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약품 오너 3세 마지막 승계 퍼즐

후계자에 주어진 선물과 숙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제일약품 3세는 후계 구도에서 공고한 위치를 선점한 지 오래다. 다만 승계 마침표를 완전히 찍지는 못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아직 최대주주가 되지 못한 점을 비롯해 수익 구조 개선에 대한 언급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제일약품 본사 ⓒ제일약품

제일약품은 지난 1959년 설립된 중견 제약사다. 최근에는 화이자 관련주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화이자는 코로나19 백신으로 기대감을 모으고 있는데, 제일약품이 도입해 판매하는 의약품 상당수가 화이자 상품이다.

중견 제약
승계 준비

제일약품은 3세 체제를 준비하고 있다. 주인공은 한상철 제일약품 부사장. 그는 창업주 고 한원석 회장의 손자이자 한승수 회장의 장남이다.

한 부사장은 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체스터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이후 한국화이자 제약, 한국오츠카 제약 등 다국적 제약사에서 근무했고, 지난 2007년 제일약품 마케팅 이사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한 부사장은 지난 2015년 1월 경영기획실 전무이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후계 구도에 불을 지폈다.


승계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때는 지난 2017년 6월로 당시 제일약품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지주사 전환은 제일약품 창립 5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간 제일약품은 특별한 계열사 없이 단일 지배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제일약품은 인적분할을 통해 존속법인 사명을 ‘제일파마홀딩스’로 교체하고 지주사 역할을 맡게 했다. 신설법인 ‘제일약품’은 사업부문을 담당하게 됐다. 제일파마홀딩스와 제일약품은 각각 변경상장과 재상장 절차를 거치며 시장에 안착했다.

동시에 한 부사장의 존재감이 뚜렷해졌다. 한 부사장은 제일파마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된 데 이어, 제일약품 부사장직도 유지하게 됐다. 사실상 3세 경영인으로서의 시작을 알린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제일약품은 기존에 없던 계열사도 품게 됐다. 이미 회사는 지주사 전환에 앞서 지난 2016년부터 분사를 통해 제일앤파트너스(판매대행), 제일헬스사이언스(의약품 제조), 제일에이치앤비(화장품) 등을 설립한 바 있다. 각 사업 부문을 전문화·세분화한 것으로, 당시 업계 안팎에선 이를 지주사 전환을 위한 포석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창립 58년 만에 지주사 파격 전환
지주사 사장에, 주력사 부사장으로

제일파마홀딩스는 제일약품 지분을 공개 매수했고, 최종 지배구조는 ‘오너 일가→제일파마홀딩스→제일약품 및 계열사’로 이어지게 됐다. 한 부사장의 3세 경영이 가시권에 들어왔지만 승계가 완전히 끝맺은 것은 아니었다. 정리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지분 문제가 거론됐다. 한 부사장은 제일약품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제일파마홀딩스의 최대주주가 아니다. 한승수 회장이 57.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 부사장의 지분은 9.68%로 상당한 격차다. 한 부사장의 동생 한상우 제일약품 개발본부 이사(2.86%)와 한승수 회장의 동생 한응수씨(1.88%)가 그 뒤를 잇고 있다.

한 부사장은 제일파마홀딩스뿐만 아니라 제일약품에서도 압도적인 지분을 쥐고 있지 않다. 제일약품 최대주주는 제일파마홀딩스로 49.71%의 지분이 있다. 한 부사장의 몫은 0.61%에 불과하다. 오히려 한응수씨가 6.32%로 개인 기준 최대주주다. 한승수 회장에게도 3%의 지분이 있다.

결국 한 부사장이 후계자로 온전히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지분 확보가 동반돼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배구조가 ‘오너 일가→제일파마홀딩스→제일약품 및 계열사’인 만큼 제일파마홀딩스 지분 취득이 승계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첫걸음으로 판단된다.
 

▲ 제일약품 본사 ⓒ네이버 지도`

첫 번째 방법은 장내 매수다. 제일파마홀딩스 주식을 직접 사들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확보해야 하는 자금이 만만치 않다.

일례로 제일파마홀딩스 최대주주인 한승수 회장의 보유 지분 가치는 2270억원이 넘는다(25일 종가 기준). 반면 한 부사장의 보유 지분 가치는 380억원이다. 당장 최대주주까지 다다르는 데는 무리가 있다.

반대로 한 부사장이 한승수 회장으로부터 보유 주식을 물려받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증여세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자금을 어디서 어떻게 끌어 모을 수 있느냐에 따라 완전한 승계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관건은
지분?

또 다른 방법 중 하나로 배당이 꼽힌다. 한 부사장은 제일파마홀딩스와 제일약품을 비롯한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자금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3년간(2017~2019) 제일파마홀딩스 배당액은 2억원, 10억원, 10억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제일약품도 7억원, 8억원, 10억원 등으로 비슷했다. 한 부사장은 제일약품 계열사 제일헬스사이언스 지분을 12.03%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제일헬스사이언스에서는 따로 배당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자금 확보 수단이 마땅치 않은 가운데 한 부사장이 고가 아파트를 증여받은 점이 언급됐다. 부동산을 통해 자금 마련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스카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지난 8월 한승수 회장은 서초구 반포동 소재 고급 아파트를 한 부사장에게 증여했다. 당시 아파트 가치는 42억원가량이었다.

해당 부동산을 판매하거나 담보로 걸어둔다면 필요한 자금을 준비할 수 있다. 다만 제일파마홀딩스 지분을 직접 사들일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 제일파마홀딩스 최대주주인 한승수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증여받고 부담해야 할 증여세에 비해서도 부족하다는 관측이다. 다만 자금력의 귀추가 주목되는 만큼, 한 부사장의 수증은 쉽게 간과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한 부사장이 제일파마홀딩스 최대주주에 등극하더라도 경영 능력 입증이 승계를 위해 요구되는 또 다른 절차라고 말한다. 단순한 지분 취득만으로 승계를 끝마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최근 3년간(2017~2019) 제일약품 별도 기준 매출액은 3715억원, 6270억원, 6714억원으로 매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9억원, 73억원 등으로 올라섰지만 지난해 3억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순이익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동기간 10억원에서 18억원으로 소폭 증가했다가 -105억원으로 적자 전환됐다.

다만 올해는 흑자 전환을 점쳐볼 수 있다. 제일약품의 3분기 누적 연결기준 매출액은 5184억원이었다. 직전년도 대비 2.8% 늘어난 수치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20.4%, 96.3% 수직상승한 109억원, 66억원으로 나타났다.

▲ 케펜텍 ⓒ제일헬스사이언스

제일약품은 이전까지 자회사가 따로 없어 연결 기준이 아닌 별도 기준으로 재무제표가 작성됐다. 하지만 지난 5월 연구개발 전문회사인 온코닉테라퓨틱스를 100% 자회사로 품었다. 제일약품 실적은 크게 기울지 않는 추세지만 업계의 평가는 갈린다. 회사의 수익구조 때문이다.

실적 회복
그래도…


제일약품은 창립 초기부터 외국 의약품 수입 판매에 집중했다. 이 같은 사업적 특성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제일약품 전체 매출에서 상품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제일 높다. 제일약품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전체 매출 가운데 상품 비중이 77.08%를 차지했다.

쉽게 말해 남의 제품을 팔아 대부분의 매출을 채우고 있는 셈이다.

반면 전체 매출에서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2.8%에 불과했다. 이는 화이자로부터 수입해 판매하는 리피토(25.01%)보다 낮은 수치다. 화이자에서 생산하고 있는 리리카는 제일약품 매출의 9.22%일 정도로 높다.

이외에도 화이자에서 제조하는 쎄레브렉스(7.07%), 란스톤 LFDF(4.97%), 뉴론틴(3.6%), 액토스(3.11%), 카듀엣(3.04%), 덱실란트디알(2.92%), 네시나(2.88%) 등이 제일약품의 실적을 좌우하고 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제일약품의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제품 비중은 22%에 그친 반면 상품은 77.6%로 지난해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화이자의 리피토 매출 비중이 24.5%로 가장 높았고, 그 외 상품 매출 순위는 다르지 않았다.

애초 제일약품은 상품 매출보다 제품 매출 비중이 더 높았다. 역전이 발생한 건 지난 2004년부터다. 제품 매출이 더디게 늘었던 반면 상품 매출은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상품 매출은 2011년까지만 하더라도 전체 매출 가운데 평균 53% 수준을 보였다. 하지만 2012년부터 그 비중이 60% 가까이 증가했고, 매년 늘어나면서 최근 3년간 7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비중뿐만 아니라 상품 매출액은 제품 매출액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제품 매출이 가장 높았던 때는 2011년 2068억원이었다. 나머지 사업연도에서 제품 매출액이 2000억원을 넘은 적은 없다.

최대주주까지 머나먼 길 ‘어떻게?’
수익구조 거론…신약개발로 화룡점정?

반대로 상품 매출액은 2004년부터 2009년까지 1000억원대 초반에서 후반으로 차츰 증가하다가 이후 앞자리가 바뀔 정도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물론 외국 의약품 수입 판매가 제일약품의 외적 성장을 견인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제일약품은 상품 판매를 통해 실적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는 지금과 같은 위상을 유지하는 데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제약업계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도 ‘다국적 제약사 판매대행’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세포 독성 항암제 공장 ⓒ제일약품

그래서인지 한 부사장은 신약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 부사장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시행해 제일약품의 신약 개발 지원 및 연구개발 역량을 높일 것”이라며 “글로벌기업으로 가기 위한 내실을 다져나가는 해로 만들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현재 제일약품은 신약과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25억원을 출자해 설립해 100% 자회사로 두고 있는 연구개발 전문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가 회사의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은 한 부사장의 동생 한상우 이사가 개발부 이사로 근무 중인 곳이기도 하다.

제일약품 내 연구개발 조직은 크게 개발본부(운영 전반 관리)와 중앙연구소(신약후보물질 발굴 및 고부가가치 원료의약품 합성공정 연구), 그리고 제제기술연구소(제제개발 연구)로 나뉜다.

연구 인력은 지난해 88명에서 94명으로 늘었다. 또 신약개발 업무 총괄담당을 위해 중앙연구소장을 전무로 승진시키는 등 힘을 불어넣고 있다. 연구개발 비용은 전체 매출의 4% 내외에서 책정된다.

현재 회사는 총 12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뇌졸중·항암제·신경병성 통증·당뇨·역류성식도염·망막질환·파킨슨·전립선비대증 치료제 등이다.

이 중 자체 개발 중인 신약은 전립선비대증 치료제 1개와 당뇨 치료제 4개다. 특히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는 임상 3상을 국내에서 진행 중이다. 당뇨 치료제 1개의 경우, 국내에 임상 1상을 신청한 상태이고 나머지는 비임상 단계를 밟고 있다.

결국은 
실적으로

제일약품은 3분기 보고서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의 발판을 준비하기 위해 신약개발 능력 및 신약 파이프라인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인식하고 있다”며 “혁신 신약 및 개량 신약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회사의 역량을 집중, 글로벌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도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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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