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산책 ②안동호와 임하호

안동호와 임하호가 빚어낸 아름다운 풍경

안동은 예부터 ‘두 물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으로 영가(永嘉)라 불렀다. 두 물〔永〕은 낙동강과 반변천이다. 하지만 안동으로 이어진 물길은 강이라는 이름을 잠시 접고 호수로 남았다. 안동댐과 임하댐을 건설하면서 안동호와 임하호라는 거대한 호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청량산을 휘감고 내려오던 낙동강 물길은 도산서원을 거쳐 한 굽이 지나면 예끼마을과 만난다.

안동댐 건설로 예안면이 대부분 물에 잠기자, 서부리 일대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예끼마을이 조성됐다. 차마 고향을 버리지 못한 이주민의 서글프고 애잔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선성현문화단지 조성 사업’에 이어 ‘이야기가 있는 마을 조성 사업’을 시작하면서 ‘예술의 끼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예끼마을이라 했다.

문화단지

마을 입구에서 내려다보면 마을과 안동호 풍광이 어우러진다. 1976년에 조성한 마을이라 바둑판처럼 구획된 모양이 단순한 느낌도 들지만, 돌아다니다 보면 정겹고 유쾌하다. 근민당, 구 우체국, 마을회관 등은 갤러리로 탈바꿈하고, 마을 곳곳에 벽화와 작품이 전시된다. 선성현문화단지 입구 골목은 냇가 풍경을 트릭 아트처럼 꾸며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다.

예끼마을을 대표하는 선성수상길은 잔잔한 안동호에 폭 2.75m, 길이 1km로 놓인 부교다. 안동호와 주변 산세가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이다. 선성수상길 중간쯤 수몰 전 예안국민학교 자리에 풍금과 학교의 옛 사진이 있다.

선성수상길 입구에는 선성현역사관을 비롯해 동헌, 객사, 내아 등 선성현 관아의 옛 모습을 재현한 선성현문화단지 조성 작업이 한창이다. 쌍벽루에 오르면 안동호의 또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예끼마을인포메이션센터에 마련된 ‘예끼마을카페’, 맷돌 커피로 알려진 ‘장부당’, 가구 카페 ‘고이’, 안동시 농가 맛집 ‘메밀꽃피면’ 등 카페와 식당이 여럿이다. 선성현한옥체험관도 갖춰 체류형 관광지로 손색없다.

안동댐 하류에 있는 월영교는 폭 3.6 m, 길이 387m로 국내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다. 다리 이름은 주민 응모작 중 달골〔月谷〕, 월영교 건너편 엄달골 등 달과 관련된 이 지역의 유래에서 착안했다. 1998년 택지 개발로 고성 이씨의 묘를 이장하던 중, 무연고 묘에서 400년이 훨씬 넘은 편지와 미투리가 발견됐다.

죽은 남편에게 한글로 쓴 편지와 남편의 쾌차를 빌며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가 감동과 여운을 남겼는데, 그 미투리를 모티프로 월영교를 세웠다. 월영교 건너 오른쪽으로 가면 법흥교까지 2km 이어진 안동호반나들이길과 원이엄마테마길이 조성돼 애절한 사랑의 감동을 되새길 수 있다.

월영교는 산세와 호수가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답다. 다리 중간에 월영정이 있어 기둥 사이로 바라보는 풍경도 기대 이상이다. 해가 질 무렵 시시각각 변하는 호수와 하늘의 색, 월영교의 야경과 호수의 반영은 더욱 매력적이다.

월영교 건너편 산 중턱에 빛을 발하는 건물은 예끼마을의 전신인 예안면에 있던 선성현 객사(경북유형문화재 29호)로, 안동 석빙고(보물 305호)와 함께 이곳에 옮겼다.

댐 건설로 거대한 호수 생겨
사람들 이주로 예끼마을 조성

월영교 건너 왼쪽으로 가면 안동시립민속박물관을 만난다. 안동의 민속 문화를 자세히 보여주는 곳으로, 지난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관돼 고향으로 돌아온 안동 하회탈과 병산탈(국보 121호)을 전시하니 꼭 들러보자.


안동시립민속박물관에서 낙강물길공원이 지척이다.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가 사랑한 지베르니 정원을 닮아 ‘한국의 지베르니’라 불리는 곳이다. 메타세쿼이아와 전나무 숲, 연못과 폭포, 숲속정원 등이 어울린다. 징검다리가 있는 연못은 사진 촬영 명소다.

낙강물길공원에서 조금 더 오르면 안동루에 닿는다. 안동댐 아래로 길게 이어지는 물길 풍경이 압권이다.

안동호가 예끼마을과 월영교를 만들었다면, 지례예술촌은 임하호가 만들었다. 1984년 임하댐을 착공하면서 3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지례마을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지만, 안동 지촌종택과 지촌제청, 지산서당 등을 마을 뒷산 골짜기에 차례로 옮기고, 1989년 지례예술촌을 열었다.

지례예술촌은 가는 길이 험하다. 수곡교가 있는 곳에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12km(약 20분)나 달려야 한다. 이런 불편함에도 지례예술촌을 찾는 이유는 대문과 행랑채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임하호의 풍경이 ‘인생 사진’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숙박객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일반 관람은 불가한 점, 참고하자.

신세동벽화마을은 2009년 마을 미술 프로젝트로 동부초등학교와 성진골 주변에 조성됐다. 담장에 그린 벽화, 트릭 아트, 개와 고양이, 토끼 조형물 등이 재미있다. 산자락을 따라 계단이 이어지고, 형형색색 지붕을 인 집이 옹기종기 모였다. 골목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어느새 전망대에 닿는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는 조형물이 있는 전망대에서 안동 시내가 훤히 보인다. 최근 전망대 뒤쪽에 ‘다시, 여기서’라는 카페가 생겼다. 앙증맞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책이 내부를 채운다. 커피 한잔과 함께 일몰이나 안동 시내 야경을 만끽해도 좋다.

지례예술촌 가는 길에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1894년 갑오 의병부터 광복 때까지 경북 사람들의 국내외 독립운동 역사가 담긴 독립관, 안동 독립운동의 뿌리가 된 전통 마을의 항일투쟁을 전시한 의열관으로 나뉜다. 전시물 중에 권오설 철관이 있다.

권오설은 1926년 6·10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193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는데, 당시 일본은 권오설의 장례식에 사람들이 모일 것을 두려워해 시신을 철관에 넣고 납땜했다. 권오설의 아버지가 지은 제문이 3m에 이르러,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다.

만휴정(경북문화재자료 173호)은 보백당 김계행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정자다. 보백당 김계행은 “내 집에는 보물이 없다. 보물이 있다면 청백뿐이다(吾家無寶物 寶物有淸白)”라며 청렴함을 보물로 삼은 분이다.

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만휴정의 풍광이 압권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촬영한 뒤 많은 여행자가 찾는다. 계류, 폭포, 산림 경관이 어우러진 만휴정 원림(명승 82호)도 아름답다.

만휴정

김계행의 흔적은 묵계서원과 안동김씨묵계종택(경북민속문화재 19호)으로 이어진다. 묵계서원 관리사는 ‘카페 만휴정’을 열어 여행자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 관리사 대청과 부엌 등을 카페 공간으로 꾸며 차를 나누며 힐링하기 좋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예끼마을→월영교(안동시립민속박물관, 낙강물길공원)→신세동벽화마을→지례예술촌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월영교(안동시립민속박물관, 낙강물길공원)→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임청각→신세동벽화마을→지례예술촌 
둘째 날: 지례예술촌→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만휴정(묵계서원, 카페 만휴정)→예끼마을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예끼마을 www.yeggistory.com
- 지례예술촌 www.jirye.com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815gb.or.kr

문의 전화
- 안동시청 관광진흥과 054)840-6396
- 예끼마을 054)841-5800
- 월영교(안동시립민속박물관) 054)821-0649
- 지례예술촌 054) 852-1913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054)820-2600
- 만휴정 054)840-3433

대중교통
[버스] 서울-안동,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17회(07:00~20:00) 운행, 약 3시간 소요. 안동터미널 정류장에서 80번 일반버스 이용, 교보생명 정류장에서 567번 일반버스 환승, 한국국학진흥원 정류장 하차, 예끼마을까지 도보 약 130m. 안동터미널 정류장에서 80번 일반버스 이용, 교보생명 정류장에서 3-1번 일반버스 환승, 월영교 정류장 하차, 월영교까지 도보 약 90m. 지례예술촌은 임동면 소재지에서 택시 이용(약 2만원).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txbus.t-money.co.kr 안동터미널 054)857-8296 
[기차] 청량리역-안동역, KTX 하루 7~8회(06:00~22:00) 운행, 약 2시간 소요. 안동역에서 안동터미널 정류장까지 도보 230m 이동, 80번 일반버스 이용, 교보생명 정류장에서 567번 일반버스 환승, 한국국학진흥원 정류장 하차, 예끼마을까지 도보 약 130m. 안동역에서 안동터미널 정류장까지 도보 230m 이동, 80번 일반버스 이용, 교보생명 정류장에서 3-1번 일반버스 환승, 월영교 정류장 하차, 월영교까지 도보 약 90m. 지례예술촌은 임동면 소재지에서 택시 이용(약 2만원).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자가운전
예끼마을: 중앙고속도로→풍기 IC→영주·안동 방면 국도5호선, 8.5km→가흥교차로에서 오른쪽, 18.7km→지곡교차로에서 좌회전, 녹지로로 8.5km→녹래길삼거리에서 우회전, 지방도935호선 녹전로로 6.7km→서부교차로→예끼마을
월영교: 중앙고속도로→서안동 IC→안동 시내 방면 경서로로 우회전, 7.5km→송현오거리에서 우회전, 1.7km→어가골교차로에서 안동문화관광단지 방면 좌회전, 5.5km→월영교
지례예술촌: 중앙고속도로→서안동 IC→안동 시내 방면 경서로로 우회전, 3.9km→남순환로 대구·영천 방면 국도34호선, 17.5km→신석교차로에서 안동대·임하 방면 오른쪽 도로→포진교 건너자마자 오른쪽 국도34호선 진입, 12.1km→수곡교 건너 12km→지례예술촌


숙박 정보
- 전통리조트구름에(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안동시 민속촌길, 054)823-9001
- 온계종택 삼백당(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안동시 도산면 온혜중마길, 010-2988-3435 
- 정재종택(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안동시 임동면 경동로, 010-8590-0625 
- 수애당(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안동시 임동면 수곡용계로, 054)822-6661
- 단호샌드파크캠핑장: 남후면 풍산단호로, 054)850-4595 
- 안동호반자연휴양림: 도산면 월천길, 054)840-8265 
- 지례예술촌: 임동면 지례예술촌길, 054)852-1913 
- 안동계명산자연휴양림: 길안면 고란길, 054)850-4700

식당 정보
- 메밀꽃피면(미오기집밥): 도산면 선성4길, 054)843-1253 
- 진성식당(해물매운돈가스): 안동시 태사길, 054)852-6880 
- 말콥버거(더블버거): 안동시 퇴계로, 010-2117-0106 
- 맛50년헛제사밥(헛제삿밥): 안동시 석주로, 054)821-2944
- 하회대가(안동찜닭): 안동시 전서로, 054)841-5184

주변 볼거리
도산서원, 이육사문학관, 봉정사, 안동포전시관, 안동 하회마을, 안동 병산서원, 안동 체화정, 권정생동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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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