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23·24) 쑥갓, 시금치

고려의 국화와 채소의 왕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쑥갓 ⓒpixabay

 

쑥갓

다음은 속명(俗名) 호개(蒿芥)로 일컬어지는 김창업의 작품 ‘동호’(茼蒿) 이다. 

有菜不知名(유채부지명)
이름 모르는 채소 있는데
小花如菊黃(소화여국황)
자그마한 꽃 누런 국화 같네
茼蒿載本草(동호재본초)
동호는 본초에 기재되어 있는데
顧我考未詳(고아고미상)
보건데 나는 세세히 살피지 못했네 

고려시대 때부터 식용한 것으로 추측되는 쑥갓의 한자명이 위 작품에 등장하는 茼蒿(동호)이다.

김창업은 쑥갓의 꽃이 국화 같다고 했는데 정약용도 그의 작품서 茼蒿花似蘜(동호화사국)이란 표현을 사용해 ‘쑥갓 꽃은 국화와 비슷하다’고 했다. 


이를 살피면 쑥갓과 국화의 관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쑥갓의 꽃은 국화와 닮았는데 조선조 실학자 이규경은 그의 작품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쑥갓을 지칭해 高麗菊(고려국) 즉 고려의 국화로 명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쑥갓이란 이름은 어디서 파생했을까.

바로 동호의 속명 호개(蒿芥)에서 기인한다.

蒿芥에서 蒿는 쑥을 그리고 芥는 갓을 의미하니 더해 쑥갓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쑥갓을 쑥을 의미하는 艾(애)와 芥(개)를 합해 艾芥(애개)라 칭하기도 한다.

여하튼 다시 위의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본초는 송나라 당신휘(唐愼徽)가 짓고 구종석(寇宗奭)이 수정한 ‘경사증류대전본초(經史證類大全本草)’의 약칭이다.

이 책은 약물학에 대한 저서로 증류본초라고도 한다.

김창업은 본초에 실려 있는 쑥갓을 세세하게 살피지 못해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쑥갓의 유래를 살피면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그곳에서는 식용이 아닌 관상용으로 재배되고 있고 그 이름 또한 Crown Daisy(왕관 모양의 데이지 꽃)로 채소가 아닌 꽃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일성록>을 살피면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갔던 봉림대군(후일 효종)을 호종했던 노원 역리 출신 홍끗룡(洪唜龍)이 효종이 환국할 때 호개(蒿芥) 종자를 숨겨 와 왕십리에 파종했고 효종이 보위에 오른 이후 쑥갓을 진상해 가자(加資, 품계가 오름)됐다는 기록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앞서 이야기, 고려시대부터 식용됐다는 이야기는 오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 이방원이 ‘이제부터 어선(御膳)에 茼菜(동채, 쑥갓)를 올리지 말라’고 한 기록을 살피면 고려시대에도 식용됐다는 추측이 그르지 않다.  

이제 조선후기 문신이었던 이학규(李學逵, 1770∼1835)의 작품 쑥갓(艾芥, 애개)을 감상해보자.

蒿芽芥其臺(호아개기대)
쑥으로 싹 터 그 대는 갓인데
芳馨溢齒本(방형일치본)
그윽한 향기 입안 가득하네
嘗聞煗爐供(상문난로공)
일찍이 난로에 기여했다 들었고
再蒔須秋晩(재시수추만)
늦가을 다시 심어도 되네

위 작품에 등장하는 煗爐(난로)에 대해 부연한다.

난로는 난로회의 준말로 10월 초하루가 되면 화로에 숯불을 피우고 석쇠를 올려놓은 다음 쇠고기를 양념해 화롯가에 둘러앉아 구워 먹었던 풍습으로 그 과정에서 쑥갓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만큼 쑥갓이 애용됐음을 의미한다.

실학자 이규경 ‘고려의 국화’로 표현
‘뽀빠이’ 하면 생각나는… ‘채소의 왕’

그 이유가 무엇일까.

위 작품에 그 이유가 함축돼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기려 한다.

그윽한 향기를 의미하는 芳馨(방형)과 난로회에 기여했다는 煗爐供(난로공)을 살피면 능히 짐작되리라 생각한다. 


시금치

시금치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기록을 살펴본다. 

원산지는 페르시아지방으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에선 1577년(선조 10)에 최세진(崔世珍)에 의해 편찬된 <훈몽자회>에 처음 시금치가 등장하고 있어서 조선 초기부터 재배된 것으로 여겨진다. 
 

▲ ▲시금치 ⓒpixabay

이 내용이 옳은지 알아보기 위해 다음 작품을 살펴 보려 한다.

김창업의 형인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작품이다.

菠薐 俗名時根菜(파릉, 속명 시근채)
시금치 속명 시근채

菠薐傳數名(파릉전수명)
시금치는 여러 이름 전하는데
其始出波羅(기시출파라)
그 시작은 페르시아에서 나왔네
我國有俗稱(아국유속칭)
우리 나라에는 속칭 있는데
恐是赤根訛(공시적근와)
아마도 적근의 와전인 듯하네 

위 작품의 제목인 菠薐(파릉)이 시금치의 한자명으로 전래 과정은 <훈몽자회>의 내용이 맞다.

그렇다면 전래 시기는 어떠할까.

서거정의 작품이다.

謝金少尹同年 永濡 送菠菜子(사김소윤동년 영유 송파채자) 
동반 급제한 소윤 김영유가 시금치 씨앗을 보내준 데 대해 사례하다 

我有荒田數頃餘(아유황전수경여)
내게 내버려둔 밭 두어 이랑 있어
秋來擬種滿園蔬(추래의종만원소)
가을에 전원 가득 채소 심으려 했는데
感君多送靑菠子(감군다송청파자)
고맙게도 자네 시금치 씨앗 많이 거두어
急喚僮奴送弊廬(급환동노송폐려) 
급히 종 아이 불러 우리 집에 보내주었네 
圓莖如竹葉如磐(원경여죽엽여반)
둥근 줄기는 대같고 입은 너럭바위 같은데
滿甕沈虀味自酸(만옹심제미자산) 
항아리 가득 절이면 맛이 절로 새콤하네 
預識秋來滋味足(예식추래자미족)
가을 되면 맛이 풍부할 걸 미리 아니
煩君爲我一來看(번군위아일래간)
번거롭더라도 자네 나를 위해 와서 보시게

위 작품은 서거정이 1457년(세조 3) 평양 소윤(정4품)이었던 김영유(1418∼1494)가 시금치 씨앗을 보내준 일에 대해 김영유에게 사례하는 글이다. 

위 글에 등장하는 菠菜(파채)와 菠(파) 역시 시금치를 지칭하는데, 시금치가 서거정과 김영유에게 상당히 친숙한 나물로 여겨진다.

특히 사대부인 서거정이 시금치를 식용하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알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훈몽자회>와는 다르게 오래전부터 즉 조선 이전 고려조 후반부터 시금치가 전래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여하튼 시금치는 우리 세대에게 미국서 제작한 인기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뽀빠이’를 통해 친숙해졌다.

아직도 뽀빠이와 뽀빠이의 여자 친구 올리브, 악역으로 등장하는 블루토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질 정도다.

줄거리는 <두 얼굴의 사나이>(The Incredible Hulk)에 등장하는 헐크처럼, 평소에는 나약한 뽀빠이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 시금치를 먹고 강력한 인물로 변해 블루토를 응징하는 방식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시금치가 남자들의 정력 강화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여기고 애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금치와 정력은 별개의 문제다.

그와 관련해선 1983년 5월10일자 <동아일보>의 기사를 인용해 본다.

‘시금치 정력제 안 돼’ ‘타자수 실수로 논문 잘못 알려져’라는 제하로 <AFP> 기사를 인용했다. 

「시금치의 다량섭취가 정력을 강화시킨다는 학설은 잘못된 것이며 이 학설을 근거로 뽀빠이 만화까지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 한 조심성 없는 여비서의 타자 실수에 그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보고서가 최근 발표돼 화제」

비록 시금치가 정력제로서는 적합하지 않지만 건강식품임에는 틀림없다. 시금치에는 채소 중에서 비타민 C가 가장 많이 들어 있다. 또 비타민 B1, 비타민 B2, 나이아신, 엽산, 사포닌 등이 함유돼있으며 당질, 단백질, 지방, 섬유질, 칼슘, 철 등의 영양소도 함유돼 있어 채소의 왕으로 불릴 정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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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