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47·48) 명란젓, 밴댕이젓

생각보다 귀한 생선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명란젓 ⓒpixabay

명란젓

명란젓은 명태의 알 즉 명란(明卵)을 재료로 만들어진 젓갈인바, 먼저 명태에 대해 살펴보자.

이를 위해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실려 있는 ‘명태(明太)’ 인용해본다.

함경도 명천(明川)에 사는 어부(漁父) 중에 태씨(太氏) 성을 가진 자가 있었다.

어느 날 낚시로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 고을 관청의 주방 일을 보는 아전으로 하여금 도백(道伯)에게 드리게 했는데, 도백이 이를 매우 맛있게 여겨 물고기의 이름을 물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하고 단지 “태 어부(太漁父)가 잡은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이에 도백이 말하기를 “명천의 태씨가 잡았으니, 명태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고 했다.

이로부터 이 물고기가 해마다 수천석씩 잡혀 팔도에 두루 퍼지게 됐는데, 북어(北魚)라고 불렀다.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이 말하기를 “300년 뒤에는 이 고기가 지금보다 귀해질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그 말이 들어맞은 셈이다.

내가 원산(元山)을 지나다가 이 물고기가 쌓여 있는 것을 봤는데, 마치 오강(五江, 지금의 한강 일대)에 쌓인 땔나무처럼 많아서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

상기 기록에 등장하는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 1628∼1692)은 숙종이 보위에 있을 당시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이를 살피면 명태란 이름의 시작은 아마도 그 무렵 아닐까 생각한다.

바로 피휘의 문제 때문이다.


피휘(避諱)란 고려 말부터 조선조까지 유행했던 일로 중국의 연호나 황제의 이름에 들어간 글자를 피하기 위해 글자가 같을 경우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명태는 명나라 태조를 지칭하는 명태조(明太祖)에서 한 글자도 아닌 두 글자가 중첩된다.

이를 감안하면 어느 한편으로 누군가가 청나라에 멸망한 명나라를 의도적으로 능멸하기 위해 흔하디 흔한 생선 이름을 고의로 ‘명태’라 지은 것은 아닌가 의심해본다.

이를 감안하고 명란젓에 접근해보자.

명란이란 용어는 이규경의 북어변증설(北魚辨證說, 북어를 변론하여 증명하는 글)에 등장한다.

그 중 일부다. 

그 이름은 북어인데 민간에서는 명태라 칭한다.

봄에 잡히는 북어는 춘태라 일컫고, 겨울에 잡히는 북어는 동태라 지칭한다.

동짓달에 시장에 등장하는 북어는 동명태라 부른다.

알로 만든 젓갈은 명란이라 일컫는다.
其名曰北魚。俗其稱則明太。春漁曰春太。冬捉曰冬太。以至月登諸市曰凍明太。卵?曰明卵

이를 살피면 명란은 조선 후기 들어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해본다. 

여하튼 애주가에게는 기막힌 술안주로 일반에게는 밥도둑이라 평가받는 명란젓에는 티아민 성분이 함유돼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티아민은 신체 에너지를 활성화해 피로회복을 도와준다고 한다.

또 명란젓에는 비타민 B1, 비타민 B2, 비타민 E가 많이 들어 있으며 뇌와 신경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작용을 하며 각종 암을 예방하며 염증을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라 한다.

애주가에게는 ‘술안주’ 일반인에게는 ‘밥도둑’
밴댕이를 대궐에 진상하는 기관도 있을 정도

이와 관련해 애주가들에게 흥밋거리를 즉 필자가 명란을 어떻게 섭취하는지 공개하겠다.

필자는 하루를 마감하며 항상 막걸리 두 병을 마신다.

물론 술 기운을 빌어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글쓰기에서 해방되어 잠을 자기 위해서다.


그 안주로 자주 등장하는 식품이 명란과 돼지 불고기인데, 이 두 가지를 함께 깻잎에 싸서 먹는다.

그런 경우 명란의 쌉싸름한 맛과 돼지 불고기가 어우러져 환상의 맛을 풍겨낸다.

또 다음날 새벽 책상에 앉는 그 순간에 전혀 숙취를 느끼지 않고 다음 글을 이어간다. 

 

▲ 밴댕이젓 ⓒ이마트

 

밴댕이젓

밴댕이 하면 생선인 밴댕이보다 먼저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이 떠오른다.

소갈딱지는 소갈머리와 같은 말로 마음이나 속 생각을 낮잡아 부르는 표현이다.

아울러 밴댕이 소갈딱지는 아주 속이 좁은 사람을 두고 밴댕이라고 하는데, 이보다 더 좁아서 밴댕이속의 아주 작은 부스러기 같은 마음 씀씀이를 뜻한다.

이 같은 부정적 사고 때문인지 필자 역시 밴댕이를 그저 젓갈용으로만 이용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지냈는데 소설가로 변신한 직후 가족들과 강화도를 방문해 구수하기 이를 데 없는 밴댕이 회와 구이를 즐기고는 밴댕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이응희 작품 감상해보자.

蘇魚(소어)
밴댕이

月近端陽節(월근단양절)  
절기가 단오절에 가까워지면 漁船滿海湄(어선만해미)  
어선이 바닷가에 가득하네 蘇魚塡市口(소어전시구) 
밴댕이가 어시장 메우니銀雪布村岐(은설포촌기) 
은색 눈 촌락에 깔리네味絶包?食(미절포거식) 
상추 싸먹으면 맛 기막히고甘多麥飯時(감다맥반시)  
보리밥에 먹어도 맛 좋네 田家無此物(전가무차물) 
시골 집에 이 물건 없으면鮮味少能知(선미소능지) 
생선 맛 알 사람 적으리 

상기 제목에 등장하는 蘇魚(소어)를 밴댕이라 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조선조 실학자인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그 실마리 찾아본다.

사신을 따라 중국에 들어가는 이는 반드시 칭호 하나씩을 가지는 법이다.

그래서 역관을 종사(從事)라 하고, 군관을 비장(裨將)이라 하며, 놀 양으로 가는 나와 같은 이는 반당(伴當)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말에 소어(蘇魚)를 반당(盤當)이라 하니 대개 반(盤)과 반(伴)의 음이 같은 까닭이다.

이를 살피면 반당(盤當)이 시간이 흘러 밴댕이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박지원의 글을 빌면 박지원도 필자처럼 밴댕이를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은 듯 보인다.

그저 밴댕이를 하찮은 생선 정도로 여긴 듯하다.

이에 대한 반전을 위해 승정원 일기 인조 15년(1637) 1월21일 기록 살펴본다. 

동부승지인 이경중이 “밴댕이(蘇魚)가 남아 있는 것이 있는데, 그 수효가 많지 않아서 한 마리씩 밖에는 나누어 줄 수 없습니다. 우선 나누어 주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선 보류했다가 요미(料米)를 줄여야 할 때에 주도록 하라. 온빈(溫嬪) 및 왕자(王子)와 왕손(王孫)이 모두 반찬이 없다고 괴로워하니, 또한 나누어 보내도록 하라.”

상기 글에 등장하는 온빈은 온빈 한씨(溫嬪韓氏, 1581~1664)로 조선 제14대 임금인 선조의 후궁이다.

내용을 살피면 밴댕이를 상당히 귀히 여긴 듯하다.

또 이익도 경기도 안산(安山)에 소어소(蘇魚所)가 존재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소어소는 밴댕이를 잡아 대궐에 진상하는 일을 담당한 기관이다.

결국 이를 살피면 밴댕이가 그렇고 그런 생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밴댕이를 젓갈로 만들었을까.

그 시작은 알 수 없으나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살피면 ‘鮑魚及蘇魚?卵片’이란 글이 등장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蘇魚?(소어해)가 밴댕이젓으로 이순신 장군은 어머니께 전복과 밴댕이젓 그리고 어란을 보냈다고 한다.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