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직접 이 땅에 내려오지 않으시고 아들을 보내셨어요? 왜 그를 죽게 만들었어요? 성경 속에서 당신의 아들이 죽게 되는 과정을 읽을 때마다 저는 너무 슬퍼요. 자신의 운명을 힘겹게 받아들이고 희생한다. 자신의 운명은 희생 그 자체다. 이렇게 되는 거 아닌가요?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운명이 정해져 있으면 자유는 없고, 자유가 있으면 운명은 없는 거라고 해요. 그러면 당신의 아들에게는 자유가 존재하지 않았던 게 맞나요? 왜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어야만 했나요. 그가 죽고 난 후에 한 번도 세상은 선한 적이 없었는데,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은 게 맞나요? 숭고함으로 포장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인가요.
장치라고 하니 생각나서 말인데요. 성경을 읽다보면 억지스러운 장치같은 게 너무 많아 보여요. 소설을 진행하기 위해 사용되는 복선들. 이것도 저의 의심이라면 죄송해요. 하지만 성경은 인간이 쓴 거잖아요. 어떻게든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야 하니 극적으로 써내려가지 않았을까요?
저도 지금 저의 심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평소보다 극적으로 얘기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왜 선악과를 먹게 놔두셨어요? 애초에 왜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만드신 거에요? 아니, 왜 악이 하와를 꼬드기게 내버려 두신 거에요?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인간의 자유 의지를 존중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럼 하나님은 인간이 악의 길에 빠지는 걸 바라신거에요? 꾀임에 넘어가겠거니 하고 어느 정도는 미리 생각하셨을 거잖아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인간인데 왜 동산 가운데 저 열매는 먹지마라고 콕 찝어가면서까지 얘기하신 거냐구요. 왜 제가 원죄의 인간이 되게 만드신 거에요. 왜 내가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요.』
기독교 신자인 아내로 인해 유아시절부터 교회에 나가는 딸아이가 최근 장문을 작성해 필자에게 보여줬다. 상기 글은 그 중 일부로 종교, 즉 기독교의 모순에 대해 조목조목 나열해 자신이 겪고 있는 고민을 토로하며 그 답을 요구했다.
필자는 인간, 더불어 생명체의 생(生)과 사(死)에 대해 확고한 이론을 견지하고 있다. 일전에 <일요시사>에 언급했던 기(氣)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가 존재하면 생이고 기가 사라지게 되면 사라고, 엄밀하게 언급해서 둘은 별개가 아닌 하나라고 말이다.
그런 필자에게 종교는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나아가 미션스쿨 출신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성경을 탐독했던 필자의 관점서 바라보면 성경은 한마디로 자기모순, 아이 표현대로 추잡한 억지에 불과할 뿐이다.
동정녀가 아이를 잉태하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고, 물질, 즉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의 세계서 전혀 의미도 없는 천당을 거론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아내나 아이가 기독교를 믿는 일에 반대하지 않는다.
왜냐, 억지 장치가 판을 치고 있지만, 그 목적, 즉 그 장치들이 기독교가 지향하는 조건 없는 사랑인 아가페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에선 어떨까.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돼있다. 기독교의 최종 목적인 아가페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고 아가페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말도 되지 않는 장치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러니 내 아이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상황과 관련해 일부 기독교인들의 행태는 심히 실망스럽다.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자기 독선에 빠진 기독교의 쇠락을 보는 듯하다. 흡사 전염병도 전도하려는 행태처럼 말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