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융위 건너뛴' 세종텔레콤 이상한 실수

투자 귀재가 운영하는 회사 맞아?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투자의 귀재가 지휘하는 세종텔레콤이 유진투자증권 주식을 쉼 없이 사들이고 있다. 단순 투자 차원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일순간 경영 참여를 선언해도 크게 놀라울 건 없는 상황. 이런 가운데 회장 얼굴에 먹칠해버린 세종텔레콤의 초보적인 실수가 향후 주식 매수 행보에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도가 한층 높아진 모습이다.

1954년 5월 설립된 유진투자증권은 금융투자업을 영위하는 유진그룹 산하 금융계열사다. 2007년 12월자로 서울증권에서 현재의 상호로 변경했고, 최대주주는 올해 1분기 기준 보통주 2640만920주(지분율 27.25%)를 보유한 유진기업㈜이다. 특수관계인의 지분율 총합은 29.03%(2811만7385주)다.

거듭된
사들이기

유진기업의 유진투자증권 지분은 30% 근방에 불과하지만, 지금껏 지배력을 행사하는 동안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경영권을 위협할법한 외부 요소가 딱히 없는 데다, 유진투자증권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곳은 유진기업에 국한됐을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양상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사뭇 달라졌다. 세종텔레콤이라는 잠재적 위험 요인이 급부상한 영향이었다.

세종텔레콤은 지난해 4월23일 유진투자증권 보통주 557만주(5.75%)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해당 사안은 특정 회사의 지분 5% 이상 취득 시 보고하도록 한 규정에 따른 후속 조치였다.


지난해 4월15일 기준 유진투자증권 주식 483만주를 보유 중이었던 세종텔레콤은 이튿날 주식 7만7000주를 추가 취득하면서 지분율 5%를 넘겼다. 이후 공시 전날까지 네 차례에 걸쳐 66만3000주를 추가로 사들였다.

세종텔레콤의 주식 매수 행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진투자증권 2대주주로 모습을 드러낸 직후부터 주식 사들이기가 본격화됐고, 순식간에 35번에 걸친 매수가 목격됐다.

지난해 4월27일부터 6월5일 사이에 일곱 차례에 걸친 매수와 한 번의 매도를 통해 지분율을 7.23%(700만주)로 끌어올렸다. 또한 7월16일부터 8월5일까지 12번의 장내매수를 통해 100만주를 추가 취득했다.

쉼 없는 매수…10% 돌파 초읽기
김형진 회장 과거 M&A 이력 눈길

매수 행진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됐다. 세종텔레콤은 지난해 8월11일부터 지난 1월15일 사이에 16차례에 걸쳐 259만주를 사들였고, 같은 기간 매도는 94만주에 머물렀다. 이를 토대로 세종텔레콤은 지분율을 9.96%(965만주)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세종텔레콤이 약 7개월(2020년 4월16일~221년1월15일) 간 유진투자증권 주식 482만주를 장내매수하는 데 사용한 자금만 16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이전부터 쥐고 있던 483만주를 합치면 250억원 이상 투입됐을 것으로 추산된다.

세종텔레콤이 수십 차례에 걸쳐 유진투자증권 주식을 취득하자, 증권가에서는 세종텔레콤의 경영 참여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단순 투자 차원이라는 일관된 입장과 달리 세종텔레콤이 돌연 경영 참여를 선언할 수 있다는 관측이 뒤따랐다.


무엇보다 김형진 세종텔레콤 대표이사 회장의 옛 이력이 이를 뒷받침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1958년생인 김 회장은 1982년 설립한 홍승기업을 통해 국공채 중개업 분야에서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다. 1996년 홍승파이낸스 설립해 제도권 금융시장에 진입했고, 외환위기를 기회 삼아 회사채 거래 등으로 수백억원대 자산가로 탈바꿈했다.

동아증권 인수는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증권가에 오르내린 시작점이었다. 1998년 김 회장은 부도 위기에 몰린 동아증권을 당시 시세보다 두 배가량 비싼 가격에 사들였다. 당연히 증권가에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잇따랐다.

그러나 세간의 우려와 달리 김 회장의 모험수는 보기 좋게 통했다. 세종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한 동아증권은 HTS 도입으로 수수료를 낮추는 등 공격적인 영업 전략을 펼쳤다. 그 결과 인수 당시 완전자본잠식으로 허덕였던 동아증권은 수년 내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춘 증권사로 탈바꿈하기에 이른다.

단순투자?
경영참여?

김 회장의 성공신화는 2005년 약 1100억원에 세종증권을 농협중앙회에 넘긴 시점에서 정점을 찍었다. 세종증권 매각으로 김 회장은 수백억원을 손에 쥔 것으로 알려졌다. 새 주인을 찾은 세종증권은 NH농협증권으로 이름을 교체했고, 우리투자증권을 흡수하면서 NH투자증권으로 거듭났다.

이후 김 회장은 세종텔레콤에 집중했고, 자연스럽게 증권업계와 동떨어진 행보를 나타냈다. 이런 가운데 세종텔레콤이 유진투자증권 주식을 사들인 소식이 전해지자, 세간의 이목이 또 한 번 김 회장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금전적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유진투자증권 주식 매입을 이어간다는 점도 세종텔레콤의 행보를 경영권 확보 차원으로 바라보게 하는 이유다.

김 회장은 지난해 4월 경 유진투자증권 주식 매입 당시 “값이 저렴해서 샀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무렵 세종텔레콤은 유진투자증권 주식 74만주를 1주당 1882~1966원에 취득했다. 주식 취득 대금은 14억5100만원 수준이었다.

다만 이후 주식 매수 과정은 저렴해서 샀다는 김 회장의 이전 언질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크게 치솟은 취득가로 인해 자금 부담이 훨씬 가중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7일부터 지난 1월15일까지 약 한달 남짓 기간 동안 유진투자증권 주식 259만주를 장내매수 하는 과정에서 1주당 투입된 비용은 3863~4609원이었다. 5% 지분 취득 시점인 지난해 4월과 비교하면 1주당 가격은 2배, 매수 규모는 3.5배 커진 상태였다. 

급히 먹다
체했다


최근 세종텔레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단순 투자라고 넘겨버리기 힘든 또 한 번의 의미심장한 움직임을 드러난 상황이다. 유진투자증권 지분 10% 이상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세종텔레콤은 지난달 13일부터 26일까지 9차례에 걸쳐 유진투자증권 보통주 198만주를 장내매수했다고 지난달 26일 공시했다. 이로써 세종텔레콤의 유진투자증권 지분율은 12.01%(1163만주)로 확대됐다. 주당 취득단가는 4487~4872원이고, 지분 투자를 위해 약 94억원이 투입됐다.

이번에도 세종텔레콤이 내세운 투자 목적은 단순 투자였다.

그러나 세종텔레콤은 유진투자증권 지분 10% 이상 확보했다는 공시를 낸 지 일주일 만에 생각지 못한 또 다른 소식을 전했다. 지난 2일 세종텔레콤은 앞서 취득한 보통주 198만주를 장내매도했다.

신규 취득한 주식을 불과 일주일 만에 내다파는 건 지극히 이례적인 사안이다. 유진투자증권 지분을 꾸준히 늘려왔던 세종텔레콤의 기존 행보와도 상충된다. 이 과정을 거치며 세종텔레콤의 유진투자증권 지분율은 다시 10% 밑으로 떨어졌다.

금전적인 손해도 막심했다. 재매각 과정에서 1주당 매도가는 4419원, 주식 매각대금은 87억5000만원이었다. 취득한 주식을 일주일 만에 되파는 과정에서 8억원에 가까운 손실이 뒤따랐다.


세종텔레콤이 유진투자증권 주식을 다시 매물로 내놓은 건, 자의가 아닌 ‘초보적인 실수’ 때문이었다. 세종텔레콤이 주식 취득 과정에서 금융위원회 승인을 받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융회사의 대주주(지분 10%이상 보유자)가 되려면 주식 취득 전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승인을 받지 않은 채 취득한 주식에 대해서는 6개월 내 처분을 명할 수 있다.

금융위 건너 뛴 대형사고
힘들게 먹고 어이없게 뱉어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취득한 금융회사 주식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즉, 세종텔레콤은 기초 단계인 금융위원회 승인 절차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유진투자증권 지분 취득에 열을 올린 셈이다. 세종텔레콤 총괄 운영을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던 김 회장이 맡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식 밖 행동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더욱이 과거 김 회장은 증권사 운영 경험도 갖춘 인물이다. 

세종텔레콤은 순순히 착오를 인정한 상황이다. 세종텔레콤 관계자는 “단순 투자 차원에서 주식을 취득했던 것”이라며 “다만 취득 과정에서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고 이로 인해 매수한 주식을 곧바로 처분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자 투자업계에서는 세종텔레콤이 금융위원회 승인을 거친 후 유진투자증권 주식을 다시 매수할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이 경우 본격적인 경영 참여 움직임을 드러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유진기업의 최근 행보는 세종텔레콤의 지분 확대와 맞물린 양상이다. 지난달 31일 유진기업은 지난 4월27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10차례에 걸쳐 유진투자증권 보통주 97만3000주를 장내매수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유진기업의 유진투자증권 지분율은 1%p 상승한 28.26%(2737만3920만주)로 확대됐다. 주당 취득단가는 4329~4902원이고, 추가 주식 취득을 위해 약 44억원이 투입됐다. 특수관계인 지분율 역시 29.98%(2904만1105주)로 소폭 올랐다.

유진기업의 유진투자증권 주식 취득은 약 5년6개월 만이다. 유진기업은 기존 26.22%(2539만4585주)였던 지분율을 2015년 11월 27.25%(2640만920주)로 끌어올린 이래 주식 취득에 나서지 않았다.

절차는
어디로

투자업계에서는 유진기업의 유진투자증권 지분 확대를 세종텔레콤의 최근 동향과 연결 짓고 있다. 또한 최근 등장한 제3의 세력에 대한 견제 차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3월 개인투자자인 김종석씨는 특별관계자 1인을 포함해 유진투자증권 지분 5.02%(485만8108주)를 확보했다. 보유 목적은 단순 투자 목적이며, 현 상황에서 우호 세력 여부를 가늠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heat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종텔레콤은 어떤 회사?
김형진 회장 절반의 성공

세종텔레콤(옛 온세텔레콤)은 김형진 회장이 2011년 3월 인수한 회사다. 대한전선 계열사였던 온세텔레콤은 그룹 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매각 절차를 밟았다.

김 회장은 2007년 지배력을 확보했던 통신사업자 세종텔레콤(현 세종)을 동원해 온세텔레콤 경영권 지분을 인수했다.

온세텔레콤은 김 회장 지휘 아래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우선 820억원 규모 대규모 유상증자로 자금부터 조달했다. 또한 통신사업을 두고 경쟁을 벌였던 세종텔레콤(현 세종)과 온세텔레콤의 통합에 공을 들였다.

이후 세종텔레콤(현 세종)은 2015년 4월 통신사업부문(688억원), 2016년 9월 부산 육양국(275억원) 등을 온세텔레콤에 매각하면서 963억원을 회수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온세텔레콤은 세종텔레콤의 사명을 넘겨받았다.

기존 세종텔레콤은 현재 세종이라는 사명으로 변경했다.

김 회장의 세종텔레콤 인수 10년 효과는 절반의 성공이다. 지난해 말 기준 세종텔레콤 자산 규모는 4960억원에 달한다. 그가 인수하기 직전 해인 2010년과 비교하면 2.5배가량 증가했다.

다만 사업적 시너지 여부엔 물음표가 남는다. 매출액 규모는 2010년 3210억원에서 지난해 2800억원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2016년 이래 매출액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성장엔 한계에 부딪힌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제4이동통신 사업자 진출이 무산되는 등 악재도 있었다.

세종텔레콤은 변화를 모색하고자 ▲세종큐비즈(중고폰 유통, 67%) ▲조일이씨에스(전기공사, 합병) ▲비브릭(블록체인, 54.79%) 등 외형 확장에 나선 상황이다. 올해 초에는 커머스 사업에 집중하고 100% 자회사 ‘콘텐츠캐리어(100%)’를 분사시킨 바 있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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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