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김창숙 그림유치원 원장

“TV는 바보상자가 아닙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과거 유치원은 초등학교 진학을 위한 준비 단계로 여겨졌다. 한글을 가르쳐주고 영어 알파벳을 읽게 해주는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유아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유치원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그림유치원의 김창숙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유치원은 아이의 첫 학교라고.

코로나19 사태가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교육현장은 초토화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학교에 나가는 대신 비대면으로 진행된 수업은 질적인 면에서 아이와 학부모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돌봄과 교육이 병행돼야 하는 유치원도 코로나19의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나마 유아교육의 경우 사교육의 비중이 낮아 교육 격차가 크게 나지 않는다는 점이 위안이었다. 

남다른 교육

코로나19는 4차혁명시대에 맞춰 교육현장도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불러 일으켰다. 비대면, 온라인, 원격수업 등 코로나19 시대에 부각된 부분들을 현장에 안착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그림유치원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비교적 느긋한 편이다.

온라인 수업을 오프라인 수업과 동일한 수준으로 무리 없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오후 그림유치원에서 김창숙 원장을 만났다.


“LG 유플러스에 ‘아이들 나라’라는 콘텐츠가 있어요. 아이들이 영상을 통해 놀면서 학습할 수 있도록 제작했더라고요. 저는 그걸 보면서 저런 콘텐츠를 실제 교육현장에 접목하면 어떨까 고민했어요. 이탈리아 국제센터를 방문했을 때도 미디어놀이 문화를 통한 교육이 활성화된 것에 상당히 놀랐어요. 이것을 우리 유치원에 적용시켜 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코로나19에도 안정적 운영
온라인 수업에 대한 준비

그림유치원은 각 교실에 스마트 영역을 운영하고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 패드, 빔 프로젝터, 실물화상기, 웹캠 등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수업이 이뤄지는 곳이다. 여기에 IPTV가 교수 매체로 더해졌다. TV를 바보상자로 여겼던 이전과 달리 아이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도구로 보고 유아교육에 접목시켰다. 

효과는 극적이었다. 아이들은 스마트 기기를 통한 놀이학습에 빠져들었다. 쏟아지는 정보 중에서 양질의 것을 선별하는 능력을 키워나갔고, 스스로가 프로젝트의 개발자이자 참여자가 됐다.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지루한 수업이 아니라 하루가 다르고 매일이 신선한 ‘체험’이 이어졌다. 

“스마트 기기를 단순히 보는 데 사용하는 게 아니라 활용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교실이 교사가 수업을 하고 아이들이 듣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실험을 하는 실험실처럼 된 거죠. 그러자 아이들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를 품더라고요. 아이들이 행복해하고 몰입하니까 자연스럽게 교육의 효과도 올라갔습니다.”

그림유치원의 학습 과정은 탐구와 발견, 놀이를 통한 존경, 책무, 공동체의 원칙에 기반을 둔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의 배경 위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아이들이 유능하고 강인한 존재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들의 잠재된 가능성과 그들의 권리를 지지하며 구성교육이 바탕이 된 아동중심의 교육을 지향하고 있는 것.

그러면서도 인성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영유아기 때부터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며 기계와 친숙해진다고 해서 인간적인 부분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연과 기계의 관계,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고, 놀이를 통해 모두 어우러지는 게 진정한 스마트교육이라고 역설했다. 


“만 5세반 아이들에게 집에서 망가진 전화기나 선풍기 같은 걸 가져오게 해서 분해하는 수업을 한 적이 있어요. 다 분해한 후에 아이들에게 ‘어떤 느낌이 드냐’고 물으면 전부 다른 대답을 해요. ‘미로 같아요, 보물섬을 찾아가는 길 같아요, 미래도시 같아요’ 이렇게요. 그리고 다시 그 분해한 것들을 합쳐서 새로운 로봇을 만들었죠.”

아이들이 망가진 기계를 분해하고 재조립해 만든 로봇은 그림유치원 한편에 놓여있다. 일명 ‘가위바위보 로봇’이다. 유치원에 처음 온 아이들이 낯선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엄마를 찾을 때 이 로봇과 가위바위보를 하게 한다. 아이가 이기면 사탕을 주는 시스템이다. 죽어있던 기계가 아이들의 손을 거쳐 살아있는 로봇으로 다시 태어나 유치원의 일원이 됐다.

“아이들이 기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은 거죠. 저는 유아기 때부터 아이들이 기계와 친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의료계나 법조계 등 어디에든 AI가 많아지겠죠? 어릴 때부터 기계에 친숙했던 아이들은 기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거예요. 영유아기 때부터 기계를 통한 놀이학습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죠.”

기계와 친숙해지는 아이들
“인간으로서 저력 키워야”

그림유치원의 목표는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 저력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된 유아교육을 위해서는 부모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과거와 달리 부모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성의 몫으로 여겨졌던 육아에 대한 책임감이 ‘부모’로 바뀌는 추세다.

“영유아기의 아이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어요. 부모의 선택을 아이들이 따르는 방식이죠.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 해야 하는 것을 반드시 잘 알고 있어야 해요. 아이의 기질이나 발달과정 등을 아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도덕성 발달 시기, 사회성 발달 시기 등 아이들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미술을 전공한 김창숙 원장은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그러다 미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인간의 성장, 특히 아이들의 전인적 교육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그때부터 유아교육을 다시 공부해 석·박사 과정을 거쳤다.

유아교육을 배울수록 중요성을 느꼈고, 좋은 교육을 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또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 많이 시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유치원 무상급식 정책을 꼽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5월 유치원 무상급식 추진을 공식화했다. 김 원장은 이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아이들에 대한 급식 제공이 사립유치원의 현실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현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전했다.

전인적 교육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까지 배움의 과정에 있습니다. 그러니 배움은 즐거워야 합니다. 배움은 유아와 유아, 유아와 교사, 교사와 교사, 부모와 부모, 교사와 부모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고 우리들은 모두 배움의 관계에 기초한 동반자입니다. 교육공동체로서 존중과 협력이 바탕이 되어 집단지성을 이루고 새로운 지식의 생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높은 수준의 창의성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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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