따라서 왕이 제후와 사이가 안 좋으면, 제후가 방어에 협조하지 않아 국가에 큰 위기가 닥친다. 백제 개로왕은 왕권 강화를 시도하면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존 귀족을 배제하고, 잦은 토목공사를 강행했다. 그러던 중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침략해 큰 위기를 맞았다. 고구려는 공격 7일 만에 수도 한성을 함락했고, 개로왕은 고구려군에 사로잡혀 죽었다. 귀족은 아무도 개로왕을 돕지 않았고, 당시 동맹이었던 신라만 구원군을 보내는 황당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후 백제에선 문주왕·삼근왕·동성왕 등이 연이어 귀족에게 피살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백제 마지막 임금 의자왕은 즉위 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정적들을 추방하고, 아들 40명을 지금의 장관에 해당하는 좌평에 임명해 중앙 정계에 진출시켰다. 백제가 멸망하는 과정엔 귀족이 구원군을 제대로 보내지 않았던 영향이 있다는 설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실제로 영화 <황산벌>에선 이 설을 그대로 반영해 귀족이 의자왕에게 “당신이 아들 40명을 좌평에 임명했을 때, 우리의 조국은 진작 망했다”고 비웃는 장면이 묘사됐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도 미개척지가 많은 영토 특성 때문에 세습령병제가 시행됐다. 이는 신하가 병사를 대대로 소유하면서 마음대로 부리는 제도를 말한다. 이 때문에 오나라는 위나라·촉한의 침략은 성공적으로 막았지만, 두 나라를 상대로 한 영토 확장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신하들의 이권도 함께 걸려 있던 남방 개척은 성공적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백제와 오나라의 상황은 핵심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엔 능숙하지만, 중앙 정치에선 기행을 거듭하는 등 불성실한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국민의힘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초유의 기행을 거듭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급하게 옹립된 대선후보였다. 체계적인 계획 없이 그때그때 이익에 따라 큰 선거를 치르는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거칠게 요약하면, 역사는 봉건제를 중앙집권제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선 많은 변혁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체질 개선을 거부했다. 계획 없이 그때그때 장동혁 대표도 강경 보수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됐다. 장 대표 취임 이후 국민의힘에선 혁신 담론이 아예 실종됐다. 장외투쟁에 대해선 보수 성향 신문도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웬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는 국민의힘 내부에 스며든 봉건제로부터 비롯된 일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보면 봉건제가 보인다. 뒤집어 말하면, 봉건제를 알아야 국민의힘을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정말 봉건 영주의 연합정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